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게 살다 간 우리 외삼촌 이야기

........................... 빈 사 이 다 병
.............................................................................현 종 헌

부평 화장터에서 외삼촌은 병 하나 채울 만큼의 재가 되었다. 그야말로 하나 과장없이 빈 사이다병 하나만큼의 재가.......
메마른 바람만이 주위를 감돌 뿐 울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식구들은 25일 간의 피말리는 가해자와의 줄다리기에 지쳐 이젠 울 기력조차 없었다. 어머니만이 밑의 피붙이가 이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는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몸 안에 남아 있던 마지막 신음까지 꺼내며 몸부림칠 따름이었다.
사라지는 외삼촌을 추모하는 식구래야 아버지, 어머니, 큰외삼촌, 그리고 나, 넷뿐이었다. 갓난애를 보내면서조차 많은 친지들이 모여 사방팔방 피눈물을 뿌려대는 제주도 사람들의 정서를 떠올리기엔 너무나 썰렁한 분위기였다.
좀 전에 휴게실에서 보았던 중년의 외국인 남자를 생각했다. 이국땅에서 외동딸을 잃고 화장해서 보내는 슬픔을 맥주 한 잔으로 가누고 있었다. 혼자. 쓸쓸히.
외삼촌은 이승을 떠나는 날까지 동서양의 문화 어느 한켠에도 편입되지 못한 채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다가 사라져갔다. 한마디로 그는 떠돌이였고 주위에선 그림자조차 밟기 두려운 상대였다.
누군가 말했다. "거지가 달래 거지야, 가진 게 없으면 거지지." 나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를 떠돌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시적(詩的)이다. 그가 가까이 오는 걸 주위 사람들은 꺼려 했기에 오히려 전자의 표현이 옳을 성 싶었다.
제주도에서 상경한 이래 20 수년 간, 내가 어릴 적부터 보아온 그는 늘 후미진 계곡에서 방랑하는 지친 모습뿐이었다. 급변하는 현대사회의 생존경쟁 터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외계인의 모습이었다.
교통사고 중환자실에 누운 채 산소호흡기로 잔명(殘命)이 이울어져가는 그의 모습을 보며 봄이면 꽃이 피고 겨울이면 성에가 돋는 자연의 순리를 생각했다. 그래, 외삼촌은 죽어야 했다. 절대자가 내린 어쩔수 없는 숙명일 테지. 그때 앞을 가린 눈물 위로 뭉게구름처럼 피어오르는 옛날의 추억을 자제할 수 없었다.
어렸을 적의 외삼촌은 나에게 푸근한 보금자리 같았다. 3살밖에 터울이 안지는 조카의 친구이자 앞뒷일 꼼꼼이 챙겨주는 자상한 후견인이었다. 부모님이 불화로 잠깐 떨어져 살던 시절 나는 늘 외톨이었다. 외삼촌은 그 심정을 알아 마을에서 마주칠 때마다 눈알사탕을 책보 속에 넣어 주었고, 외가집 가면 낚시하러 바닷가로 데려가 뗏목을 태워주곤 했다.
외삼촌은 어린 내가 보기에는 참으로 씩씩했다. 마을 앞바다에서 동료들과 파도타기 곡예라든가 잠수하여 주낙배 아래로 통과하기 시합할 땐 꼭 앞장 서서 시범을 보였다.
사이나 넣은 콩을 적당한 곳에 뿌려 눈에 보이는 꿩은 모조리 잡아들였고, 꿩사냥 왔던 미군들 총포에서 나온 탄피를 수거해 벌이는 탄피따먹기 놀이에선 동네 아이들 것을 깡그리 쓸어모았다.
축구도 잘 하여 면 단위 체육대회할 땐 청소년부 우리마을 대표로 나갔다. 나는 갈색 츄리닝에 그려진 등번호 0번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는 위기에 처하면 골키퍼로, 득점해야겠다 싶으면 전진공격수로 일정한 포지션이 없이, 말하자면 팀을 주도하는 전천후 선수였다.
체육대회 날, 나는 농약 잘못 먹은 조랑말처럼 날뛰는 외삼촌의 위용을 보기 위하여 혼자 할머니 몰래 성산면 사무소 옆에 있는 동남초등학교 운동장을 찾았다. 먼저 나를 알아본 그는 선수용 사이다 한 병을 선뜻 챙겨 주었다.
순간 나는 감격해버렸다. 육지 손님을 맞을 때나 구경할 수 있는 상류사회의 최고급 음료수였기 때문이다. 빈 병을 손에 들고 있어도 부잣집 아이처럼 보았던 까닭에 감히 맛을 볼 수는 없고, 비록 병마개를 땄다 해도 보배처럼 감싸 안고 다니다가 햇볕을 받아 맛이 다 간 후에도 한모금씩 입 안에 털어넣고 보글거리던 기억을 우리 시대 사람이면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외삼촌 생각을 하면 먼저 한국경제 발전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일곱 개 별이 그려진 사이다병이 그 위에 클로즈업되어 나타나곤 하는 환상을 본다.
그날, 외삼촌은 종횡무진 정말 용맹스러웠다. 양겨드랑이에 날개를 단 듯 상대방 태클을 용케 피하며 날쌔게 적진을 파고들어가 골 세례를 퍼부었다. 시골 체육대회 특유의 종종 벌어지는 마을 자존심을 건 응원단 간의 싸움과 선수들 간의 잦은 시비를 그는 골 득점으로 해결해버렸다.
벗들 간에 잘 어울리고 용기가 넘친 그였지만, 집안에선 9남매의 막내로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없었던 처지여서 제주도에 눌러 앉아 빈둥거리기엔 답답했던 모양이었다. 방위를 제대하자마자 그 당시 유행처럼 번졌던 상경 대열에 끼었다. 그리고 서울 오류동 외곽지에서 고향사람이 경영하는 유리공장에 취직했다.
그길로 계속 초자(硝子) 계통의 회사에서 20여 년간을 떠돌아다녔다. 일가 친척이래야 생활형편 빠듯한 우리밖에 없었던 그에게 타향살이는 힘든 고행길이었으리라.
20대 후반에 잠깐 동거했던 여자 외엔 결혼도 못한 처지였다. 그 후 8년 여를 어디선가 숨어지내다가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최근엔 부천시의 어느 가내공업 공장에서 기계를 잘못 다루어 한 손 잘리면서 다시 우리 곁으로 왔다.
서른 여덟 살, 갈 데까지 갔다. 보다못한 아버지가 막노동판의 경비로 취직시켜 주었다. 동네 여관의 구석방 하나를 월세로 얻어 겨우겨우 입에 풀칠해가던 터였다.
그가 죽고 난 다음 짐을 치우기 위해 그 방을 처음 방문했을 때 나는 경악했다. 1920, 30년대 궁핍을 주제로 한 사회주의 소설 속의 배경을 보는 듯한 느낌 때문이었다.
한켠에는 내게서 빌려간 일본 번역소설 "대망(大望)" 시리즈가 어지러이 널려져 있었다. 일본 경제계를 주름잡기까지의 빈털털이 청년의 성공담을 담은 그 소설을 읽으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가 궁금하기도 했다.
중환자실에서 호흡이 가늘어지고 산소호흡기를 뗄 때까지 제주도에서 다녀간 일가친척 몇밖엔 내방객이라곤 없었다.
불꽃이 꺼져가는 시신을 붙들고 그들은 오열했다.
"이 병신같은 자식아, 제대로 장가 한번 못 가보고......"
"네 친구들은 집 한칸씩 장만하고 다들 잘 사는데......"
"너보다 못한 놈들도 살라고 용을 쓰는데......"
살아있는 사람들의 우월감은 대단했다. 거의 다 된 시신(腦死)을 증오하는 건 그들의 특권이었다. 그러나 외삼촌은 모든 게 귀찮다는 듯 이리저리 흔들어대는 손놀림에 가만히 몸을 맡겼다. 빈 사이다병이 바람에 휩쓸려 다니는 것 같았다.
숨이 끊어진 다음에도 그의 시신은 자유롭지가 못했다. 가해자와 몸값 흥정하느라 8월 한여름인데도 병원 영안실의 냉동실에서 25일 간을 갇혀 있어야 했다.
저쪽에선 떳떳하지 못하게 살다 간 서른 여덟 살 날품팔이 생애의 값을 깎아내리려 기썼고, 이쪽에선 시골출신답지 않게 인간생명의 존엄성과 호프만식 계산법을 근거로 보통사람들의 가격으로 맞섰다. 결국은 판매 유효기간이 지나 맛이 간 사이다처럼 헐값에 매듭지어졌다. 그러나 부평 화장터로 향하는 그의 시신은 사이다 병에 새겨진 일곱 개의 별보다 더 위품있어 보였다. 돈없으면 죽는 것까지도 자유롭지 못한 세상에서 시신 치우는 일이나마 주위 형제들에게 빚지지 않았다는 당당함마저 엿보였다.
나는 웬만해서 눈물 흘리지 않는 강심장을 지녔지만 부평 화장터에서 재로 화한 외삼촌의 뼈를 빻을 때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목줄기가 휘어지도록 울었다.
* * * *
뼛가루 담은 상자를 들고 제주도로 날아갔다. 부평 화장터에서 그냥 뿌려버리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보수적인 그곳 어른들의 뜻에 따라 공동묘지 터에 상자를 묻고는 시멘트로 그 위를 씌웠다. 다른 처녀귀신과 짝을 이루어 사후(死後) 영혼결혼식까지 준비하고 있었다. 잔디 깎아줄 이 없는 외로운 묘를 바라보며 괜히 슬퍼서 나는 또한번 울었다.
며칠 후, 옛날 외삼촌이 기세좋게 날뛰던 동남초등학교 운동장을 찾았다. 줄어드는 시골학급 탓인지 내가 어른이 되어서인지 교정은 매우 협소해 보였다. 문득 운동장 구석에 나뒹구는 사이다 병조각들이 눈에 띄었다. 옛날에 외삼촌이 준 걸 먹고 내버렸는데, 누군가가 깨뜨려 그게 아직도 치워지지 않았나 보다며 잠시 착각했다.
나에게 아름다움과 가슴 미어지는 추억을 동시에 안겨다 준 외삼촌을 추모하고 있을 때 이따금 바람이 휘파람 소리를 내며 불어왔다. 사이다를 다 먹고 난 후 병꼭대기에 입술을 포개 바람을 불면 귀신 홀리듯이 흘러나오던 휘파람 소리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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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살, 갈팡질팡하던 그때, 난 참으로 암담했었다.
운명처럼 다가선 여인은 한줄기 빛이었다.
유치한 시이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기억되는 이유는 뭘까.


........ 비 와 女 人

......................... 현 종 헌

연 이틀을 잠 못 이루었다.
그대 생각에 내 몸의 힘이 빠지고
밖에선 비가 내린다.
단풍잎 부스러기 같은 졸음이 깔린 눈두덩이 위로
메마른 추억의 입자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때 맞추어 몰려든 바람 한 자락이
빗줄기를 비스듬히 뉘이며 창을 때린다.
비는 내려서 세상 깊은 곳을 적시고
바람의 벽에 나붙은 빛 바랜 초상화 한 점
얼룩은 지지 않는다
어·지·럽·다
사지를 뻗어 방바닥에 편히 몸을 눕힌다.
눈을 감는다.
느닷없이 과거의 의식 속으로 비가 들이칠 때
커다란 술잔 위로 빗물이 넘치고
생활에 실패한 젊은 사내는
비워낸 술잔에 눈물을 담아 마신다.
벌거벗은 시간의 주위로 맴돌며
아무 것도 사육할 수 없는 그래서
시 한 줄에 목숨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잘려져 나간 삶의 한 몫은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황무지로 내버려지며
한아름 낙엽과 함께 거름이 되었다.
의식 속에 생활을 묻고 그 거름으로 자라나면서
한 세월이 흘렀다.
서러운 스물 아홉 살,
그 안타까운 젊음의 끝자락에서
전장(戰場)으로 몰려오는 신의 바람(神風)처럼 (註)
구원의 끄나풀을 잡고 또 잡고
빗속에서 속삭이고 빗속에서 애무하다 빗속에서 헤어지던
그래서 만날 때마다 그녀의 몸 위로는 늘
기적과 같은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한잔 술에 취해 눈을 들면
아롱아롱 빛나는 별이 보인다.
길섶에서 일어나는 풀벌레들의 울음소리가
떨어져 내리는 별빛을 밀어내면서
소라껍데기 맞비비는 듯한 소리를 내면
난 잘 조제된 수면제를 타먹은 듯
잠결로 빠져 들어가고
시나브로 내 잠 속으로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몸 안에서 자란 햇빛 몇 가닥이
일어서는 바람의 빈 터에서 쓸려다니고 있을 때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꼬옥 포옹해온다.
사내는 힘없이 하아얀 그녀
이력서 속의 길 위에 쓰러져 다시 시를 쓴다.
나 · 비 · 가 · 날 · 고 · 있 · 다
사라지는 길 저 너머 어제 버린 아픔을 숨기고
눈부신 광채의 날개를 흔들며
어둠은 습기찬 바람을 몰고 온다.
이내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린다.
내 잠 속으로 하염없이 비가 내린다.
커다란 술잔 위로 빗물이 넘치고
비워낸 술잔에 다시 눈물이 넘칠 때
그 위로 낙엽이 한 장 떨어진다.
연 사흘째 잠 못 이룬다.
그대 생각에 내 온몸의 힘이 빠지고
밖에선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다.

(註) 신의 바람(神風) : 13세기, 몽골족이 일본을 침공했을 때 뜻하지 않에 불어온
.......... 기적같은 바람 때문에 일본이 승리할 수 있었다. 제2차세계대전 때의 특공대
.......... 이름인 '가미가제'는 여기서의 '신의 바람(神風)'에 해당하는 일본어 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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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품]-김기중

유품이라고 하면 나는 그냥
오래된 낡은 물건이거니 했다
아주 오래된 낡은 안경, 둥글고 검은 돋보기
손때가 묻은 흑갈색 염주
조지훈 전집의 속표지에 나오던 물건들
혹은 누가 일생동안 쓰던 만년필
세상의 오랜 연륜이 새겨져
고달프고 위대했던 생애의 흔적이 지문처럼
묻어 있던 유품들
그 외의 유품들을 나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른 새벽
책상서랍을 열다 문득 손에 잡히는
작은 공작 가위 하나
동그란 손잡이엔 이름표가 채 떨어지지도 않은
일곱 살 아이의 유품
유품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작고 쓸쓸한
유품
금방이라도 아이는 눈 비비며
내 방 문열고 들어와
내 꺼야
유치원 공작 가위를
손에 쥘 것 같은데
모두 태워버린 사진과 장남감들 속에서
우연히 빠져나와
새벽 내 책상위에 놓인 일곱 살
어린 유품
작은 공작 가위 하나

*내게도 남겨진 유품이 있던가.
'登同和錄'이라 음각된 아직도 날이 선 접었다 펼 수 있도록 된 면도칼, 당신 가신 세월 만큼이나 닳아진 낡은 가죽지갑 하나, 하이칼라 머리에 유행 지난 양복을 입거나 코트를 걸친 혹은 런닝셔츠 바람으로 역기를 들거나 팬츠 차림으로 권투를 하는 빛바랜 사진들.
살아가면서, 새삼 자라지 않을 것만 같던 당신과 비슷한 나이를 먹으면서 떠오르는 추억을 만지작거리나니
새벽 한 시를 넘어
불면의 두 시를 지나
영영 안잊히는 그리운 모습에 새삼 뭉클한 가슴을 하고 거실을 서성이는 때가 있다.

그리고 내게도 또 나에게도
옛날 사람들은 개구리알이라고도 했다던데
전치태반처럼 잘못 착상되 채 태어나지 못한 세 번 째 아이에 대한, 진작에 아무렇게나 쉽게 잊은 낙태의 추억이 있다.

차마 쉬 떨칠 수 없는 어린 유품
목이 메이는 시인에게 가만가만 손내밀어 잡아 주고 싶다
허락된다면 소박한 메밀묵 안주에 막걸리 한 잔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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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는 다른 것의 죽음을 살고
또 다른 것의 삶을 죽는다"
그렇군요. 요령부득의 비문(非文)을, 소개해 주신 詩를, 또한 먼저 가신 분들을 생각하다 보니 비로소 요해할 듯 합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그분들의 생애를 자양분으로 애오라지, 이만하게 살아내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우리 자식들도 우리 죽음을 살겠지요만.
<종일 본가> <종일 구들목 지키기>
생각하면 그 모두 , 눈물겨운 정경입니다. 왕년에 '한 주먹'하셨던 어른이 구들목 지킴이셨다니 더더욱....
...................
봄이 오고 있습니다.
까짓,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허공에다 케이오펀치나 한 번 먹여봅시다들.
- 심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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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열]님이 [2004-03-08 03:24]일 등록하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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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의 일기장]-이동순

아버님 돌아가신 후
남기신 일기장 한 권을 들고 왔다.
모년 모일 '종일 본가(終日 本家)'
'종일 본가'가
하루 온종일 집에만 계셨다는 이야기다
이 '종일 본가'가
전체의 팔 할이 훨씬 넘는 일기장을 뒤적이며
해 저문 저녁
침침한 눈으로 돋보기를 끼시고
그날도 어제처럼
'종일 본가'를 쓰셨을
아버님의 고독한 노년을 생각한다
나는 오늘
일부러 '종일 본가'를 해보며
일기장의 빈칸에 이런 글귀를 채워넣던
아버님의 그 말할 수 없이 적적하던 심정을
혼자 곰곰히 헤아려보는 것이다

*
당신의 꿈은 만년 권투선수였다.
이루지 못한 슬픈 꿈있어 권투경기 중계만 있으면
TV앞에 그리도 열광하셨던가.
전국대회 2등까지 해봤다만 내는 밀어주는 사람이 없어 끝까지 몬했따.
니는 공부만 잘하몬 내 빤스를 팔아서라도 미국꺼정 보내주꾸마, 하시던 말씀이
가슴을 친다.
중풍으로 자리보전한 지 석 삼 년
당신의 말년도 그러하셨으리
하릴없이 친구도 없이 허구한 날 '종일 구들목지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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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학교]-반칠환

솔뫼골 산지기 외딴 집 내 나이 여섯 살,누가 펼쳐놨으까.
저만치 봇도랑 너머 논두렁 밭두렁이 줄 잘 그어놓은 공책이
잖구. 물 댄 올벼논께부터 읽어볼까. 가갸 거겨 고교 구규 그
기. 개구리 선생이 시작하면 질세라, 까치는 까꺄 두꺼비는
꺼껴 장닭은 꼬꾜 구렁이는 꾸뀨 장끼는 끄끼. 나는 두 팔 내
저으며 깔깔.

셈을 해볼까? 나팔꽃은 외 잎, 움트는 호박 떡잎은 두 잎,
토끼풀은 세 잎, 달맞이꽃은 네 잎, 외양간 보다 더 높은 아카
시아 잎사귀는 무량대수. 호주머닐 뒤져보니 울쿤 풋복상이
다섯 개 있었는데 두 개 먹고 나니 시 개 남았네?

아무도 음악 시간이라 말하지 않아. 다만 귀를 열어놓았을
때야. 딱딱딱 나무 쪼는 딱따구리나, 통통통 양철 루핑 두드
리는 빗방울은 타악기야. 필릴리, 호드기와 보리피리는 관악
기고, 성아 필통뚜껑에 고무줄 뚱기는 나는 현악기 연주자지.

여우비가 왔다. 앞산에 걸린 무지개 팔레트에 마음을 흠뻑
담궜다가 눈을 옮기면, 봐 철쭉은 분홍, 채송화는 빨강, 새순
은 파랗지? 이것 저것 그리다 지쳐 눈을 감으면 세상은 온통
까망.

노랑나비 한 마리 너울너울 날아가거든 고양이처럼 뛰어
보렴, 산개구리 한 마리 잡으려거든 검줄이처럼 얄이 나서 달
려보렴. 살구를 따려거든 원숭이처럼 매달려보렴. 대낭구 검
을 휘둘러보자, 후두둑 단칼에 망초꽃이 지는구나.

망초꽃 베다 해 떨어졌다. 식구들 둘러앉아 애호박 숭숭 썰
어 넣은 칼국수 한 그릇씩 비우고 평상에 누우면, 하나 둘 초
저녁별이 돋는구나. 얘, 별자리 공부할까? 누나 무릎을 베고
어디, 어디? 오리온 자리 대신, 전갈 자리 대신 누나 손가락
만 보다가 별이 돋는 걸 다 못 보고 나 잠이 든다.

.........................................................................................
오늘은,
저요 저요 선상님 저요!
키 큰 플라타너스잎 줄레줄레 햇빛따라 손 흔드는 시오리길 타박타박
"유년의 학교"에 가고 싶다.
너무 자주 부러지던 몽당연필 침 꾹꾹 눌러 괴발개발 철수야, 어머니, 바둑아 바둑아 이리 오너라 받아쓰기 하고 싶다.
꾸불텅꾸불텅 에움길 삐뚤빼뚤 산모롱이 돌아
불끈 가로질러 맨 책보, 양은 도시락 젖가락 장단에 맞춰 어여 가자 어여 가보자.
내 기억의 운동장에는 여적지 코찔찔이 복남이, 배뽈록이 대진이, 기계총 먹은 명수 가슴에 손수건 하나씩 달고 앞으로 나란히, 차려엇, 열중 쉬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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