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글쓰기와 차이 ㅣ 동문선 문예신서 162
자크 데리다 지음, 남수인 옮김 / 동문선 / 2001년 1월
평점 :
국내에 번역된 데리다 책들(데리다의 저서 및 해설서) 중 많은 수가 심각한 오역으로 훼손되어 있다는 것은 이제 어느 정도 잘 알려진 일이다. 그렇다면 이 번역본은 좋은 번역본일까? 알라딘의 편집자는 이 책을 “Editor's Choice”로 표시해 놓았고, 서평자 중 한 사람은 서평의 제목을 “데리다 번역본 가운데 가장 낫지 않을까 ...”로 달아놓고 있다. 이렇게 보면, 이 책은 그래도 믿고 구입해볼 만한 번역본인 듯하다.
그런데 다른 서평이 재미있다. 실례인지 모르지만 일부분을 그대로 인용해 보자. “와~~ 뭐 이렇게 어렵냐? 장장 10일 동안이나 자세히, 꼼꼼히 읽었다. 그런데도 잘 모르겠다. 원래 철학 하면 어려운 것이라는 내 고정관념을 더욱 강고히 만든 책 중 하나가 바로 이 글쓰기와 차이다. 도대체 글쓰기와 이 책 내용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 무식한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내가 볼 때 이 서평자는 매우 정직한 사람이고, 이 서평은 매우 좋은 서평이다. 국내의 데리다 번역의 문제점을 몇 줄로 집약해서 표현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국내의 데리다 번역본은 10여일 동안 꼼꼼하게 읽은 독자가 잘 모르겠다고 탄식을 하게 만들 만큼 내용을 제대로 전달해주지 못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철학은 어려운 것이라는 고정관념만 강화시키고 있다.
둘째, 하지만 데리다는 원래 어려운 철학자 아닌가? 이런 반론이 제기될지 모르겠다. 사실이 그렇다. 그러나 어렵다는 것은 여러 가지를 의미할 수 있다. 논증이 복잡하고 내용이 심오해서 한번 읽어서는 내용 전체를 모두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고, 수학이나 물리학처럼 사용되는 언어나 기호가 지극히 전문적이어서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먹을 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철학이 어렵다면 아마도 전자에 해당될 것이다.
그런데, 이 번역본은 데리다의 어려움을 전자보다는 오히려 후자에 가까운 어려움으로 만들고 있다. 이는 “도대체 글쓰기와 이 책 내용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 무식한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는 위의 서평자의 지극히 정직한 고백에서 잘 나타난다. 이 서평자는 책 제목이 [글쓰기와 차이]이니 책을 읽어보면 당연히 제목에 관해 이해할 수가 있어야 하는데, 도무지 그 연관성을 알 수가 없다고 탄식하고 있다.(그런데 역자는 알고 있을까? 왜 이 책의 제목이 <글쓰기와 차이>인지, 도대체 '차이'가 '글쓰기'와 무슨 관계에 있는지?)
그렇다면 이제 데리다 책을 사보겠다고 나설 독자가 있을까? 책 제목의 뜻도 제대로 전달해주지 못하는 번역본이 가장 나은 번역본이라고 자신있게 말하는(그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사람들말고는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데리다와 교양대중의 거리는 더 멀어질 것이고, 철학과 교양대중의 거리도 더 멀어질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들에게 이런 번역본이 연구에 참조가 될까? 그들이 이런 번역본을 강의나 수업교재로 사용할 수 있을까? 아마도 (대학원 수업이라면) 차라리 영역본을 권할 것이다.
그렇다면 데리다 번역은 왜 하는 것일까? 아마도 출판사로서는 이미 계약해 둔(또는 오히려 전매해둔) 저작권을 사용하기 위해서, 역자는 업적을 올리기 위해서 했으리라. 대중의 교양습득이나 전문가들의 연구와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저작권 계약과 번역, 아마도 이것이야말로 끊임없는 오역의 악순환을 야기시키는 근본 원인일 것이다. 그런데 왜 이 원인을 제거하기가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 누구 해답을 아는 분 없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