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불랑
-나의 신부에게] ..고운기
이름만 들어도 설렌 그 만년필
그대가 보낸 선물속에 들어 있었다
잉크를 채워 첫 글을 쓰면서
갖고 싶었던 오랜 소원을
나는 몇자 적어 풀어본다
홀로 눈을 이고 있다는 흰 산
만년설로 뒤덮여
깊은 전설처럼 골짜기를 거느리고 내려오는데
내가 이룬 건 만년필이 아니다
더 오랜 소원
그대를 만난다는 사실
흰 산이 한 처마 아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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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만날 사람도 선약도 부질없이 심심한 날,
강 같은 세월 같은 걸 느끼는 나이가 되어
어쩔 수 없이 흐르는 시간의 뒷곁에서
중학교 졸업식날 받은' pilot, 만년필이거나
smith corona, 중고 타이프라이터로 치던 닭발 타자를 생각하곤 했다.
지금은 잊었지만 쓰고 지우고 다시 종이를 갈아 끼우며
뛰엄 뛰엄 투두둑 탁 탁
잊혀진 사연의 글귀를 추억해 내곤 했다.
이제는 가물가물 이름도 생각나지 않아도
실룩거리던 눈섭의 미세한 떨림이거나 습자지 물먹은듯 번져나던 홍조
까물어 칠 그리움의 현을 짚어 나가노라니
사소하던 예전의 말소리나 동작 하나 지나친 골목길이나 노래 한소절도
이제금 어찌나 눈물겨운지...
탁탁 투두둑 두 손가락만으로
보낼 곳 없는 닭발 타자를 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