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그인 2006-05-09  

발마스 박사님.(ㅎ_ㅎ)
발마스 님, 인지과학에 대해서 입문할 만한 서적이 뭐 없을까요... 다니엘 데넷이라는 철학자가 인지과학에 능통해서 꽤 주목을 받는 사람이라고 하던데...(인간의 지향성을 자연주의적으로 설명한다죠?) 제 전공과도 꽤 어울리는 것 같아서 좀 알아보려구요..... 저 그리고 발마스 님은 데리다의 에끄리튀르는 "글쓰기","쓰기" 보다는 "기록"이란 어휘가 더 어울린다고 보시는 것이죠? 또 저 프레전스(presence)라는 단어과 관련해서 데리다의 the methphysics of presence 나 Self-presence를 번역할 때는 현전(눈 앞에 있음)의 형이상학, 자기 현전 그렇게 번역하는데 (이정우 박사님은 현존의 형이상학이라고 하시지만.) 보통 일반적으로 프레전스는 "현존"이라고 옮기지 않나요? 크리스토퍼 노리스의 데리다 (이종인 옮김)을 보면 presence가 몽땅 현존으로 번역되어 있는데 presence의 용례가 매우 헷갈리네요....저는 대충 현전은 "눈 앞에 있음"으로. 현존은 "지금 있음"으로 정도 밖에는 구분하지 못하고 있거든요..ㅜ.ㅜ
 
 
balmas 2006-05-10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인지과학은 저도 잘 모르는 분야라서 여러 권의 책을 소개해드리기는 어렵군요. 제가 읽어본 것 중에서 괜찮은 책으로는 조르주 비뇨라는 사람이 쓴 [인지과학 입문](만남)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런데 "입문"이라는 이름이 붙기는 하지만 쉬운 개론서는 아니고 상당히 수준이 높은 책이에요. 그렇지만 인지과학의 "학제적" 성격을 전체적으로 조감하는 데는 많은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한번 도전해보세요. ^-^

그리고 "presence" 또는 독일어로 하면 "Anwesen"을 어떻게 번역해야 하는지 물으셨는데, 하이데거 전공자들은 대개 "현전"이라고 번역합니다만, "현존"으로 번역해도 별로 문제는 없을 것 같네요.

balmas 2006-05-10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데거는 이른바 '전회' 이후에 "Anwesen" 또는 "Anwesenheit" 등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죠. 어떤 의미에서는 이것이 전회 이후 하이데거의 중심 주제라고 할 수도 있겠죠.
간단히 말하면 하이데거의 논점은 이렇습니다. 하이데거는 서양의 형이상학을 "현전의 형이상학" 또는 "현존의 형이상학"이라고 하죠. 이건 무슨 뜻이냐 하면 서양의 형이상학은 존재(Sein)를 사건(Ereignis)의 차원에서 사고하지 않고 그 결과의 차원에서 또는 말하자면 실체의 차원에서 사고해왔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이데거는 소크라테스 이전의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단편들에 관해 숙고하면서 이런 결론을 이끌어냅니다.

balmas 2006-05-10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서 중요한 구분이 "Anwesenlassen"(또는 "Anwesenheit")과
"Anwesendes"의 구분이죠. 전자, 곧 "안베젠라센"은 "현존하게 해줌"이라는 뜻이고, 후자, 곧 "안베젠데스"는 이러한 허락 또는 선물의 결과로 "현존하게 된 존재자들"을 가리킵니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초기 그리스 철학자들의 단편에는 현존하는 존재자들을 넘어서 그것들을 현존하게 해준 것에 대한 사유의 노력이 엿보이는데,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에 오게 되면 벌써 존재 망각이 일어나서 현존하는 존재자들만이 사유의 지배적인 관심사가 되고 현존하게 해줌, 현존하게 해주는 사건의 차원은 은폐된다는 것이죠.

balmas 2006-05-10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하이데거는 후기 사상에서, 이렇게 현존하는 존재자들을 현존하게 해주는 움직임의 차원, 존재 사건의 차원을 사유하려고 노력하죠. 바로 여기서 "Es gibt" 같은 표현들도 유래하죠. 이 표현은 원래는 "...이 존재하다"는 것을 가리키는데, 단어 그대로 하면 "그것이 준다", "그것이 선사한다"는 말이 됩니다. 하이데거는 후자의 의미로 이 표현을 사용하면서, 이를 현존하는 존재자들을 현존하게 해주는 원초적인 움직임, 존재자들을 "보내는"(schicken) 원초적인 "역사"(Geschichte)를 가리키는 것으로 정교하게 다듬지요.

balmas 2006-05-10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리다의 작업은 하이데거의 이러한 사상에 많이 기대면서도, 동시에 그것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답변이 됐습니까? :-)

비로그인 2006-05-10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허헉~~ 발마스 님 자세한 답변 깊이 깊이 감사드려요 *~~*!

비로그인 2006-05-10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발마스님은 현전이나 현존의 형이상학 무방하다고 하시네요. 김재인 님은 "현존의 형이상학"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시던데.

balmas 2006-05-10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가요? 어떤 점에서 그런 것인가요?

비로그인 2006-05-11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재인 님이 리처드 커니의 대담집을 읽어보라고 하시고 답을 안 하셔서 일단 읽어봐야 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