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병]-공광규

술병은 잔에다
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
속을 비워간다

빈병은 아무렇게나 버려져
길거리나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밤 나는
문 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빈 소주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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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풍으로 여러 해 자리보전 하던 어느 날 당신은 문득 물으셨다.
,,,,,,,,내 죽으면 고향 감천에 가야 안되겄나?
그래도 자식이 한 번이라도 더 가 볼 수 있는 경산쪽 공원묘지가 안 났겠습니까.
,,,,,,,,, 그래 네가 다 알아 해라....그리고 더는 말씀이 없으셨다.

그렇게 당신 떠나신 지 이십년이 넘었다.
일찌기 공자는 이립(而立)에 자립했다는데 , 당신가시던 그해 겨울 서른도 안되었던 난 미혹되지 않는다는 불혹(不惑,사십)도 넘어 하늘의 뜻과 삶을 안다는 지천명(知天名,오십)을 바라보는 가을을 맞이하고 있구나.

어디서 쪼그려 앉아 어께 들먹이며 흐느꼈을 당신의 고독한 말년을 생각했다.
제대하고 옳은 취직도 뫃하고 배깔고 엎드려 소설책이나 읽던 그 해 겨울, 자식을 향한 은근한 기대와 보람 얼마나 허무하고 부질없이 무너졌었던가. 그렇지만 한 번도 채근하거나 닥달하지 않으시고 자식이 다 알아서 하리라 믿어주셨던 당신....

오는 추석에는 그리운 당신보러 가야겠다.
당신의 손주 손녀 며느리 앞서거니 뒤서거니 청도가는 길 장미공원엔 가을빛이 한창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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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09-23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글은 항상 가슴 시리도록 아련하네요.
댓글을 통해 추석 잘 보내시라는 글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