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에 제가 번역한 루이 알튀세르의 [정치철학 강의: 마키아벨리에서 마르크스까지]가 


후마니타스 출판사에서 출간됩니다. 여기 "역자 후기"를 올려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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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후기

 

루이 알튀세르는 우리에게 한편으로 20세기 후반의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또는 정신병으로 고통 받다가 끝내 아내를 살해했던 비극적인 철학자로, 또는 미셸 푸코와 자크 데리다, 알랭 바디우와 에티엔 발리바르, 피에르 마슈레 등과 같은 여러 철학자들의 스승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또한 우리나라 인문사회과학계에 깊은 알튀세르 효과를 낳았던 철학자였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까지 그는 한국 사회 성격 논쟁에서 이른바 ‘PD의 이론적 준거가 된 바 있다. 세계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마르크스주의가 위기에서 파국으로 나아갔던 시기에, 알튀세르는 다소 역설적이게도 한국에서 마르크스주의의 복권과 현실적 실천을 위한 이론적 자원으로 활용되었던 것이다. 1980년 정신착란 상태에서 부인을 목 졸라 살해한 이후 알튀세르는 이론적·정치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며, 어떤 의미에서 그의 사라짐은 마르크스주의의 종말을 상징적으로 예고했던 것이기 때문에, 이는 더 역설적인 (하지만 의미가 없지는 않은) 작업이었다.


작년에 국내에 출간된 알튀세르의 유고 󰡔검은 소󰡕에 부친 한국어판 서문에서 나는 루이 알튀세르가 누구였고, 누구인지, 그리고 앞으로 누구이게 될 것인지 이제는 더 이상 그리 자명하지 않게 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진태원, 필연적이지만 불가능한 것: 󰡔검은 소󰡕 한국어판 출간에 부쳐, 루이 알튀세르, 󰡔검은 소: 알튀세르의 상상 인터뷰󰡕, 배세진 옮김, 생각의 힘, 2018.] 이는 무엇보다도 지난 1990년 알튀세르가 사망한 이후 오늘날까지 계속 출간되고 있는 방대한 분량의 유고가 그동안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사상의 면모들을 보여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생전에 출간했던 저작들에 남아 있는 공백 및 행간들을 더 정확하게 읽을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일례로 우발성의 유물론이나 마주침의 유물론같은 용어들은 오늘날 말년의 알튀세르의 비의적秘義的인 사상을 상징하는 용어로 통칭되지만, 최근에 출간된 유고들은 그가 이미 1960년대부터, 곧 그의 구조적 마르크스주의 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던 당시부터 그것에 대한 반경향으로서 우발성의 유물론 내지 마주침의 유물론에 관한 사유를 전개하고 있었음을 명백히 보여 주고 있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1960년대의 왕성한 저술 작업에 비하면 1970년대 알튀세르의 작업이 매우 단편적이고 간헐적인 특징을 보이고 있어서, 왜 그가 이처럼 급격하게 지적 생산성을 상실하게 되었는지 늘 궁금하게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역시 최근 출간되고 있는 유고들은, 비록 당시에 출판되지는 않았지만 알튀세르가 매우 많은 분량의 원고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집요하게 모색하고 있었음을 알려 주고 있다.


이 유고들 중 일부는 정치철학에 관한 알튀세르의 강의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 출판하는 이 강의록과 더불어 루소에 관한 또 다른 강의록이 대표적인 것인데,[Louis Althusser, Cours sur Rousseau, Le Temps des Cerises, 2012; 󰡔알튀세르의 루소 강의󰡕, 황재민 옮김, 그린비, 근간.] 이 강의록들은 그동안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정치사상사에 대한 면밀하고 독창적인 해석가로서의 알튀세르, 그리고 교수로서의 알튀세르의 구체적인 면모들을 보여 준다. 서양 근대 정치철학에 대한 알튀세르의 해석이 국내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이미 1990년대 초에 알튀세르 사상이 국내에서 짧은 전성기를 누릴 때 근대 정치철학에 관한 알튀세르의 여러 글들을 편역한 책이 출간된 적이 있고,[루이 알튀세르, 󰡔마키아벨리의 고독󰡕, 김석민 옮김, 새길, 1992. 이 책에는 원래 프랑스어로는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던 󰡔몽테스키외: 정치와 역사󰡕(1959)를 비롯해서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관한 논문, 마키아벨리에 관한 강연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마키아벨리에 관한 유고도 번역된 바 있다.[Louis Althusser, Machiavel et nous(1972), Editions Tallandier, 2009; 󰡔마키아벨리의 가면󰡕, 김정한·오덕근 옮김, 이후, 2001.] 하지만 무엇보다 번역의 문제점으로 인해 이 책들은 근대 정치철학에 관한 알튀세르 해석의 논점과 의의를 충실히 전달해 주지 못했으며, 이에 따라 국내의 논의에도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 강의록의 특징은 마키아벨리, 홉스, 로크, 루소를 비롯하여 몽테스키외, 콩도르세, 엘베시우스 같은 18세기 프랑스 정치철학자들, 그리고 헤겔과 마르크스의 역사철학과 같이 서양 근대 정치철학의 주요 사상가들에 대한 알튀세르의 흥미롭고 독창적인 해석을 담고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의 제자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알튀세르의 강의는 내용의 독창성과 아울러 청중을 사로잡는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알튀세르의 강의록을 읽다 보면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개별 사상가들에 대한 강의 내용도 눈길을 끌지만, 정치사상사의 흐름을 포착하는 독창적인 능력도 돋보인다. 특히 12장에서 제시된 몽테스키외에서 콩도르세, 엘베시우스를 거쳐 루소에 이르는 18세기 프랑스 정치사상사에 관한 개관은 알튀세르 강의의 간결함과 깊이, 독창성을 잘 보여 준다.


알튀세르의 근대 정치철학 강의의 특성을 잘 이해하려면, 우선 이 강의의 제도적 배경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알튀세르가 1948년에서 1980년까지 무려 32년 동안 재직했던 파리 고등사범학교는 고등학교 교사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설립된 기관이다.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고등학교 교사(사실 프랑스에서는 고등학교 교사와 대학 교수를 모두 교수’professeur라고 부른다)를 선발하는 시험을 아그레가시옹agrégation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다른 대학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고등사범학교에서는 더 많은 학생들을 이 시험에 합격시키기 위해 학생들을 위한 시험 준비 강의를 진행한다. 아그레가시옹, 곧 교수자격시험은 필기시험(주제에 대한 논술과 고전에 대한 주해)과 구두시험(강의)으로 이루어지며, 매년 초 올해의 시험 주제가 발표된다. 대개 철학사의 고전적인 몇 가지 텍스트들이 시험 주제가 되는데, 가령 2018년 철학 분야의 필기시험은 노동, 기술, 생산이라는 주제 중 한 가지를 고르거나 결합해서 논술하는 것과 스토아학파 및 라이프니츠에 관한 철학사 논술로 이루어져 있고, 구두시험은 프랑스 고전의 경우 콩디약Etienne Bonnot de Condillac󰡔인간 인식 기원론󰡕 Essai sur l’origine des connaissances humaines과 메를로-퐁티의 󰡔지각의 현상학󰡕, 그리고 그리스, 라틴 고전 텍스트 등이 주제였다.


이 책의 내용을 이루는 근대 정치철학 강의 역시 교수자격시험을 위한 강의용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따라서 알튀세르 강의의 일차 목적은 시험 주제가 되는 텍스트들에 대하여 가능한 한 정확하게 소개하는 것이지, 자신의 시각에 입각하여 텍스트를 재해석하거나 변용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특히 이 책의 2부를 이루는 마키아벨리 강의와 3부의 루소 및 홉스와 로크에 대한 강의, 그리고 4부의 홉스 강의 등에서 잘 드러나는 특징이다. 알튀세르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홉스의 󰡔시민론󰡕, 로크의 󰡔통치론󰡕,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 󰡔사회계약론󰡕 같은 근대 정치철학의 고전들의 내용과 주제를 상세하게 제시하면서, 한편으로 각각의 텍스트의 논리적 구조를 재구성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텍스트들을 17~18세기 서양 정치철학의 흐름 속에서 조망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특히 2~4부의 논의는 서양 근대 정치철학사에 대한 충실한 교과서로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강의의 객관적 제약 속에서도 알튀세르는 수동적으로 텍스트를 요약정리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독자적인 이론적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일례로 앞서 언급했던, 12장의 18세기 프랑스 정치사상에 대한 개관이 흥미롭다. 이러한 개관은 17세기 절대주의의 등장을 배경으로 하는데, 알튀세르는 17세기 이후 서양 정치철학의 전개과정 및 논쟁은, 귀족의 퇴락과 제3신분의 흥기를 나타내는 절대주의의 등장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곧 한편으로 그 이전의 중세적 질서를 옹호하는 이들로 페늘롱, 불랭빌리에, 보방 같은 이들이 위치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마키아벨리, 홉스, 그로티우스, 푸펜도르프 같은 이들, 곧 서양 근대 정치철학의 대표자들이 절대주의의 옹호자들로 제시된다. 이러한 대립은 18세기에도 이어져서 중세적 자유를 옹호하는 몽테스키외의 입장과 그의 반대편에 위치한 백과전서파, 곧 발흥하는 제3신분을 옹호하는 입장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알튀세르는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 관점과 달리 이러한 대립을 선명히 하면서 후자와 같은 입장을 진보적인 부르주아의 입장으로 옹호하는 데 주력하기보다, 그들 각각의 사상을 내재적 논리에 따라 해석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 결과 한편으로 18세기 프랑스 정치사상의 전개과정을 해석하는 그의 고유한 입장이 나오게 되며, 다른 한편으로 각 사상가들의 정치적 입장과 무관하게 그들 사상의 독특성에 주목하고 이를 자신의 이론적 관심으로 재전유하려는 노력이 나오게 된다.


이미 알튀세르는 1959년에 몽테스키외에 관한 저서인 󰡔몽테스키외. 정치와 역사󰡕를 출판한 적이 있는데(이 작은 책은 몽테스키외 연구의 필독서로 평가받고 있다), 본 강의록에서는 정체(政體) 또는 사회를 분류하는 몽테스키외의 독특한 이념형적 유형론(카시러가 이미 주목한 바 있는) 이외에 풍토라는 개념이 나타내는 물질적 규정성 이론에 주목한다. 이는 이념적인 역사(또는 헤겔 식으로 말하면 이성으로서의 역사)와 더불어 물질적 규정의 전개로서의 역사를 변증법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기 때문이다.


또한 콩도르세의 경우 알튀세르는 그가 오류의 심리학이라고 이름붙인 것에 주목한다. 콩도르세의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는 한편으로 보면 계몽주의에 고유한 이성의 진보의 역사철학을 보여주며, 따라서 헤겔의 이성의 역사철학을 예비하는 역할을 담당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주목할 만한 오류에 관한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이 오류 이론의 출발점은 계급 분할과 그에 따른 두 개의 인간의 분리다. 곧 잉여 생산이 이루어지면서 더 이상 노동에 종사하지 않는 계급이 출현하는데, 이들은 여가 시간에 학문 연구에 몰두하여 지식을 획득하고 이를 자신들의 지배에 이용한다. 그러면서 이들은 두 개의 교리를 만들어내는데, 하나는 자신들의 지식을 소통하기 위한 교리였고, 다른 하나는 민중을 위한 교리였다. 그런데 이 후자의 교리는 전자의 교리와 달리 자신들이 획득한 지식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지 않고, 그것을 왜곡하고 단순화한 것이었다. 지식은 권력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될 수 있는 한 민중에게 감추어야 하는 것이었고, 그들에게는 진리가 아니라 왜곡된 진리를 가르쳐야 했던 것이다. 따라서 진리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오류를 가르쳐야 한다는 역설적인 테제가 나오게 된다. 오류의 필연성을 표현하는 이 테제가 이후에 알튀세르가 발전시킨 그의 이데올로기론과 공명하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더 흥미로운 논의는 엘베시우스의 저작에 대한 강의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에게는 프랑스 유물론자 중 한 사람으로 간단하게 알려져 있는 이 사상가의 저작에서 알튀세르는 17세기의 회의주의적이고 비관주의적인 철학, 곧 인간의 이익추구 및 이기심에 관한 부정적인 비판을 전도시켜서 그것을 인간 행동의 보편적 동력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18세기 도덕적 유물론의 가장 급진적인 사상을 발견한다. 따라서 엘베시우스는 공리주의의 시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알튀세르는 오히려 그의 사상의 흥미로운 점을 인간에 대한 아주 새로운 관점에서 찾는다. 그것은 인간을 절대적 가소성(可塑性)을 지닌 존재로 이해하는 관점이다. 이는 인간이 유기체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었던 디드로는 물론이거니와 인간에게 원초적인 도덕적 자유의 능력을 부여했던 루소와도 구별되는 엘베시우스 사상의 독창적인 면모다. 그는 인간을 전적으로 우연적인 존재로, 곧 환경에 의해 완전히 규정되는 존재로 이해했으며, 누군가가 바보가 되거나 천재가 되는 일, 또는 미치광이가 되는 일은 모두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았다. 특히 인간은 어린 시절 그에게 영향을 미치는 가정 환경 및 사회 전체의 환경에 의해 규정되며, 따라서 교육의 문제가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역으로 말하면 엘베시우스에게 교육은 인간 존재를 생산하고 변형하는 활동 일반으로서 확장된 의미를 얻게 된다.


알튀세르는 엘베시우스의 이러한 사상이 인간 생산의 역사로서 인간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는 점을 강조한다. 만약 인간의 발전이 환경의 영향에 의해 전적으로 규정된다면, 이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인간 자신의 역사에 의해 전체적으로 생산되고 재생산되며 변형되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이전에는 결코 천명된 적이 없는매우 급진적인 사상이다. 내가 알기로 알튀세르는 생전의 다른 저작에서 엘베시우스에 관해 상세하게 언급한 적이 없지만, 이 강의록에서 그가 재구성하고 있는 엘베시우스 사상은 알튀세르 이데올로기론의 어떤 특성과 매우 유사한 면모를 보여준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존재는 선험적인 본성(또는 천부적 권리로서의 인권같은 것조차도)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그는 태어날 때부터(또는 그 이전부터) 죽을 때까지 이데올로기에 의해 생산되고 재생산되고 변형되는 존재라는 점 때문이다. 알튀세르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호명이라는 개념을 고안해냈다. 호명 이론은 인간은 그 계급적 정체성(부르주아, 프롤레타리아 등)만이 아니라 그 개인적 실존에서까지도 처음부터 끝까지 이데올로기에 의해 구성되고 재생산되고 변형된다는 것, 따라서 이데올로기 바깥에서의 인간의 삶, 인간의 사회란 존재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엘베시우스의 반()자연주의적 인간학은 알튀세르 이데올로기론의 가능한 또 다른 원천으로 간주될 수 있다. 물론 엘베시우스는 자신의 인간학의 급진적인 함의를, 당대 계몽주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적도덕적 개혁주의로 봉합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키아벨리나 스피노자 또는 루소만큼 알튀세르의 사상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이 강의록에서 알튀세르가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다루고 있는 사상가는 루소다. 알튀세르는 이미 1967년에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관한 유명한 논문을 발표한 바 있는데, 이 책에 수록된 알튀세르의 루소 강의는 그의 논문이 오랜 시간 공들여 진행된 강의 작업의 결과였음을 증언해 준다. 또한 1962년에 이루어진 마키아벨리에 관한 강의는 1972년에 작성된 󰡔마키아벨리와 우리󰡕라는 제목의 유고에 집약된 마키아벨리 해석의 기원을 이룬다. 따라서 이 책은 알튀세르의 사상이 서양 근대 정치사상사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조회 위에서 형성되고 변형되었음을 알려 준다. 특히 마키아벨리와 루소에 대한 알튀세르의 독해를 살펴보지 않고서 우발성의 유물론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이 책을 번역하면서 새삼 깨닫게 되었다.


루소의 경우 󰡔인간불평등기원론󰡕이 특히 중요하다. 알튀세르는 1950년대 국가박사학위논문을 준비하면서 󰡔인간불평등기원론󰡕을 부()논문 주제로 택했을 만큼 이 책을 각별히 중요하게 생각했는데,[지금은 국가박사학위 제도가 사라졌지만, 과거에 이 제도가 있을 경우 국가박사학위를 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독창적인 철학을 담은 주()논문과 함께 고전적인 철학 텍스트에 대한 해석을 담은 부논문을 제출해야 했다. 가령 들뢰즈의 경우 󰡔차이와 반복󰡕이 국가박사학위 주논문이었고,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가 부논문이었다.] 그것은 이 책이 “18세기 전체를 지배”(본서, 150)한 책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이처럼 특별한 지위를 갖는 것은 역사에 대해 그 시대에 속한 가장 심오한 고찰”(본서, 같은 곳)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며, 특히 역사의 전개, 사회의 전개를 그 물질적 조건들과 변증법적으로 연결돼 있는 전개로서 체계적으로 인식”(본서, 158)하기 때문이다.


알튀세르의 이러한 언급이 뜻하는 바는 루소가 18세기 계몽주의 사상의 대표자 중 한 사람이면서도 동시에 역설적이게도 그 계몽주의 사상의 내부 반대자였다는 점이다. 루소는 다른 계몽 사상가들과 함께 역사를 이성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시도하지만, 다른 사상가들과 달리 이를 이성의 발전 과정 내지 이성의 자기 실현 과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루소가 보기에 이는 역사의 실제 전개 과정을 이해하는 것을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계몽주의 시대 자체의 본질적 모순인 어떤 객관적 모순, 곧 자연적 인간의 탈자연화[변질]”(본서, 437)이라는 모순을 인식하는 것, 따라서 계몽주의 사상가들을 사로잡고 있던 문제를 사고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루소에게 자연 상태의 상실은 인간 사회의 본질을 구성하는데, 이는 어떤 점에서는 홉스나 로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들과 달리 루소는 인간 사회의 본질을 사고하기 위해 자연 상태에서 이미 주어져 있는 것, 자연법에 기반을 두고 사회의 본질을 사고하지 않는다. 오히려 루소는 다른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사실은 사회적 인간의 모습을 자연 상태 속으로 투사한다고 비난한다. 이는 단지 인식론적 오류나 착각일 뿐만 아니라, 자연 상태(알튀세르가 잘 보여주고 있듯이, 이는 사실은 단순한 자연 상태가 아니라 순수 자연 상태)를 상실한 사회적 인간의 모습을 인간의 본질로 간주함으로써, 자연 상태라는 기원의 상실로 인해 인간이 겪게 되는 소외의 성격을 분석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로 인해 계몽주의 사상을 비롯한 인간과학 자체가 소외의 원환에 사로잡혀 있으며, 그 자신도 모르게 당대의 사회에 대한 이데올로기로서 기능하게 된다.


알튀세르는 루소 역시 이러한 원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루소는 계몽주의의 한계와 역설을 날카롭게 드러냈으며,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는 다른 사회계약 이론가들과 달리 사회계약이 부자들의 고안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성은 부자들의 이성이며, 사회계약은 만인의 자유를 목표로 하는 합리적 기획이라는 외양 아래 부자들의 지배를 정당화하려는 기획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계약의 본질은 이상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상성과 현실 사이의 관계, 곧 이상적인 계약이 그 이상성 자체로 인해 계급적 성격을 띠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문제, 역으로 말하면 (계급 지배의) 현실의 한 요소를 이루는 이상적 합리성의 기능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서 찾아야 한다. 하지만 루소는 이러한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알튀세르에 따르면 그 자신의 고유한 이데올로기, 곧 소생산자의 유토피아라는 이데올로기에 의거하는 것을 넘어서 이 문제를 사고하지는 못했다. 이를 매우 면밀하게 분석하고 있는 것이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관한 알튀세르의 유명한 논문, 그리고 이 책 35장의 강의 대상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 스피노자에 관한 강의가 포함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발리바르를 비롯한 그의 제자들은 알튀세르의 고등사범학교 강의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 중 하나가 스피노자에 관한 이구동성으로 전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스피노자에 관한 강의록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사실 알튀세르에게 스피노자는 마키아벨리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철학자였으며, 󰡔마르크스를 위하여󰡕󰡔자본을 읽자󰡕 또는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같은 그의 대표적인 저작 곳곳에 스피노자의 흔적이 깃들어 있다. 알튀세르는 생전 스피노자에 관한 독자적인 저술을 남긴 적이 없지만, 그의 스피노자 해석과 마르크스주의적 전유는 들뢰즈와 더불어 현대 스피노자 연구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알튀세르의 작업 방식의 특성을 볼 때 이는 그가 오랫동안 스피노자에 관해 연구하고 강의했음을 시사해 주는데, 그의 정치철학 강의록들을 묶은 이 책에서 그 강의를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은 상당히 아쉽다.


그렇다고 해도 이 책에 수록된 알튀세르의 정치철학 강의록들은 충분히 독자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튀세르 사상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물론이거니와, 서양 근대 정치사상사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도 이 책은 매우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제공해 줄 것이다. 마키아벨리나 루소만이 아니라 홉스에 관한 강의를 읽어 보면, 철학자들을 독해하는 알튀세르의 독법이 얼마나 개성적인 것인지 넉넉히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

 

이 책을 내는 데 특히 많은 도움을 준 황재민 선생과 이찬선 선생에게 깊이 감사를 드린다. 두 사람은 초역된 원고를 꼼꼼히 원서와 대조하여 여러 가지 사항을 바로잡아 주었다. 이런 의미에서 두 사람은 이 책의 공역자와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오역에 대한 책임은 나 자신에게 있다. 번역이 나오기까지 오랫동안 기다려 준 후마니타스 여러분께도 죄송하다는 말씀과 더불어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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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우 2019-06-13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선생님 예약구매 했습니다. 번역 수고하셨고 감사드립니다.

balmas 2019-06-14 13:47   좋아요 0 | URL
ㅎㅎ 감사합니다. 즐거운 독서하시길 바랍니다.

추풍오장원 2019-12-15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튀세르가 하는 ‘고시특강‘이라니 후덜덜하네요^^
늦었지만 번역 감사드립니다.

balmas 2019-12-15 22:38   좋아요 1 | URL
하하, ˝고시특강˝이라고 하니 더 확 실감이 오네요.^^

현자의돌생윤 2021-07-12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본 구입해서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balmas 2021-07-12 12:4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현자의돌생윤님.^^ 이렇게 인사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책이 진전된 사유를 위한 좋은 촉매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