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1 살아 남은 자의 슬픔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까닭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詩2 헐리우드

아침마다 밥벌이를 위하여
거짓을 사 주는 장터로 간다.
희망을 품고
나는 장사꾼들 사이에 끼어든다.

詩3 나의 어머니

그녀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그녀를 땅 속에 묻었다.
꽃이 자라고, 나비가 그 위로 날아간다......
체중이 가벼운 그녀는 땅을 거의 누르지도 않았다.
그녀가 이처럼 가볍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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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집권 이후 15년간의 망명 생활 끝에 동베를린에 정착, 그러나 인민을 탄압하는 폭압 정부에 또다시 절망해야 했던 시인, 한마디로 말해 광기의 시대를 살다 간 불행한 시인.
오래 전에 읽었던 브레이트, 그의 시 세 편을 추려 보았습니다.

한마디1) 주장이, 견해가 틀리면 여지없이 아갈잡이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승리가, 생존이 때로 치욕이 될 수 있음을 슬픔이 될 수도 있음을,
그들은 필시 죽었다 깨 나도 모를 테지요.

한마디2) 거짓도 자꾸 하면 는다고 했지요. 늘다 보면 어느 게 참이고 거짓인지
분간못하게 된다고 하지요. 굳이 거짓으로 분장하지 않아도 따스한
국밥 대 놓고 먹을 수 있다면 이 무거운 <철면피> 벗어놓을 텐데요.

한마디3) 나는 하루하루 무거워지고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 몸을 내 몸에
수육(受肉)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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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분아저씨 2004-03-18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詩 1,
엔도우슈사꾸의 '침묵'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천주교가 일본에 처음 전래될 때의 얘기입니다.
신자를 살리기 위해 답교(예수의 성화를 발로 밟음)한 신부로 인해 목숨을 보전한 신자들에게, 왜 당신은 우리가 순교하지 뫃하도록 했느냐 죽음 보다 강한 원성을 듣는 대목이 생각납니다.
아, 두 번 죽은 신부님....

詩 2,
옳은 장사꾼이 못되어
늘 이렇게 헤매는 어설픈 몸짓이라니

詩 3,
눈물겹다
산다는 건 모르고 지나다 어느날 문득 그리움으로 점점 깊어져 가는 것이 아닐지...


프레이야 2004-03-18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레이트의 시못지않은 님의 감수성에 덩달아 눈물짓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