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두가 남겨졌다 ]-나희덕

그는 가고
그가 남기고 간 또 하나의 육체
삶은 어차피 낡은 가죽 냄새 같은 게 나지 않던가
씹을 수도 없이 질긴 것
그러다가도 홀연 구두 한 켤레로 남는 것

그가 구두를 끌고 다닌 게 아니라
구두가 여기까지 그를 이끌어 온 게 아니었을까
구두가 멈춘 그 자리에서
그의 생도 문득 걸음을 멈추었으니

얼마나 많이 걸었던지
납작해진 뒷굽, 어느 한쪽은 유독 닳아
그의 몸 마지막엔 심하게 기우뚱거렸을 것이다
밑 모를 우물 속에 던져진 돌이
바닥에 가 닿는 소리
생이 끝나는 순간에야 듣고 소스라쳤을지도 모른다
노고는 길고 회오의 순간은 짧다

고래 뱃속에서 마악 토해져 나온 듯한
구두 한 켤레, 그 속에는
그의 발이 연주하던 생의 냄새 같은 게
그를 품고 있던 어둠 같은 게
온기처럼 한 움큼 남겨져 있다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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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두 한 컬레 온전히 남기기 위해 그 먼 길들 걸어간다.
너무 숨가쁘게 때론 무심하게 아니면 맹목적인 그런 삶의 모습들 ...
어느날 문득 조금은 어긋나고 실패하고 망가진, 더는 어떻게 다듬어 보고
가지런하게 챙겨볼 여유도 없이 그런 요량도 없이 그렇게 또 세월이 가고...

아아, 산다는 일의 그 절실하고 간절함 같은 것
어디 누구 의미없는 삶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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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심이 2004-06-28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정말 가슴에 와닿는 글입니다.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