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시작하다}-성미정

옛날에 월튼네 사람들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1900년대 초 미국의 어느 시골을 배경으로 대가족이 훈훈하게 살아가는 드라마였다 가족 수가 11명쯤 되었던 것 같은데 그 드라마는 언제나 마지막 장면이 좋았다 그 큰 집에 창문마다 하나씩 불이 꺼지면서 서로 good night 인사를 했다 그렇게 불이 꺼지면 나는 그 집 큰아들 소설가 지망생 존 보이처럼 내 방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우리 식구들도 월튼네 가족처럼 자기 전에 good night 인사를 했으면 좋겠다는 일기를 썼던 것 같다 여섯 식구 밖에 되지 않는데 어째서 good night 인사 하나 제대로 하지 않을까 의문이 담긴 글을 썼던 것 같다 (중략) 언젠가는 good night 인사가 없는 우리 집은 집도 아니라고 썼다 언제나 마지막에는 good night 인사를 꼭 했으면 좋겠다고 good night 인사가 없는 불면의 밤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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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분'이라는 화장품.향수 전문 쇼핑몰을 운영하며 세상살이 영 시들하여 선하품이나 하고 있던 어느 밤이었다.
소비자가 올린 게시판 글을 읽던 중 딱딱한 주문서와 함께 색한지에 프린트 된 시 한 편에 참 좋은 느낌을 받았다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진작에 시를 보내는 일은 접은지 오래되었건만, 예전에 보낸, 시 하나에 잔잔한 기쁨(?)을 느끼는 아니 그런 사실을 기억하는 소비자가 있다는 게 내겐 정작 마음의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다.

참 오래 잊고 살아온 시가 아직도 잔잔한 감동 같은 것을 줄 수 있다니...
그 밤 늦도록 진작 아무렇게나 처박아 둔 박용래의 시선집 '먼 바다'를 읽으면서
내 대학시절 마종기와 김영태와 황동규의 3인 공동시집 "평균율"을 읽던 그 우중충하던 낡은 도서관도 떠올리고,
쓸려간 인파는 외면하고
누이여 사랑은 이다지도 작은 것이었구나...를 되뇌던 사금파리 눈부셔 현기증나는,
먼지 폴폴 날리던 교정도 추억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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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를 올리기 시작했다.
안부없는 이 심심한 짓거리,
good morning 인사 없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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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03-29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가분님의 시 한구절 한구절....
감동하며 희구하며 잔잔한 감동을 누려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