오랜만에 서재에 글을 올리는 김에 현재 번역하고 있는 중인 에티엔 발리바르의 또 다른 책에 수록된  

글을 한 편 올립니다.  현재 번역을 다 마치고 교정을 보면서 해제를 쓰고 있는 책은 {우리는 유럽의 시민들인가?} 

라는 책이고, 이번에 올리는 글은 비슷한 시기에 나온 {정치체에 대한 권리Droit de cité}, PUF, 2002라는 

책입니다. 그냥 {정치에 대한 권리}라고 번역해도 좋을 것 같긴 합니다.  

두 번째 책은 첫번째 책보다 분량이 다소 적긴 하지만, 첫번째 책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중요한 글들이 

수록돼 있고, 짧지만 감동적인 글도 몇 편 수록돼 있어서, 저로서는 아주 좋아하는 책입니다.^^  

지금 올리는 글도 비교적 짧지만 아주 풍부하고 깊은 함축이 담긴 글인데, nation에 관해 기왕에 발리바르가 

쓴 글들을 읽어보신 분들은 새로운 면모를 접할 수 있을 것 같고, 읽어보지 못한 분들에게는 꽤나 신선한  

문제제기로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직 교정을 거치지 않은 글이니까 당연히 인용은 불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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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 프랑스―한 국민인가 아니면 두 국민인가? 

[1995년 5월 18-20일 파리 국제철학대학에서 알제리 오랑 대학교 및 작가의 집과 공동 주최로 열린 “알제리-프랑스: 교차된 시선들” 콜로퀴엄 발표문. 󰡔리뉴Lignes󰡕 제 30호, 1997년 2월호에 발표되었다. ]


알제리, 프랑스―한 국민인가 아니면 두 국민인가? 이 콜로퀴엄 시작 이래 나는 우리가 계속 해서 이 질문에 대해 성찰하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이 제목은 확실히 도발적인데, 왜냐하면 그에 대한 답변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누가 [알제리] 독립에 대해 새삼 왈가왈부하고 싶어 할 것이며, 알제리 해방 전쟁의 의미와 효과를 “고쳐réviser” 보려고 하겠는가? 하지만 지중해 이쪽과 저쪽에서 알제리와 프랑스는 충분히 분리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목소리, 두 나라는 진정으로 두 개가 아니라는 점에 대해(곧 각자는 진정으로 한 나라가 아니라는 점에 대해. 알제리는 아직도 너무 “프랑스적”이거나 프랑스화되어 있고, 프랑스는 이미 너무 “알제리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 유감을 표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때에 이런 도발도 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만약 비가역적 이원성이라는 시공간적 또는 사회시간적 관념이 탈식민화의 표시가 아니라 역사의 지속적인 식민화의 표시라면, 그럴 필요가 있지 않을까?

현재 알제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때문에 우리는 “프랑스 이전과 이후에”, “독립 이전과 이후에” 알제리의 역사는 어떤 것이었는가에 대해 묻게 되지만, 또한 우리는 그에 못지않게 “알제리 이전과 이후에” 프랑스 인민의 역사 및 프랑스 국가의 역사는 어떤 것이었는지 물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프랑스는 알제리에서, 알제리와 함께, 그리고 알제리에 맞서 이루어진 것(이고 또 분명 항상 그렇게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간단한 답변이 존재하지 않는 이러한 질문들을 아마도 우리는 지금 처음으로 제기하고 있는 셈일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억압된 어떤 것의 복귀를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또한 우리 정세의 본질적 측면인 세대의 문제이기도 하다.

식민화도 탈식민화도 소멸되지 않으며, 그와는 정 반대다. 그것들은 이러한 성찰의 소재 자체를 이룬다. 그것들은 교차된 시선들이라는 문제의 핵심에 존재한다. 우리가 프랑스와 알제리의 역사를 각각 고립시켜서, 그리고 특히 서로 상반된 것으로서 다시 사고할 수 있을까? 분명히 그럴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 역사를 동일한 것으로 다시 사고할 수 있을까? 더욱 더 그렇지 않다. 분명히 상호성은 이러한 극단적 양상들 중 어떤 것과도 일치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상호성이란 무엇인가? 자크 랑시에르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프랑스와 알제리의 관계에 대해 말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프랑스가 “자기 자신과” 맺는 관계에 대해, 프랑스가 자신 안에 품고 있는, 하지만 대부분 부인하고 있는 타자성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탈동일화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인데, 탈동일화 없이는 민주주의 정치도 존재할 수 없다. 랑시에르도 그렇거니와 나 역시도,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들의 국적 때문에, 경계의 저쪽으로 넘어가보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그렇게 해봐야 하지 않을까? 따라서 알제리와 프랑스의 관계에 대해 말하는 것은 또한 알제리가 자신의 내부에 있는 타자성과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알제리 자신의 필수적인 탈동일화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더 질문해보거니와, 이러한 탈동일화하는 담론들―각자가 자신을 가두는 동일성으로부터 벗어나고 자신을 구성하는 타자성을 인정하려고 시도하는 그러한 담론들―은 하나의 유일한 담론 또는 적어도 하나의 공통의 담론, 공유된 담론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추상적인 방식으로 상호성의 양식을 찾아서는 안되고, 고통스러운 경험의 조건 자체 속에서 그것을 찾아야 한다. 여기에서도 역시 전적으로 일반적인 문제, 오늘날의 국제주의라는 문제가 중요하다. 만약 우리가 데리다가 최근에 말했듯이 “새로운 국제주의”에 대해 말을 한다면, 이러한 국제주의의 언어는 무엇이 될까? 고전적인 국제주의는 국경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간주된 “계급 의식”이라는 관념에 의지해 있었다. 다른 이들―활동가들이든 지식인들이든 간에―은 모든 인민에게 공통적인 언어를 만들어내려고 했다(이 언어는 의미심장하게도 에스페란토esperanto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메타 담론 내지 상위의 의식 또는 “중립적” 전달 매체를 구성하려는 이 모든 시도들은 다소간 완전하게 실패했는데, 그것은 바로 이 시도들이 상황들 및 갈등들의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떻게 국제주의가 언표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답변하지 않고서는 국제주의는 전혀 생겨날 수가 없다. 나는 여기서 국민들 사이의 역사적 상호 관계 및 역사와 국민 형태가 맺고 있는 관계 자체를 미증유의 방식으로 사고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제안하고자 한다. 이것이 바로 현재 시기가 강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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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알제리와 프랑스의 역사, 이 두 개의 이름이 가리키는 실재들 사이의 독특한/단일한 관계인 그 역사는 우리에게 “국민”이라는 개념 및 그 용법과 한계에 대하여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알제리, 프랑스: 한 국민인가 아니면 두 국민인가?”라고 써놓고서 내가 처음에 하려고 한 것은 단지 한 가지 가설적 진리의 요소, 곧 소속의 격렬한 분열 속에 존재하고, 알제리의 “프랑스파Hezb I França”나 프랑스의 “마그레브의 침공” 같은 끔찍한 정식들을 사로잡고 있는 그러한 요소를 이해시키는 일이었다. 이 두 국민이 실은 하나를 구성할 뿐인지 아니면 실제로 둘을 이루는지 묻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각각의 국민 자신이 “하나”인지 아니면 “둘인지” 묻는 것(이는 프랑스만이 아니라 알제리에 대해서도 타당하다)이 문제가 된다.

다시 말하거니와 이 질문들은 프랑스와 알제리 관계의 독특성에 따라(비록 이러한 관계가 역사상 유일한 것이 아니긴 하지만) 내가 보기에 오늘날 객관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영국과 아일랜드(에이레)나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하나 또는 두 개의 국민들”을 형성하며, 각각의 경우 이런저런 식으로 답변할 이유들이 존재한다. 르네 갈리소René Gallissot는 몇 년 전에 이런 시각에 따라 “프랑스ㆍ알제리 혼합체”라는 표현을 사용한 바 있는데, 이것은 흥미로운 정식이긴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전혀 만족스럽지 않다. 나는 두 개의 역사적 실재의 비분리 내지 비배제를 표상하기 위한 또 다른 형상/도형figure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것은 너무 연속적인 데다가 충분히 갈등적이거나 변증법적이지도 못한 “혼합체”라는 형상이 아니라 현대 기하학자들이 “프랙탈”이라고 부르는, 불완전 경계frontière non-entière라는 좀더 추상적인 형상이다. 문제 삼아야 하는 것은 국민적 소속의 차원들이 필연적으로 하나나 둘 같은 정수/완전수nombre entière에 의해 표상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적어도 수적 알레고리라는 명목에 따라, 함께 취해진 알제리와 프랑스는 둘이 아니라 하나 반을 이룬다고 제시해야 한다. 마치 각자가 서로 더해질 때, [알제리와 프랑스 각자가] 항상 미리 타자의 일부를 이루고 있었다는 듯이 말이다.

만약 함께 취해진 알제리와 프랑스가 절대로 둘을 이루지 않는다면, 이는 단순히 그것들이 서로 공통의 인구를 공유하기 때문일 수는 없다(비록 이러한 공유의 사실이 중요하다 해도 그렇다). 현행적이거나 잠재적으로 인정되는(곧 약간의 입법의 변화만으로도 쉽게 이중 국적자가 되거나 다시 그렇게 될 수 있는) 상당히 많은 숫자의 이중 국적자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특수성은 좀더 일반적인 질문에 준거한다. 사실 산수는 국민 형태 그 자체 또는 국민 국가 구성의 본질적 측면 중 하나다. 국민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통일성/단일성 및 몇 가지 동일화의 특징들 내지 “단선적 특징들traits unaires”(라캉)―문화적이거나 역사적인 지표이든 아니면 정초적 사건 등이든 간에―로부터 자신을 세거자신을 열거한다. 동시에 국민들은 자신들에게 “속하는” 개인들을 센다. 이것이 바로 국상학(國狀學)/통계학statistique, 곧 “국가 과학”의 기원인데, 이것은 처음에는 “정치적 산수”라고 불렸다. 좀더 근저에서 본다면, 국민들은 방금 우리가 길게 언급했던 주체화 과정을 통해, 국민들 자신에게 속한다고 간주되는censés(또 그렇게 집계되는recensés) 이들이 그들 스스로 하나를 이룬다고 셈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제도적 현실은 절대적으로 우회 불가능한 것이다. 이 현실은 역사 속에서 국가의 지배력을 표현해준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 중 하나(나는 결론에서 시민권 문제를 언급하면서 이 점에 대해 다시 다룰 것이다)는 다음과 같은 점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형태의 양자 택일, 곧 국가의 관점을 택하거나 아니면 그것을 무시하거나 하는 양자 택일에 그칠 수는 없다. 마치 국경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국경들은 과거의 유물이라는 듯이 말이다. 우리는 이러한 제도적 셈/고려compte에서 출발하여 개인들 및 집단들을, 국가에 의해 개인들 및 집단들로 존재하는 것으로서 셈하는/고려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가 항상 단순한 방식으로 “정수”의 방식으로 셈할 수는 없다는 점 역시 명백하다. 불확실한 상황들이 존재한다. 곧 어떤 역사적 시기에 최대의 확실성이 추구되고 또 선언되는 곳에서 자주 이러한 확실성은 말하자면 “강압”의 대상이 되곤 했다.

이 때문에 프랑스와 알제리의 현재 상황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가능성, 착종의 가능성들과 마찬가지로 고립의 가능성들도 재검토하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시기에 어떤 가능성들이 다른 가능성들을 대신하여 부과되고, 또 왜 그러한 가능성들이 특권화되는지 질문해봐야 한다. “알제리 전쟁” 기간 동안 제르멘 틸리옹Germaine Tillion은 미뉘Minuit 출판사에서 󰡔상호 보완적인 적들Les ennemis complémentaires󰡕이라는 책을 출간한 적이 있는데, 여기 모인 사람들 중에서도 그 책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모두가 이 표현에 찬성하지는 않았다. 이 표현은 둘로 분할되는 통일체라는 관념과 하나로 융합되는 이원체라는 관념을 동시에 차례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또는 지중해 양쪽에서 사람들이 어떠한 전개 과정을 장기적으로 파악하는지 여부에 따라 이 두 가지 관념을 차례대로 동시에 원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지중해 연안 양 편의 모든 민족주의자들―이 표현을 순전히, 정치에서 국민의 우선성을 인정하고 방어하는 사람들로 이해하기로 하자―은 자연히 둘로의 분할이라는 형상을 특권화했다. 이들 모두가 동일한 진영에 속해 있었던 것은 아니며, 여기에서는 그들 중 몇몇 사람이 특히 흥미롭다. 우리는 1957년 출간된 레몽 아롱Raymond Aron의 󰡔알제리의 비극La tragédie algérienne󰡕이라는 책에서 이러한 입장의 탁월한 사례를 볼 수 있다. 레몽 아롱이 그의 생애 전체에 걸쳐서, 그리고 그의 정치 철학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이 시기에도 국가와 국민의 필연적 동일성에 대한 옹호자였기 때문에, 그는 알제리와 프랑스가 “하나”를 이루지 못하므로 필연적으로 “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는 그렇게 말했다.

국제주의자들은 가장 복잡한 입장, 심지어 가장 애매한 입장을 택했다. “이름 없는 전쟁”(베르트랑 타베르니에Bertrand Tavernier가 자기 영화의 제목으로 삼았던 표현을 다시 사용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 전쟁은―적어도 프랑스 쪽에서는―결코 “대외 전쟁”으로도 “내전”으로도, 곧 이원성에서 유래한 것으로도, 통일성에서 유래한 것으로도 지칭될 수 없는 전쟁이었다) 기간 동안, 이 질문은 분명히 열띤 논쟁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결국 탈식민화는 하나라는 거짓된 단순성에서 둘이라는 거짓된 단순성으로 넘어가게 만들었다. 요컨대 이는 프랑스 전통 속에 아주 깊이 기입되어 있는 시민권과 국적의 등식을 복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등식이 쇠퇴의 시작에 접어들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우리가 불가능한 고립으로 되돌아갈 경우에만 상호 의존을 설립하거나 아니면 제도적 상호 삼투를 조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여러분은 왜 내가 전적으로 “국민”이라는 용어만을 사용하는지 당연히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역설적인 언표를 통해 답변해보겠다. 곧 그것은 이 용어가 가장 중의적인équivoque 용어이기 때문이다. 인민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우리들 중 누구도 “알제리 인민”과 “프랑스 인민”은 하나를 이룰 뿐이라고 말하려 들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두 인민 각자에 고유한 내적 다양성을 더 잘 의식할수록 우리는 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또한 알제리와 프랑스가 단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거나 형성할 수 있으리라고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은 두 개의 인민이고 두 개의 국가이며, 그들 각자는 오늘날의 국가들이 그런 것처럼 상대적으로 주권적이고 독립적이다. 하지만 이 둘이 정확히 두 개의 국민인지는 확실치 않다.

사람들이 (지중해 양쪽에서) 프랑스를 알제리로부터, 그리고 알제리를 프랑스로부터 절단하려고 하는, 곧 어떤 식으로든 완수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난 1962년의 [알제리 해방] 과정을 “완수하려고” 하는 순간에, 사람들은 이것이 더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어느 때보다 더. 이 때문에 나는 늘 동일한 문제로 되돌아오게 된다. 우리는 역사를 “수정”하지 않고서도, 곧 미완의 탈식민화를 주장하지도 않고, 다소간 프랑스 제국의 환영들에 사로잡힌 “형성 중인 국민”으로서의 알제리라는 저 유명한 테제로 돌아가지 않고서도 이러한 상황을 사고할 만한 수단들을 지니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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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적절한 방식에 따라 몇 가지 질문들, 곧 사회정치적 범주들로서의 인민들 및 인민이라는 질문, 국가 헤게모니의 구성이라는 질문, 상호적 민족주의라는 질문 및 민족주의의 쌍이라는 질문을 검토해봐야 한다. 나는 가능한 한 가장 짧게, 세 가지 가설을 언급해보겠다.

첫 번째 가설은 프랑스-알제리 쌍은, 그것이 수반하는 동일시 및 경쟁 효과들과 더불어 프랑스-독일 쌍만큼이나 프랑스 현대사에 결정적이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제국적인 흔적이 띠고 있는 예외적 모습에서 비롯한다. 우리가 오늘날 세계 전체에서 국민이 지닌 제국적 모습의 지양을 목격하고 있음에도, 나는 알제리와 프랑스의 경우에는 1962년의 탈식민화가 이러한 쇠퇴를 낳는 데 그 자체로 충분했다고 믿지 않는다. 30여 년 뒤에 와서야 우리는 어떤 지점까지 서양 민족들의 구성에서 제국적 형식이 필수적이었는지 좀더 잘 이해하기 시작했으며, 따라서 탈식민화 및 새로운 국민들에 대한 인정이 의미했던 바에 대해서도 좀더 잘 이해하기 시작했다. 알제리에서 우리는 전면적 부인의 대상이 되었던 극단적 상황과 관계하고 있었다. 알제리 영토를 “프랑스의 구역”이라고 선언함으로써, 프랑스는 자신을 구성했던 제국주의적 지배를 부인했으며 피지배자들의 존재 자체까지도 부인했다. 이는 단지 우리가 알고 있는 차별과 억압 형태들로 표현되었을 뿐만 아니라 말 그대로 [알제리] 문화를 뿌리뽑으려는 시도로 표현되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이 제국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사실은 제국이 항상 아직도, 물리적ㆍ법적 분리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국민들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오늘날 특히 프랑스 및 알제리의 사회 공간 속에서 행정적ㆍ문화적 정책들에 의해 다문화주의가 부인되고 억제되는 방식을 통해 표현된다. [프랑스와 알제리 양쪽에서] 현상은―식민화 자체가 그랬듯이―분명히 대칭적이지 않지만, 어쨌든 양쪽이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는 프랑스-알제리 쌍에서 무엇보다 국민과 제국의 이러한 상호 소속의 지속적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국가가 그것을 통해 자신을 지배 장치domination으로 구성하게 되는 국민들의 제국주의의 제거할 수 없는 “흔적”을.

나의 두 번째 가설은 우리가 사후에, 한 세대 이후에 이러한 주권 형태의 붕괴의 결과들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바로 다음과 같은 질문, 곧 비록 허구적인 방식이라 할지라도 제국들이 아닌 국민들은 존재할 수 없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이러한 질문은 엉뚱한 것으로 비쳤을 것이다. 사람들은 오히려 진정한 국민들이 제국 형태에서 해방되고 있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제3 세계라고 불렀던 새로운 국민들은 자신들을 반제국적인 국민들로 구성하려고 시도했었다. 하지만 이 국민들 역시 그 자신들의 수준에서, 심지어 [이전보다] 축소된 공간에서조차 제국주의적으로 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모면하지 못했다. 알제리 제국주의도 존재하는 것이다. 이전의 식민주의적 국민들의 경우는 자신들 내부에서 종족적ㆍ문화적 차별 형태들을 계속 영속시켜 왔으며, 그와 동시에 자신들이 세계적인 차원의 보편성의 담지자라는 주장을 다시금 제기했다. 이 후자의 국민들은 제국 없는 제국주의 국민들이 된 셈이다. 분명히 지금 무너지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일 것이다. 이러한 가능성은 사라지고 있는데, 단 (유엔 헌장이 이상적으로 명문화한 것과 같은) 전 세계의 국민들 사이의 형식적 평등을 위해서가 아니라, 상호 의존 및 헤게모니의 새로운 관계들(이러한 관계들을 어떻게 개념화해야 할 것인지는 남겨진 과제다)을 위해 사라지고 있다.

이로부터 나의 세 번째 가설이 나오는데, 이것은 국경이라는 통념 및 프랑스와 알제리의 경우에 국경이 지니는 아주 특수한 모습에 관한 것이다. 나는 프랑스-알제리 집합 그 자체가 하나의 “국경”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는 물론 매우 두껍고 복잡한 국경으로,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두 개의 자율적 주권들 사이의 경계선이라는 이론적 이미지로 환원될 수 없는 것이다. 프랑스-알제리 집합이라는 이 국경에서 일어나는 마주침과 갈등은 지중해 공간 전체에 대해 의미를 지닌다.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과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이 세계 경제에 대해 말한 것처럼 이러한 경계를 세계 경계라고 불러볼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속의 모든 경계들이 그 자체로 세계 경계들, 곧 북쪽과 남쪽이 각각 [상이한] 사회 및 경제 유형들임과 동시에 적대적인 문명 유형들로서(이 경우에는 특히 기독교와 이슬람 간의 균열에 뒤따르는 유럽과 아랍 사이의 “차이”가 문제다) 서로 뒤얽혀 있는 경제ㆍ문화적 경계들인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프랑스와 알제리가 각각 그 일부를 이루고 있는, 상당한 두께를 지닌 이 경계선 위에서 우리는 무엇을 목격하는가? 시기에 따라 다소간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단순한 인접 관계가 아니라, 이중적 제약, 곧 이 두 집합체를 분리해야 할 필연성과 그 불가능성이라는 이중적 제약의 강화를 목격하게 된다. 이러한 강화는, 항상 필수 불가결하면서도 항상 어렵기만 한 정치적 인정을 추구하는 역설적 개인들, 곧 이전에는 “무슬림 프랑스인”이라고 불렸고 오늘날에는 “프랑스 무슬림”이라고 불리는 개인들의 증가로 표현된다.

프랑스와 알제리를 결정적으로 분리하기는커녕 양자를 통합하는 “세계 경계”는 이 양자가 함께 국경의 경계선 자체 위에서 갈등적인 위치를 차지하도록 강제한다. 이제 우리는 식민화와 탈식민화가 사후에 알제리 사회 내부와 프랑스 사회 내부에 산출한 유산들 및 효과들의 독특한 의미를 관찰할 수 있다. 이 콜로퀴엄 도중에 사람들이 계속해서 언급했던 것처럼, 프랑스가 알제리 안에 현존하고 있듯이 알제리는 프랑스 안에 환원 불가능하게 현존하고 있다. 양쪽 모두에서 “이질적인 몸체”가 단지 물리적으로 현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억 속에 새겨져 있고 동일성 구성에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제거하는 것은 더욱더 불가능하다. 프랑스와 알제리 각자는 내적 차이, 자기 자신과의 본질적인 비동시대성으로 인해 변용되어affectant 있다.

이러한 비동시대성은 국가 속에서 사회의 대표/재현 및 역으로 국가에 의한 사회의 “국민화”를 작동시키는 주요 제도의 중심에 존재한다. 우선 언어의 경우, 언어 정책 및 공적 공간 내에서 상이한 언어들의 위치가 문제다. 이는 알제리에서 정치의 언어는 어떤 것인가라는 문제인데(이는 가장 가시적인 문제다), 왜냐하면 알제리에서 프랑스어가 어느 정도까지나 대중적인 권리 요구 및 지적 기획의 매체로 존재하는지 확인하게 되면 놀라게 될 뿐만 아니라, 이렇게 해서 일종의 이상적인 프랑스에 대한 준거(또는, 때로는 “자코뱅주의”나 “정교분리”로 불리기도 하는 공화주의)가 영속적으로 작동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또한 프랑스의 공적 공간 내에서 아랍어와 아랍주의의 위치라는 잠재적인 문제도 존재하지 않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대중적인 언어(“방리유”의 언어)의 진화에서 아랍어가 미친 영향이 한 가지 징표인데, 교육과 지식 생활에서 아랍어 및 그것과 분리될 수 없는 아랍 문화의 위치라는 질문 역시 마침내 제기되고 있다(알랭 드 리베라Alain de Libera의 󰡔중세 시대의 사유Penser au moyen âge󰡕는 이러한 경향을 눈부시게 입증해준 바 있다).

가족 구조 및 세대라는 문제는 언어보다도 더 근본적이다. 이 문제는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의 구별을 근원적으로 뒤흔들면서 동시에 행정적 관행들에 대해서는 한 가지 도전을 제기한다. 콜로퀴엄 첫째 날 압델와하브 메데브Abdelwahab Meddeb는 오늘날 알제리에서 알제리의 동일성을 발견할 수 없다는 모종의 불가능성을 묘사하기 위해 “계보의 단절”이라는 충격적인 표현을 사용한 바 있다. 나는 또한 그와 상관된 질문을 제기해보자고 제안했었다. 곧 계보의 단절은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가? 또는 봉합될 수 있는가? 수많은 프랑스-알제리 가족들 및 그 양쪽의 “친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은 우선 “사적” 수단들에 의해 극복될 수 있다. 그들의 “동일성”은 정확히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동일성은 아주 강력한 것은 아니지만, 이미 정치적 결과들을 가져온다. 이러한 결과들 중에서 특히, 다른 곳보다도 미디 지방[“미디 지방Midi de la France”은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의 지역을 가리킨다.]에서 민족주의적인 반감을 조장하는 데 기여하는 폭력적인 결과들을 과소평가하지 말자. 이는 한편으로는 독립 전쟁 말기에 알제리에 거주하던 프랑스인들의 강제적인 본토 이주와 다른 한편으로 이민 노동의 전진적인 통합을 낳은 이중적 억압의 귀결이다. 프랑스와 알제리 사회의 모든 계급에 걸쳐 점점 더 많은 가족들에서 [프랑스인과 알제리인이] 서로 섞이고 있다는 사실도 존재한다(이 가족들은 프랑스와 알제리를 분열시키며, [동시에] 프랑스와 알제리가 서로 공유하게 만든다).

알다시피 가족들 자신에게는(그리고 아마도 국가들에게도) 거주와 교육, 행정부 및 경찰과의 관계 등과 같은 꽤 심각한 문제가 제기된다. 국가 정책의 기조는 복잡성을 대폭 감소시키는 것, 곧 다양성을 통일성으로 환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조가 지닌 폭력성은, 비자와 “체류증”에 얽힌 수많은 비열한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가 매일같이 목격하게 되듯이, 가족들을 도려내려는 영속적인 경향에서 표현된다. 이렇게 해서 정치의 우위가 재긍정되는데, 단 이는 국민 국가에 대한 모종의 도덕적 탈정당화라는 상징적 대가를 치르게 된다. 왜냐하면 국민 국가는 상상계 속에서는 일종의 커다란 가족을 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가 더 이상 자신을, 가족들의 계보가 제도화되고 인정받고 보호받는 포괄적인 통일체로 나타낼 수 없는 순간부터 국가는 자신의 한계들에 직면하게 된다. 언젠가는 “사적인 것”의 구조들이 모든 “공적” 제도의 재생산 속에 연루되는 방식을 일반적으로 다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언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국경을 넘어서는 사적 유대의 발전이라는 문제는 분명 구체적인 분석들, “미시 사회학적인” 또는 “미시 정치학적인” 분석들을 요구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분석들이 북쪽만이 아니라 남쪽에서도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재검토 및 국민 주권들의 상대화라는 세계적 맥락―이것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노골적인 세력 관계로 표현된다(걸프 전쟁을 떠올려보자)―속에서 제시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적어도 어떻게 이러한 맥락이 “문화적” 대결들의 형태를 규정하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해봐야 하지 않을까? 만약 우리가 프랑스-이슬람 집합체 내부에서 이슬람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한 마디 하고 싶다면, 이는 특히 중요한 질문이다.

여기서 우리에게 중심적인 것으로 나타나야 마땅한 것은 어떤 측면인가? 그것은 식민화가 갑자기 억압하고, 심지어 말살했던, 그리고 오늘날 복귀하고 있는 특수주의로서의 알제리의 전통적인 이슬람주의인가? 지속적인 차별―곧 이슬람이 프랑스의 공적 공간 속에서 늘 그 대상이 되고 있고(알다시피 에드가 모랭Edgar Morin은 이러한 차별을 표현하기 위해 도발적이지만 적절한 “가톨릭적인 정교 분리catholaïcité”라는 표현을 만들어낸 바 있다), 필경 알제리에서의 프랑스에 대한 인식을 규정하고 있는―이 그러한 측면인가? 역으로 그것은 또한 모종의 보편주의 아닌가? 또는 이슬람을 통해 보편주의에 진입하는 모종의 방식이 아닌가? 이러한 방식은 명백히 이슬람 자신이 보편자 및 국민에 대해 역사적으로 제시한 특수한 표상에 기초를 두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특수주의 및 전통주의에 대한 너무 단순한 이미지들(에드워드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불렀던 편견에 의해 늘 영향 받은)과는 무관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 중에서도 우리 친구인 모하메드 하르비Mohamed Harbi는 현재의 이슬람주의는 단순한 과거로의 회귀, 전근대적인 종교성으로의 회귀가 아니라는 점을 매우 강조했다. 어쨌든 그것은 이 후자의 것으로 환원될 수 없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근대화 과정이 맞은 세계적 위기 속에서 종교적인 것의 정치화 형태일 것이다. 그런데 국민 형태 및 그것에 고유한 “시빌리테” 모델들의 위기는 명백히 이러한 세계적 위기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깜짝 놀랄 만한, 하지만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모종의 동맹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은 특히 이슬람 근본주의와 특정한 과학ㆍ기술적 진보주의 사이의 동맹이다. “반(反)개화주의obscurantisme”라는 상투어구와는 대립적이게도, 적어도 어떤 경우들에서는 기술적 세계화로 진입하려는 열망과 보편주의적 이데올로기로서의 이슬람에 대한 옹호 사이에 경향적인 통일성이 존재한다. 알제리에서는 이러한 동맹이 “프랑스파”에 대한 또는 프랑스적인 공간 및 프랑스적인 상상계에 몰입하는 것에 대한 비난을 불러올 수 있다. 이는 파리아[“파리아pariah”(프랑스어 표기로는 paria)는 원래 인도의 최하층 계급을 가리키는 표현이었는데, 요즘은 주변인 또는 지배적인 동일성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가리키는 명칭으로도 사용된다. ] 지식인들에 대한 사회학적 일반론으로도 설명될 수 없고, 교육과 행정의 아랍화의 특수한 역사로도 설명될 수 없다. 그보다는 오늘날 집합적ㆍ관국민적 동일성들이, 세계화의 맥락 속에서 일반적으로 미국화에 대한 대안들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을 추구하는 방식에 대해 성찰해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적어도 모종의 이슬람주의는 전통적인 민족주의의 대체물 내지 보충물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배타적”일 수밖에 없는 지배적인(유럽적이거나 서구적인) 자신의 모습에 맞서 보편성을 옹호하는 새로운 방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분명히 바로 여기에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에게는 아주 난폭하고 불쾌한 방식이지만, 보편성을 현시하는 서양식 관점에 깃들어 있는 특수주의의 요소를 뚜렷하게 부각시키는 한 가지 방법이 존재할 것이다. 따라서 사태를 분명히 해야 한다. 나는 여기서 인권은 “서양의 발명품”이라는 주장에 동조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주장, 곧 이슬람에 준거하는 모종의 방식 안에도 인권 및 그 보편화에 대한 요구가 존재하며, 이러한 주장에 내재적인 모순은 또 다른 모순, 곧 서양의 열강들이 가로챈 보편자에 대한 전유, 보편자에 대한 해석의 독점이라는 모순에 대한 응답일 뿐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의 이데올로기적 무대는 결코 보편주의 대 특수주의들 간의 갈등의 무대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허구적 보편성들 사이의, 보편성에 대한 적대적 주장들 사이의 갈등의 무대이며, 그리고 보편주의 자신 내부에 존재하는 갈등의 무대이기도 하다.

내가 방금 국민과 언어, 가족 내지 계보, 종교 및 보편성에 대해 제기해보려고 한 모든 질문들은 각각 경계라는 질문의 상이한 측면들이며, 이러한 측면들은 경계의 고유한 복잡성을 구성한다. 우리는 경계가 무엇인지 충분히 알지 못한다. 또는 우리는 점점 더 그것에 대해 무지하게 되고 있는데, 왜냐하면 사실상 경계들은 점점 더 복잡해지는 사물이기 때문이다. 분명 경계는, 우리가 남쪽에서 보는지 북쪽에서 보는지에 따라 동일하지 않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말해보려고 하는 것은 알제리와 프랑스의 경우(및 아마도 다른 몇몇 경우)에 서로 겹치는 두 개의 시선은 서로에 대해 내면적인 것이 되었으며, 따라서 말하자면 경계 그 자체에 내재적인 것들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마지막으로 국경/경계가 정치적 공간과 맺는 관계가 전화되고 있는 조건들에 대해 질문해보도록 인도한다. 나는 시민권이 완전히 국민적 소속으로부터 분리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국가 없이는 정치가 없는 것처럼 국가 없이는 시민권도 없다. 그런데 초국민적 국가 내지 경계 없는 국가라는 관념은 오늘날 진정으로 일정에 올라 있지 않다. 역으로 관국민적 제도들이라는 관념은 뜨거운 현실성을 맞고 있다. 문제는 국가적인 국적이 시민권을 가두고 조건 지을 것인가 아니면 규정되어야 할 한도 내에서 시민권이 국적을 넘어서 그것을 상대화할 것인가 여부다. 어디서 그리고 누구를 위해 시민권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어떤 조건들 속에서 새로운 시민권 제도가 우리로 하여금 모순적인 두 가지 요구, 곧 차이에 대한 권리라는 요구와 차이로부터 차이화할 권리라는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게 해줄 것인가?

나로서는 프랑스-알제리라는 쌍couple(또는 역사적인 결합couplage)이 우리의 성찰 및 우리의 정치적 실천의 특권적인 쟁점들 중 하나가 될 때에만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는 또한, 이러한 쌍이 순수하게 이원적인 관계, 각자가 차례대로 선하고 악한 타자의 모습을 띠게 되는 대면 관계 속에서 돌고도는 일을 멈추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프랑스인들과 알제리인들은 단지 자기 자신들 및 상상적으로 폐쇄된 자신들의 역사를 “탈동일화”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쌍” 역시 탈동일화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이러한 논의를 세계화의 관점 속에 기입하는 일도 역시 중요하다. 우리가 여기서 문제 삼고 있으며, 우리 자신이 구성하고 있는 경계가 더 이상 단지 행정적ㆍ경제적ㆍ문화적 경계가 아닌 이상, 또는 문명 원리들 사이의 경계가 아닌 이상 이는 더욱 더 필수적이다. 경계는 또한 폭력의 경계(또는 경계들 중 하나)가 되었다. 많은 알제리인들에게는 두 나라 사이를 왕래하는 일이, 그리고 심지어 국경을 넘나들면서 자신들의 존재를 유지하는 일이 절박한 문제인 데 반해, 많은 프랑스인들은 국경을 폭력의 분출로부터 거리를 두는 한 가지 방식으로 간주한다. 그들은 이러한 국경의 강화를 자신들의 안전 및 정치 자체의 조건으로 상상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특별히 위험스러운, 하지만 또한 맞서 싸우기가 특별히 어려운 미망이다.

반대로 나는 정치 및 민주주의와 동시에 사람들까지 살해하는 극단적 폭력의 확산은 또한 그 본질적인 일부에서는 국경의 강제 및 불가능한 봉쇄를 수단으로 한 국가에 의한 인구 정착과 격리의 결과이기도 하다고 주장하면서 반폭력의 정치(내가 시빌리테의 정치라고 부르는)를 옹호하고자 한다. 국경에 대한 치안적 관점, 곧 국경을 “방역선”으로 간주하는 관점 대신, 국경에 대한 정치적 관점 및 실천이 필요하다. 국경을 정치의 장으로 전위시켜서, 더 이상 국경이 모든 반항과 통제, 상호성의 권역 바깥에, 가장자리에 놓이지 않고 중심에 놓이도록 해야 하며, 마찬가지로 개인들과 집단들이 오늘날 때로는 국경 이쪽에서, 때로는 저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그리고 말하자면 그들이 경계선 양쪽에 걸쳐 앉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탁월하게 비민주주의적인 제도, 그 자신은 결코 집합적으로 통제되지 않음에도 개인들과 인구들을 통제하는 데 사용되는 국경이라는 이 제도가 정치적 쟁점이 되게 하기 위해서는, 곧 그 활용 양상 및 전화를 협상 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믿기로는 바로 이것이 현재 제기되는 근본적인 질문 중 하나다. 그리고 우리가 프랑스-알제리 쌍이라는 특권적인 형태로 이 질문과 마주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또한 이러한 형태 안에서 이 질문과 대결해야 한다. 바로 이러한 각도에서 “지중해 공간”이라는 아주 일반적인 관념―이는 하나의 역사 내지 하나의 문화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역사들 및 문화들 사이의 영속적인 만남 및 갈등의 지점을 가리킨다―이 다시 한 번 문명 기획의 지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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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족과 국민
    from Droit de cité (씨테에 대한 권리) 2009-09-02 07:32 
    우리가 (학자가 아닌) 일반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국민이라는 것이 언제부터 존재한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근대'에 존재하기 시작했다고 답할 것이다.   왜냐하면 조선시대에 '국민'이 존재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봤을 때도, 다시 말해서 '이데올로기'적으로 봤을 때도  어딘가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