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철학] 제 2권 2호에 실릴 글을 하나 올립니다. 프랑스에서 스피노자 연구 동향에 관한 글인데,

현대 스피노자 연구의 동향에 관심이 있거나 스피노자 연구 문헌들에 대한 정보가 필요한 분들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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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신론의 주박에서 벗어나기―프랑스에서 스피노자 연구 동향 

 

I. 머리말

  오늘날 스피노자는 현대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고전 철학자 중 한 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철학을 비롯한 각종 인문사회과학 서적만이 아니라 주요 학술지들에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스피노자에 관한 다양한 논의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스피노자=범신론자라는 애매모호한 평가에서 알 수 있듯이 합리적인 사유를 초과하는 무언가 알 수 없는 신비한 매력을 풍기는 철학자로만 치부되던 그의 작업이 오늘날 널리 각광을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루이 알튀세르, 질 들뢰즈, 안토니오 네그리, 에티엔 발리바르 등과 같은 현대 사상의 대가들이 스피노자 철학에서 자신들의 작업의 주요 원천을 길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들뢰즈나 네그리, 발리바르 등이 스피노자에 관한 역작을 발표하고 또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스피노자의 철학을 현재화하려는 작업에 몰두했다면, 알튀세르는 스피노자에 관한 독자적인 저술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끊임없이 스피노자 철학을 조회하면서 자신의 사상을 가다듬었다. [20세기 후반 프랑스 스피노자 연구에 대한 개괄적 소개로는 진태원, 「스피노자의 현재성: 하나의 소개」 󰡔모색󰡕 2호, 2001을 참조. ] 

 

이들의 작업 덕분에 스피노자 철학은 오늘날 인문사회과학의 최전선에서 자신의 이론적 역량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방금 열거한 사상가들이 대개 프랑스 철학자들이라는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현대 프랑스 철학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스피노자 연구가 매우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사상가들의 작업을 중심으로 스피노자 사상의 현재적 의미를 묻는 이들도 많이 있지만, 또한 제도권 안에서 엄격한 철학사 연구 방법론에 따라 세심한 눈길로 네덜란드 출신 유대인 철학자의 텍스트를 묵묵히 탐색하는 수많은 연구자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의 엄밀한 연구 덕분에, 과연 지난 3세기 동안의 스피노자와 오늘날의 스피노자가 동일한 인물인가 의심이 들 정도로, 스피노자의 철학은 오래된 범신론의 질곡에서 벗어나 새로운 모습으로 현대의 사상계를 활보하고 있다.

  과연 어떤 사상사적인 사건을 계기로, 어떤 디오니소스적인 지적 고투를 통해 스피노자가 이처럼 환골탈태의 변신을 이루어낸 것일까? 우리가 이 글에서 간략하게나마 살펴보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이 질문이다.   


II. 프랑스 스피노자 연구의 통시적 흐름
2절은 피에르 마슈레의 󰡔헤겔 또는 스피노자󰡕(이제이북스, 2004)에 부친 “역자 해제”의 일부(347-358쪽)를 약간의 수정을 거쳐 옮겨 실었다. ]


 

   20세기 후반 프랑스 철학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을 꼽으라면 두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 중 첫째는 구조주의 운동이다. 50년대 인류학과 기호학 및 정신분석학 같은 인문과학 분야에서 시작된 구조주의는 1962년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가 발표된 이래, 1965년 알튀세르의 󰡔마르크스를 위하여󰡕 󰡔자본을 읽자󰡕의 출간, 1966년 푸코의 󰡔말과 사물󰡕 및 라캉의 󰡔에크리󰡕의 출간을 계기로 프랑스 철학의 주도적인 흐름으로 부각되었다. 그리고 68 운동을 기점으로 구조주의의 분화가 이루어지면서, 영미권에서 소위 후기 구조주의poststructuralism로 알려진 데리다, 들뢰즈(ㆍ가타리), 리오타르 등의 작업 및 푸코의 계보학 연구가 7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70년대 말 마르크스주의의 위기가 도래하고 “신철학자들nouveaux philosophes”이 등장하면서 구조주의 운동은 영향력이 감소되었지만, 20세기 후반 프랑스 철학을 주도한 흐름이 구조주의의 운동이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구조주의에 대한 전체적인 개관은 프랑수아 도스, 󰡔구조주의 역사󰡕 1-4권, 김웅권ㆍ이봉지 외 옮김, 동문선, 1998-2003을 참조하고, 20세기 프랑스 철학사에 대한 철학적 고찰은 벵쌍 데꽁브, 󰡔동일자와 타자: 현대 프랑스 철학, 1933-1978󰡕 박성창 옮김, 인간사랑, 1990를 참조할 수 있다. 국내 학자들의 연구로는 임봉길 외, 󰡔구조주의 혁명󰡕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0이 참조할 만하다.]  구조주의 운동의 주요 인물 중 한 사람인 발리바르는 이를 간명하게 증언해주고 있다. “구조주의는 지난 50년 간 프랑스 철학계에서 일어난 최대의 사건입니다.”["구조주의와 현대 프랑스철학의 종말: 에티엔 발리바르와의 대담" 󰡔전통과 현대󰡕 2001년 봄호, 207쪽.] 

  둘째는 이 구조주의 운동과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지만, 얼마간 다른 맥락에서 파악되고 평가될 수 있는 현상으로서 스피노자 연구의 르네상스를 꼽을 수 있다. 구조주의 운동보다 약간 늦게 6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프랑스의 스피노자 연구는 지난 30여 년 동안 양과 질 모두에서 매우 주목할 만한 성과를 산출했다. 대표적인 스피노자 연구자 중 한 사람인 알렉상드르 마트롱Alexandre Matheron1)은 한 대담에서 이 상황을 극적으로 증언한다.

마트롱: 정확한 의미에서 제 학위논문은 제가 알제리대학 철학 강사로 재직하고 있던 50년대 말 내지는 60년대 초부터 구상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프랑스의 스피노자 연구 상황은 전무한 것이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 몇 년 뒤 스피노자를 다루기로 한 세미나의 예비 모임에 알튀세르의 초청을 받아갔던 게 기억나는군요(그런데 이 세미나는 끝내 열리지 못했습니다).

로랑 보브: 그 때가 언제였지요?

마트롱: 정확히 몇 년도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때는 󰡔자본을 읽자󰡕가 출간된 다음이었습니다. 이 모임에는 마슈레가 참석했고 바디우도 있었는데, 저는 이미 이들의 이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때는 68년 5월 이전이기도 했지요.

보브: 그럼 65-66년경이었겠군요?

마트롱: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때 알튀세르는 우리에게 참고문헌으로 델보스Delbos와 다르봉Darbon의 책만 제시해 주었습니다. [...] 게다가 제가 게루에게 참고문헌을 물어보러 갔을 때 그는 저에게 “참고문헌? 그런 건 없네! 델보스와 루이스 로빈슨만 빼놓고는 전부 멍청한 놈들뿐이야!”라고 답변했습니다. 따라서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었고, 이는 사실상 68년경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  

보브: 선생님 책에 수록된 참고문헌과 오늘날 스피노자 연구를 시작하는 학생이 갖고 있는 참고문헌을 비교해 본다면, 자연히 [...]

마트롱: 정말이지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 그러다가 68년에 게루보다 조금 앞서 베르나르 루세의 대작이 출간되었습니다.

보브: 그리고 들뢰즈의 책도요.

마트롱: 들뢰즈는 좀 늦게 나왔습니다. 게루 책은 68년 말에 나왔고, 들뢰즈는 69년 초에 나왔지요(이 책은 68년에 출간된 것으로 표시되어 있지만, 69년 이전에는 서점에 배포되지 않았습니다). [“A propos de Spinoza: Entretien avec Alexandre Matheron” Multitudes n° 3, 2000, pp. 169-171.]


 사실 20세기 후반은 스피노자 연구에서 매우 뜻 깊은 시기로 평가될 수 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스피노자 저작의 고증본 전집들이 출간되면서[Van Vloten & Land. ed., Benedict de Spinoza Opera quotquot reperta sunt, La Haye, 1883-1884; Carl Gebhardt ed., Spinoza Opera, Heidelberg, 1925.]  왕성하게 전개되었던 스피노자 연구는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거의 소멸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프랑스 같은 경우도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는 스피노자 연구가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졌지만[지금도 많이 논의되는 (그리고 국내외 도서관에서 비교적 쉽게 구해볼 수 있는) 주요 저작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Victor Delbos, Le problème moral dans la philosophie de Spinoza et dans l'histoire du spinozisme, Félix Alcan, 1893(1990년 소르본 대학 출판부PUPS에서 재간행); Le Spinozisme, Vrin, 1950(19151); Albert Rivaud, Les notions d'essence et d'existence dans la philosophie de Spinoza, Félix Alcan, 1906; Gabriel Huan, Le Dieu de Spinoza, Félix Alcan, 1914; Léon Brunschvicg, Spinoza et ses contemporains, PUF, 1923; Pierre Lachièze-Rey, Les origines cartésiennes du Dieu de Spinoza, Vrin, 1950(19371). 역시 1930년대 이후 1950년대까지는 거의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60년대 말 이후에는 스피노자 연구에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 20세기 후반 프랑스의 스피노자 연구는 편의상 세 시기로 구분해 볼 수 있는데, 첫 번째 시기는 196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두 번째 시기는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이며, 1990년대 중반에서 현재에 이르는 시기가 세 번째 시기가 된다.

  첫 번째 시기는 스피노자 연구가 오랜 공백기를 거쳐 다시 활성화되기 시작한 시기다. 하지만 이 시기의 프랑스 스피노자 연구는 무엇보다 마르샬 게루와 질 들뢰즈, 알렉상드르 마트롱의 기념비적인 업적을 통해 현대적인 스피노자 연구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윤리학󰡕 1, 2부에 대한 게루의 두 권짜리 주석서는 󰡔윤리학󰡕에 대한 치밀하고 체계적인 주석을 제시함으로써 단지 프랑스만이 아니라 영미권을 비롯한 전 세계의 스피노자 연구자들의 필수적인 참고문헌으로 인정받고 있다.[M. Gueroult, Spinoza I: Le Dieu, Aubier, 1968; Spinoza II. L'âme, Aubier, 1974.]  그리고 마트롱은 레비 스트로스의 구조주의 방법론을 스피노자 철학에 도입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놀라운 엄밀성으로 스피노자의 인간학과 정치철학의 체계를 재구성하고 있다. 이들의 업적 이외에도 이 시기에는 실뱅 자크, 베르나르 루세 등의 중요한 연구들이 배출되었으며, 이 저작들은 지금까지도 스피노자 연구의 핵심 참고문헌으로 남아있다.[Sylvain Zac, L'idée de vie dans la philosophie de Spinoza, PUF, 1963; Spinoza et l'interprétation de l'Ecriture, PUF, 1965; Philosophie, théologie et politique dans l'oeuvre de Spinoza, Vrin, 1979; Bernard Rousset, La perspective finale de l'“Ethique” et le problème de la cohérence du spinozisme, Vrin, 1968.] 

 

  두 번째 시기의 연구는 두 가지의 큰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스피노자 연구가 조직화되었다는 점이다. 프랑스 국내에서는 1977년 스피노자 사망 300주년을 기념해서 실뱅 자크, 베르나르 루세, 알렉상드르 마트롱, 피에르 마슈레, 피에르-프랑수아 모로 등을 중심으로 “스피노자 연구회Groupe de recherches spinoziste”와 “스피노자 친우회Association des Amis de Spinoza”가 결성되어 󰡔스피노자 연구Cahiers Spinoza󰡕를 창간했으며(1991년까지 6호 발간), 1978년부터 매년 철학 학술지 “Archives de philosophie”에 “스피노자 참고문헌 목록Bulletin de bibliographie spinoziste”을 발간하기 시작했다(2002년 현재까지 24호 발간).[그리고 소르본 대학 출판부(PUPS)에서는 “연구와 문헌Travaux et Documents”이라는 총서가 간행되고 있다(2007년까지 13권 간행).]  그리고 1982년 이탈리아 우르비노Urbino에서 열린 스피노자 탄생 350주년 기념 국제 스피노자 학술회의[이 회의는 전후 처음으로 유럽 및 영미의 대표적인 스피노자 연구자들이 모두 참석한 학술회의로, 당시까지의 스피노자 연구 동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회의였다. 회의 자료집은 Emilia Giancotti-Boscherini ed., Spinoza nel 350° anniversario della nascita. Atti del congresso internazionale(Urbino 4-8 ottobre 1982), Bibliopolis, 1985로 출간되었다.] 를 계기로 1985년부터 국제 스피노자 학회지인 󰡔스피노자 연구Studia Spinozana󰡕가 출간되면서부터(현재 17호까지 발간) 스피노자 연구는 전세계적인 연결망을 갖추게 되었다.    

 

  그 다음 이 시기의 연구들은 매우 강한 실천 지향적 성격을 보여준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마슈레의 이 책을 비롯하여, 안토니오 네그리[네그리는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지만, 1980년대 이후 계속 프랑스에 거주하면서 활동했고, 또 프랑스 스피노자 연구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다른 프랑스 연구자들과 한데 묶을 수 있을 것이다.], 에티엔 발리바르, 앙드레 토젤[André Tosel, Spinoza ou le crépuscule de la servitude, Aubier, 1984; Du matérialisme de Spinoza, Kimé, 1994.등의 저작이 이 시기의 스피노자 연구를 대표하는데, 이 저작들은 모두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배경으로 스피노자 철학에서 이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개념적 수단을 찾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반면, 세 번째 시기는 철저한 문헌학적 연구와 학문적 주석의 시기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이는 여러 사례를 통해 입증될 수 있는데, 가령 국내에도 소개된 피에르 마슈레의 연구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그는 󰡔헤겔 또는 스피노자󰡕나 󰡔스피노자와 함께󰡕에서 스피노자 철학이 현재의 철학적 문제들에 대해 지니는 함의에 관해 명시적인 관심을 표명했으나, 1994년부터 출간된 5권짜리 주석서에서는 󰡔윤리학󰡕의 문자 그 자체에 집중하는 것을 방법론적 원칙으로 천명하면서,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시사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일체의 2차 문헌을 배제한 채 󰡔윤리학󰡕의 논증구조를 따라 하나하나의 단어들 및 문장들을 분석하고, 제시되는 주제들을 세밀히 검토하고 있다.[마슈레는 5권을 모두 출간한 뒤 발표한 한 글에서, 이 책을 저술한 자신의 방법론적 원칙을 밝히고 있다. http://www.cerphi.net/grs/mach.htm 참조.] 

  아울러 90년대 이후 새롭게 등장한 스피노자 연구의 제3 세대의 작업 역시 현실적 준거를 배제한 가운데, 매우 엄밀한 문헌학적ㆍ논증적 분석에 치중하고 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이 시기에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스피노자 연구자 중 한 사람인 피에르-프랑수아 모로가 “외국의 젊은 스피노자 학도들은 엄밀함을 배우기 위해 프랑스로 온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을 만큼 수준 높은 연구가 다수 배출되고 있다.[대표적인 저작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들 수 있다. Laurent Bove, La stratégie du conatus. Affirmation et résistance chez Spinoza, Vrin, 1995; Chantal Jaquet, Sub specie aeternitatis: Étude des concepts de temps, durée et éternité chez Spinoza, Kimé, 1997;  Henri Laux, Imagination et religion chez Spinoza: La potentia dans l'histoire, Vrin, 1993; Christian Lazzeri, Droit, pouvoir et liberté. Spinoza critique de Hobbes, PUF, 1998;  Charles Ramond, Quantité et qualité chez Spinoza, PUF, 1995; Spinoza et la pensée moderne, Harmattan, 1998; François Zourabichvili, Spinoza: Une physique de la pensée, Paris: PUF, 2002; Le conservatisme paradoxal de Spinoza. Enfance et royauté, Paris: PUF, 2002.] 

  하지만 이러한 최근의 연구 경향은 프랑스의 스피노자 연구가 실천적 지향을 포기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2000년 창간된 좌파 학술지인 󰡔대중들Multitudes󰡕에 여러 스피노자 연구자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오히려 젊은 연구자들 역시 대부분 좌파적인 관점을 지니고 있다. 더욱이 2002년 여름에 유명한 스리지Cerisy 성(城)에서 열린 “오늘날의 스피노자Spinoza aujourd'hui”라는 학술회의는 프랑스의 스피노자 연구자들이 그동안 축적된 연구 역량을 바탕으로 스피노자 철학이 현재의 문제들에 대해 지니는 함의들을 검토하기 시작했음을 잘 보여준다. 따라서 이들의 연구가 보여주는 엄밀성은 일종의 방법적 엄밀성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제시된 이러한 구분은 대략적인 경향을 살펴보는 데 얼마간 유용한 편의적인 구분일 뿐이며, 60년대 말 이후 30여년에 걸쳐 이루어진 스피노자 연구의 특징을 도식적으로 구분하기란 매우 어렵다. 대부분의 스피노자 연구자들이 좌파적인 성향을 띠고 있고 60년대 구조주의 운동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긴 하지만, 연구자들 각자의 지적 배경이라든가 관심사, 스타일 등이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30여 년 동안 프랑스의 스피노자 연구는 매우 풍요로운 성과를 거두었으며, 이 때문에 (이탈리아와 더불어) 프랑스에서는 “스피노자의 현재성”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거론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어쨌든 스피노자 연구의 이러한 비약적인 발전은 구조주의 운동과 관련하여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주제적인 연관성이라는 측면이다. 앞의 대담에서 발리바르도 지적하고 있다시피 구조주의는 매우 이질적이고 다양한 분야에서 진행된 운동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레비-스트로스의 형식주의적ㆍ“조합적” 구조주의와 라캉의 RSI식 구조주의, 알튀세르의 마르크스주의적 구조주의, 들뢰즈의 베르그송식 구조주의 등은 스타일이나 방법론, 이론적 원천 등에서 매우 상이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 얼마간 공통적인 한 가지 문제설정을 지적한다면, “이론적 반인간주의”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각자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근대철학에 지배적이었던 “구성적 주체”, 곧 인식과 행위의 기초 내지는 기준으로서의 주체 대신 “구성된 주체”, 곧 지배구조의 상상적 효과로서의 주체라는 관점을 제시하려고 했다.[É. Balibar, “Le structuralisme, une destitution du sujet?”, Revue de Métaphysique et de Morale, janvier 2005 참조.]  그리고 바로 이 점에 스피노자 철학과 구조주의의 주제적 연관성이 존재한다. 󰡔윤리학󰡕 1부 부록이나 󰡔신학정치론󰡕이 잘 보여주고 있듯이, 자기 자신을 “국가 속의 국가”(󰡔윤리학󰡕 3부 「서문」)로 간주하는 인간의 가상에 대한 비판이야말로 스피노자 철학의 이론적ㆍ실천적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처럼 주체(또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상상적 효과로 파악함으로써, 구조주의 및 스피노자 철학은 강한 정치적 지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양자의 또 다른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사실 게루를 제외한다면, 1세대에서 3세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스피노자 연구자들은 스피노자 철학의 실천적ㆍ정치적 함의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여 왔으며, 특히 스피노자 연구의 2세대는 마르크스주의와 스피노자주의 사이의 연관성의 문제를 자신들의 핵심 주제로 삼아 연구했다. 따라서 마슈레가 한 논문에서 18세기의 유물론적 스피노자주의, 19세기의 범신론적 스피노자주의와 대비하여 20세기(후반)의 스피노자주의를 “정치적 스피노자주의”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L'actualité philosophique de Spinoza” in Avec Spinoza 참조.] 
 

  이러한 주제적 연관성 이외에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측면은 철학제도의 측면이다. 철학제도의 측면에서 볼 때 구조주의 운동의 특징 중 하나는 (반(反)제도적이거나 탈제도적이라기보다는) 비(非)제도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구조주의 운동의 비제도적 성격은 특히 후기 구조주의자들로 불리는 푸코나 들뢰즈, 데리다 같은 사람들이 잘 보여준다. 사실 이들 모두는 60-70년대 프랑스의 철학적 흐름을 주도한 인물들이면서도, 프랑스 대학제도의 중심부에 자리 잡지 못하고 고등사범학교나 벵센 대학, 또는 콜레주 드 프랑스 같은 대학제도의 외곽에 머물러 있었다. 더 나아가―이것이 좀더 중요한 측면이지만―이들은 각자 고유한 방식으로 철학적 활동이 정치적ㆍ학문적 제도와 맺고 있는 관계를 자신들의 이론적 반성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이러한 제도화의 논리에 저항하고 이를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담론의 질서 및 계보학에 관한 푸코의 연구나 들뢰즈(ㆍ가타리)의 “소수화되기devenir-minoritaire” 개념, 데리다의 기록(écriture 또는 archive)이나 되풀이 (불)가능성itérabilité 개념[이 개념들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논의로는 자크 데리다ㆍ베르나르 스티글러. 󰡔에코그라피󰡕 김재희ㆍ진태원 옮김. 민음사, 2002나 󰡔법의 힘󰡕 진태원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4 또는 󰡔마르크스의 유령들󰡕 진태원 옮김, 이제이북스, 2007에 수록된 역주나 “용어해설”을 참조하라.] 및 교육제도에 관한 주목할 만한 연구들은 모두 (후기) 구조주의의 비제도적 지향을 잘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반면 스피노자 연구는 제도 내에서 이루어진 작업이며, 또 바로 그 점에서 높이 평가받아야 하는데, 이는 일차적으로 프랑스 철학 특유의 제도적 조건 때문이다. 프랑스 철학계는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대중철학과 제도철학 사이의 경계가 매우 엄격해서, 라캉이나 알튀세르, 푸코, 들뢰즈, 데리다 같은 60-70년대 구조주의 운동의 주역들이 외국 학계에서 매우 높이 평가받고 활발한 연구대상이 되었던 것과는 달리, 프랑스 제도권 철학에서는 거의 연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대신 제도권 철학에서는 서양의 철학사, 특히 17세기 대륙철학 및 멘 드 비랑에서 베르그송에 이르는 프랑스의 유심론 철학, 그리고 20세기의 현상학 등이 주로 연구되고 있다.[최근 구조주의 철학을 비롯한 20세기 후반의 프랑스 철학을 대학의 정식 학위 프로그램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는 일부 철학자들―자크 데리다, 알랭 바디우, 피에르 마슈레, 에티엔 발리바르, 이브 뒤루, 베르트랑 오질비 등―이 “구조주의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외국으로 유학을 가야 한다”는 자조 섞인 탄식을 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제도적 경직성을 겨냥한 발언으로 볼 수 있다. 최근에는 “현대 프랑스 철학 국제 연구 센터Centre International d'Etude de la Philosophie Française Contemporaine”를 중심으로 20세기 프랑스 철학에 관한 활발한 연구가 전개되고 있다. http://ciepfc.rhapsodyk.net/ 참조.] 

 

  이런 제도적 상황에서 60년 대 말 이후 전개된 스피노자 연구는 두 가지 측면에서 구조주의 운동을 제도적으로 보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구조주의 운동의 사상적 기초 중 하나를 제시해 주었으며, 이 운동의 철학적 쟁점들을 좀더 분명히 전개하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는 점이다.

  앞서 말했듯이 구조주의자들의 공통적인 문제설정 중 하나로 “이론적 반인간주의”를 들 수 있으며, 이를 철학적으로 가장 명료하게 제시해 준 사람은 바로 스피노자다. 하지만 모든 구조주의자들이 이를 수용한 것은 아니며, 또 이를 수용한다고 해도 반드시 스피노자식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예컨대 라캉 같은 사람은 1933년의 학위 논문 이래 스피노자 철학을 자신의 이론적 토대 중 하나로 간주해 왔지만, 1960년대 이후에는 스피노자 철학 대신 칸트, 그리고―마르샬 게루 등의 철학사 연구에 따라 재해석된―데카르트의 코기토를 이론적으로 더 선호하게 된다. 반면 알튀세르와 들뢰즈는 훨씬 더 일관되게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자신들의 철학적 작업의 기초를 모색하고 있었으며, 푸코 같은 경우는 부분적으로 스피노자의 작업을 수용하지만, 이는 늘 암묵적이고 모호한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푸코 철학의 스피노자적 측면에 대해서는 특히 Pierre Macherey, “Pour une histoire naturelle des normes” in collectif, Michel Foucault philosophe, Seuil, 1988 및 Olivier Remaud, “La question du pouvoir: Foucault et Spinoza” Filozofski Vestnik, Vol. XVIII, no. 2/1997 참조.]  

이런 의미에서 60년대 이후의 스피노자 연구는 구조주의의 쟁점 및 갈등을 부각시키는 하나의 촉매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스피노자 연구의 활성화는 프랑스 철학의 민족적 지향을 약화시키는 데 기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실 「데카르트가 곧 프랑스인가?Descartes, est-ce la France?」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마슈레도 지적하고 있듯이 프랑스의 철학제도는―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데카르트를 정점으로 한 프랑스 철학자들에 대한 연구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이 대학제도의 중심에 위치한 소르본 대학(파리 4대학)의 철학과 학과장은 데카르트 전공 교수가 맡고, 그는 또 데카르트학회 회장을 맡으며, 다시 데카르트학회 회장은 프랑스 철학회장을 맡는다는 프랑스 철학계의 암묵적 규칙은 이러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런 상황에서 60년대 후반 이후 프랑스 철학계에서 이루어진 스피노자 연구는 예외적이고 주목할 만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더 나아가 스피노자 연구를 주도하는 학자들 대부분이 좌파 성향의 철학자들이라는 점은 스피노자 연구의 이런 측면을 더욱 부각시킨다. 사실 80년대 프랑스 학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철학자는 후설과 하이데거였으며, 90년대 이후에는 분석철학이 도입되어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네덜란드 철학자인 스피노자가 광범위하게 연구되고 있다는 것은 그리 놀랄 만한 사실은 아니다. 하지만 후설/하이데거 등의 현상학이나 분석철학과는 달리 스피노자 연구는 이론적ㆍ실천적인 측면에서 매우 강한 좌파적 성향을 띤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이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알튀세르와 푸코가 각자 나름의 방식대로 지적했다시피[L. Althusser, “Conjoncture philosophique et recherche théorique marxiste” in Ecrits philosophiques et politiques, T.2, ed. François Matheron, Stock/IMEC, 1995; M. Foucault, “Georges Canguilhem: Science et la vie” in Daniel Defert ed. Dits et ecrits, vol.4, Gallimard, 1994 참조.],  20세기의 프랑스 철학은 빅토르 쿠쟁Victor Cousin 및 멘 드 비랑Maine de Biran 이래 베르그송까지 지속되어온 유심론적ㆍ종교적 성향의 철학과, 20세기 초에 이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사르르트와 메를로-퐁티를 중심으로 한 비판적ㆍ관념론적 철학, 그리고 오귀스트 콩트에서 시작해서 20세기 중반의 바슐라르와 캉귈렘, 알튀세르, 푸코 등으로 이어지는 개념적ㆍ과학적 흐름으로 구분될 수 있다. 그리고 스피노자 연구는 이러한 세 가지 흐름들 사이의 갈등과 투쟁 속에서 세번째 흐름의 입장의 편에 서서, 제일 국수주의적인 편에 속하는 유심론 철학의 입장 및 코기토적 주체의 전통을 복원하려는 비판적ㆍ관념론적 입장에 맞선 싸움을 뒷받침해온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III. 스피노자 연구의 주요 주제들


  이제 프랑스 스피노자 연구의 내용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오늘날 프랑스에서는 스피노자 연구의 중심지답게 다양한 분야에 걸쳐 빼어난 연구 업적들이 많이 산출되고 있다. 연구 주제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분야의 작업들이 주목할 만하다.

1. 원전 번역 및 텍스트 연구

  프랑스에서 진행되고 있는 스피노자 연구의 핵심에는 새로운 스피노자 전집 간행 작업이 놓여 있다. 전체 8권으로 기획된 스피노자 고증본 전집 간행 작업은 지난 1999년 포케 아케르만의 원전 고증 및 피에르 프랑수아 모로와 자클린 라그레의 번역으로 󰡔신학정치론󰡕이 출간된 이래 2005년 󰡔정치론󰡕이 두 번째로 출간됨으로써 본격적인 궤도에 접어들었다.[Tractatus theologico-politicus = Traité théologico-politique / Texte établi par Fokke Akkerman, traduction et notes par Jacqueline Lagrée et Pierre-François Moreau, PUF, 1999; Tractatus politicus = Traité politique / texte établi par Omero Proietti, traduction, introduction, notes, glossaires, index et bibliographie par Charles Ramond, PUF, 2005.]  이 전집은 프랑스를 비롯하여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지의 국제 연구자들의 공동 작업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1925년 독일에서 출간된 칼 게파르트의 고증본 전집[Carl Gebhardt ed., Spinoza Opera, vol. 1-4, op. cit.]을 대체할 새로운 스피노자 전집이 프랑스 출판사에서 라틴어ㆍ불어 대역본으로 간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현대 스피노자 연구에서 프랑스가 차지하는 위상을 잘 드러내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프랑스에는 20세기 초에 나온 번역본과 1950년대에 나온 번역본 등 두 종류의 스피노자 전집 번역본이 존재하며[Charles Appuhn ed. & trans., Oeuvres de Spinoza, vol. 1-4, Flammarion, 1965(1908~19291); Roland Caillois, Madeleine Francès & Robert Misrahi ed. & trans, Spinoza: Oeuvres complètes, Gallimard, 1955.],  그 이외에도 개별 저작에 대한 다수의 번역본이 존재한다. 특히 󰡔지성개선론󰡕과 󰡔윤리학󰡕은 스피노자 전문가들이 번역한 여러 종의 훌륭한 번역본들이 나와 있어서, 스피노자 전문가들 및 일반 독자들에게 널리 활용되고 있다. 󰡔지성개선론󰡕의 경우 알렉상드르 쿠아레의 고전적인 번역본 이외에도 베르나르 루세의 주석본 및 앙드레 레크리뱅의 주석본이 돋보이는 업적이다.[B. Spinoza, Traite de la reforme de l'entendement, Alexandre Koyré trans. & notes, Vrin, 1953; Traité de la réforme de l'entendement, trans. & commentary, Bernard Rousset, Vrin, 1992; Traité de la réforme de l'entendement / Tractatus de intellectus emendatione, André Lécrivain trans. & commentary, Flammarion, 2003.특히 루세의 주석본은 최근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매우 상세하고 엄밀한 주석을 제공하고 있어서 󰡔지성개선론󰡕 주석의 기념비적 업적으로 꼽을 만한 작품이다. 레크리뱅의 주석본 역시 빼어난 서론 및 풍부하면서 명쾌한 주석들을 담고 있어서 󰡔지성개선론󰡕을 연구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윤리학󰡕 번역본으로는 두 종류의 스피노자 전집에 포함된 번역 이외에도 로베르 미즈라이의 주석본과 베르나르 포트라의 대역본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Éthique, Robert Misrahi, trans. & notes, PUF, 1990; Ethica / Éthique, trans. Bernard Pautrat, Seuil, 1999(19881).] 미즈라이의 번역본은 주석은 풍부한 편이나 번역의 정확성이 다소 떨어지는 편이고, 포트라의 번역은 아무런 주석 없이 라틴어 원전과 불어 번역을 싣고 있지만, 엄밀하고 독창적인 번역 때문에 전문가들이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 밖에 새로 출간된 앙드레 게리노의 고전적인 번역 역시 자주 사용되는 판본 중 하나다.[Éthique, trans. André Guerinot, Ivrea, 1993. 이 판본은 특히 들뢰즈가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에서 표준 번역본으로 사용함으로써 유명해졌다. 

  정치학과 관련된 번역으로는 󰡔정치론󰡕에 관한 세 종의 번역본을 꼽을 수 있다. 라틴어ㆍ불어 대역본으로 출간된 실뱅 자크의 번역은 매끄럽고 유려한 번역 이외에도 유용한 주석이 실려 있어서 󰡔정치론󰡕의 사상사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며, 피에르 프랑수아 모로의 번역본은 엄밀함과 정확성을 갖춘 번역인 데다가 귀중한 색인을 담고 있어서 여전히 중요한 󰡔정치론󰡕 참고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Traité politique, trans. Sylvain Zac, Vrin, 1968; Traité politique, trans. Pierre-François Moreau, Réplique, 1979. 최근에 출간된 로랑 보브의 번역본은 에밀 세세가 19세기에 펴낸 번역을 수정ㆍ보완한 번역본으로, 특히 120여쪽에 달하는 로랑 보브의 훌륭한 「서론」 및 유용한 참고문헌 목록을 담고 있어서 󰡔정치론󰡕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는 판본이다.[Traité politique, trans. Laurent Bove, Livre de Poche, 2002.] 

 

  마지막으로 조엘 아스케나지와 조슬린 아스케나지-제르송이 번역한 󰡔히브리어 문법 개요󰡕 불역본을 지적해두자.[Abrégé de grammaire hébraïque, trans. Joël Askénazi & Jocelyne Askénazi-Gerson, Vrin, 1968.이 책은 스피노자의 저서 중에서 가장 덜 알려진 책이지만, 스피노자의 언어철학 및 성서해석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좋은 참고 자료가 될 수 있는 책이다. 히브리어에 정통한 연구자가 드문 관계로 이 책의 현대어 번역본은 찾아보기 어려운 편인데, 아스케나지 부부가 번역한 이 불역본은 좋은 「서론」과 매우 유용한 역주들을 포함하고 있어서 이 책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현재는 절판되었는데, 조만간 재출간되기를 기대해본다.     

 

2. 󰡔윤리학󰡕을 비롯한 철학 체계에 대한 연구


  스피노자의 철학 체계에 관한 연구는 우선 󰡔윤리학󰡕 1부와 2부에 대한 마르샬 게루의 두 권짜리 주석서를 들 수 있다. 게루는 이 두 권의 주석서에서 󰡔윤리학󰡕 1, 2부의 정의와 공리, 정리 및 증명을 하나하나 차례대로 분석하면서, 스피노자의 철학을 고대와 중세, 근대의 철학사 속에 위치시키고 있다. 게루의 주석은 철학 체계에 대한 엄밀한 구조적 연구로 특징지을 수 있다. 동시대 프랑스 철학계에서 그와 경쟁 관계에 있던 페르디낭 알퀴에가 “체계 연구”보다는 “존재론적 경험의 연구”를, “논리적 구조 연구”보다는 “심성 구조에 대한 연구”를 택했다면,[Ferdinand Alquié, La Découverte métaphysique de l'homme chez Descartes, PUF, 1991(19501), P. VI. (이는 1966년에 나온 제 2판 「서문」으로, 이 인용문에는 게루와의 첨예한 대결 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게루는 시간 순서나 실존적인 경험의 차원과 무관하게 사상 체계가 지니고 있는 내적인 근거들의 순서를 따라 어떤 철학자의 사상 체계를 종합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특히 스피노자에 관한 주석서에서 빼어나게 실현되었다. 게루 주석의 또 다른 의의 중 하나는 독일 관념론 이래 오랜 기간 동안 스피노자 해석의 주류를 이루어왔던 범신론 해석을 비판하고 스피노자 철학을 좀더 내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게루의 주석이 나온지 약 30여년 뒤 피에르 마슈레는 󰡔윤리학󰡕 1부에서 5부를 각각 다루고 있는 5권짜리 주석서를 펴냄으로써 스피노자 연구에 또 다른 전기를 마련했다.[Introduction à l'Éthique de Spinoza, vol. 1-5, PUF, 1994-1998.게루의 작업과 비교해볼 때 마슈레의 주석은 몇 가지 주목할 만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우선 그의 책은 철학사 문헌에 대한 풍부한 참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게루의 주석 및 대개의 주석서들과 달리 스피노자에 관한 2차 문헌들을 모두 배제한 가운데 철저하게 󰡔윤리학󰡕 텍스트, 󰡔윤리학󰡕의 문자 자체에 대한 세심한 분석과 검토에 기반을 두고 있다. 둘째, 또한 마슈레의 책은 󰡔윤리학󰡕을 구성하는 논변들 사이의 상호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예컨대 3-4부의 논의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1부와 2부에서 제시된 논증들이 재검토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반대로 2부의 논변을 해명하는 데 5부의 논의들이 동원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그의 󰡔스피노자 “윤리학” 입문󰡕은 󰡔윤리학󰡕 1부와 2부를 다른 부분보다 중시하는 대개의 관점과 달리, 1부에서 5부까지 동등한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다. 이에 따라 그의 주석에서는 󰡔윤리학󰡕의 구조에 대한 위계적이고 선형적인 관점(이는 사실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범신론적 해석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이 체계적으로 부정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스피노자의 인간학 및 윤리학이 존재론이나 인식론 못지않게 중시되고 있다. 
 

현재 프랑스의 스피노자 연구를 지휘하고 있는 피에르 프랑수아 모로의 작업[Pierre-François Moreau, Spinoza: L'expérience et l'éternité, PUF, 1994; Spinoza et le spinozisme, PUF, 2003; Problèmes du spinozisme, Vrin, 2006; Spinoza : Etat et religion, ENS, 2006.은 게루나 마슈레의 작업과 또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는 게루나 마트롱이 철학사 연구에 도입하여 훌륭한 성과를 거둔 “구조적 방법”을 수용하면서도 이러한 방법론이 지니고 있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수용사” 및 몇몇 텍스트에 대한 “미시적인 분석”을 보충적인 방법으로 채택하고 있다.[ P.F. Moreau, Spinoza: L'expérience et l'éternité, op. cit. 중 「서론」 및 「결론」 참조.스피노자의 체계를 연구하기 위해 수용사 연구가 불가결하다면, 이는 스피노자의 체계가 함축하는 다양한 논리적 가능성들을 좀더 풍부하게 탐색하기 위해서이며, 특정한 텍스트에 대한 미시적인 분석은 그의 체계가 유지하고 있는 체계성의 한계를 은밀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방법론적인 관점은 스피노자의 철학 체계을 파악하는 매우 새로운 관점을 함축하고 있다. 곧 대개의 주석가들이 스피노자의 체계를 “기하학적인 질서”로 간주하고 있는 데 반해, 그는 이것 이외에도 “경험적 질서”가 지닌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그가 자랑스럽게 지적하고 있듯이 그 이전에는 누구도 스피노자의 체계에서 “사용usus”, “기질ingenium”, “운수fortuna” 같은 개념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더욱이 스피노자 철학을 이해하는 데 본질적이라고 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특히 󰡔지성개선론󰡕 「서설」에 대한 연구 및 󰡔신학정치론󰡕과 󰡔윤리학󰡕의 ‘주변적인’ 텍스트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경험적 질서”는 스피노자 체계의 건축술의 또 다른 일부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철학사 방법론 및 텍스트 분석이 매우 탁월한 것이라는 점은 그의 작업 이후에, 그의 분석을 계승하고 있는 여러 저작들을 통해서도 입증될 수 있다.  

  이러한 대가들의 작업 이외에도 좀더 젊은 세대의 연구자들이 󰡔윤리학󰡕에 대한 개성 있고 치밀한 연구들을 많이 펴내고 있다. 가령 샤를 라몽은 스피노자의 초기 저작에서부터 말년의 저작들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양과 질 사이의 긴장을 주제로 스피노자 철학 체계를 해석하고 있으며, 젊은 나이에 사망한 프랑수아 추라비시빌리는 “변형transformation”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스피노자 철학의 극한들을 재검토한 바 있다.[Charles Ramond, Qualité et quantité dans la philosophie de Spinoza, op. cit.; François Zourabichvili, Spinoza: Une physique de la pensée, op. cit.; Le Conservatisme paradoxal de Spinoza: Enfance et royauté, op. cit..]  또 윤리적 능동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파스칼 세베락의 저작이나 기호 개념의 중요성을 해명하고 있는 로렌조 빈치게라의 작업도 주목할 만하다.[Pascal Sévérac, Le devenir actif chez Spinoza, Honoré Champion, 2005; Lorenzo Vinciguerra, Spinoza et le signe: La Genèse de l'imagination, Vrin, 2005.아울러 베르나르 루세의 고전적인 저작 및 샹탈 자케의 최근의 연구처럼 󰡔윤리학󰡕 5부에 초점을 맞춘 연구들도 중요한 업적이다.[Chantal Jaquet, Sub specie aeternitatis: Étude des concepts de temps, durée et éternité chez Spinoza, op. cit..] 또한 󰡔윤리학󰡕 4부와 5부에 관한 집단 저작은 지금까지 충분히 해명되지 못했던 스피노자의 인간학과 윤리학의 여러 측면들(정서들의 모방의 정치적 함의, 모방의 윤리, 개인 윤리와 집단 윤리의 관계, 능동 정서의 의미, 신의 지적 사랑의 구조, 5부에서 신체의 의미 등)을 치밀하게 해명해주고 있다.[“Sur la Ve partie de l'ÉthiqueRevue philosophique no. 1, 1994; “Sur la quatrième partie de l'Éthique”, Revue de Métaphysique et de Morale, no. 4, 1994; “Durée, temps, éternité chez Spinoza”, Les Études Philosophiques, no. 2, 1997; Chantal Jaquet et al. eds., Fortitude et servitude: Lectures de l'Éthique IV de Spinoza, Kimé, 2003; Chantal Jaquet et al. eds., Spinoza, philosophe de l'amour, Publications de l'Université de Saint-Étienne, 2005. 
 

  󰡔윤리학󰡕 이외에도 󰡔소론󰡕과 󰡔지성개선론󰡕, 󰡔데카르트의 “철학원리”󰡕를 중심으로 한 초기 저작에 대한 연구도 상당히 진척되어 왔다. 󰡔소론󰡕에 관한 연구로는 질베르 보스의 주석서를 꼽을 수 있는데, 그는 󰡔소론󰡕의 장 하나하나를 명쾌하게 분석하면서 아직도 많은 수수께끼를 담고 있는 이 책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Gilbert Boss, L'enseignement de Spinoza: Commentaire du Court Traité, Grand Midi, 1982 󰡔지성개선론󰡕에 관해서는 앞서 언급했던 루세와 레크리뱅의 주석본 이외에도 모로와 츠베르만의 연구가 주목할 만하다. 두 저자 모두 그동안 󰡔지성개선론󰡕 연구에서 거의 주목받지 못했던 “서설”에 관한 치밀한 검토를 통해 이 짧은 텍스트가 스피노자 철학 전체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음을 밝혀내고 있다.[P.-F. Moreau, Spinoza: L'expérience et l'éternité, op. cit. 1부; Theo H. Zweerman, L'Introduction à la philosophie selon Spinoza. Une analyse structurelle de l'introduction du Traité de la Réforme de l'Entendement suivie d'un commentaire de ce texte, Presses Universitaires de Louvain, 1993(이 책은 네덜란드어로는 1983년에 출판되었다). 󰡔데카르트의 “철학원리”󰡕에 대한 주목할 만한 작업으로는 무엇보다 앙드레 레크리뱅의 작업을 들 수 있다.[A. Lécrivain, “Spinoza et la physique cartésienne”, Cahiers Spinoza 1, 1977; “Spinoza et la physique cartésienne: La partie II des Principia II”, Cahiers Spinoza 2, 1978.그는 󰡔데카르트의 "철학원리"󰡕 및 󰡔윤리학󰡕 2부에 나오는 “자연학 소론”에 대한 세심한 분석을 통해 스피노자가 갈릴레이와 데카르트의 물리학에 정통해 있었으며, 그들의 작업이 지닌 철학적 난점을 정정하고 보완하려 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또한 󰡔데카르트의 "철학원리"󰡕를 대상으로 시간, 지속, 영원 및 자기 보존 이론을 분석하고 있는 프렐로렌초스의 학위논문이나 󰡔형이상학적 사유󰡕에 관한 공동 논문집도 언급해둘 만한 작업이다.[Yannis Prelorentzos, Temps, durée et éternité dans les Principes de la philosophie de Descartes de Spinoza, PUF, 1996; Chantal Jaquet ed., Les Pensées Métaphysiques de Spinoza, Publication de la Sorbonne, 2004. 
 

3. 생애, 지적 원천 및 이데올로기적ㆍ정치적 배경과 영향 


  스피노자는 서양 근대의 다른 어떤 철학자보다도 오랫동안 신비의 베일에 가려져 왔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그의 생애나 지적 원천 또는 그의 철학의 이데올로기적[여기서 “이데올로기적”이라는 말은 “실재에 대한 왜곡되고 그릇된 관념들의 체계”나 당파적인 정치적 관점들을 가리키기보다는 어떤 철학이나 사상의 문화적ㆍ규범적ㆍ이론적 하부구조를 가리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다. 곧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개념을 느슨하게 사용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다.]ㆍ정치적 배경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데서 기인한다. 지난 1999년 미국에서 스티븐 네이들러의 중요한 전기가 출간되기 전까지[Steven Nadler, Spinoza: A Lif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9.스피노자의 생애에 대한 신뢰할 만한 전기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이를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이전에 스피노자의 생애나 이데올로기적ㆍ사회적 배경에 대한 연구가 전무했던 것은 아니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레바의 연구가 선구적이었는데, 그는 1959년에 출간된 󰡔스피노자와 후안 데 프라도󰡕라는 책[“Spinoza et le dr. Juan Prado”, in I.S. Révah, Des marranes à Spinoza, Vrin, 1994.에서 스피노자가 유대인 공동체에서 출교(黜敎)되게 된 배경에는 이단적인 종교 사상이 큰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을 밝혀냄으로써, 이후에 요벨 등이 발전시킨 마라노주의marranism에 관한 연구의 단초를 제공했다.[Yirmiyahu Yovel, Spinoza and Other Heretics. Vol. 1: The Marrano of Reas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9; Spinoza and Other Heretics, Vol. 2: The Adventures of Immanence,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1.그 뒤 역시 이단적인 마라노였던 우리엘 다 코스타Uriel da Costa에 대한 장 피에르 오지에의 연구 및 스피노자와 그의 친교 집단에 관한 마인스마의 고전적인 연구의 불어 번역본 등이 출간됨으로써 스피노자의 생애 및 이데올로기적ㆍ정치적 배경에 관한 폭넓은 연구의 기반이 마련되었다.[Jean-Pierre Osier, D'Uriel da Costa à Spinoza, Berg, 1983; K. O. Meinsma, Spinoza et son cercle: Etude critique historique sur les hétérodoxes hollondais, Vrin, 1983. 마인스마의 책은 원래 1896년 Spinoza en zijn Kring이라는 제목으로 네덜란드어로 처음 출간되었으며, 불어본은 원래의 책에 새로 발견된 내용을 추가한 수정증보판이다.그 밖에 17세기 암스테르담을 중심으로 한 앙리 메슐랑의 역사적인 작업 역시 스피노자가 활동하던 당시 네덜란드의 사회적ㆍ문화적ㆍ지적 배경에 대해 풍부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Henry Méchoulan, Amsterdam au temps de Spinoza, PUF, 1990; Être juif à Amsterdam au temps de Spinoza, Albin Michel, 1991; Amsterdam, XVIIe siècle : Marchands et philosophes : Les Bénéfices de la tolérance, Autrement, 1993 참조. 

 

  사상적인 배경에 관한 연구 중에서 주목할 만한 것으로는 16-17세기 신(新)스토아학파에 관한 자클린 라그레의 연구를 들 수 있다.[Jacqueline Lagrée, Le salut du laïc: Etude et traduction du De religione laïci d'Edward Herbert de Cherbury, Vrin, 1989; La raison ardente: religion naturelle et raison au XVIIe siècle, Vrin, 1991; Juste lipse et la restauration du stoïcisme, Vrin, 1994; Spinoza et le débat religieux: lectures du Traité théologico-politique, Presses universitaires de Rennes, 2004.그녀는 스피노자에 대한 연구가 주로 󰡔윤리학󰡕 같은 스피노자의 대표작에, 또는 󰡔지성개선론󰡕의 방법론이나 인식론에 초점을 두고 있었고 또 지금도 여전히 그런 경향을 띠고 있는 것에 반해, 스피노자의 철학에서는 거의 주변적인 문제들로 치부되는 󰡔신학정치론󰡕에 나타난 성서해석의 문제라든가 종교철학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왔다.[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라그레는 󰡔신학정치론󰡕의 후반부, 곧 16장 이하에 나오는 정치철학에 관한 논의에 주목하는 최근 유럽 스피노자 연구 경향과도 얼마간 거리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이러한 노력을 통해 라그레는 󰡔신학정치론󰡕 및 󰡔윤리학󰡕에 나타나는 스피노자의 종교철학이나 신에 관한 논의의 상당 부분은 당대의 신스토아학파의 종교철학에 대한 비판적인 전유의 결과라는 점을 명쾌하게 해명하고 있다.  

 
 

  중세 철학, 특히 중세 유대교 전통이 스피노자의 철학에 미친 영향에 관해서도 좋은 연구들이 나와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스피노자는 24세 되던 해에 유대인 공동체로부터 공식적으로 출교 당했을 뿐만 아니라, 󰡔신학정치론󰡕에서 마이모니데스를 비롯한 유대 사상가들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울프슨의 견해에도 불구하고[H. A. Wolfson, The Philosophy of Spinoza, Harvard University Press, 1956.], 유대 전통 사상에 대한 스피노자의 태도는 비판적인 단절의 태도라는 것이 대개의 견해였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들은 스피노자와 중세 유대 사상의 관계는 생각보다 좀더 복합적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런 관점에서 특히 중요한 저작으로 카트린 샬리에의 작업을 들 수 있다.[Catherine Chalier, Pensées de l'éternité: Spinoza, Rosenzweig, Cerf, 1993; Spinoza, lecteur de Maïmonide: La question théologico-politique, Cerf, 2006. 레비나스를 비롯한 유대 사상 전문가인 그녀는 󰡔신학정치론󰡕에서 볼 수 있는 마이모니데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에도 불구하고 스피노자는 제 2의 모세로 불렸던 중세 유대 사상의 거목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음을 입증한다. 그가 마이모니데스를 비판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 중세 유대 사상의 대가가 성서를 철학자의 관점에서 읽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는 성서의 핵심을 무지한 대중들을 위한 실천적인 지혜, 도덕적인 교훈에서 찾으려고 했던 스피노자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샬리에는 스피노자가 성서에 대해 제기하는 주요 질문들, 곧 신과 그의 섭리에 대한 문제, 예언의 중요성, 신법과 인간법의 차이,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정치 체제에 대한 관심, 구원의 문제 등은 바로 마이모니데스에서 유래하는 질문들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그가 마이모니데스의 사상을 극단적으로 환원하여 비판하는 이유는 사실은 그가 이 스승에게 빚지고 있는 것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일종의 (무의식적?) 전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것이 바로 샬리에가 이 주목할 만한 저작에서 내리는 결론이다.  

  샬리에의 저작 이외에도 마이모니데스에서 스피노자에 이르는 유대 사상에 관한 쉴로모 피네스의 논문집 역시 언급해둘 만한 저작이며, 스피노자의 사랑에 관한 이론에 영향을 미쳤던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유대 사상가 레오네 에브레오Leone Ebreo(라틴어 이름은 Leo Hebraeus)의 󰡔사랑에 관한 대화󰡕의 고증 번역본 역시 앞으로 이 분야에서 많은 연구를 기대케 하는 역작이다.[Léon Hebreu, Dialogues d'amour, trans. Saverio Ansaldi & Tristan Dagron, Vrin, 2006.]  

 
 

  주지하다시피 스피노자가 살던 시대는 수천 년 동안 지속되어온 자연에 대한 관점이 근원적으로 변화를 겪고 있던 과학혁명의 시대였다. 따라서 당대의 주요 철학자들은 과학의 문제에 정통한 식견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데카르트나 파스칼 또는 라이프니츠처럼 그 자신이 중요한 과학적 업적을 남긴 경우도 많았다. 스피노자도 비록 독창적인 과학적 업적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당대의 자연과학 혁명의 쟁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또 이를 자신의 철학에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그럼에도 최근까지 스피노자와 당대의 자연과학의 관계는 스피노자 연구에서 큰 공백으로 남아 있었다. 이는 무엇보다 스피노자의 저술에서 자연과학에 관한 논의가 상대적으로 매우 적었으며, 따라서 스피노자가 수학이나 역학 등에 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었는지 재구성하기가 어려웠던 데서 기인한다 

  하지만 최근 출간된 몇몇 저작들은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중요한 측면들을 상세하게 해명하고 있다. 밤풀리스는 󰡔스피노자의 자연학󰡕이라는 미간행 박사학위 논문에서 스피노자의 철학에 당대의 자연과학, 특히 역학(力學)이 미친 영향을 상세히 논의하고 있다. 그의 작업은 과학혁명을 철학적으로 해명하려고 했던 당대의 철학자들, 곧 데카르트, 홉스, 라이프니츠와의 비교ㆍ고찰 속에서 스피노자의 철학적 관점의 독창성을 해명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Epaminondas Vampoulis, La physique de Spinoza, thèse de doctorat à l'Université de Paris IV, 2000. 또한 파브리스 오디에는 16-17세기 당대의 수학, 곧 기하학에 관한 논쟁의 맥락 속에 스피노자를 위치시키면서, 스피노자의 기하학적 방법이 어떻게 당대의 기하학에 관한 논의의 배경 속에서 형성되었는지 밝히고 있다.[Fabrice Audié, Spinoza et les mathématiques, Pu Paris-Sorbonne, 2005.마지막으로 프랑수아즈 바르바라스는 단지 방법론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스피노자의 철학 체계 자체의 구성에서 기하학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논증하고 있다.[Françoise Barbaras, Spinoza: La science mathématique du salut, CNRS, 2007.] 
 

  스피노자 철학의 영향, 곧 스피노자주의의 역사에 관한 논의로는 무엇보다 지난 18세기 이래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서양 철학계에서 스피노자 철학이 수용되어온 양상을 논의하고 있는 3권의 책이 주목할 만하다.[Olivier Bloch ed., Spinoza au XVIIIe siècle, Méridiens-Klincksieck, 1990; Spinoza au XXe siècle, PUF, 1993; Jean Salem ed., Spinoza au XIXe siècle, Publications de la Sorbonne, 2008.스피노자는 지난 300여 년 동안 서양 사상계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그 동안에는 주로 독일 관념론에서 스피노자 철학이 수행한 역할만 주목받아 왔다. 반면 프랑스 및 외국 스피노자 전문가들이 다수 참여한 이 세 권의 집단 저작에서는 칸트를 비롯한 독일 관념론에서 스피노자가 수용된 양상만이 아니라 프랑스 계몽주의 시대의 유물론 사상가들 및 20세기의 다양한 철학자ㆍ이론가들의 사상과 스피노자 철학을 비교ㆍ검토함으로써, 스피노자 철학이 그동안 알려져 온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고 다채로운 영향을 미쳤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난 2001년 출간된 조너던 이스라엘의 대작 󰡔급진적 계몽주의󰡕는 서양 계몽주의를 온건 계몽주의와 급진적 계몽주의로 구분하면서 후자의 사상적 원천을 스피노자 사상에서 발견함으로써 근대 지성사 연구에 새로운 장을 열어놓았다.[Jonathan Israel, Radical Enlightenment: Philosophy and the Making of Modernity, 1650-1750, Oxford University Press, 2001.] 

  프랑스의 연구 중에서 그의 작업에 비견할 만한 연구는 없지만, 얼마간 유사한 연구로는 무엇보다도 폴 베르니에르의 고전적인 저작을 들 수 있다.[Paul Vernière, Spinoza et la pensée française avant la Révolution, PUF, 1982(19541). 이스라엘의 저작과 달리 프랑스 사상가들에게 범위가 한정되어 있고 또한 제도적인 분석이 빠져 있으나, 800여쪽에 달하는 이 대작은 17세기 후반 종교적인 논쟁을 통해 수입된 스피노자의 사상이 18세기 계몽주의 사상가들, 특히 드니 디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해명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이 책은 이스라엘의 연구의 기반을 마련한 선구적인 업적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그 밖에 자유사상가들(libertins) 및 “지하의  철학”(la philosophie clandestine)에 관한 일련의 연구들도 주목할 만하다. 특히 “스피노자의 정신”이라는 익명의 이름으로 출간되어 당대에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던 󰡔세 명의 사기꾼󰡕이라는 저작[이 책은 우리말로도 번역되었다. 성귀수 옮김, 󰡔세 명의 사기꾼󰡕 생각의 나무, 2005.] 의 고증본이 지난 1999년 프랑수아즈 샤를-도베르의 감수 아래 간행됨으로써 앞으로 이 분야에 관한 연구에서 중요한 기초가 마련되었다.[Françoise Charles-Daubert ed., Le "Traité des trois imposteurs" et "L'esprit de Spinosa": philosophie clandestine entre 1678 et 1768, Voltaire Foundation, 1999.아울러 자유사상 및 “지하의 철학”에 관한 여러 저작들은 지금까지 잘 드러나지 않았던 17세기~18세기에 전개된 스피노자와 반스피노자주의의 흐름을 좀더 정확히 인식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Christiane Hubert, Les premières réfutations de Spinoza: Aubert de Versé, Wittich, Lamy, PUF, 1995; Françoise Charles-Daubert, Les Libertins érudits en France au XVIIe siècle, PUF, 1998; Laurent Bove, Vauvenargues: Philosophie de la force active - Critique et Anthropologie, Honoré Champion, 2001; Gianni Paganini, Les philosophies clandestines de l'âge classique, PUF, 2005; Sophie Gouverneur, Prudence et subversion libertines: La critique de la raison d'Etat chez François de la Mothe Le Vayer, Gabriel Naudé et Samuel Sorbière, Honoré Champion, 2005; Catherine Secretan et al. eds., Qu'est-ce que les Lumières "radicales"? Libertinage, athéisme et spinozisme dans le tournant philosophique de l'âge classique, Amsterdam, 2007.] 
 

  스피노자 철학을 범신론으로 규정함으로써 후대의 스피노자 해석에 큰 영향을 미친 독일 관념론과 스피노자 철학의 관계에 대한 연구에서도 빼어난 업적들이 다수 배출되었다.[이 분야의 선구적인 업적으로는 무엇보다 빅토르 델보스의 저작을 들 수 있다. Victor Delbos, Le Problème moral dans la philosophie de Spinoza et dans l'histoire du spinozisme, op. cit..피에르 마슈레의 󰡔헤겔 또는 스피노자󰡕는 스피노자에 대한 헤겔의 해석을 인식론과 존재론의 관점에서 상세히 검토하고 논박함으로써, 스피노자 철학이 범신론으로 환원되지 않는 독자적인 역량을 지니고 있음을 논증해낸다. 이러한 해석은 스피노자와 헤겔을 비롯한 독일 관념론과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연구를 자극하는 촉매의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장 마리 베스는 칸트 이후 피히테, 셸링, 헤겔 및 하이데거에 이르는 독일 철학의 전통에서 스피노자 철학이 차지하는 중심적인 지위를 해명하여, 스피노자주의의 역사에 대한 새로운 빛을 던져주고 있다. 그밖에도 범신론 논쟁에 대한 실뱅 자크의 연구와 독일 관념론에 관한 크리스토프 로두의 연구도 주목할 만한 업적이다.[Bertrand Dejardin, L'Immance ou le sublime: Oberservation sur les réactions de Kant face a Spinoza dans la critique de la faculté de juger, L'Harmattan, 2003; Christophe Laudou, L'esprit des systèmes : L'idéalisme allemand et la question du savoir absolu, L'Harmattan, 2003; Pierre Macherey, 󰡔헤겔 또는 스피노자󰡕, 앞의 책; Avec Spinoza, PUF, 2002; Pierre-Henri Tavoillot ed., Le Crépuscule des Lumières, Cerf, 1995; Jean-Marie Vaysse, Totalité et subjectivité: Spinoza dans l’idéalisme allemand, Vrin, 1994; Totalité et finitude: Spinoza et Heidegger, Vrin, 2004; Sylvain Zac, Salomon Maïmon, critique de Kant, Cerf, 1988; Spinoza en Allemagne, Méridiens-Klincksieck, 1989. 
 

4. 스피노자 정치철학에 대한 연구

  20세기 후반 프랑스 스피노자 연구의 중요한 특징 중 한 가지는 스피노자 철학 체계에서 정치철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마트롱의 대작 󰡔스피노자에서 개인과 공동체󰡕[Individu et comunauté chez Spinoza, Minuit, 1969.]가 출간되기 전까지 스피노자 연구의 역사에서 스피노자 정치학은 미미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트롱의 저작이 발표되고, 1980년대에는 안토니오 네그리[L'Anomalie sauvage, PUF, 1982; 󰡔야만적 별종󰡕 윤수종 옮김, 푸른숲, 1997(이 번역본은 번역에 문제가 많다); Spinoza subversif, Kimé 1992; 󰡔전복적 스피노자󰡕 이기웅 옮김, 그린비, 2005.]와 에티엔 발리바르[󰡔스피노자와 정치󰡕 진태원 옮김, 이제이북스, 2005.], 앙드레 토젤[Spinoza, ou, Le crépuscule de la servitude, Aubier, 1984; Du matérialisme de Spinoza, Kimé, 1994.] 등의 주요 저작이 출간되면서 정치학은 스피노자 연구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마트롱은 그 이전까지 스피노자 철학의 부차적인 측면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되었던 정치학 저작들, 특히 󰡔정치론󰡕이 스피노자의 철학 체계 전체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준 바 있다. 더욱이 그는 보통 정치학과는 무관한 것으로 간주되었던 󰡔윤리학󰡕, 특히 3부 이하의 논의들은 상호 개인적인 관계, 따라서 사회적인 관계에 대한 분석과 다르지 않으며, 바로 이런 의미에서 정치학의 문제들과 긴밀한 연관 관계를 맺고 있음을 논증해낸다. 따라서 마트롱이 보기에 스피노자의 체계 전체를 올바르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정치학을 그 중심에 위치시켜야 한다. 

 

 

  마트롱이 이론 내재적인 관점에서 스피노자의 존재론과 자연학, 인간학 및 정치학의 체계적인 일관성과 연속성을 입증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1980년대에 출간된 발리바르와 네그리의 연구는 스피노자의 철학을 당대의 사회 현실 및 이데올로기적 문제설정 속에 위치 짓고 있으며, 이러한 현실적ㆍ이데올로기적 환경과 끊임없는 상호 작용 속에서 수정되고 변화ㆍ전개되어 간 것으로 파악한다. 이렇게 되면 스피노자의 철학은 초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아무런 변화나 정정 없이 존재했던 것이 아니고, 󰡔윤리학󰡕이라는 필생의 대작 속에 완성된 구현태로 담겨 있는 것도 아닌 게 된다. 오히려 그것은 당대의 현실적ㆍ이데올로기적 조건 속에서 형성되고, 또 그러한 조건들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의 시도를 통해 정정되고 개선ㆍ변화된 것으로, 그리고 그의 마지막 저술인 󰡔정치론󰡕이 미완성으로 남은 데서 상징적으로 드러나듯이, 난점들과 아포리아들을 품고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발리바르와 네그리 작업의 또 다른 공통점은 두 사람 모두 “다중” 또는 “대중들”이라고 번역될 수 있는 “물티투도multiudo” 개념을 스피노자의 정치학 및 철학 체계의 핵심 요소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실제로 이들의 연구 이후 물티투도는 스피노자 연구만이 아니라 현재의 세계를 철학적ㆍ이론적으로 분석하는 데서도 핵심 개념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들의 연구는 스피노자 연구의 새로운 전망을 제시한 놀라운 탁견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또한 양자 사이에는 물티투도 개념의 의미와 기능에 관해 상당한 입장의 차이가 존재한다. 곧 네그리가 물티투도를 스피노자가 사변에서 실천으로 이행하는 핵심 거점으로 간주하고, 이를 (스피노자 및 현대 사회 분석을 위한) 정치적 존재론의 기반으로 삼고 있는 데 반해[이는 특히 다음 두 저작에서 잘 드러난다. Antonio Negri & Michael Hardt, Empire, Harvard University Press, 2000; 󰡔제국󰡕 윤수종 옮김, 이학사, 2001; Multitude: War and Democracy in the Age of Empire, Penguin, 2004.], 발리바르는 이를 스피노자 철학의 아포리아가 집약된 것으로 파악한다. 다시 말해 그가 보기에 물티투도 개념이 중요하다면, 이는 이 개념이 (󰡔윤리학󰡕에서 발전된) 스피노자의 “존재론”이 난관에 빠지게 되는 지점이자, 대중들에 깃들어 있는 근원적인 양가성(정치체의 기초이면서 동시에 정치체를 내부로부터 위협하는 요소)이 증상으로서 드러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또한 계급 정치의 해체 이후 새로운 진보 정치를 모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명해야 할 주요한 이론적 모색의 대상이기도 하다.[E. Balibar, La crainte des masses, Galilée, 1997; 󰡔대중들의 공포󰡕 서관모ㆍ최원 옮김, 도서출판 b, 2007; Nous, citoyens d'Europe?, La Découverte, 2001; 󰡔우리는 유럽의 시민들인가?󰡕 진태원 옮김, 후마니타스, 근간; Droit de cité, PUF, 2002를 각각 참조.] 
 

  이들의 연구 이후에도 많은 주목할 만한 저작들이 배출되었으며, 또 여전히 중요한 논의들이 계속 발표되고 있다. 특히 물티투도 개념을 중심으로 (이를테면) 마트롱과 네그리의 해석을 이론적으로 종합하려고 시도하는 로랑 보브의 저작이나 홉스와 스피노자 정치학의 체계적인 비교ㆍ검토를 통해 스피노자 정치학의 독창성을 해명하고 있는 크리스치안 라체리의 저작을 언급해둘 만하다.[Laurent Bove, La stratégie du conatus. Affirmation et résistance chez Spinoza, op. cit.; Christian Lazzeri, Droit, pouvoir et liberté. Spinoza critique de Hobbes, op. cit.. 


 

 

IV. 맺음말


  지금까지 우리는 통시적 측면과 주제적인 측면에서 현대 프랑스에서 스피노자 연구 동향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연구 경향을 집약적으로 개념화하고 평가해볼 수 있을까?

  지난 1960년대 이후 프랑스에서 전개된 스피노자 연구는 일차적으로 범신론적 해석에 대한 비판과 극복의 시도로 간주될 수 있다. 독일 관념론에서 형상화된 스피노자는 본질적으로 범신론자였으며, 범신론자로서 스피노자의 철학은 실체의 절대성과 양태의 비실재성, 개인 또는 주체의 부재라는 몇 가지 테제로 집약된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스피노자는 무엇보다 절대적인 실체의 철학자인데, 이러한 실체가 너무나 완결적이고 충만한 것이기 때문에, 실체를 제외한 다른 모든 것들, 특히 인간을 포함한 유한 양태들에게는 아무런 능동성이나 자유의 여지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스피노자는 너무 “신에 도취한”(노발리스) 나머지 인간의 주체성과 자유를 생각하는 것은 망각한 셈이다.  

  반면 특히 게루와 마트롱, 들뢰즈, 마슈레 등의 작업을 기반으로 전개된 프랑스의 스피노자 연구는 실체의 절대적 무한성과 양태의 인과적 역량, 인간의 윤리적 해방이라는 주제를 중심에 놓으면서 스피노자에서 다른 어떤 철학보다 더 근원적이고 독창적인 해방의 철학, 능동성의 이론을 발견한다. 이런 의미에서 프랑스의 스피노자 연구(특히 1980년대까지)는 본질적으로 “역량론적puissantialiste” 경향[이는 앙드레 토젤이 한 논문에서 도입한 용어다. André Tosel, “Quel devenir pour Spinoza? Rationalité et finitude”, in Lorenzo Vinciguerra ed., Quel avenir pour Spinoza?, Kimé, 2001.]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역량론적인 스피노자 해석은 그의 철학 체계에 대해 좀더 정확하고 풍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해주었으며, 스피노자 철학 유래 및 스피노자주의의 갈등적인 전개과정에 대해서도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직면한 여러 가지 난점들을 스피노자라는 거울을 통해 비춰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해주었다.

  그러나 역량론적 해석은 커다란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 나름의 난점들을 지니고 있으며, 지난 1990년대 이후 몇몇 연구자들은 이러한 난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왔다. (필자 자신의 용어법을 사용한다면) 이러한 노력은 “관계론적” 관점으로 규정될 수 있는데,[좀더 자세한 논의는 진태원, 󰡔스피노자 철학에 대한 관계론적 해석󰡕 서울대학교 철학박사학위 논문, 2006 참조.관계론적 해석은 역량론적 해석의 중요한 성과들을 수용한 가운데서도 몇 가지 측면에서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한계들을 정정하고 넘어서려고 시도하고 있다. 특히 스피노자의 체계를 폐쇄적이거나 환원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좀더 다원적이고 심지어 모순적인 경향들의 체계로 이해하려는 관점, 스피노자를 해방의 철학의 선구자로 보기보다는 마르크스주의를 포함한 모든 해방의 철학이 내포하는 아포리아들을 선취하고 이러한 문제들을 숙고하기 위해 고심한 철학자로 파악하는 관점, 지배적인 철학사 해석에서는 거의 취급되지 않거나 또는 매우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되어왔던 근대 사상의 은밀한 흐름을 복원하고 이러한 흐름 속에 스피노자의 철학을 위치시키려는 노력 등이 우리가 관계론적 해석이라고 부르는 최근 연구의 주요 마디들이다.  

  따라서 역량론과 관계론을 포함하여, 지난 40여 년 간 프랑스에서 전개되어온 스피노자 연구를 한 마디로 규정짓는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범신론의 주박에서 스피노자를 벗어나게 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범신론의 그늘이 얼마나 넓고 깊었는지 생각해본다면, 이것은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결코 작은 업적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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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qn 2008-01-18 0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1) '주박'이 "술 짜낸 후 남는 찌꺼기"라고 사전은 설명하는데, 이 글의 제목은 다른 의미가 있는지 혹은 '술독에 빠진 범신론 구하기'의 의미인지 아리송 하군요.
2) III-3항의 마지막의 범신론 관련 참고문헌을 위해 비워둔 괄호를 빨리 채워주시길 부탁드립니다.
3)IV.맺음말에서, 범신론에서는 개인의 주체성도 능동성도 자유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고 하셨는데, -이건 제가 잘 몰라서 하는 질문인데- 범신론으로 인해 개인이 신에 준하는 능동적 주체로 우뚝 서고 결국 신처럼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닌지요?
4) Ch. Lazzeri 는 '라체리'가 아니라 '라즈리'로 발음해야 않나요?
(tres riche한 논문 잘 읽었습니다. 퍼가도 되겠지요. 감사합니다.)

람혼 2008-01-18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한테 없는 문헌들의 제목을 '신이 나서' 옮겨적느라, 안 그래도 긴 논문, 읽는 시간이 더 길어졌네요.^^;
덕분에 좋은 정리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감사드려요.

balmas 2008-01-18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qqn님/ "주박"은 "주술적 속박"이라는 뜻입니다. ^^
그리고 보니까 참고문헌이 빠진 곳이 몇 군데 있네요. 채워넣겠습니다.
스피노자의 범신론에서 주체성이 부재한다는 주장은 독일 관념론, 특히 헤겔의 주장입니다.
Lazzeri가 어떻게 발음되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라체리"가 맞지 않을까 싶네요.
퍼가셔도 됩니다.
람혼님/ 도움이 됐다니 기쁘네요. :-)

khagne_editeur 2008-01-19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아! 저도 퍼가서 읽을게요.
그때 여쭤봤던 건 메일로 보냈습니다...아아아..

balmas 2008-01-19 0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세요. 메일은 잘 받았습니다.

K군 2008-01-19 0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근대철학』을 도서관에 신청하고 싶은데, 정기간행물이라 그런지 서지사항 검색이 잘 안 되네요. 알려주실 수 있으신지요. 개인이 구해서 볼 수도 있는 건가요? 근대철학회에 가입하고 회비를 내면 되는건지...??

balmas 2008-01-20 02:56   좋아요 0 | URL
K군님/ [근대철학]은 비매용 학술지라서 구입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고, 도서관에서 어떻게 신청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네요. 제일 간단한 방법은 근대철학회에 가입하는 것일 듯합니다. :-)

balmas 2008-01-20 0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가다님/ 말씀하신 대로 "post"를 "후기"로 옮기느냐 아니면 "탈"로 옮기느냐에 따라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약간의 차이가 생기죠. 제가 생각하기에 "후기"로 옮긴다면, 이는 양자 사이의 연속성 내지 동질성을 좀더 강조하는 입장일 테고, "탈"이라고 번역한다면 차이나 단절을 좀더 중시하는 관점일 듯합니다. 저도 첫번째 관점을 지지하는 편인데, 다만 제가 본문에서 "소위 후기구조주의"라고 표현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저는 "poststructuralism"이라는 용어법 자체가 다소 자의적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deconstruction은 "탈구축"이라는 용어로 옮기는 게 좀더 정확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다만 "해체"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고 있으니까 그런 사정을 감안해서 해체라고 쓰는 거죠.

우리말 2008-01-22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지나가다 님, 위에서 “poststructuralism”의 접두사 “post-”의 번역 문제에 관해서 장문의 견해를 제시하시고, 혹은 의미 있는 물음을 제기하셨는데, 정작 [입장의 차이에 관계없이 "포스트"라고 음역하면 간단하게 문제가 해결될 듯]하다고 결론을 내리시는 것은, 제 생각에 좀 맥빠진 마무리가 아닌가 합니다.

“post-”를 “포스트-”로 음역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한다면, 애초에 번역 문제 따위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것 아닌가요? 엄밀하게 말해 “음역”은 진정한 의미의 번역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물론 번역이 아닌 것도 아니지만). 예컨대, 한국어 번역판에 외래어라고 하는 음역어들이 벌레떼들처럼 바글바글하다면, 그 번역판을 과연 한국어 번역판이라고 부를 수 있을는지요? 요즘 박사(후) 과정에 있는 인문학자들의 번역서들을 보면, “번역에 대한 성찰”이 거의 없어 보이는 국적 불명의 외계어(?) 번역 용어가 넘쳐나던데요, 이것은 큰 문제라고 봅니다. 한국어 번역서를 외래어나 음역어로 채울 바에야, 뭐하러 번역은 해서 고생 바가지를 하고, 멀쩡한 모국어는 뭐하러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 것인지, 요즘 교수님들이나 박사(후) 과정 학자님들 정말 걱정됩니다. 번역 용어를 음역어나 외래어가 아닌 우리말로 번역한다는 것은, 토종 학문 이론이든 외래 학문 이론이든 그것들을 우리식대로 받아들여 소화하고 정착시키고 발전시켜, 나아가서 우리의 독창적인 학문 이론을 창출하는 최종 목표의 가장 기본/기초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post-”류의 용어들은 어떻게든 그 함의를 정확히 파악해 “후기-” 혹은 “탈-”로 번역해주는 것이 바람직할 줄로 압니다.

balmas 2008-01-22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가다님이나 우리말님이나 논점은 조금 다르지만, 모두 경청할 만한 견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나가다님은 상당히 뜨거운 주제 중 하나를 언급해주셨네요. 두 분 다 감사합니다. ^^;

우리말 2008-01-24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지나가다 님께 일일이 제 반론(이라기보다는 제 나름의 의견)을 써 올리고 싶지만, 무기한 연기하겠습니다. 다만 간단한 지적 두서너 가지만 하고 내빼겠습니다. (장문의 의견을 올려주신 지나가다 님께 감사합니다).

첫째, 위에서 지나가다 님께서 간략히 언급하신 “음차(音借)”와 “음역(音譯)”에 대한 구분과 설명은 정확하지가 않습니다. 다른 분들도 지나가다 님의 위 설명을 읽고 정확히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애매모호한 데다가 부정확한 설명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번역은 일차적으로 종속적, 추종적, 일방적인 수용 작업이 아닙니다. 대등적, 상호수용적 작업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나가다 님의 윗글을 읽어보면, 지나가다 님께선 외국↔자국, 외국어(특히 흰둥이들 말)↔자국어, 원전↔번역본 따위의 관계항에서 지나치게, 혹은 습관적으로, 혹은 비주체적으로, 혹은 수동적/수세적 태도로, 왼쪽 항에만 기준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종속적인 번역 시각 혹은 태도는 오늘날 거의 모든 한국인 번역가(자)들한테서 공통적으로 발견됩니다.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제대로 인식하고, 이제는 그 수동적/종속적 번역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능하다면 두 관계항들을 대등한 위치에 놓고 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고 생산성 있는 번역이 될 것입니다.

셋째, 지나가다 님의 외국/외국어/서양 학문/서양 원전 기준주의(이런 말이 있다면)는 현학주의를 조장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서양 백인들의 학문이 우리보다 앞서고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의 교수님들, 대학원생들, 박사후 연구원들의 번역서를 보면, 저들의 학문과 이론의 무게에 눌리거나 원저자/원전 숭배에 빠져, 별것 아닌 일상적 개념에서조차 난해한 과잉 함축을 끌어내고, 결국에는 개념적 오독으로 굴러떨어지는 “강박적 현학주의”가 제법 많이 눈에 띕니다. 많은 서양 학자들이 즐겨 쓰는 작문법의 하나가 별것도 아닌 평범한 내용의 글을 추상적 명사/명사구 들을 이중 삼중으로 분식해서 엄청난 내포와 함축과 심층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꾸미는 것입니다. 이때, 특히 철학서나 이론적 인문서 번역의 경우, 영어 · 독어 · 프랑스어 문장 형식과 우리말 문장 형식의 현저한 차이에서 일차적인 번역상의 의미 증폭이 발생하고, 현학적으로 조작된 원문의 난해함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해 다시 이차적인 번역상의 의미 증폭이 발생하게 됩니다. 대개의 경우 이런 때는 현학적 오독과 오역으로 빠지게 됩니다. 이런 현학적 오류를 조장하는 것이 바로 서양 원전 기준주의 혹은 숭배주의입니다. 이런 성향이 한국의 많은 지식인들의 번역문을 비롯해 지나가다 님의 윗글에 얼마간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넷째, 둘째와 셋째 지적 사항에 대한 새삼스러운 인식과 새로운 번역관의 실천은 아주 기본적인 것에서 시작된다고 봅니다. 즉 애초에 이 논의의 발단이 된 문제적인 개념(어)의 올바른 번역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poststructuralism”이나 “postcolonialism”이나 “gender”의 올바르고 바람직한 번역어 확정 문제와 관련하여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이만 그치도록 하겠습니다.

거듭 지나가다 님의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