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거리는 자기 자신의 역사라는 징역형으로부터 도망쳐 열린 운명이라는 가능성으로 들어온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22) - P22

생각해보면, 나는 어떤 것에는 ‘네‘라고, 또 어떤 것에는 ‘아니요‘라고 말하다 보니 어느새 혼자 살게 되었다. 대답하는 일 자체가 선택이라는 것을 나는 결코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했다. 오랫동안, 내 대답에는 오직 내가 중대하게 관심을 가졌던 한 가지만이 강렬한 영향을 끼쳤다. 나는 외로움을 두려워하게 되는 일을 경계했다. 고독한 노년의 공포에도 몸을 사리지 않으면서 일과 사랑 같은 삶의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는 일이 내게는 중요하게 느껴졌다.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을 너무도 터무니없이 싼 값에 팔아넘기는 여자들이 너무 많다고 나는 주장했다. 그러니까 그 불안에 저항하는 일은 내게 정치적 견해 비슷한 것이었다. 그 입장을 쉽게 취할 수 있었다. 그문제를 나는 초보적인 수준으로만 이해하고 있었으니까. (66-67)

나는 ‘결혼에 반대하며‘라는 제목으로 격렬하게 결혼을 비판하는 글 한 편을 썼다. 그 글에서 나는 우리가 결혼하는 이유는 자아를 발견하는 모험을 하거나 내면의 삶을 공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원초적인 종류의 감정적 위안을 얻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그 위안에는 편협한 태도, 고독을 대하는 데 있어서의 미숙함, 몇 년씩 꺼내지 않고 지나가는 내면의 자아에 대한 어려운 질문 같은 것이 따라온다. 외로움을 두려워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나는 주장했다. 두려움에 맞서 몸을 지키기 위해서는 두려움 속으로 들어가 두려움과 함께 살아가면서 두려움을 제압해야 한다. 나는 사랑이나 가정에서의 친밀감 없이 지내는 것은 사실 반만 살아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관대하게 인정했지만, 결론에서 지금 우리는 스스로에게 진실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만나 하나가 된다는 근거 없는 믿음은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 그 사실을 자각한 채 살아가는 일이 삶의 과업이다. 외로움을 이겨낼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외로움이 죽음을 초래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배울 수는 있다. 그런 앎은 힘이 되고, 동맹이 되고, 무기가 된다. (7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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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그녀의 의지가 강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사실 그녀는 심성이 매우 여린 여자였다. 그래서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게 두려운 나머지 상황에 이끌려 다닌 적이 많았다. 그녀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건 올바른 사회에서 사는 것이었다. 그렇지 못한 사회는 몽둥이로 머리를 박살 내듯 순식간에 여자를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미래를 생각할 때마다 식은땀이 났고, 자신이 마치 공중으로 던져졌다가 떨어지면서 포석의 튀어나온 모양에 따라 앞뒤가 결정되는 1짜리 동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8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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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나도 걱정과 필요에 쫓겨서 그곳의 문을 쾅쾅 두드리면서 들여보내달라고 청하곤 했다. 함께 저녁을 먹던 친구가 내게 아무도 사귀지 않는 것은 어떤 기분이냐고 물었을때, 나는 혼자라는 상태에 절망하고 혼자 있는 것은 무섭고 열등한 상태라고 생각했던 시절의 기분이 어땠는지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주말에 계획이 없다는 말에 친구 웬디가 불편해하는 것을 볼 때, 나는 한때 내가 아무 계획 없는 시간을 얼마나 겁냈는지, 그냥 가만히 앉아서 내 안의 감정이 밖으로 나오도록 여유를 주는 일을 얼마나 어려워했는지 새삼 떠올린다. 그리고 체육관에서 만난 여자처럼 사람들이 ‘우리‘라는 단어를 수시로 입에 올리는 걸 들을 때, 나는 마치 타인과 결부되지 않은 나는 존재 가치가 없다는 듯이 남들과의 관계로만 나 자신을 정의하려고 애썼던 고통스러운 시절을 떠올린다.
그날 밤 부엌에서 켈로그 만찬을 준비하며 내 집의 단정함과 조용함을 즐길 때, 그 시간이 고마운 선물이자 일종의 승리로 느껴졌다. 예전에 내가 애쓰며 괴로워했던 일들이 과거로 좀 더 멀리 물러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원래 숫기 없는 성격이다. 타인과의 소통을 늘 부담스럽게 느껴왔고, 앞으로도 아마 어느 정도는 계속 그럴 것이다. 따라서 나는 혼자 있는 걸 늘 대단히 편하게 여겼지만, 그러면서도 그 상태를 만끽할 줄은 잘 몰랐다. 혼자 방에 앉아 있으면서도 초조해지지 않는 것, 연애의 틀 밖에서도 안락과 위로와 인정을 얻을 수 있다고 느끼는 것, 내가 가진 자원만으로도-나라는 사람, 내가 하는 선택만으로도-고독의 어두운 복도를 끝까지 걸어서 밝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 것, 이런 것은 잘하지 못했다. (명랑한 은둔자, 49-50)

어머니가 즐겨 하신 말씀 중에 "인생은 드레스 리허설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었다. 술을 끊기 전 몇 달 동안 나는 저 말을 수시로 떠올렸다. 술을 지나치게 마시면, 인생의 힘든 순간들을 겪어내는 데 술에 지속적으로 의지하면, 삶의 모든 일이 현장이 아닌 연습인 양 느껴지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해 여름에 밤이면 밤마다 전화를 붙들고 애통해할 때, 나는 실제로 애도한 게 아니라 애도를 연습한 것이었다. 희석된 고통은 직면한 고통과 결코 같지 않다. 술과 자신감의 방정식, 술과 불안의 방정식도 마찬가지다. 칵테일 파티에서 마티니로 얻은 세련됨은 불안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힘겨운 작업을 거쳐서 내면으로부터 얻은 세련됨과 결코 같지 않다. (맑은 정신으로 애도하기,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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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2학년 때 친구네 집에 갔다가 퇴근해서 돌아온 친구의 아버지가 친구를 번쩍 안아 올리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놀랍고 부럽고 약간은 어처구니없기도 했다. 내게는 너무도 낯선 광경이었다. 우리 가족 사이에는 포옹이란 게 없었다. 4학년인가 5학년 때는 친구네 엄마의 욕실에 들어갔다가 거기 널린 물건들을 보고 기겁을 했다. 로션과 파우더와 각종 튜브, ‘딸각‘ 소리를 내며 열리고 닫히는 콤팩트, 우리 어머니는 잡다하게 물건을 사 모으는 취미가 없었다. 화장품도 립스틱과 파우더만 약간씩 쓸 뿐이었다. 그리고 카탈로그에서 특별 주문하는 피어스 글리세린 비누를 빼고는 값비싼 미용 제품 같은 것에 욕심을 내지도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은 좀 이상하게 사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을 통해서 활력이 부족하고, 감각적인 것을 회피하고, 즐거움을 만끽하지 못하는 우리 집의 분위기가 일반적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61-62)

내면의 공허를 술로 채우고, 끝까지 술을 추격하고, 그런 과정에서 때로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는 술은 끊을 수 있지만, 실제로 더욱 끊기 어려운 것은 바로 그러한 추격이다. 그래서 AA 모임에 가면 술과 결별하고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알코올 중독자 같은 사고와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넘쳐난다. 외부의 해결책을 찾는 탐색은 계속된다. 우리는 뭔가를 원하고 뭔가가 있어야 한다. (80-81)

어떻게 보면 술의 행로는 매우 단순하다. 어느 순간까지 알코올은 모든 것을 개선한다. 하지만 그 순간을 넘어서면 모든 것을 망쳐버린다. 그리고 아직 개선 도정에 있는 동안 술이 우리를 다른 자아로 고양하는 능력은 그야말로 놀랍다. (87)

그러나 이런 방식의 자기 변모는 어떤 버전의 자신이 믿을 만한 것인지, 어떤 것이 진실인지 알 수 없게 된다는 데 문제가 있다. 나는 제임스나 일레인과 함께 있을 때는 뻔뻔하고 냉소적인 사람이 되었고, 샘과 함께 있을 때는 친밀한 버전이었으며, 친척들과 함께 있을 때는 얌전하고 세련된 버전이 되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뭐가 뭔지,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어떤 버전의 내가 본래 내 속에 있던 것이고 어떤 버전의 내가 외부의 상황에 따라 만들어진 것인지 도저히 파악할 수가 없었다. (97)

AA 모임에 나가면 가장 먼저 듣는, 그리고 가장 먼저 우리 가슴에 사무치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알코올 중독의 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우리의 인격이 성장을 중지한다는 이야기다. 술은 우리가 성숙한 방식으로 A 지점에서 B 지점으로 이동하려면 겪어야 하는 힘겨운 인생 경험을 박탈한다. 간편한 변신을 위해 술을 마신다면, 술을 마시고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이 된다면, 그리고 이런 일을 날마다 반복한다면 우리가 세상과 맺는 관계는 진흙탕처럼 혼탁해지고 만다. 우리는 방향 감각도 잃고 발딛고 선 땅에 대한 안정감도 잃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자기 자신에 대한 가장 기본적 사항들(두려워하는 것, 좋아하는 느낌과 싫어하는 느낌, 마음의 평안을 얻는 데 필요한 것)도 알 수 없게 된다. 술에 젖지 않은 맑은 정신으로 그것을 찾아 나선 적이 없기 때문이다. (97-98)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 그러니까 술이라는 정신의 마취제 없이도 하루하루를 밀고 나가는 사람들은 외부의 힘에 막연한 기대를 하지 않으며, 개인의 진정한 힘과 희망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경험의 축적을 통해서, 즉 자기 앞에 닥친 과제들을(아무리 고통스럽고 두려운 일이라 해도) 하나하나 해내는 과정을 통해서 얻어진다는 사실을 터득하고 있다.
하지만 술을 마시는 사람은 그러지 못한다. 고통스러운 감정을 뚫고 지나가는 것과 그것을 외면하는 것의 다른 점을 알지 못한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멍청히 앉아 술을 들이켜다가 취하는 것뿐이다. (134)

혼자 술 마시는 일이 역설적인 것은(그러면서 정말로 위험한 것은) 우리가 정서적으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만난다고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혼자 술 마시던 시절, 술이야말로 내 진정한 감정의 문을 열어주는 유일한 도구라고 느꼈다. 술을 마시고 녹아내린다, 술을 마시고 흐느낀다. 술을 마시고 다른 사람에게 전화 걸어 고통을 호소한다. ‘우울해. 외로워. 나를 좀 도와줘.‘ 하지만 술은 기만의 도구다. 술이 빚어내는 감정은 환각이다. 다음날이 되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전화를 걸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아침에 깨어나면 분명한 사실 하나는 머리가 아프다는 것뿐이다. (143)

음주 행위는 두뇌의 보상 체계를 인위적으로 ‘활성화하는‘ 것이다. 마티니를 한두 잔 마시면, 알코올이 행복감을 전해주는 두뇌 회로 구조에 영향을 미쳐서 도파민이라는 신경 전달 물질의 분비를 촉진한다. 도파민은 바로 쾌락과 보상 감각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세월이 흐르면(그리고 그동안 알코올이 일정 수준 이상 남용되면) 우리 두뇌는 그런 인위적인 활력 증가에 ‘대상성 적응compensatory adaptation‘이라는 것으로 대응한다. 내적 물질 균형을 본래의 상태로 되돌리려고, 도파민의 분비를 감소시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본래의 쾌락과 보상 회로는 고갈된다.
그리고 악순환이 이어진다. 계속해서 술을 마시면 우리 두뇌는 행복감과 안정감을 제공하는 능력이 감퇴하고, 그러다 보면 그런 느낌을 만들려고 점점 더 인위적인 자극(알코올)에 의존하게 된다. (152-153)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워 내 소심함을 떠올리고는, 술이란 인격의 덫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자신의 소심함을 그토록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오랫동안 끈질기게 간직한 것은 내가 진정한 자아를 술로 가렸기 때문이 아닌가, 술로 내 내부체계를 마비시키기 전에는 사람들에게 나를 알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194)

많은 알코올 중독자가 평범한 과음 수준을 벗어나 고삐 풀린 폭음의 단계로 넘어갔을 때 자신이 무슨 일을 할지 예측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런 일은 외부의 사건처럼 우리에게 그냥 닥쳐온다. AA 모임에 가면 흔히 듣는 말, "내가 술을 마실 때마다 나쁜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는 언제나 술이 관련되어 있었어요". 진성 알코올 중독자들은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은 때를 더 열심히 기억한다. 친구들과 즐겁게 술 마신 때를, 집에 안전하게 돌아온 때를, 자기 침대에서 깔끔하게 깨어난 때를………. 그리고 불미스럽고 수치스러운 일이 일어났거나 지난밤의 일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뭔가 변명을 둘러댄다. 비난의 화살을 돌릴 대상을 찾는다. 스트레스, 힘든 인생, 호르몬. (197)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은 매일같이 하는 선택이다. 어떤 날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 선택을 해야 한다. 선택은 매우 간단하다. 술잔을 들거나 들지 않거나. 하지만 그 추수감사절 모임 같은 경우는 좀더 복잡하다. 그런 날 술을 안 마신다는 것은 몇 가지 진실을 인정하는 일이다. 자기파괴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적어도 나에게는), 그런 감정을 술로 다스리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지도 변화시키지도 못한다는 것, 술이 제공하는 해법은 결국 무용지물이고 패배적인 방편이라는 것을. 알코올 덕분에 나는 오랜 세월 동안 여러 가지 번잡한 노역을 피할 수 있었다. 감정을 다스리는 일이라든가, 내가 물려받은 조용하고 억제되고 예민한 성격을 인정하는 일, 또 남이 와서 내 욕구를 해결해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해결 방법을 찾는 그런 많은 일을. 그러니까 한마디로 알코올은 내 성장을 가로막은 것이다.
이런 말은 너무도 당연해서 말하자마자 그냥 상투적인 표현으로 여겨지지만, 그 순간까지도 나는 성장이란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며, 어른이란 생물학적인 나이가 아니라 정서적인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정서적 수준이란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스스로 선택하는 것임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내가 아는 많은 사람(알코올 중독자든 아니든 간에)이 그렇듯이, 나 또한 내 인생의 많은 시간을 성숙이 외부에서 불쑥 찾아오기를 기대하며 지냈다. 마치 성숙이라는 것이 하룻밤 사이에 일어날 수도 있는 사건인 것처럼. 아버지나 줄리안 같은 남자들이 소량의 세련미와 자신감을 줄 수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성장이란 우리에게 닥치는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중독을 벗어나는 일은 이런 오해를 뒤집어서 성장은 안에서 뻗어나오는 것이며, 시도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을 통해 얻는 것임을 이해하는 것이다. 술을 끊으면 우리는 이제 기다리지 않게 된다. 어느 날 누군가 찾아와서 내가 해야 할 성장의 노역을 대신 해줄 거라는 끈질기고도 인간적인 소망을 버리게 된다. 비로소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주변 상황들, 특히 부모님의 죽음은 한동안 내 어린 시절의 껍질을 부식시켰지만, 그 대부분은 내 의지로 한 일이 아니었다. 술을 끊은 건 아마도 내가 그때까지 내린 결정 가운데 진실로 어른스럽다고 할 수 있는 최초의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나 자신을 위한 성장의 발걸음이었다. (306-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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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환경이든, 도움이 되지 않는 환경이든 실제의 지적 생활에는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지적 생활은 일종의 투쟁이며 훈련입니다. 지적으로 생활하는 기술이란 유리한 환경을 발판삼아 발전해나가는 과정이 아니라 매일의 생활에 필연적으로 얽혀 있는 숱한 사정과 제약 속에서 우리 자신을 극복시켜나가는 행위입니다. 이로써 지성은 풍요로워지고 강인해집니다. (7) - P7

게다가 현재는 지성에의 접근이 과거보다 훨씬 편리해진 시대입니다. 이 사회에서는 신분이 가장 낮은 직공도 솔로몬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접하지 못했던 체계화된 학문을 섭렵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솔로몬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 시대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지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살았으나, 이 시대의 누구보다 지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날에는 누구든지 플라톤보다 훨씬 편하게 교양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플라톤과 우리의 차이점은 그가 단순히 교양의 습득에만 얽매이지 않고 사물의 본질에 관하여 스스로 고뇌하려 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8) - P8

그런 의미에서 지적 생활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는 두뇌의 타고난 재능이 아닙니다. 육체적 기반입니다. 건강한 몸이 받쳐줘야만 원하는 정신활동이 가능해진다는 뜻입니다. / 이를 망각한 채 정신이 건강을 압도할 수 있다는 착각은 우리 삶을 병들게 만듭니다. 욕심을 앞세운 정신노동이야말로 지적인 삶을 가로막는 난적 중의 난적입니다. (23, 지나치게 일하는 젊은 작가에게) - P23

걸출한 지성의 소유자라고 해도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혀놓으면 마음이 지쳐버립니다. 책상과 마주보고 있는 동안에는 자기 능력의 십분의 일도 끄집어내지 못합니다. 책상은 지적 생활의 모태가 아닙니다. 책을 펼쳐놓는다고 해서, 펜과 씨름한다고 해서 지적 생활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적 생활은 말 그대로 생활 전반에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사고하고, 창작하고, 영감을 얻는 매순간입니다.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31, 다시 지나치게 일하는 젊은 작가에게) - P31

여기서 중요한 건 ‘합리적‘인 것이 언제나 ‘합리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과학과 수학은 ‘합리적‘ 일수록 좋은 결과가 얻어지지만, 예술과 예술을 닮은 인생의 여러 장면들은 때론 중요한 인상만 ‘선택‘ 해서 간직하는 불평등과 불합리를 통해 아름다워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140, 기억력이 나쁘다고 한탄하는 친구에게) - P140

현재의 시간을 철저하게 절약하고 싶다면 지금 몰두하고 있는 일들을 리스트로 작성해보는 건 어떨까요. 각각의 일에 정직하게 불완전한 정도를 기입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그 일들에 어느만큼 집중하고 있는지, 또 그 일들이 당신의 생활에서 얼마나 큰 의미를 차지하고 있는지, 앞으로 지속적인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을 때 그 일에서 기대할 수 있는 성과가 어떤 것인지 차근차근 정리해보기를 권합니다. 이렇게 하면 몇 가지 지적 활동 중에서 실현 가능한 것, 다시 말해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분야가 보입니다. 그 분야에 집중하십시오. 나머지 활동은 비록 흥미가 있고 개인적으로 소중하더라도 내려놓습니다. 단념입니다. 단념하는 대신 귀중한 시간이 주어집니다. 단념하지 않고서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148,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한탄하는 친구에게) - P148

연구하고 있는 몇 가지 학문 상호간의 조화야말로 시간 절약의 참비결임에 분명합니다. 한 가지 중심적인 연구와 보조적인 연구 몇 가지, 그러나 보조가 되지 않는 연구는 일체 손을 대지 않는, 이것이 연구 배분을 결정하는 참원칙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근면한 연구자 가운데에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연구와 전혀 상관이 없는 학문에 관심을 보이며 시간을 투자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기분 전환이 목표일 뿐 시간 절약과는 무관한 활동입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적의요새를 완벽하게 점령하지 않은 채 남겨두면 그것은 한심스러운 시간 낭비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적진 깊숙이 공격해 들어가야만 할 때가 있습니다. 되돌아음을 기약하지 말고 정복해야 하는 것들, 정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들은 남김없이 철저히 정복해야 합니다. (154,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한탄하는 친구에게) - P154

환자를 다루는 법은 간단해요. 우선은 스푼에 물을 적시어 입술을 축이죠. 그러면 환자는 혀로 축축해진 입술을 닦아요.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겁니다. 그 반응을 본 다음에 음식물을 입에 조금 넣어줍니다. 외부 자극에 반응했던 환자는 무의식 중에 음식을 삼키게 돼요. 처음부터 입에 고깃덩어리를 넣어준다면 환자는 삼키기는커녕 토해냈을 겁니다.
같은 이야기를 나는 우리 인생에 들려주고 싶어요. 변화를 원한다면 조금씩,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강도를 높여나가는 방법을 택하세요. 갑작스레 앞으로 이런 인생을 살아갈 거야,라고 얘기하지 마세요. 가슴은 흥분으로 두근거리겠지요. 하지만 그건 정확한 의미에서 기대감과는 달라요. 두려움과 낯설음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무리한 심장박동이에요. 나중에 심장마비가 올지도 몰라요.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사업가에게, 183) - P183

매일같이 열심히 공부한다고 해서 지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지적인 삶과는 거리가 먼 지식노동에 회의감을 느껴 교양으로부터 멀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식을 활용하는 기술만 늘어나는 것입니다. 지성과 교양의 궁극적 목표인 개인의 완성과 성취감, 행복은 사라지고 오직 지식이 재물로 변환되는 물질적 성과에 급급하게 되어 지식인임에도 지성인이 되지 못하는 사람도 우리 주변에는 많습니다. (192, 가난한 지식인에게) - P192

상대방이 시시한 사람이라면 자기도 시시한 문제에 휘말리게 됩니다. 적을 만들기 전에 좀 더 현명하고 냉정하게 판단해야 하는 까닭입니다. 적으로 인정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들과 싸워야 합니다. 어차피 인간의 본성은 투쟁적입니다. 그 본성을 거스르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아직은 그럴 자신이 없다면 부끄럽지 않은 적을 찾아봐야 합니다.
경멸하고 싶은 사람을 적으로 만들지는 마십시오. 당신의 적에게 긍지를 가져야 됩니다. 당신이 그들의 적이라는 사실에 긍지를 가지십시오. (적을 만들지 않는 인간관계에 대하여 묻는 그대에게, 270) - P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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