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싶다 2005-07-16  

저도 하늘을 받들고 싶어요.
아니 알라딘에서 둘째로 진귀하다고 하면 서러울 이곳에 와서 이제서야 방명록을 쓰는 무례를 범하다니. 게다가 제가 아는 게 워낙 없는지라, 처음 쓰는 글에, 그것도 무엇을 여쭤보려고 글을 쓰는 것 같아서 얼굴이 토마토처럼 붉어졌어요! ^-^ 데리다가 자주 쓴 시의성(時宜性)이란 용어의 개념은 <모든 관찰자와 역사성으로부터 독립하여 그 자체로 참인 이론은 없다>는 것을 지지하기 위해서 쓰인 거 맞지요? 그런데 위의 정리 자체가 시의성을 넘어서서 수용될 수 있다면, 그게 관찰자와 역사성으로부터 독립한 참인 명제가 되는 것 아닌가요? 그러한 이론을 진리라고 전제한다면 진리는 내재론의 틀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일까요? (저는 내재론이, 가치라고 이름붙여지는 것이 무엇이든 주관적으로 옳다고 보는 문화상대주의, '토마스 쿤'적인 혹은 '푸코'적인 상대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아, 그리고 굳이 <법의 힘>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벤야민에 대한 이해가 탁월하신 것 같아요. <아케이드 프로젝트>라는 책이 작년 여름에 출간되었던데 문화 비평, 특히 벤야민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하더군요. 권할만한 책인가요? 접해보셨다면 번역상태가 좋은지도 알려주셨으면 좋겠어요. 감사 (__)
 
 
balmas 2005-07-16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리들러님 무슨 새삼스럽게 인사를 ... ^-^

그런데 "시의성"이라는 건 뭘 말하시는지 잘 모르겠네요. 혹시 이 말의
원어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그걸 알아야 답변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

그리고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수잔 벅 모스의 책을 말씀하시는 거죠?
저도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듣자 하니 번역이 괜찮다고 하더군요.

알고싶다 2005-07-17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제가 실수를! 시의성 자체가 용어는 아닙니다. l'intempestif 로서의 시의성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33333 축하! 그... 그런데 전 5행시 어렵다고 절대 말 못해요! 흑!

balmas 2005-07-17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역시 그렇군요. ^^
"l'intempestif"는 보통은 "때를 잘못 맞춘"이나 "시의적절하지 않은"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데리다는 이처럼 보통의 시간의 흐름 또는 보통의 시간의식에서 볼 때는 "시의적절하지 않은 것"이 매우 시의적절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보죠.
가령 데리다는 이런 예를 들고 있죠.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이 차례로 몰락하고 난 다음인 1993년에 자신이 마르크스에 관한 책([마르크스의 유령들])을 낸 것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왜 이제서야 이런 책을 냈느냐, 왜 이런 때맞지 않는 짓을 했느냐고 힐난했지만, 데리다 자신이 보기에 그건 결코 시의적절하지 않은 행위가 아니라는 것이죠.
데리다가 이렇게 말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죠.
우선,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나서 [마르크스의 유령들]이 출간된 것이 시의적절하지 않다고 보는 것은 현실 사회주의와 마르크스주의, 또는 마르크스의 사상이 동일하다는 생각, 그리고 더 나아가서 마르크스주의는 해방운동/변혁운동 전체와 동일하다는 생각을 전제하고 있죠. 하지만 데리다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balmas 2005-07-18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실 사회주의가 마르크스주의나 마르크스 사상과 동일한 것도 아니고, 또 마르크스주의가 해방 운동/변혁 운동의 전부도 아니라는 거죠. 따라서 우리가 역사적 사회주의(또는 공산주의)의 한계와 실패를 딛고 변혁운동/해방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한편으로는 역사적 사회주의와 마르크스/마르크스주의의 차이, 마르크스주의와 다른 해방운동의 차이,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와 해방운동의 보편적 구조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다시 한번 재검토하고 비판적으로 독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데리다가 [마르크스의 유령들]에서 "마르크스의 유산을 비판적으로 선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되풀이해서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둘째로, 시의적절하지 않은 것이 때로는 매우 시의적절할 수 있다는 생각은
시간의 구조, 역사의 구조에 대한 독특한 관점을 전제하고 있죠. 길게 말할 수는 없지만, 데리다는 [마르크스의 유령들]이나 다른 몇몇 저작에서 이처럼 때맞지 않는 시의적절함을 "정의의 시간" 또는 "정의의 순간"과 연결시키고 있죠.

balmas 2005-07-18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리다가 보기에 이런 "정의의 순간"은 보통의 규칙적인 시간의 흐름이 정지되거나 급격하게 동요하는 순간입니다. 가령 1917년 사회주의 혁명도 그런 순간일 것이고, 아니면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도 그런 순간일 테고, 또는 우리나라 같은 경우라면 1980년 광주, 1987년의 시민, 노동자 투쟁의 순간이 그런 순간이겠죠. 그래서 데리다는 [햄릿]의 한 대사를 빌려와서 이런 정의의 시간, 정의의 순간을 "뒤틀리고 어긋난 시간"이라고 부르죠.
그런데 데리다에 따르면 이런 정의의 시간, 정의의 순간은 매우 특이하고 일시적인 한 순간을 가리킨다기보다는 보편적 시간의 또다른 차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의의 시간은 보편적인 해방의 경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죠.
이 정도면 질문하신 것에 대해 어느 정도 답변이 됐는지 모르겠군요.

알고싶다 2005-07-19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인생에 자랑거리 하나 더 생겼어요. 발마스님한테 이렇게 친절한 답변을 얻어내다니 ㅋㅋㅋ 감사드릴 따름이죠. 페이퍼로도 올리셨더군요. 그건 제 서재에도 퍼가서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런 미스테리한 소리를 해대죠. 사르트르가 참여예술론을 제창하니까 소련의 어용예술이 상기된다고 하질 않나. 알튀세르같은 경우에도 '70년대부터 줄기차게 스탈린주의 러시아를 비판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실사회주의가 인민 이익을 변형시키는 잔인한 논리의 이념형에 불과할 뿐이라는 걸 비판하고자 함이었겠죠. 용어의 혼동 혹은 이데올로기화에서 기인하는 문제가 큰 것 같아요. 전혀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하면 스탈린주의 러시아를 떠올리고, 데리다 철학하면 포스트모더니즘을 떠올리죠. 다시한번 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