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널목 있는 풍경


땡땡땡 땡땡땡땡... 요란하게 울려대는 타종소리가 귓전을 파고듭니다.
곧 열차가 지나갈 모양입니다. 왠지 오늘따라 건널목지기 아저씨의 동작이 굼떠 보이기만 합니다. 굳이 나이를 따지지 않더라도 허리가 굽어지는 세월의 무게는 어쩔 수 없나 봅니다.
하긴 이십 년 가까이 건널목을 지켜 오다 보니까 어지간히 이력이 붙은 탓도 있지만 곧 건널목을 떠나야 된다는 사실에 마음이 심란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차단기의 길고 야윈 팔이 서서히 내려와 턱하니 선로의 건널목을 막아 섭니다. 요즈음 들어 철로와 도로가 엇갈린 이곳에 멈춰서는 차량들이 꽤나 많아졌습니다. 선로 아래쪽 마을에 입을 쩍 벌릴 정도로 많은 대규모 주택단지가 들어서는 탓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공사자재를 실은 덤프트럭이나 포크레인, 레미콘 차량의 행렬이 줄을 잇습니다.
땡땡땡 땡땡땡땡... 연이어 귓전을 때리던 타종소리가 멎고 수평으로 놓였던 차단기의 야윈 팔이 힘겹게 들려져 하늘 쪽을 향해 곧추 섭니다. 이제 다음 열차가 지나갈 때까지 한동안 건널목은 분주하기만 합니다. 자장면이 든 철가방이나 가스통을 실은 오토바이가 지나가고, 재생 재질로 만든 종이박스를 잔뜩 싣고 숨이 턱에 찬 누군가의 리어카가 힘겹게 굴러갑니다. 등교길의 아이들은 몇 명씩 무리지어 가볍고도 힘찬 발걸음으로 학교로 향합니다. 개중에는 출근 시간을 맞추느라 허둥거리는 직장인의 모습도 보이고 다소 낡은 영업용 택시의 클클거리는 엔진소리가 친숙하게 끼어들곤 합니다.
하루 예닐곱 번 아니 어쩌면 그보다 많은 열댓 번 상하행선 열차가 지나가는 건널목이지만 이곳에서 일어났던 크고 작은 사건들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봄비가 촉촉이 내리던 어느 오후였습니다. 그 날도 여느 날이나 다름없이 사람들의 얼굴은 저마다의 일로 골똘한 표정이었고 더러는 심심해 죽겠는지 선 하품을 하기도 하고, 넘쳐나는 시간을 어쩌지 못해 주리를 틀다가 그것도 아닌 사람은 똥마려운 표정으로 안절부절못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열차가 지나갈 시각에 맞춰 위험을 알리는 타종소리가 요란하게 땡땡거렸습니다. 아마 봄비에 젖어 그 소리는 자장가처럼 들렸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조금씩 물기를 머금고 땅바닥으로 낮게, 낮게만 깔렸나 봅니다. 뒤뚱거리며 천천히 차단기가 내려지고 봉고차 한 대가 선로 위에 사정없이 얼굴을 들이민 것은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하느님 맙소사! 무엇이 그리고 급했던지, 열차와 부딪친 봉고는 오십 여 미터나 끌려가 휴지처럼 구겨지고 말았습니다. 마침 학원에 갔다 오던 아홉 명의 아이들은 이제 다시는 해맑게 웃거나 조잘거리거나 깔깔거릴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 사고 후 돌아오는 봄마다 건널목 길을 따라 노란 개나리꽃이 시샘하듯 피고 졌습니다. 하지만 그 날 흩어진 책가방이며 신발주머니, 실내화, 몽당연필의 주인공 얼굴들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가슴에서 지위지지 않았습니다.
그 뒤에도 안타까운 일은 꼬리를 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누구나 아픈 상처에 붕대를 동여매듯 지나간 일은 쉽게 잊고자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잊을 만하면 사고 소식은 불쑥불쑥 얼굴을 드러내곤 혀를 날름거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엔 먼 객지로 아들과 손녀들을 떠나 보내고 그 외로움을 술로 달래던 할아버지가 술 취한 채 철로를 베고 잠들었다가 생명을 앗긴 것이었습니다,
"우리 아들이 곧 온다고 하더군. 날 데리러 온다고 했다니깐 그래. 이번엔 며늘아기와 손녀들도 온다고 했지. 암 오고말고......"
아래윗동네 누구를 만나건 아들 자랑에 신명나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의 장례는 아들과 손녀 없이 동네 사람들에 의해 치러지고 말았습니다.
한 번은 사업에 실패한 어느 가장이 열차 난간에 기대어 시름하다가 떨어져 다리 하나를 잃었습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슬픔에 지쳐 있던 어느 누나는 열차에 뛰어들어 죽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렇게 안타까운 일만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이제는 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국민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은 중학교 진학을 위해 도시로 나갔던 것입니다.
"야야, 부디 편지 자주 하고 선상님 말씀 잘 듣그래이. 그라고 이담에 훌륭한 사람이 될라카몬 부디, 제발 정직하고 씩씩해야 하는기라. 니 밑으로는 뽄보일 동상들이 있다카는 것도 잊지 말그래이......"
이불 보따리와 가방을 꾸려 메고 어른들 손을 잡고 새로운 고장을 향해 떠나가던 그 늠름함과 자랑스러움이라니.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에는 마을의 누군가는 고등학생이 되고 아니 더 커서는 온 마을 어른들의 축복 속에 대학생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따, 이놈아가 누구고? 쩌기 삼거리 떡집 아들 아이가. 내사 몰라 보겠데이. 니가 하마 이만큼 컸더나. 길가다 만나도 인사 안 하고 그냥 가뿌몬 정말 모리겠데이."
그들 중 몇 몇은 알게 모르게 부쩍 커버려 나라를 지키는 군인아저씨가 되기 위해 먼 길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그랬습니다. 누군가는 하늘나라로 가고 다치고 하루가 다르게 부쩍 키가 크고 보다 넓은 도시로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건널목지기 아저씨의 생활은 여전히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했습니다.
그래도 십 년도 훨씬 전에는 아저씨의 하루 하루가 마냥 심심하고 밋밋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당시 아저씨의 일이라는 게 기차 들어올 시각에 맞춰 사람이나 차량을 단속하는 일보다는 아이들과의 싸움이 주된 일처럼 보였습니다.
아이들은 철로 위에 못을 놓아두고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열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곤 했습니다. 아저씨가 아무리 말려도 아이들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덜컹거리며 열차바퀴가 지나간 레일 위에서 납작하게 눌린 못들은 예리한 칼이 되고는 했습니다. 대개는 육중한 열차 무게에 눌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잔뜩 눌린 못들이 만들어 내는 형태들은 아이들의 재미를 자아내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아저씨가 보기에는 그런 놀이 자체가 너무 위험한 일이라 기겁을 하고는 했습니다.
'이 녀석들, 게 섰거라, 어딜 도망가느냐......"
때로는 달래고 때로는 혼쭐을 내면서 철로 가까이에서 노는 것을 말렸지만 아이들은 막무가내였습니다. 또 한 번은 멀리 산모롱이로 열차가 달려오는 모습이 보이는데도 레일에 귀를 갖다대고는 뗄 줄을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아저씨는 너무 놀란 나머지 오줌을 다 쌀 지경이었습니다. 호루라기를 불어대고 붉은 나무깃대를 흔들며 쫓아갔지만 세상에 그보다 더 재미있는 일은 없다는 얼굴로 낄낄거리며 달아났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이들에게 있어 열차는 막연하기만 하고 쉽게 짐작할 수 없는 앞날에 대한 기대나 희망 같은 것을 실어 나르는 도구였습니다. 아니 장차 커서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없이 그냥 무작정 열차가 좋았습니다. 어쩌면 열차를 타고 먼 곳으로 떠날 수 있는 그 언젠가가 좋아 아이들은 무엇인지도 모를 그리움을 가슴에 품고 나날이 커갔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은 때로 서로에게 묻고는 했습니다.
"니, 저 열차 타고 끝까지 가면 어디 나오는지 아나?"
"몰라. 아마 바다가 안 나오겄나. 바다 위로는 갈 수 없을 거 아이가."
"아이다. 니는 모른데이. 떠났던 자리 다시 오는기라. 지구는 둥글다 안카더나"
가만있으면 질세라 또 누군가의 목소리가 이어집니다.
"아이고, 이놈아들아. 우예 그리 모르노. 휴전선 안 나오나. 북쪽땅으론 못 가는기라. 와 언젠가 텔레비에서 철마는 달리고 싶다 카는 거 못 봤더나?"
서로 자기 말이 맞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판결은 늘 건널목지기 아저씨의 몫이었습니다.
"아저씨예, 이 기차가 어디꺼정 갑니꺼?"
이제 아저씨는 어느 누구의 편도 들 수가 없습니다. 무슨 대답이 나올까 맑은 눈동자를 굴리는 아이들 앞에서 가장 어리석은 말이 때로는 가장 현명한 대답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곤 합니다.
"가고 싶은 만큼 가는 거란다. 꿈꾸는 만큼 갈 수 있을거야. 음......, 외할머니가 보고 싶으면 외가댁까지 갈테고 나중에 커서 선생님이 되고 싶은 아이는 선생님 되는 공부를 가르치고 학교가 있는 도시까지 갈테고......"
뚱딴지 같은 대답에 아이들은 피! 하고 무신 말이 그렇노 어른이 그딴 것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도 잠시뿐 구태여 기차가 닿는 곳을 알아야 할 이유도 없고 그런 것은 조금도 중요한 것이 아니곤 했습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열차를 타보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회는 좀처럼 맛볼 수 없는 것이어서 먼 남의 나라 일 같이만 여겨졌습니다. 어쩌면 열차를 타보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터무니없는 생각을 몰래 가슴에 키우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먼 곳의 친척어른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기다리거나, 불현듯 먼 곳에 사시는 외삼촌이나 이모님댁이 그리워 지곤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길고 야윈 팔의 차단기는 내려지고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어디로 그렇게 떠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에게 있어 열차가 지나갈 동안 건널목 앞에 멈추어 서 있다는 것은 참으로 힘겨운 일이었습니다. 물론 겉으로야 씽씽한 얼굴을 하고 기분 좋은 웃음을 짓고 있지만 속마음은 열차를 타고 지나가며 누군가 치켜올린 손 인사에 양손을 힘차게 마주 흔들어 주고 싶은 것입니다. 물론 그런 속마음은 허구한 날 지나가는 열차를 향해 손 흔들어도 마주보고 손 흔들어 주는 사람이 없다 보니까 생겨난 궁리입니다.
마침내 아이들 중 누구 누군가는 언젠가는 저놈의 열차를 타리라, 반드시 잡아타고 멋지게 손 흔들어 보이리라. 혼자 결심 아닌 결심을 하면서 이빨을 앙다물어 보곤 했습니다. 건널목을 열차 타고 지나며 여유롭게 가슴도 쫙 펴보고 입가엔 미소도 지어 보여야지, 하루에도 몇 번씩 다짐해 보지만 그런 기회는 아무에게나 쉬 오는 게 결코 아니었습니다.
아저씨는 그런 생각도 안 드는지 늘 여유로운 모습으로 가볍게 손을 흔들며 건널목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잘 다림질한 제복을 입고 금빛 단추가 달린 모자를 쓰고 반질거리는 구두를 신은 모습이 멋있다는 느낌은 모든 아이들의 공통된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저씨의 하루하루가 제복처럼 멋있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년 삼백육십오일 늘 햇빛 좋고 맑기만 한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어쩌다 억수 장마지려는지 장대비가 뿌리는 날이면 차단기 앞을 지켜 선 아저씨의 몰골은 금세 후줄근하게 젖어 볼품없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또 눈보라가 휘날리는 날은 그대로 살아있는 눈사람이 되어버리곤 했습니다. 어쩌면 아저씨에게 있어 건널목지기 일이란 건널목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의 재산과 생명을 열차와의 충돌로부터 지키고자 하는 약속이며 일종의 믿음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젊은 날을 하루같이 오고 가는 열차와 함께 보내면서 하루가 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아저씨건만 이제는 조금 쉬셔야 할 나이가 되었나 봅니다. 꼭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올망졸망 모여 장난을 치던 선로가엔 개나리 노란 꽃망울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너무 커버려 소식 없지만 오래 전에 보았던 아이들 중의 하나가 불쑥 물음을 던지는 듯합니다.
"아저씨는 어떻게 여기 오셨어요?"
"응, 본역에서 차량정비 하다 조금 다쳤단다, 건널목 일은 할 수 있겠더라. 그래서 너희 개구쟁이들 지키려고 왔지. 너희들 잘 커서 열차 타고 가고 싶은 곳 갈 수 있을 때까지 말야."
"얼마나 커야 되는데요."
"사실은 키가 중요한 게 아니고 마음이 커져야 하는 거란다. 마음이 큰 사람은 멀리까지 볼 수 있고 넓은 세상에 나아갈 수 있는 거란다."
"마음이 커진다는 건 어떤 거예요."
" 음!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지만, 추운 겨울을 잘 견뎌낸 나무들 몸에 돋는 초록 이빨 같은 것이라고 할까? 날마다 푸르게 되고 무성하게 자라는 잎사귀 같은 거란다."
지나간 시절을 되돌아보는 아저씨의 두 눈이 자꾸 침침해 오고 있습니다. 예전 그 좋던 시력으로 칙칙폭폭 증기 폭발음을 내며 먼 산모롱이를 돌아오는 증기 기관차의 모습을 발견해 내곤 맘 설레던 일도 이제는 한갓 추억이 되었나 봅니다. 육중한 몸체로 기적소리와 흰 수증기를 뿜어내던 증기 기관차도 이제는 철도박물관이나 어린이 대공원에 전시용으로나 보관되어 있습니다. 알게 모르게 디젤 기관차에 밀려난 증기 기관차처럼 아저씨의 건널목지기 일도 이제는 끝내야 할 때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습니다.
안경을 벗어 몇 차례 안경알을 닦고 써보지만 흐릿해지는 눈앞은 좀처럼 맑아질 것 같지가 않습니다. 돌이켜보면 철도 일에 몸담은 지 사십여 년이 되었지만 정년퇴직까지의 마지막 이십여 년을 건널목지기로서 보내게 되었다는 게 그렇게 다행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혹 동네 사람 누군가는 그렇게 얘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명색이 그래도 철도밥을 사십 년이나 먹었는데 하다 못해 역장은 못하더라도 건널목지기로 마쳐서야 되겠느냐고 말입니다. 아저씨로서는 오히려 그래서 더욱 스스로에게 대견한 생각을 품게 된 요즈음입니다. 보다 건강하고 젊은 후배에게 이 건널목 지키는 일을 넘기면서 그래도 자신은 스스로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느덧 아저씨로서는 마지막으로 건널목지기 일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밤 열 시. 마지막 열차를 보내고 나면 다음 날엔 본역에 정년퇴임 신고를 하러 가야 되는 것이었습니다. 동네 사람들과 아저씨가 지켜 선 가운데 차단기가 내려지고 땡땡땡 땡땡땡땡... 변함없이 타종소리가 밤하늘에 울려퍼지고 이윽고 열차가 지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아, 아까부터 자꾸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끔벅거리던 아저씨는 마침내 보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그 예전의 장난꾸러기들이 이제는 당당한 청년이 되어 창마다 하나씩의 등불을 켜들고 보란 듯이 마구 흔들어 대는 것을.... 그 하나씩의 등불은 오롯이 아저씨의 몫으로 쏟아지는 지상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큰 선물같이만 보였습니다.
스치는 불빛에 드러난 안경테 속에 언뜻 물기가 비쳤지만 그것도 잠시뿐 아저씨의 환한 미소가 오랫동안 피어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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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4-03-17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어릴 적 동네에 이런 건널목이 있었어요. 지금도 있더군요.
옛날 생각에 잠시 젖었다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