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에서 펴내는 [철학사상] 68집에 게재될 논문 한편 올립니다. 


아직 교정이 다 끝나지 않은 논문인 만큼, 이 논문에 대해 공적으로 토론하거나 인용하실 경우에는 


[철학사상]에 수록된 판본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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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와 알튀세르 사이의 푸코

 

 

[분류] 사회정치철학, 현대 프랑스철학

[주제어] 미셸 푸코, 루이 알튀세르, 이데올로기국가장치, 규율장치, 예속화

[요약문] 이 글은 미셸 푸코와 루이 알튀세르의 이론적 차이점을 마르크스를 매개로 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푸코와 알튀세르는 인간적제도적사상적으로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으나,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거의 아무런 언급을 남기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출간된 푸코의 초기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은 1970년대 푸코의 권력의 계보학이 알튀세르의 마르크스주의, 특히 그의 이데올로기론에 대한 비판적 대안으로 구상되었음을 잘 보여준다. 이 강의록에 입각하여 두 사람의 이론을 살펴보면, 푸코는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 이론이 국가장치를 중심으로 삼기 때문에 권력의 미시적 작동 방식을 제대로 해명해주지 못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자본주의가 성립하기 위한 논리적물질적 조건도 제대로 해명해주지 못한다는 비판을 제기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푸코는 알튀세르를 포함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비정상적 인간들을 예속화하는 권력의 작용에 무관심하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하지만 알튀세르의 관점에서 보면 푸코는 이데올로기 개념을 알튀세르 이전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이데올로기의 상상적 차원(스피노자적인 의미에서)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 더 나아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권력의 비대칭성은 미시권력만으로는 해명되지 않는다는 점을 놓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적 토론에는 몇 가지 잔여가 여전히 남게 될 것이다.

 

 

 

I. 머리말

 

알튀세르는 파리 고등사범학교 시절 푸코의 스승이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적제도적사상적으로 긴밀한 관계(이것이 반드시 우호적이거나 화목한 관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를 맺고 있던 인물이었다. 푸코와 알튀세르는 라캉, 바르트 또는 레비스트로스와 함께 1960년대 프랑스 사상계를 풍미했던 구조주의의 주요 이론가로 분류되어 왔다. 하지만 (뒤에서 더 자세히 논의하겠지만) 알튀세르, (후기) 푸코 사이에는 막연히 구조주의로 묶이는 것보다 더 특수하고 중요한 공통점이 존재하는데, 이는 주체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알튀세르나 푸코는 자신들을 구조주의자로 분류하는데 반대했다. 알튀세르는 󰡔자기비판의 요소들󰡕에서 자신을 포함한 그의 동료 연구자들(에티엔 발리바르, 피에르 마슈레, 미셸 페쉬 등)은 구조주의자가 아니라 스피노자주의자였다고 밝힌 바 있으며(Louis Althusser, “Éléments d’autocritique”, in Solitude de Machiavel et autres textes, ed. Yves Sintomer, PUF, 1998, p. 181 강조는 원문), 푸코 역시 자신을 비롯하여 알튀세르, 라캉 모두 엄밀한 의미의 구조주의자가 아니었다고 말한 바 있다. 미셸 푸코, 󰡔푸코의 맑스: 둣치오 뜨롬바도리와의 대담󰡕, 이승철 옮김, 갈무리, 2004, 60~61. 이 문제에 관해서는 마지막 부분에서 다시 논의하겠다.] 사실 알튀세르와 푸코는 한편에서는 이데올로기에 의한, 다른 한편에서는 규율 권력에 의한 종속적 주체 내지 개인의 생산을 이론화하면서 주목할 만하게도 동일한 개념, assujettissement이라는 개념, 우리말로는 예속적 주체화 내지 종속적 주체화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개념을 체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이에 관한 논의로는 특히 Warren Montag, “Althusser and Foucault: Apparatuses of Subjection”, in Althusser and His Contemporaries: Philosophy’s Perpetual War, Duke University Press, 2013 Pascale Gillot, “Michel Foucault et le marxisme de Louis Althusser”, in Jean-François Braunstein et al. eds., Foucault(s), Éditions de la Sorbonne, 2017 참조.]


또한 19685월 운동 이후 대학 개혁 과정에서 뱅센 실험 대학의 교과 개혁 책임자로 일했던 푸코가 철학과와 정신분석학과를 구성할 때 주로 의지했던 이들이 알튀세르와 라캉의 제자들(알랭 바디우, 자크 랑시에르, 에티엔 발리바르, 자크 알랭 밀레 등)이었다. 하지만 이는 푸코가 마르크스주의 및 마르크스주의자들에 대해 심한 회의감을 갖게 만든 주요 요인 중 하나였다.[이 당시의 상황에 관해서는 디디에 에리봉, 󰡔미셸 푸코󰡕, 박정자 옮김, 서울: 그린비, 2011 Richard Wolin, The Wind from the East: French Intellectuals, the Cultural Revolution, and the Legacy of the 1960s,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0 참조.] 1968년 이후 급진적인 변혁 운동을 추구하다가 공안 정국 하에서 집중적인 탄압의 대상이 되었던 급진 좌파 집단, 특히 프롤레타리아 좌파”(La Gauche prolétarienne)의 활동가들 중 상당수는 고등사범학교의 알튀세르 제자들이었으며, 68운동에 대한 알튀세르의 유보적인 태도에 실망하여 이후 사르트르와 푸코에게 경도되었다.[1960년대 말~70년대 초 프랑스의 급진 좌파의 운동 및 그 여파에 대해서는 Michael Scott Christofferson, French Intellectuals Against the Left: The Antitotalitarian Moment of the 1970s, New York: Berghahn Books, 2004 참조.]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알튀세르라는 매개를 고려하지 않고 푸코와 마르크스(주의)의 관계를 검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렇지 않다고 해도 중요한 쟁점들을 제대로 검토하기 어렵다.


하지만 기묘한 것은 이러한 다면적인 연관성에도 불구하고 양자 사이에 상호 언급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알튀세르는 󰡔자본을 읽자󰡕(1965)에서 당시까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묻혀 있던 푸코의 󰡔광기의 역사󰡕 󰡔임상의학의 탄생󰡕탁월한 저작이라고 평가하면서 그를 가스통 바슐라르, 장 카바예스, 조르주 캉길렘의 계보를 잇는 사상가의 반열에 위치시키고 있다.[Louis Althusser, “Du Capital à la philosophie de Marx”, in Lire le Capital, PUF, 1996(3e édition), pp, 20, 44, 46.] 반면 푸코는 󰡔지식의 고고학󰡕에서 불연속의 역사의 한 사례로 󰡔마르크스를 위하여󰡕에 나오는 과학과 이데올로기의 단절 내지 절단을 언급한 것 이외에는 생전에 출간된 저작에서 한 번도 알튀세르나 그의 저작을 거론한 적이 없다.[Michel Foucault, L’archéologie du savoir, Gallimard, 1969, p. 12; 󰡔지식의 고고학󰡕, 이정우 옮김, 민음사, 1992, 23.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말과 사물󰡕에서 푸코가 리카도의 정치경제학과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사이에는 어떠한 실질적인 절단(coupure)”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는 점이다. 그가 보기에 마르크스주의는 마치 물 속에 존재하는 물고기처럼 19세기 사유 안에 존재하는것이다. Michel Foucault, Les mots et les choses, Gallimard, 1966, p. 274; 󰡔말과 사물󰡕, 이규현 옮김, 민음사, 2012, 364. 번역은 약간 수정. 푸코가 알튀세르의 이름을 거론하고 있지 않지만, 이는 분명 󰡔말과 사물󰡕 이전 해에 출간된 알튀세르의 󰡔마르크스를 위하여󰡕, 󰡔자본을 읽자󰡕의 핵심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이해될 수 있다. 푸코 논의에 대한 비판적 고찰로는 Pascale Gillot, “Michel Foucault et le marxisme de Louis Althusser”, op. cit. 참조.] 알튀세르나 그의 제자들(가령 에티엔 발리바르)을 염두에 둔 비판적인 논평과 언급은 주로 1970년대 초 이후(68 운동 이후 푸코가 급진 좌파 운동가들과 교유하면서 권력의 계보학 작업을 수행하기 시작한 이래) 외국 언론이나 학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제시되고 있다.


반면 알튀세르의 제자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푸코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 특히 1970년대에는 비판적 거리두기를 시도한 바 있다.[특히 Dominique Lecourt, Pour une critique de l'épistémologie: Bachelard, Canguilhem, Foucault, Paris: Maspero, 1972; 도미니크 르쿠르, 󰡔프랑스 인식론의 계보: 바슐라르, 캉기옘, 푸코󰡕, 박기순 옮김, 새길, 1996; Dissidence ou révolution, Maspero, 1979; Michel Pêcheux, Language, Semantics and Ideology, St. Martins Press, 1982(프랑스어 원서는 1975); “Remontons de Foucault à Spinoza”, in Denise Maldidier ed., L’inquiétude du discours, Éditions des Cendres, 1991을 참조. 또한 1980년대 이후 알튀세리엥들의 푸코에 대한 평가로는 Etienne Balibar, “Foucault et Marx: l’enjeu du nominalisme”(1988), in La crainte des masses, Éditions Galilée, 1997; 푸코와 맑스: 유명론이라는 쟁점, 󰡔대중들의 공포󰡕, 서관모최원 옮김, 도서출판 b, 2007; “L’anti-Marx de Michel Foucault”, in Chrisitian Laval et al. eds., Marx et Foucault: Lectures, usages et confrontations, Paris: La Découverte, 2015; Pierre Macherey, Le sujet des normes, Éditions Amsterdam, 2015 3장과 4장을 각각 참조.] 역으로 프랑스나 영미권의 푸코주의자들은 알튀세르의 제자였다가 푸코로 전향했거나 아니면 알튀세르와의 거리두기를 위한 이론적 방편으로 푸코를 택한 바 있다. 따라서 어떻게, 어떤 계기들을 통해 알튀세르와 푸코가, 그리고 그의 지적 후계자들이 이론적정치적 유대 관계에서 갈등과 적대 관계로 이행하게 되었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푸코는 마르크스(주의)나 알튀세르에 대해 거의 언급한 바 없고 스스로 마르크스주의자로 자처하지 않았을 뿐더러, 마르크스주의와 경쟁할 수 있고 더욱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독자적인 역사유물론을 구성하는 것을 1970년대 자신의 이론적 작업의 목표 중 하나로 삼았다. “비합리적이지 않고 우파에 기원을 두지 않으면서 마르크스주의적 교조주의로도 환원되지 않는, 분석과 사상의 형태들을 구성하는 것이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 것인가의 문제 (...) 변증법적 유물론의 교리와 법칙을 넘어서는, 이론적이고 합리적이며 과학적인 연구를 어느 정도까지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미셸 푸코, 󰡔푸코의 맑스: 둣치오 뜨롬바도리와의 대담󰡕, 94. 또한 진태원, 푸코와 민주주의: 바깥의 정치, 신자유주의, 대항품행, 서강대학교 철학연구소 편, 󰡔철학논집󰡕 29, 2012, 157~59쪽의 논평도 참조.] 또한 1970년대 이후 프랑스에서, 그리고 1980년대 이후에는 영미권(및 기타 다른 지역)에서 푸코 및 그의 작업을 원용하는 연구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대안적인 좌파 이론이라는 맥락에서 수용되어 왔다(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통치성 학파라고 할 수 있다).[물론 푸코에 대한 우파적인 수용도 없지는 않다. 푸코와 신철학자들들과의 관계가 대표적이거니와, 푸코의 조교였던 프랑수아 에발드(François Ewald)는 프랑스 경영자 연합회(MEDEF)의 부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푸코의 -마르크스”(anti-Marx)에 대해 말할 수 있으며[Etienne Balibar, “L’anti-Marx de Michel Foucault”, op. cit. 참조.] 또는 적어도 푸코의 대항-마르크스주의”(contre-Marxisme)를 언급할 수 있다.[François Ewald et Bernard E. Harcourt, “Situation du cours”, in Michel Foucault, Théories et institutions pénales: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1~1972, Paris: EHESS/Gallimard/Seuil, 2015 참조. 또한 같은 책에 수록된 에티엔 발리바르의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도 참조. Etienne Balibar, “Lettre d’Etienne Balibar à l’éditeur du cours”, in Ibid.]


그런데 푸코가 반-마르크스(주의) 내지 대항-마르크스주의 연구를 스스로 추구했고 또 그것을 고무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면, 이는 무엇보다(유일한 원인은 아니겠지만) 알튀세르의 작업에 대한 이론적 저항 때문이 아닌지 질문해볼 수 있다. 실제로 푸코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 중 제일 마지막에 출간된(하지만 시기상으로는 제일 앞선 것들에 속하는) 1971~72년 강의록인 󰡔형법이론과 제도󰡕 1972~73년 강의록인 󰡔처벌사회󰡕[Michel Foucault, Théories et institutions pénales: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1~1972, op. cit.; La société punitive: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1~1972, Paris: EHESS/Gallimard/Seuil, 2013 참조.]1970년대 권력의 계보학 연구의 비판적 출발점에 알튀세르의 마르크스주의, 특히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1970)에 담긴 이데올로기론이 있음을 잘 보여준다.[Louis Althusser, “Idéologie et les appareils idéologiqus d’État”, in Sur la reproduction, PUF, 1995)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 󰡔아미엥에서의 주장󰡕, 김동수 옮김, , 1991.] 그렇다면 푸코와 알튀세르는 (‘구조주의라기보다는) ‘철학적 구조주의라는 공동의 문제설정 아래 작업했으면서도,[라캉, 후기 푸코, 또는 알튀세르 등 어떤 위대한 철학적 구조주의자들...... 주체를 실격시키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그 반대로 고전 철학에 의해 기초의 위치에 장착된 이러한 맹목적인 노력을 해명하고자 했다. 즉 구성하는 기능에서 구성되는 위치로 주체를 이행시키고자 했다.” Etienne Balibar, “L’objet d’Althusser”, in Sylvain Lazarus ed., Politique et philosophie dans l'œuvre de Louis Althusser, PUF, 1992, p. 102; 에티엔 발리바르, 철학의 대상: 절단과 토픽, 윤소영 옮김, 󰡔알튀세르와 마르크스주의의 전화󰡕, 이론사, 1993, 213~14. 강조는 발리바르의 것이고 번역은 약간 수정했다.] 그 내부에서 이론적으로 갈등했다고, 또는 이단점(point d’hérésie)을 지니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으며,[푸코의 󰡔말과 사물󰡕에서 유래하는 이단점이라는 개념의 철학적 함의에 대해서는 Etienne Balibar, “Foucault's Point of Heresy: ‘Quasi-Transcendentals’ and the Transdisciplinary Function of the Episteme”, Theory, Culture and Society, vol. 32, nos. 5~6, 2015 참조.] 이는 마르크스의 전유를 쟁점으로 하고 있지만 더 넓게 본다면 예속화(assujetissement)와 주체화(subjectivation)의 관계를 둘러싼 철학적 이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이 글에서는 푸코와 알튀세르 사이에서 제기될 수 있는 몇 가지 쟁점을 살펴보겠다.

 


II.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 몇 가지 요소들 

[2장의 논의는 알튀세르 이데올로기론에 대한 필자의 그동안의 연구에 대한 개괄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진태원, 라깡과 알뛰쎄르: ‘또는알뛰쎄르의 유령들 I, 김상환홍준기 엮음, 󰡔라깡의 재탄생󰡕, 창비, 2002; 과잉결정, 이데올로기, 마주침: 알튀세르와 변증법의 문제, 진태원 엮음, 󰡔알튀세르 효과󰡕, 그린비, 2011; 스피노자와 알튀세르: 상상계와 이데올로기, 서동욱진태원 엮음, 󰡔스피노자의 귀환󰡕, 민음사, 2017을 참조.]

 

우선 푸코 작업의 비판적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의 논점을 간략히 살펴보는 것이 이 이론에 대한 푸코의 반작용 및 이를 극복하기 위한 그의 독자적인 계보학 연구의 쟁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1. 노동력의 재생산과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첫 번째 부분은, 토대와 상부구조라는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적 장소론(Topik)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생산/재생산의 문제설정에 입각하여 생산양식과 이데올로기의 관계를 다시 사고하려고 애쓰고 있다. 두 번째 부분은 󰡔마르크스를 위하여󰡕에 수록된 마르크스주의와 인간주의에서 처음 소묘되었던 이데올로기 개념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두 부분은 푸코와의 쟁점을 이해하는 데 모두 나름대로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

 

1) 노동력의 재생산

 

알튀세르는 우선 생산력의 재생산이라는 문제와 관련하여 생산수단의 재생산에 대해서는 마르크스가 󰡔자본󰡕 2권에서 상세하게 논의를 전개했기 때문에 자신은 노동력(force de travail)의 재생산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말한다. 노동력의 재생산은 몇 가지 측면을 지니고 있다. 첫째,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자들이 임금으로 노동자 자신의 노동력의 생물학적 재생산 및 가족의 삶의 재생산을 수행한다. 하지만 둘째, 노동력의 재생산은 이와 동시에 노동력의 자질(qualification)의 재생산을 요구한다. 그런데 노동력의 자질에는 직업적인 숙련도 이외에도 읽기쓰기셈하기와 같은 초보적인 지적 능력과 문학적과학적 교양과 같은 지식들이 포함되며, 또한 자신이 맡은 과업을 성실히 수행하려는 태도와 회사의 질서 및 상사의 명령을 잘 수행하려는 질서 의식, 일반적인 사회성 및 도덕성이 함축되어 있다. 따라서 노동력의 자질의 재생산은 공장 내부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 바깥에 존재하는 독자적인 체계, 특히 교육 체계를 요구한다. 또한 더 일반적으로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복종이 필요하다.

 

2) 국가에 대한 재정의

 

그 다음 알튀세르에 따르면 생산관계의 재생산이라는 문제는 마르크스주의 생산양식 이론의 결정적인 문제”[Louis Althusser, Sur la reproduction, p. 268; 루이 알튀세르, 󰡔아미엥에서의 주장󰡕, 82. 강조는 알튀세르.]인데, 이를 다루기 위해서는 우선 사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따라서 국가 일반에 관한 질문을 전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알튀세르는 국가를 국가권력과 국가장치의 결합으로 제시하고, 다시 국가장치는 억압적 국가장치(appareil répressif d'État, ARE)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appareils idéologiques d'État, AIE)로 구별한다. “주로 억압에 의해 기능하는억압적 국가장치에는 정부, 행정부, 군대, 경찰, 치안유지군, 법원, 감옥 등이 속하고, “주로 이데올로기에 의해 기능하는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에는 교육, 종교, 가족, 정치, 조합, 문화 장치이 속한다. 중요한 것은 억압적 국가장치는 단수(“하나”(un))로 되어 있는 반면,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은 복수로 표현된다는 점이며, 전자가 공적영역에 속하는 제도들로 이루어진 반면 후자는 사적영역에 속하는 제도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사적 영역에 속하는 것들로 간주되는 여러 제도들을 알튀세르가 국가장치라고 부르는 이유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구분하는 부르주아(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넘어서기 위해서다.


자유주의적인 관점에서 따르면 정치와 권력은 항상 공적인 영역에서만 작동하며, 사적인 영역은 개인들 사이의 관계가 문제되는 영역일 뿐 정치나 권력을 위한 자리는 존재하지 않으며, 또 그래야 마땅하다. “반면 알튀세르가 AIE라는 개념으로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부르주아의 계급 지배는 단지 공적인 영역에서 억압적 국가장치를 장악하고 활용함으로써 안정되게 재생산될 수 없으며, 사적인 영역이라고 불리는 개인들의 생활 공간까지 장악하고 지배해야 비로소 안정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문제는 권력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사적인 영역의 개인들의 삶 속에서 어떻게 계급 지배가 관철되고 있고, 더 나아가 개인들의 정체성 자체AIE에 의해 형성되는지 설명하는 일이다.”[진태원, 과잉결정, 이데올로기, 마주침, 앞의 글, 89~90.] 따라서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가 아니라 국가 장치들이다.

 

3)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적 AIE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봉건제에서는 가족-교회쌍이 지배적인 AIE였으며 자본주의에서는 가족-학교쌍이 이러한 AIE를 대체한다는 점이다. 이는 AIE에 대한 알튀세르의 주장과 연속선상에 있으며, 이를 역사적제도적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지침을 제공해준다. 가족은 우리가 인간 사회의 가장 자연적인집단으로, 또한 가장 사적인장소로 간주하는 제도다. 따라서 가족이 국가와 연루되어 있으며 더 나아가 이데올로기의 근본적인 장소라는 생각은 좀처럼 하기 어렵다. 하지만 AIE가 사적인 영역에서 계급 지배를 관철하기 위한 장치이며, 따라서 AIE는 우리가 이데올로기의 작용과 가장 무관한 장소라고 간주하는 바로 그곳에서 가장 효과적이고 가장 완강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족 역시 하나의 이데올로기 장치로 간주될 수 있다. 또한 학교 역시 우리는 보통 가장 이데올로기와 무관한 장소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학교를 공화국의 성소(聖所)’로 간주하고, 학교를 모든 특수한 이데올로기나 종교, 공동체주의의 오염으로부터 보호하려고 하는 프랑스식 공화주의의 관점을 염두에 둔다면 더욱 더 그렇다.[몇 년 전 프랑스 사회에서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됐던 히잡 사건은 이러한 공화주의적 이데올로기의 배경에서 볼 때에만 이해가 될 수 있다. 프랑스 공화주의와 이슬람의 관계에 대해서는 박단, 󰡔프랑스의 문화전쟁: 공화국과 이슬람󰡕, 책세상, 2005 및 양창렬이기라 엮음, 󰡔공존의 기술: 방리유, 프랑스 공화주의의 그늘󰡕, 그린비, 2007을 각각 참조.]


프로이트와 라캉이래로 알튀세르는 가족을 인간이 인간으로 형성되는 가장 원초적인 장소로 간주하며, 또한 학교는 가족에서 형성된 인간이 한 사람의 자율적인 개인, 한 사람의 국민으로 형성되는 곳으로 간주한다. 우리는 이데올로기는 보통 이미 인간으로 존재하고 이미 자율적인 개인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에 대해 행사된다고 생각하지만, 반대로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는 본질적으로 인간을 생물학적인 존재로부터 인간적인 존재로 형성하고 또한 자율적인 성인(우리가 근대 철학의 핵심 범주를 사용하여 주체라고 부르는)으로 형성하는 것이라고 간주하는 것이다. 따라서 가족과 학교가 자본주의의 핵심 AIE라는 테제는 알튀세르 이데올로기론의 특성과 함의가 가장 뚜렷하게 표현되는 주장 중 하나다.

 

2. 이데올로기 이론


이데올로기이론의 핵심 요소는 세 가지로 구별해볼 수 있다.

 

1) 이데올로기에 대한 재정의

 

우선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를 상상적 관계 및 그에 대한 représentation으로 정의한다(représentation표상이나 재현이라는 뜻과 더불어 또한 연극적인 의미의 상연이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테제 1. 이데올로기는 개인들이 자신들의 현실적인 실존 조건들과 맺고 있는 상상적 관계를 표상/재현/상연한다(représent). [L. Althusser, Sur la reproduction, p. 296; 󰡔아미엥에서의 주장󰡕, 107]

 

알튀세르는 이를 조금 더 자세하게 다시 제시한다.

 

인간들이 이데올로기 안에서 서로 표상/재현/상연하는”(se représentent)하는 것은 인간들의 현실적인 실존조건들, 그들의 현실 세계가 아니며, 이데올로기에서 그들에게 표상/재현/상연되는(représenté) 것은 그들이 이 실존조건들과 맺고 있는 관계.[L. Althusser, Sur la reproduction, p. 297; 󰡔아미엥에서의 주장󰡕, 109]

 

이러한 정의의 논점은 자본주의 사회, 곧 계급 사회에서 개인들은 계급의 한 성원으로서 실존하지만, 이데올로기 안에서 개인들은 자신들을 상상적 관계에 따라 서로 표상하고 재현하고 상연한다는 것이다. 이때 개인들은 일차적으로 자신들을 인간으로서, 곧 계급적 조건에 앞서 각각의 개인들이 체현하고 있는 또는 각각의 개인들 안에 전제되어 있는 추상적 인간으로서 서로 표상하고 재현하고 상연한다. 이러한 상상적 표상/재현/상연은 가상적이기는 하지만, (아무런 실재성이 없다거나 아니면 사회적 관계에 대해 구성적이지 않다는 의미에서) 환상적이거나 공상적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자본주의 사회는 법적 체계를 통해 모든 사람을 자유롭고 평등한 법적 주체로 규정하고 있으며, 자본주의 사회의 구성 및 제도적개인적 실천은 이러한 규정을 전제한다. 더 나아가 개인들은 자신들을 또한 프랑스인’, ‘미국인’, ‘한국인으로서, 심지어 단군의 자손인 한민족으로서 서로 표상하고 재현하고 상연할 것이다.[알튀세르 자신은 이데올로기론에서 이 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았으며, 대신 1980년대 이후 에티엔 발리바르가 체계적인 논의의 대상으로 삼게 된다. 이점에 관해서는 에티엔 발리바르, 󰡔우리, 유럽의 시민들? 세계화와 정치의 재발명󰡕, 진태원 옮김, 후마니타스, 2010에 수록된 용어해설중에서 국민, 국민형태, 민족주의, 민족체참조.]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각 개인은 계급이라는 현실적인 존재조건에 따라 규정됨에도 불구하고 이데올로기의 차원에서는 이러한 계급적 조건에 선행하는 추상적인 개인 x(한국인’, ‘프랑스인등으로)로 나타나며, 또한 물질적 조건 속에서 그렇게 규정되어 있다.

 

2) 이데올로기의 물질성

 

이데올로기와 관련하여 알튀세르가 또한 강조하는 것은 이데올로기가 관념이나 의식, 표상이 아니라 물질성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이데올로기는 물질적 실존을 갖는다.”[L. Althusser, Sur la reproduction, p. 298; 󰡔아미엥에서의 주장󰡕, 110] 이는 첫째, 이데올로기는 자생적인 관념이나 의식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을 통해 형성되고 재생산된다는 점이다. 둘째, 알튀세르가 파스칼의 유명한 단편 무릎을 꿇어라. 기도의 말을 읊조려라. 그러면 믿게 될 것이다.”를 인용하면서 강조하듯이, 가장 내밀한 생각이나 믿음, 신념 같은 것들이 사람들의 자발적인 선택이나 의지의 결과가 아니라 구체적인 제도 및 그 제도 속에서 실행되는 의례나 관행들의 결과라는 점이다. 기독교적인 신에 대한 믿음은 미사(또는 예배)라는 의례와 그것에 수반되는 설교, 합창, 기도 등과 같은 관행들(practices)과 분리될 수 없으며, 그것들로부터 생겨난 결과인 것이다. 셋째, 따라서 이데올로기를 기만적인 표상이나 가상, 또는 허위의식으로 간주하는 것, 따라서 의식이나 관념 또는 표상의 차원에서 다루어야 하는 문제라고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표상이다. [루이 알튀세르, 󰡔아미엥에서의 주장󰡕, 112. 강조는 인용자. 사실 알튀세르는 이미 1964년에 저술한 마르크스주의와 인간주의(󰡔마르크스를 위하여󰡕에 수록)에서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러한 관점에서 벗어나 있으며, 1966년 익명으로 발표된 문화혁명에 대하여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데올로기를 관념들의 체계(좁은 의미의 이데올로기들)와 태도-행위(습속)”을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정의한 바 있다. Louis Althusser, “Sur la révolution culturelle”(1966), Décalages, vol. 1, no. 1, 2014, p. 15. http://scholar.oxy.edu/cgi/viewcontent.cgi?article=1002&context=decalages (2018.5.20. 접속) 강조는 원문.]

 

3) 호명

 

마지막으로 잘 알려져 있듯이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의 본질적인 기능을 예속적 주체를 형성하는 것으로 규정하며, 이를 호명’(interpellati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데올로기는 개인들을 주체/신민들로 호명한다. 알튀세르의 논문에서 “assujettissement”이라는 단어는 항상 경제적 종속이나 정치적 복종과 구별되는 이데올로기적 예속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며, 특히 대주체로서의 신과 모세를 비롯한 인간 주체들 사이의 호명의 거울 작용을 논의할 때 체계적으로 사용된다.


알튀세르가 󰡔마르크스를 위하여󰡕, 󰡔자본을 읽자󰡕에서 해명하려고 했던 것은 사회주의 혁명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문제였다. 그는 이를 과잉결정’(surdétermination)이라는 개념에 입각해 설명하려고 했다. 반면 그가 이데올로기론으로 설명하려고 한 것은 (68운동과 같은 거대한 변혁 운동이 일어났음에도) 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지, 자본주의가 어떻게 계급적인 모순과 대중들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재생산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이는 말하자면 혁명이 일어나기 위한 조건들의 과잉결정을 묻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혁명이 일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조건들의 과소결정’(sousdétermination)에 대해 묻는 것이었다.[이러한 테제 또는 오히려 가설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유보사항이 덧붙여져야 한다. 알튀세르가 68운동 이후 본격적으로 이데올로기론에 대한 연구에 몰두한 것은 직접적인 상황 속에서 본다면, 오히려 어떻게 대중들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반역하게 할 수 있는가, 어떻게 대중의 이데올로기적 혁명”(“Sur la révolution culturelle”, Décalages, p. 6. 강조는 원문)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질문은 역으로 왜 대중들은 반역하지 않는가, 왜 대중들의 반역은 혁명으로 이행되지 못하는가, 이데올로기의 어떤 특성, 어떤 기능이 대중들을 예속적 주체로 구성하는가라는 보충적인 질문에 의해 과잉결정될 수밖에 없다. 이 두 질문 사이의 갈등이 알튀세르 이데올로기론의 동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론적 작업이 재생산의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특히 생산력 중에서 노동력의 재생산에서 이데올로기가 수행하는 작용을 해명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되는데, 알튀세르의 독창성은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노동력의 재생산의 차원에 국한시키지 않고, 마르크스주의 역사유물론의 기초를 이루는 주요 개념들, 토대와 상부구조라는 장소론 및 국가개념 자체를 재개념화하는 데까지 나아갔다는 점이다. 더욱이 그는 상상적 관계, 물질성, 호명 개념을 바탕으로 이데올로기 자체를 새롭게 정의하면서 주체라는 근대 철학의 핵심 개념을 탈구축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에 따라 알튀세르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처음에는 생산양식 또는 토대의 재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기능적 역할을 부여받은, 따라서 생산양식이라는 경제적 토대에 존재론적으로 의존하는 위치에 놓여 있던 상부구조 또는 이데올로기가 마지막에 가서는 경제적 토대 자체를 가능케 하는 (하지만 그 자체 역시 경제적 토대를 전제하는) 구성적 조건으로서 나타나게 된다.



III. 마르크스(와 알튀세르)를 심화하기, 마르크스(와 알튀세르)를 넘어서기

 

1. 마르크스를 인용하기, 마르크스를 인용하지 않기

 

우선 한 가지 지적해두어야 하는 것은 마르크스 및 마르크스주의 고전가들을 인용하는 두 사람 간의 두드러진 차이점이다. 알튀세르는 󰡔마르크스를 위하여󰡕에서부터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이론적 독창성을 거의 주장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주장하는 모든 것은 이미 마르크스와 엥겔스, 레닌 또는 마오 같은 마르크스주의 고전가들의 텍스트에 모두 담겨 있으며, 자신은 다만 실천적 상태로 또는 묘사적 상태로 존재하는 그 요소들을 좀 더 명료하게 가다듬고 체계화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외부에서 약간의 보충적인 요소(프로이트에게 과잉결정이라는 개념을, 스피노자에게 상상이라는 개념을, 바슐라르에게는 단절내지 절단이라는 개념)를 빌려올 뿐이다. 그는 이를 보여주기 위해 마르크스와 엥겔스, 레닌의 매우 사소한 텍스트(대개 편지, 연설문, 서문 같은 매우 주변적인 텍스트)에서 기필코 관련된 인용문을 찾아내서, 자신의 독창성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이것들을 빠짐없이 인용한다. 그는 자신의 이론적 작업의 목표를 마르크스에게 돌아가기로 제시하며, “프로이트에게 돌아가기를 자신의 과업으로 내세운 라캉을 찬양한다.[그리고 나중에는 라캉이 이 목표의 거대한 중요성을 망각하고 자신의 독자적인 정신분석의 철학을 만들어내려 하고 있다고 그를 비난한다. 루이 알튀세르, 프로이트 박사의 발견, 윤소영 옮김, 󰡔알튀세르와 라캉󰡕, 공감, 1995 참조.]


반대로 푸코는 이런저런 인터뷰에서 알튀세르를 거명하지 않은 채,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고약한 인용 관습을 맹렬하게 비난한다. 푸코가 보기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와 엥겔스, 레닌 또는 스탈린의 저작에 대해 주석을 달고, 또한 그들의 저작을 인용함으로써 자신들의 충성을 표시하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제가 광기에 대해, 감금에 대해, 그리고 나중에는 의학 및 이 제도들을 지탱하고 있는 정치경제적 구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 제가 놀랍게 여긴 것은 전통적인 좌파가 이 문제들에 대해 아무런 중요성도 부여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 그 이유들 중 하나는 분명 제가 좌파 사상의 전통적인 표시 중 하나를 제시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기인합니다. 저는 각주에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엥겔스가 말한 것처럼”, “스탈린이 천재적으로 말했듯이라는 표시를 달지 않았던 겁니다.[브라질 신문인 Jornal da Tarde와의 인터뷰. “Michel Foucault. Les réponses du philosophe”, in Dits et écrits, vol. I, p. 1675.]

 

이는 교조주의적인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비난이 아니다. 그는 1868년 이후 프랑스의 젊은 급진 좌파 지식인들에게도 신랄한 비판을 퍼붓는다. 이탈리아 언론인과의 대담에서 그는 이들, “1968년 이후에 마르크스-레닌주의자나 또는 마오주의자가 된 사람들 (...) “-프랑스 공산당마르크스주의 세대에 속하는 이들을 초 마르크스주의자들”(hyper-Marxistes)[미셸 푸코, 󰡔푸코의 맑스󰡕, 104~05.]이라고 지칭하면서, 이들은 푸코가 튀니지에서 매료되었던 튀니지 학생들의 도덕적 힘이자 놀라운 실존적 행위[미셸 푸코, 󰡔푸코의 맑스󰡕, 131.] 와 달리 서로에 대한 저주와 각종 이론들을 쏟아내면서분파적인 이론 투쟁만을 일삼는 대책 없는 담론성에 매몰되어 있다고 비난한다. “프랑스에서 5월의 경험은, 서로에게 비난을 퍼부으면서 마르크스주의를 작은 교리들로 분해했던 분파적 실천들에 의해 빛을 잃었다는 데 있겠지요.”[같은 책, 134, 36.]


이 때문에 그는 자신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알아볼 수 없도록 마르크스에 대한 은밀한 인용을 하는 것을 선호한다.”[Michel Foucault, Colin Gordon & Paul Patton, “Considerations on Marxism, Phenomenology and Power. Interview with Michel Foucault”, op. cit., p. 101.]고 말한다. 그렇다면 푸코는 마르크스를, 그리고 또한 알튀세르를 어떻게 은밀하게 인용한 것일까? 그리고 이를 통해 어떻게 그들을 심화하거나 정정하면서 동시에 어떻게 그들을 넘어서려고 한 것일까?

 

2. 알튀세르보다 더 마르크스(주의)적인 푸코?

 

논의를 절약하기 위해 마르크스와 알튀세르와 관련한 푸코 작업의 쟁점을 도식적인 몇 가지 논점으로 제시해보자.

 

1) ‘억압적 국가장치/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쌍에서 국가장치, 다시 규율장치로

 

󰡔형법이론과 제도󰡕 󰡔처벌 사회󰡕, 그리고 󰡔정신의학적 권력󰡕 같은 1970년대 초반 강의록들 및 󰡔감시와 처벌󰡕 같은 저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푸코가 알튀세르와 달리 억압적 국가장치/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라는 용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그냥 단순히 국가장치’(appareil d’État 또는 appareil étatique)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용법은 몇 가지 함의를 지니고 있다. 첫째, 푸코가 보기에 폭력이데올로기또는 강제동의의 구별에 따라 국가장치를 구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이는 한편으로 권력의 장치가 억압을 특성으로 한다는 생각을 전제하는데, 권력의 실제 특성은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하고 구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푸코에 따르면 이데올로기라는 것은 권력의 특성을 해명하는 데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이는 푸코가 이데올로기라는 개념을 알튀세르가 비판하는 바로 그것, 곧 그가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관점이라고 부른 것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함축한다. 사실 이데올로기에 대한 푸코의 언급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그가 완강하게 이데올로기를 -알튀세르적인 또는 전()-알튀세르적인 방식으로 이해한다는 점이다.[가령 다음과 같은 진술이 전형적이다. “저는 이데올로기의 수준에서 권력의 효과들을 식별하려고 시도하는 사람 중 하나가 아닙니다. 실로 저는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제기하기 이전에, 신체 및 신체에 대한 권력의 효과라는 문제를 탐구하는 것이 더 유물론적인 것이 아닌가 하고 질문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데올로기를 선호하는 분석에서 제가 거북하게 느끼는 것은 이러한 분석에서는, 고전적인 철학이 그 모델을 제시한 바 있고 권력이 점령한 의식을 부여받고 있는 인간 주체를 가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Michel Foucault, “Pouvoie et corps”(1975), in Dits et écrits, vol. II, “Quarto”, p. 1624.] 그에게 권력은 이데올로기를 동원해서 기만하고 은폐하고 가상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생산하는 것이며 또한 그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곧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가 아니라 권력-지식또는 지식-권력장치가 권력을 해명하는 데 더 적절한 개념쌍이다.[아마도 푸코가 보기에는 이데올로기라는 낡고 부적절한 관념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려는 알튀세르의 시도가 기묘한 것으로 비쳤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데올로기라는 단어는 늘 기만, 조작, 왜곡, 신비화 등의 대명사로 사용되어 왔고 또 여전히 그렇게 이해되기 때문이다. 푸코에게는 이 단어를 고수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이는 마르크스주의자이자 공산주의자였던 알튀세르와 그렇지 않았던 푸코의 또 다른 차이점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푸코가 이데올로기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지는 불확실하다. 이점에 관한 상세한 토론은 Pierre Macherey, Le sujet des normes, op. cit., pp. 214 이하 참조.]


따라서 푸코는 1972~73년 강의에서는 국가장치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 다음 해 강의인 󰡔정신의학의 권력󰡕에서는 국가장치라는 개념이 단 2차례만 등장하며, 그것도 이 개념의 무용성을 주장하기 위해 거론될 뿐이다.[국가장치라는 개념은 사용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런 직접적이고 미세하며 모세혈관적인 권력들, 신체와 행실, 몸짓, 개인의 시간에 작용하는 권력들을 지시하기에는 너무 광범위하며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국가장치는 이러한 권력의 미시물리학을 해명하지 못한다.” Michel Foucault, Le Pouvoir psychiatrique,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3~1974, Paris: Gallimard/Seuil, 2003, p. 17 ); 󰡔정신의학의 권력󰡕, 오트르망 옮김, 난장, 2014, 38쪽 각주 21). 번역은 수정했다.] 그 대신 푸코는 자신의 고유한 개념인 권력 장치”(dispositif de pouvoir)를 사용하기 시작한다.[같은 책, p. 14; 34.] 󰡔감시와 처벌󰡕에서는 장치의 두 가지 표현인 appareildispositif가 같이 혼용되고 있는데, dispositif가 주로 규율장치내지 파놉티콘 장치와 관련하여 쓰이는 반면, appareil는 주로 국가장치’, ‘행정장치’, ‘사법장치’, ‘치안 장치등과 같이 국가 및 국가 제도와 관련하여 사용된다. 푸코가 점점 더 알튀세르적인 의미의 국가장치라는 용어의 무용성을 주장하게 된 이유는 이 개념이 한편으로 권력이 국가라는 어떤 중심에 근거를 두고 있고 거기에서 파생되어 나온다고 생각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제도들을 권력의 중심으로 간주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반면 푸코가 보기에 권력은 국가나 제도보다 더 하위의 수준에서, 미시물리학의 수준에서 작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제도로서의 국가장치의 기능적 효용과 실재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매우 제한적인 것에 불과한 것이다.

 

권력을 국가 장치 안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적절하게 기술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심지어 국가장치들이 내적이거나 외적인 투쟁의 쟁점이라고 말하는 것조차 충분히 않을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오히려 국가장치는 훨씬 더 심층적인 권력 체계의 집중화된 형식, 또는 심지어 그것을 지탱하는 구조입니다. 이것이 실천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국가장치의 통제도 그것의 파괴도 특정한 유형의 권력, 국가장치가 그 속에서 기능했던 그 권력을 전화하거나 제거하는 데 충분치 않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Michel Foucault, La société punitive, op. cit., p. 233.]

 

알튀세르의 국가장치에 대한 푸코의 이러한 비판이 정당한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데, 이는 4장에서 좀 더 상세히 논의해보겠다.

 

2) 마르크스의 진정한 계승자 푸코? 󰡔자본󰡕과 규율권력

 

1972~73년 강의록인 󰡔처벌 사회󰡕가 우리의 주제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왜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마르크스의 󰡔자본󰡕 1권에 주목하고 있으며, 또한 왜 규율권력에 대한 자신의 연구가 󰡔자본󰡕 1권의 노선 위에 서 있다고 주장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미국 학자들과의 1978년 인터뷰에서 푸코는 자신의 작업을 마르크스의 󰡔자본󰡕과 연속적인 것으로 위치시킨다. 단 그는 대부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경전처럼 떠받드는 󰡔자본󰡕 1이 아니라 󰡔자본󰡕 2이 자신의 작업의 출발점이며, 자신은 그것을 심화시키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지적한다.

 

저 자신의 경우, 마르크스에서 제가 관심을 갖는 부분, 적어도 제게 영감을 주었다고 제가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자본󰡕 2권입니다. 곧 첫 번째로는 자본의 발생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구체적인 자본주의의 발생에 대한 분석, 두 번째로는 자본주의 발전의 역사적 조건에 대한 분석, 특히 권력 구조 및 권력 제도의 확립과 발전에 관한 분석과 관련된 모든 것입니다. 따라서 다시 한 번 아주 도식적으로 떠올려보면, 자본의 발생에 관한 첫 번째 책과 자본주의 역사, 계보에 관한 두 번째 책 가운데 2권을 통해, 그리고 가령 제가 규율에 관해 쓴 것에 의해 저의 작업은 모두 동일하게 마르크스가 쓴 것과 내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겠습니다.[Michel Foucault, Colin Gordon & Paul Patton, “Considerations on Marxism, Phenomenology and Power. Interview with Michel Foucault”, Foucault Studies, no. 14, pp. 100~01.]

 

여기서 푸코가 말하는 󰡔자본󰡕 2은 마르크스 생전에 마르크스 자신이 직접 감수한 프랑스어판 󰡔자본󰡕 2, 따라서 독일어판으로 하면 󰡔자본󰡕 1권의 4편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푸코의 논점을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감시와 처벌󰡕에 나오는 󰡔자본󰡕에 관한 몇 개의 인용문은 모두 14편에 대한 것이다. 푸코가 인용문에서 자본의 논리적 발생을 다루는 1권 앞부분이 아니라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역사적 발생에 관한 분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자신의 작업이 마르크스의 이 분석 위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몇 가지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우선 푸코가 마르크스의 분석에서 주목하고 또 스스로 더 발전시키는 점은 자본주의 생산양식 또는 경제적 구조가 성립하고 발전하기 위한 조건이 규율 기술이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규율 기술은 자본주의적 생산을 조직하고 그것이 효율적으로 작동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공장을 군대 조직처럼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에서 생겨난다. 푸코는 1976년 브라질에서 했던 권력의 그물망이라는 강연에서 이렇게 말한다. “[규율권력이라는] 이 특수한 국지적 권력들은 결코 금지하고 방해하고 너는 해서는 안 돼라고 말하는 의고적인 기능을 갖지 않습니다. 이 국지적이고 지역적인 권력들의 원초적이고 본질적이고 영속적인 기능은 사실은 어떤 생산물의 생산자들의 유능함과 자질의 생산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가령 마르크스는 군대와 작업장에서 규율의 문제에 대한 탁월한 분석을 수행합니다.”[Michel Foucault, “Les mailles du pouvoir”, in Dits et écrits, vol. II, p. 1006. 강조는 인용자.] 그리고 실제로 푸코는 󰡔감시와 처벌󰡕의 각주에서 마르크스의 󰡔자본󰡕 1411장의 한 대목을 인용하면서 이를 언급한다. “기병 1개 중대의 공격력이나 보병 1개 연대의 방어력이 기병 1기와 보병 1명이 각기 발휘하는 공격력과 방어력의 합계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개별 노동자들의 힘의 기계적 합계는 다수 노동자들이 통합된 동일한 공정에서 동시에 함께 작업하는 경우에 발휘되는 사회적인 잠재력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Karl Marx, Das Kapital, I, in Karl MarxFriedrich Engels Werke Bd. 23, Dietz Verlag, 1987, p. 345; 칼 마르크스, 󰡔자본󰡕 1-1, 강신준 옮김, 도서출판 길, 2013, 454.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258쪽 주 65).]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마르크스의 󰡔자본󰡕(앞서 본 것처럼 고의적으로) 어떻게 매우 암묵적으로, 그리고 피상적으로 인용하는가는 다른 연구자들의 작업 덕분에 이제 잘 알려져 있다.[특히 Rudy M. Leonelli, “Marx lecteur du Capital”, in Chrisitian Laval et al. eds., Marx et Foucault: Lectures, usages et confrontations, op. cit. 참조.] 마르크스가 󰡔자본󰡕 14편에서 보여주려고 한 것은 전자본주의적 수공업과 구별되는 자본주의적인 생산 방식이 지닌 특성이다. 그것은 결합 노동”(kombinierte Arbeit)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지닌 특성인데, 이러한 결합 노동은 자본주의적인 협업”(Kooperation)과 고대적이거나 중세적인 또는 아시아적인 협업 사이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핵심 요소다. 이전의 협업이 여러 사람들의 힘을 기계적으로 결합하는 것인 데 반해, “처음부터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판매하는 자유로운 임노동자를 전제”[Karl Marx, Das Kapital, I, p. 354; 칼 마르크스, 󰡔자본󰡕 1-1, 464.]하는 자본주의적 협업은 아주 많은 수의 노동자가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서(또는 같은 작업장이라고 해도 좋다) 같은 종류의 상품을 생산하기 위하여 같은 자본가의 지휘 아래에서 일한다.”[같은 책, p. 341; 449.]는 특성을 갖는다. 또한 이러한 협업은 노동 과정을 세부적으로 분할하며, 각각의 노동자들에게 세부적으로 분할된 특정한 작업을 부과한다. 이렇게 분해된 작업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자신에게 부과된 특정한 작업을 특정한 도구기계와 함께 수행하면서도 이러한 세분화된 개별 작업들이 동일한 생산품을 만들어내는 단일한 전체 과정으로 통합될 때 자본주의적 협업이 전개된다. 이러한 협업 방식 및 결합 노동 방식은 각각의 개별적인 생산자들이 따로따로 생산하는 것보다 생산성을 훨씬 더 높여주지만, 이러한 생산성의 증대가 전제하는 것은 노동자들이 이러한 작업 방식에 순종하는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작업 방식에 순종하는 것은 자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데, 왜냐하면 세분화된 개별 작업을 노동자들에게 부과하여 그것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게 만드는 것은 일정한 강제 내지 폭력이며, 인간 및 그 신체의 자율성을 해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노동자 자신, 그의 온전한 신체로부터 강제로 분리하는 일이기도 하다.


마르크스의 논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푸코 자신이 명시적으로 인용하는 󰡔자본󰡕 14편의 11협업이외에 4편 전체의 내용을 참조해야 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매뉴팩처 분업의 특징을 이루는 것은 (...) 부분 노동자가 생산하는 것은 상품이 아니라는 점 바로 그것이다. 부분 노동자의 공동생산물이 되어야만 비로소 그 생산물은 상품으로 전화한다.”[같은 책, p. 376; 488~89.] 마르크스는 시계 공장의 사례를 든다. “1차 가공 작업공, 시계태엽 제조공, 문자판 제조공, 용수철 제조공, 돌구멍과 루비축 제조공, 시계침 제조공, 케이스 제조공, 시계테 제조공, 도금공 (...) 톱니바퀴축 제조공, 시계침장치 제조공, 톱니바퀴를 축에 고정시키고 모서리를 연마하는 사람, 추축 제조공 (...)”[같은 책, p. 362~63; 474.] 이처럼 수십 가지 부품들을 분산해서 제조하는 과정을 거쳐 이것들을 조립하는 최종 과정에 이르러서야 시계 생산이 완료된다. 이러한 작업 과정의 성격으로 인해 똑같은 부분 기능을 수행하는 각각의 노동자 무리는 동질적인 요소들로 구성되어 전체 생산 메커니즘의 한 부속 기관이 된다. (...) 매뉴팩처는, 일단 도입되고 나면, 자연히 일면적이고 특수한 기능에만 적합한 노동력을 발달시키게 된다.”[같은 책, 479, 482.] 따라서 매뉴팩처 분업은 자본가가 장악하고 있는 전체 메커니즘의 단지 구성원에 불과한 사람들에 대한 자본가의 무조건적인 권위를 전제로 한다.”[같은 책, 490.]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노동과정에 대한 자본의 지휘 또는 감시형태상으로 보면 전제주의적(despotisch)이다.”[같은 책, 461.]


여기에서 더 나아가 대규모 생산기계의 도입과 더불어 본격적인 자본주의적 대공업이 시작되면 각각의 노동자들은 기계 장치와 연결되며, 이러한 기계 장치의 생산 활동에 자신의 작업 활동을 일치시켜야 한다. 더욱이 이제 기계의 도입으로 인해 강한 근력이 요구되지 않기 때문에 성인 남성 노동자들과 다른 미성년 노동자, 여성 노동자들이 대량으로 노동 과정 속에 들어오게 된다. 마르크스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매뉴팩처나 수공업에서는 노동자가 도구를 자신의 수단으로 사용하지만 공장에서는 노동자가 기계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 매뉴팩처에서 노동자들은 하나의 살아 있는 역학적 장치의 손발이 된다. 공장에서는 하나의 죽은 역학적 장치가 노동자들에게서 독립하여 존재하고, 그들은 살아 있는 부속물로 이 역학적 장치에 결합된다.”[같은 책, 570.]


이러한 과정은 마르크스가 엥겔스의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1844)를 인용하면서 말하고 있듯이, “신경계통을 극도로 피곤하게 만들며 동시에 근육의 다양한 움직임을 억압하고 모든 자유로운 육체적정신적 활동을 몰수해버린다.”[같은 곳.] 따라서 노동자들이 이러한 작업 과정에 적응하고 이 힘겨운 조건들을 견디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강력한 규율이 필수적이다.

 

노동수단의 획일적인 운동에 노동자가 기술적으로 종속되어 있고 남녀를 불문하고 매우 다양한 연령층의 개인들로 이루어져 있는 노동 단위의 독특한 구성은 군대와 같은 규율을 만들어내고, 이 규율은 공장 체제를 완전한 형태로 발전시켜 앞에서도 얘기한 감독 노동을 발전시키며, 그리하여 노동자들을 육체노동자와 노동감독자로[즉 보통의 산업병사와 산업하사관으로] 완전히 분할한다. (...) 공장법전은 다만 대규모 협업이나 공동의 노동수단의 사용과 함께 필요해지는 노동과정에 대한 사회적 규제의 자본주의적 자화상에 지나지 않는다. 노예 사역자의 채찍 대신 감독자의 징벌 장부가 등장한다. 물론 모든 징벌은 벌금과 임금삭감으로 귀착된다.[같은 책, 572~73.]

 

이점을 염두에 두면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규율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정의를 제시하는 이유가 더 분명히 드러난다. “신체의 활동에 대한 면밀한 통제를 가능케 하고 체력의 지속적인 복종을 확보하며 체력에 순종-효용의 관계를 강제하는 이러한 방법을 규율’(discipline)이라고 부를 수 있다.[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216.] 조금 뒤에서 더 정확한 규정을 발견할 수 있다. “규율의 역사적 시기는 신체의 능력 확장이나 신체에 대한 구속의 강화를 지향할 뿐만 아니라 하나의 메커니즘 속에서 신체가 유용하면 할수록 더욱 신체를 복종적인 것으로 만드는, 또는 그 반대로 복종하면 할수록 더욱 유용하게 만드는 관계의 성립을 지향하는, 신체에 대한 새로운 기술이 생겨나는 시기다.”[같은 책, 217.] 또한 다음과 같은 규정도 마찬가지다. “말하자면 규율은, 신체의 힘을 가장 값싼 비용의 정치적인 힘으로 환원시키고, 또한 유용한 힘으로서 극대화시키는 단일화된 기술 과정이다.”[같은 책, 339.] 따라서 푸코의 규율권력을 단순히 강제나 통제로 이해하는 통속적인 생각과 달리, 규율의 목적은 단순한 통제나 강제가 아니라 신체를 더욱 유용하게 만드는 것이며, 이러한 목적을 위해 신체를 잘 통제하고 복종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다.

 

3) 마르크스와 알튀세르를 넘어서: 생산력 개념과 규율의 기술들

 

푸코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마르크스만이 아니라 알튀세르 자신도 제대로 제기하지 못한 중요한 논점을 제기한다. 그것은 바로 생산력(force productive) 또는 노동력(force de travail)이라는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개념과 관련된 것이다.[이점에 관한 좋은 논의는 Ferhat Taylan, “Une histoire "plus profonde" du capitalisme”, in Chrisitian Laval et al. eds., Marx et Foucault: Lectures, usages et confrontations, op. cit. 참조.] 역사유물론의 토대를 구성하는 것은 생산양식이며, 생산양식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자본주의적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앞에서 본 것처럼 알튀세르는 생산수단과 노동력이 결합된 생산력에서 노동력의 재생산 조건에 관해 질문하면서 이데올로기에 대한 자신의 논의를 시작한 바 있다. 그리고 임금이라는 물리적 재생산의 조건 이외에 직업적 자질이나 숙련도, 더 나아가 지식과 도덕의식의 형성을 위해 학교라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가 필수적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반면 푸코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재생산이나 생산력 또는 노동력의 재생산을 묻기 이전에 마르크스주의적인 노동개념의 한계를 지적한다. 푸코는 1973년 브라질 강연인 진리와 법적 형식에서 자본주의적 생산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는 우리가 순수하고 단순하게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을 인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분석은 노동이 인간의 구체적 본질이며, 이러한 노동을 이윤이나 초과이윤 또는 잉여가치로 전환하는 것은 자본주의 체계라고 가정합니다. 사실은 자본주의 체계는 훨씬 더 깊숙이 우리의 실존에 침투해 있습니다. (...) 초과이윤(sur-profit)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기저 권력(sous-pouvoir)이 존재해야 합니다. 인간들을 생산 장치에 고정시키고 그들을 생산의 행위자, 노동자들로 만드는, 미시적이고 모세혈관 같은 정치권력의 그물망 조직이 인간 실존 그 자체의 수준에서 확립되어야 합니다.[Michel Foucault, “La vérité et les formes juridiques”, in Dits et écrits, vol. I, p. 1490.]

 

흥미로운 점은 푸코가 초과이윤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으로서의 기저 권력, 미시적인 규율권력의 사례로 가두기”(séquenstration) 장치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푸코가 같은 해 강의인 󰡔처벌사회󰡕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이 개념은 푸코에 따를 경우 봉건사회와 근대사회의 차이를 낳는 특징 중 하나다. 곧 봉건사회가 주로 일정한 장소에 소속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여 권력을 행사하고 따라서 장소에 대한 통제가 봉건사회에서 권력이 행사되기 위한 조건이었다면, 근대사회는 장소보다는 시간을 통제하는 것이 핵심적인 중요성을 지니게 된다. 이는 자본주의의 형성 및 발전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마르크스가 󰡔자본󰡕 1권의 이른바 본원적 축적에 관하여에서 말한 바 있듯이,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생산수단들로부터 분리된 자유로운 노동력(곧 과거에 농민이었다가 인클로저 운동으로 인해 농토를 잃고 도시로 흘러들어와 빈민 노동자들이 된 사람들)의 형성이 필수적이었다. 상업 자본이 이들을 임금 노동자들로 고용함으로써 자본주의적인 생산이 시작될 수 있는데, 이들을 고용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자본가가 이들 노동자들로부터 이들의 노동력을 일정한 시간 동안 활용할 수 있도록 구매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푸코는 단순히 자본가가 노동력을 구매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자본주의적 생산이 이루어진다고 보지 않는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노동을 분할하면서 결합하여 자본주의적인 생산을 조직하는 규율 권력의 작용이 필수적인 조건으로 요구된다. 더 나아가 가두기장치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의 시간 자체를 규율할 필요성이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사람들의 시간이 생산 장치에 공급되어야 하고, 생산 장치는 삶의 시간, 인간들의 실존의 시간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그리고 이러한 형식 아래 통제가 행사됩니다. 산업사회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수적이었습니다. 첫째, 개인들의 시간이 시장에 나와 그것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공급되고 임금과 교환되어야 합니다. 둘째, 개인들의 시간은 노동 시간으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일련의 제도들에서 최대한의 시간의 추출이라는 문제 및 이를 위한 기술을 발견하게 됩니다. (...)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아침까지 노동자들의 삶의 소진된 시간은 한 제도에 의해 보상 가격을 통해 단번에 구입됩니다.[Michel Foucault, “La vérité et les formes juridiques”, in Dits et écrits, vol. I, p. 1484. 이런 측면에서 보면, 푸코가 E. P. 톰슨을 얼마나 읽었으며 또한 그의 분석을 얼마나 변형하거나 확장하고 있는가라는 흥미로운 질문이 떠오른다.]

 

이러한 시간의 통제는 자본주의적 생산을 위한 고용 관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교육 시설에서, 교정 시설에서, 감옥에서와 같이 사회 도처에서 나타나고 확산된다. 따라서 두 가지 결론이 나오게 된다. 첫째, 마르크스나 알튀세르가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는 생산력 내지 노동력이라는 범주는 당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가가 노동자로부터 구매해서 활용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져야 하는 어떤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생산력과 노동력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공장 안에서나 공장 밖에서 다양한 형태의 규율 기술들이 실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규율의 기술이 없이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자체가 성립할 수 없으며, 자본주의적인 생산 자체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규율 권력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가능하기 위한 역사적논리적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에티엔 발리바르 역시 알튀세르의 문제설정에 입각하여 생산력과 생산관계, 착취와 잉여가치의 역사적물질적 조건에 대해 엄밀한 연구를 수행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보면 푸코의 문제제기는 독창적이기는 하지만 다소 일방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에티엔 발리바르, 잉여가치와 사회계급, 󰡔역사유물론 연구󰡕, 이해민 옮김, 푸른산, 1989 참조. 2017년 프랑스철학회 가을학회 발표 당시 이 점을 일깨워준 최원 선생께 감사드린다.]


둘째, 규율 권력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형성과 재생산의 조건이라는 기능적 목적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18세기 이후 자본주의가 형성되고 발전되기 위해서는 16세기부터 수도원과 교정 시설, 군대, 학교 등에서 개별적으로 전개되고 사회적으로 확산되어 있던 다양한 형태의 규율 기술이 일반화되어 자본주의적 생산 자체에 적용되어야 했다. 하지만 규율 권력 그 자체는 정의상 자본주의 생산 장치나 그것의 재생산을 계급적으로 관리하는 자본주의 국가 장치에 종속되는 것도 아니고 그것과 동일한 수준에 놓여 있는 것도 아니다. 일반화된 규율의 기술은 국가 기구나 제도의 아래쪽에서 작동하면서 개인들 자체를 제작하는 일을 수행한다. “규율은 개인을 제조한다.’(fabrique) 곧 그것은 개인을 권력 행사의 객체와 도구로 간주하는 권력의 특정한 기술이다.”[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269. 번역은 약간 수정했으며, 강조는 인용자가 덧붙인 것이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규율 권력이 수행하는 예속적 주체화의 쟁점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철폐나 국가권력의 장악 및 국가장치의 해체만으로는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푸코에게서 규율 권력을 비롯한 권력의 문제란 광기, 의학, 감옥 등등의 문제 속에서 작동하는 권력관계들과 권력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문제이며, 이는 어떠한 이론 체계도역사철학도, 일반적인 사회이론 혹은 정치이론에서도다루지 못했던 문제였다. 달리 말하면, 마르크스주의를 비롯하여 보편적인 해방의 정치를 내세우는 정치 및 이론이 외면하고 주변화했던 문제였으며, 푸코가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크게 실망했던 이유 중 하나는 이런 문제들의 중요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IV. 비판적 고찰

 

1. 국가장치의 문제

 

이제 결론 삼아 푸코의 분석 및 문제제기에 대해 몇 가지 비판적인 논평을 제시해보고 싶다. 알튀세르의 국가장치 개념에 대해 푸코가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는 점은, 왜 알튀세르가 국가장치라는 단일한 개념을 사용하지 않고 AREAIE로 구분했는가 하는 점이다. 푸코는 이런 질문을 제기하지 않고 국가장치라는 단일한 용어를 사용하면서 이 개념이 권력의 복수성을 제대로 사유하게 해주지 못할뿐더러 제도나 국가장치의 수준보다 훨씬 더 심층적인 곳에서 작동하는 미시물리학적인 권력의 작동방식을 이해하고 그것을 전화하거나 제거하는 데도 쓸모가 없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알튀세르가 AREAIE를 구별한 핵심 이유는 푸코가 국가장치라는 개념을 비판하면서 제기하는 이유들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알튀세르는 자유주의적-부르주아적 관점에서 볼 때 공적 영역에 속하는 제도들로 구성된 ARE의 작동만으로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왜 자신을 재생산할 수 있는지, 부르주아 계급의 지배가 왜 굳건하게 관철되는지 설명하는 데 불충분하다고 보았다. 그것을 넘어서 정치권력의 작용이나 계급적인 지배와 무관하다고 여겨지는 이른바 사적 영역에서도 국가장치로 여겨지지 않는(또한 법적제도적으로 속하지도 않는) 국가장치들을 통해 예속적 주체화의 권력이 관철되어야 계급적 지배는 (상대적으로) 공고히 유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설명하는 것이 바로 AIE 개념의 역할이다. 따라서 AREAIE 구별의 첫 번째 논점은 푸코와 마찬가지로 권력의 본질은 법적인 금지나 허가 또는 부정이나 인정에 있지 않으며, 권력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법적 구별을 가로질러 작동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 논점은, 따라서 권력은 사람들이 흔히 권력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국가 제도 내지 공적 영역을 넘어서 그것보다 심층적인 영역에서 미시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푸코는 이를 규율권력이라고 불렀지만, 알튀세르는 그것을 AIE를 통해 작동하는 이데올로기라고 불렀다. 따라서 알튀세르는 권력의 문제 및 지배의 문제가 결코 국가의 차원, ARE의 차원에서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는 실천적으로도 매우 중대한 문제인데, 왜냐하면 알튀세르가 보기에 AIE 및 그것을 기반으로 하는 이데올로기적 지배의 문제는 사회주의 혁명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논문 속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재생산에 대하여󰡕에 포함된 한 대목에서 레닌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레닌]의 끈질긴 본질적 고심은 무엇보다도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에 관련되었다. ...... 억압 장치를 파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들 또한 파괴하고 대체해야 한다. 새로운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들을 긴급히 정착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레닌이 옳았듯이, 혁명의 미래 자체가 문제된다. 왜냐하면 옛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은 교체하는 데 지극히 오래 걸리고 힘들기 때문이다. ...... 각각의 새로운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 속에 새로운 혁명적 정책을 적용하기 위해, 요컨대 모든 소비에트 시민들의 활동과 의식 속에 새로운 국가 이데올로기인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기 위해 능력 있고 혁명적으로 충성스러운 조직원들을 양성해야 한다.[루이 알튀세르, 󰡔재생산에 대하여󰡕, 김웅권 옮김, 동문선, 2007, 152-53.]

 

알튀세르는 중국의 문화혁명에서 더 거대한 규모로 제기되는 정치적이론적 쟁점도 바로 레닌의 이 문제의식과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중국공산당은 중국에서 사회주의를 강화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그 장래를 공고히 하고 모든 퇴보의 위험에 맞서 사회주의를 지속 가능하게 보존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혁명과 경제적 혁명에 대해 제3의 혁명, 대중의 이데올로기적 혁명을 추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선언한다. 이러한 대중의 이데올로기적 혁명을 중국 공산당은 프롤레타리아 문화혁명이라고 부른다.”[Louis Althusser, “Sur la révolution culturelle”, op. cit., p. 6. 강조는 원문.] 이러한 문제설정은 푸코가 규율기술이 수행하는 예속적 주체화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조건을 이루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국가권력을 장악한다고 해서 또는 사회주의 생산관계 및 소유관계를 확립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보았던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알튀세르는 푸코와 달리 국가 권력의 민주주의적 통제, 생산관계 및 소유관계의 사회주의적 재편이 이데올로기적 예속화의 문제(푸코에게는 규율권력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민주주의적으로 또한 변혁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보는 셈이다.[다른 식으로 말해 거시 권력과 미시 권력 사이에 기능적 환원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면, 미시적 규율권력의 작용이 거시적 권력관계의 변화나 생산관계의 변화로 인해 소멸되지 않듯이 규율권력에서의 변화나 개혁이 후자의 변화나 개조를 산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알튀세르의 고심은 이 문제를 새로운 국가 이데올로기인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의 문제로 제기할 수밖에 없다는 점, 곧 본질적으로 예속적 주체화를 수행하는 이데올로기의 작용을 이번에는 모순적이게도 해방적 주체화를 위해 작동시켜야 한다는 점이었으며, 이러한 차이를 어떻게 개념화하고 실천할 수 있는가라는 점이었다.[더 자세한 논의는, 진태원, 과잉결정, 이데올로기, 마주침, 앞의 글 참조.]

 

2. 예속적 주체화의 문제

 

따라서 첫 번째 쟁점은 예속적 주체화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푸코는 한 대담에서 알튀세르와 라캉, 그리고 푸코 자신은 구조주의자가 아니며, 만약 자신들을 구조주의자로 분류할 수 있다면, 그것의 핵심 논점은 데카르트 이래로 (또는 더 정확히 말하면 칸트 이래로) 근대 철학의 핵심 원리로 작용해온 주체 개념, 곧 주권적 주체 내지 구성적 주체 개념을 문제 삼고 비판했다는 점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알튀세르와 라캉, 그리고 나 자신은 구조주의자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지난 15년간 구조주의자라고 불려온 우리들 사이에는 공통적인 것이 하나 있기는 합니다. 이 핵심적인 수렴 지점이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데카르트로부터 우리 시대까지 프랑스 철학에서 결코 단념하지 않았던 위대하고 근본적인 기본 원리인, 주체의 문제에 이의를 제기했다는 점입니다. (...) 이러한 분석들 모두가 1960년대에는 어느 정도 구조주의라는 용어로 요약되었습니다. 그러나 엄격한 의미에서 구조주의 혹은 구조주의적 방법은, 훨씬 더 근본적인 것, 즉 주체의 문제를 재평가하는 것에 대한 확인이자 그러한 문제제기의 기반으로서 작동했을 뿐입니다.[미셸 푸코, 󰡔푸코의 맑스󰡕, 60~61.]

 

이는 데리다도 한 대담에서 지적했던 점이고,[이 세 담론(라캉, 알튀세르, 푸코)과 그들이 특권화하는 사상가들(프로이트, 마르크스, 니체)에서 주체는 재해석되고 복원되고 재기입될 수 있으며, 분명 일소되지는 않습니다.” Jacques Derrida, “Manger bien ou le calclu du sujet”, in Après le sujet qui vient: Cahiers confrontation, no. 20, 1989, p. 45.] 앞에서 본 것처럼 발리바르 역시 철학적 구조주의라는 이름으로 알튀세르와 라캉, 푸코를 묶으면서 동의했던 점이다.[이런 점에서 보면, 미국 학계의 현대 프랑스 철학 수용의 맥락에서 탄생한 구조주의-후기구조주의분류법이 우리나라에서 자명한 진리처럼 통용되는 것은 문제적이다. 이러한 분류법의 발생과 용법, 그 난점에 대한 검토는 독자적으로 다뤄볼 만한 주제다. 포스트 담론의 국내 수용에 관해서는 진태원, 포스트담론의 유령들: ‘애도의 애도를 위하여,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편, 󰡔민족문화연구󰡕 57, 2012 참조.] 그런데 알튀세르가 이를 쇄신된 이데올로기 개념, 특히 호명 개념을 통해 해명하려고 했다면, 푸코는 이러한 예속적 주체화의 문제를 규율권력의 문제로 사고하고자 했다. 푸코가 여러 차례 강조하다시피 규율권력은 정신이나 관념, 표상에 작용하거나 그것을 동원하는 권력이 아니라 오로지 신체들에 대해 작용하는 권력이다. 더욱이 푸코가 규율권력의 복수성과 국지성, 미시성을 강조하면서 염두에 둔 점은 규율권력에 따라 이루어지는 예속적 주체화의 작용이 국가(장치)를 통해서 작동하지도 않을뿐더러 국가(장치)나 계급 권력 또는 계급 지배 같은 마르크스주의적인 관점이 해명하려고 하는 예속적 주체화보다 훨씬 다양하면서 훨씬 더 심층적인 곳에 뿌리를 둔 예속화의 문제를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아마도 푸코가 보기에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호명 같은 개념을 통해 해명하려고 했던 예속화의 문제는 단면적일뿐더러 어떤 의미에서는 도착적인 것이었을 수 있다. 이것이 단면적인 이유는, 자본주의적인 계급 지배를 정당화하고 그것을 재생산하는 예속적 주체화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것이 도착적일 수도 있는 이유는,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적 호명 개념을 통해 해명하려고 했던 예속적 주체화는 사실은, 계급 지배에 대한 종속이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지극히 정상적인 주체들을 만들어내는 작용으로 비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호명에 의한 예속적 주체화를 예속화의 핵심으로 이해한다면, 이것은 오히려 그것보다 심층적인 차원에서 또는 그 바깥에서 비가시적으로 진행되는 더 심각하고 근본적인 예속화를 배제하거나 몰인식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반면 푸코는 규율 권력 개념을 통해 성적 예속화, 광인들의 정신의학적 예속화, 학생들의 규범적 예속화와 같이, 계급 지배로 환원되지 않는 다양한 형태의 예속화 작용을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이러한 예속화는 경제적으로 기능적인 예속화를 넘어서 그러한 예속화에서 배제된 더 근원적인 예속화 작용들을 포함하고 있다.[이점에서 보면 푸코의 대표적인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은 󰡔비정상인들󰡕이다.] 사실 푸코는 규율권력의 특징 중 하나를 여백”(marges)이나 잔여”(résidus)를 만들어내는 데서 찾는다. 곧 규율화된 군대의 출현 이후 비로소 탈영병이라는 존재가 생겼으며, 학교규율이 정신박약을 출현시켰고, “비행자”(非行者, délinqants)를 만들어내는 것은 경찰의 규율이다. 그리고 정신병자”(malade mental)잔여 중의 잔여, 모든 규율의 잔여이며, 한 사회에서 발견될 수 있는 학교, 군대, 경찰 등의 모든 규율에 동화 불가능한 자[Michel Foucault, Pouvoir psychiatrique, p. 56; 󰡔정신의학의 권력󰡕, 92. 번역은 약간 수정.]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알튀세르는 푸코의 규율권력이 흥미롭고 독창적이기도 하지만, 인간에게 고유한 상상적인 차원을 배제하는 경향이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이는 푸코의 인간은 기본적으로 신체적인 인간이라는 것을 뜻한다. 푸코적인 개인들은 정신이나 의식만이 아니라 욕망이나 상상, 사랑과 미움 같은 것을 지니고 있지 않은 존재자들이다. 󰡔감시와 처벌󰡕의 유명한 한 문장에서 말하듯 정신은 신체의 감옥인 것이다. 따라서 권력은 신체가 더 효율적이고 유능해지도록 규범에 따라 조련하고 길들이는 기술이지, 설득하거나 위협하고 가상을 부여하거나 욕망을 자극하는 작용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스피노자주의자이자 프로이트주의자로서 알튀세르는 인간의 상상적인 차원을 배제하고서는 인간의 실존 및 행동 방식만이 아니라 정치적 지배의 작동 방식을 설명할 수 없다고 느꼈으며, 더 나아가 정치적 행위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스피노자적인 의미에서 상상계로서의 이데올로기는 개인들만이 아니라 계급을 비롯한 집단이 집단으로서 형성되고 행위하기 위한 근본 조건인 것이다.[진태원, 스피노자와 알튀세르: 상상계와 이데올로기, 앞의 책 참조.]


더 나아가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알튀세르에게 푸코의 권력론의 맹점은 (계급) 권력의 비대칭성이라는 문제를 심각하게 사고하지 않는 것으로 비쳤을 것이다. 푸코는 권력을 소유 대상으로 간주하는 관점에 비판하면서 권력은 결코 일정한 수의 사람들에 의해 일정한 관점에서 완전히 통제되지 않는다.”, “권력의 중심에는 전쟁 같은 관계가 존재하며, 따라서 권력은 전적으로 한쪽 편에 놓여 있지 않다.”고 말한다. 나중에 푸코가 경합”(agon)이라고 부른 관계, 곧 대등한 위치에 있는 행위자들 사이의 전략적 갈등관계가 푸코가 권력 관계를 이해하는 기본적인 관점이었다. 하지만 이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가 존재론적으로 상이한 계급이라는 것을 망각하는 것이다. 이는 두 계급의 역사적 형성 과정 자체가 상이하며, 권력 관계에서도 불평등할뿐더러 각자가 수행하는 계급투쟁의 목표와 방식도 상이하기 때문이다. 곧 프롤레타리아 계급은 새로운 지배계급이 되는 것을 추구하지 않을뿐더러, 계급 관계 자체의 철폐를 존재의 근거로 삼는 계급인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비대칭성을 상정하지 않고서는, 나중에 푸코 자신이 구별했다시피, 권력과 지배를 구별할 방법도 없으며, 피지배자들, 예속적인 사람들 사이의 연대나 접합도 사고하기 어려울 것이다.

 

3. 잔여

 

그런데 아마 이러한 비판적 토론에는 몇 가지 잔여들이 남게 될 것이다. 알튀세르가 자신의 이데올로기론에서 명시적으로 비정상적인 존재자들에 관해, 그들의 예속 및 배제양식에 대해 분석한 적이 없다고 해도, 알튀세르는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에서 바로 광인의 이름으로 이를테면 호명될 권리에 대해 주장하지 않았는가? 그것도 푸코의 이름으로.

 

범죄를 저질렀다고 기소되어 면소 판결의 혜택을 입지 않은 자는, 물론 중죄재판소에 공개 출두해야 하는 힘든 시련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 [그는] 무엇보다도 자기 인생에 대해, 자기가 저지른 살인과 자신의 앞날에 대해, 자기 이름으로 그리고 직접 자기 자신이 공개적으로 자신을 스스로 설명하고 해명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권리와 특권을 갖게 되는 것이다. ......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면소 판결의 혜택을 입은 살인자의 경우는 그렇지가 않다. ......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그리고 지금까지 각자가 나를 대신해 말할 수 있었고 또 사법적 소송 절차가 내게 모든 공개적인 해명을 금지했기 때문에, 여기서 내가 공개적으로 나 자신을 해명하기로 작정한 것이다.[루이 알튀세르,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권은미 옮김, 이매진, 2008, 52. 강조는 알튀세르.]

 

나는 푸코가 저자라는 아주 근대적인 개념에 대해 비판을 하고 나서, 마치 내가 어두운 감방의 자리로 돌아간 것처럼 푸코 역시 감옥에 갇힌 자들을 위한 투쟁 활동 속으로 사라져버린 것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푸코의 깊은 겸허함을 좋아했다. ...... 지극히 개인적인 이 책을 독자들 손에 맡기는 지금 역시, 역설적인 방법을 통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익명성 속으로 결정적으로 들어가기 위한 것이다. 즉 이제는 면소 판결의 묘석 아래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해 알 수 있는 모든 사실들을 출판함으로써 말이다.[루이 알튀세르, 같은 책, 278~79. 강조는 알튀세르. 이 문제에 관한 더 상세한 논의는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한국어판 서문으로 작성된 필자의 이것은 하나의 자서전인가를 참조하라.]

 

다른 한편으로 푸코의 권력론에 상상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푸코는 상상적인 것에 준거하지 않고서도 가능성 내지 잠재성의 차원을 권력 개념에 도입한 것은 아닌가? 푸코는 주체와 권력(1982)에서 권력을 행위에 대한 행위”(action sur action), “가능한 행위들에 대한 행위들의 집합”[Michel Foucault, “Pouvoir et le sujet”, in Dits et écrits, vol. II, “Quarto”, pp. 1055~56. 강조는 푸코.]으로 재정의함으로써, 권력관계를 어떤 피동적인 사물을 대상으로 하는 도구적 기술관계와 구별되는 일정한 능동성 또는 행위 능력을 지니고 있는 행위자들 사이의 관계로 규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부터 권력과 지배를 개념적으로 구별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하게 되는데, 이에 따르면 권력은 자유들 사이의 전략적 게임”[Michel Foucault, “L’éthique du souci de soi comme pratique de la liberté”, in Dits et écrits, vol. II, “Quarto”, p. 1547.]을 의미하게 되며, 지배는 관계의 두 항 사이에 존재하는 비가역적이고 불평등한 상태를 가리키게 된다. 아울러 푸코가 완전히 다른 목표와 쟁점을 지닌 봉기와 혁명의 절차에서도 품행상의 봉기, 품행상의 반란이라는 차원이 늘 존재했다는 것”[미셸 푸코, 󰡔안전, 영토, 인구󰡕, 오트르망 옮김, 난장, 2011, 314.], 곧 대항품행(contre-conduite)모든 봉기와 혁명의 조건이라는 것을 제시한 것도 바로 이러한 토대 위에서였다.[푸코 권력론의 이러한 쟁점들에 대해서는 진태원, 규율권력, 통치, 주체화: 미셸 푸코와 에로스의 문제, 󰡔가톨릭철학󰡕 29, 2017 참조.]

따라서 이러한 대차대조, 비판적 상호 토론은 여전히 계속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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