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급은 그, 삼천 원짜리 공주인형에 박힌 유리 눈깔 같은 두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그러한 눈은 그날 이후로 내가 무수히 마주치게 될, 그런 눈들 중 하나였다. 아무 감정도 없이, 아무 느낌도 없이 그냥 얼굴 한복판에서 깜찍하게 반짝반짝하는.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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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도 첫 일필(一筆)에 만필(萬筆)이 통섭되고 억만 개 문장을 수용한다. 생각이 나니 쓰는 게 아니다. 쓰니까 생각이 나고, 쓰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문장이 문장을 낳는다. 일필(一筆)로 벽을 차 부수는 수밖에 없다.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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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고 있노라니 먼 과거로 되돌아가 만차의 삶 한 토막과 아름다웠던 내 젊은 시절이 떠오른다. 그 모두의 배후에서, 깊디깊은 땅 밑 하수구를 흐르는 더러운 물소리가 들린다. 그곳에서 두 종족으로 나뉜 쥐들이 생사를 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아름다운 하루다!" (47)

그러면 종이 더미 발치에 있던 나는 손에 책을 든 채 수풀 속에 숨은 아담처럼 몸을 잔뜩 움츠리고 겁에 질린 시선으로 낯선 주변 세계를 둘러본다. 한번 책에 빠지면 완전히 다른 세계에, 책 속에 있기 때문이다...... 놀라운 일이지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그 순간 나는 내 꿈속의 더 아름다운 세계로 떠나 진실 한복판에 가닿게 된다. 날이면 날마다 하루에도 열 번씩 나 자신으로부터 그렇게 멀리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에게 소외된 이방인이 되어 묵묵히 집으로 돌아온다. 그날 찾아낸 수많은 책들, 내 가방 속에 든 책들 생각에 골몰해 길을 걷는다.전차와 자동차와 보행자 들을 피해가면서, 녹색등이 켜지면 기계적으로 길을 건넌다. 행인이나 가로등과 부딪치는 일도 없이 걸어간다. 몸에서 맥주와 오물 냄새가 나도 내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는 건, 가방에 책들이 들었기 떄문이다. 저녁이면 내가 아직 모르는 나 자신에 대해 일깨워줄 책들. (16)

단단히 사리고 똬리를 튼 내 몸은 겨울철의 새끼 고양이나 흔들의자 나무틀 같다. 한 번도 진짜로 버림받아본 기억이 없는지라 그렇게 나 자신을 방기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내가 혼자인 건 오로지 생각들로 조밀하게 채워진 고독 속에 살기 위해서다. 어찌 보면 나는 영원과 무한을 추구하는 돈키호테다. 영원과 무한도 나 같은 사람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을 테지.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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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 모든 걸 다시 생각해보는 것은 그처럼 나이를 먹어버린 사람에겐 너무 가혹한 일일 것이다. (웃는 남자,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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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의 사실주의는 세부적 사회가 아닌 전체적 사회에 대한 사실주의이다. 그 안에 운동 원인이 들어있는 전체 사회의 방향을 모르는 채 표류하는 청년들이 앓고 있는 병을 그리는 데 발자크는 많은 공을 들인다. 그의 소설에는 아무도 환영해주지 않는 새로운 시대로 떠밀려온 청년들의 불안과 고독과 환멸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자신의 영혼을 상품화하여 연명하며, 몽롱한 시선으로 현재의 변화를 바라볼뿐인 청년들의 희생이 그려져 있다. (vi, 개정판을 내며)

빈곤이 끝날 때 인색함이 시작되는 법이다. (8)

위대한 지성들이 처하게 되는 불행 중의 하나는 미덕이나 악덕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기필코 알려고 한다는 것이다.(32)

소녀란 원래 열광하기 쉬운 데다가, 그녀는 전원에서의 고독 때문에 더욱 열광했던 것이다. 니올랑 신부는 제자에게 과감한 비판과 판단 능력을 가르쳤는데, 남자에게 필요한 이런 장점도 가정주부 노릇이나 하게 되어 있는 여자에게는 결정이 된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43)

미덕 중의 미덕인 정신의 고양은 성녀들을 낳고 숨은 헌신과 멋진 시정을 고무하는 것이지만, 그것도 시골의 하찮은 일에나 열중하게 되면 과장이 되고 만다. 훌륭한 재주들이 빛을 발하고, 주위에 온갖 사상이 채워져 있으며, 모든 것이 쇄신되는 그런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며, 지식은 곧 낡아버리고 취향은 마치 고여 있는 물처럼 변질되고 만다. 정열은 활용되지 않으면 사소한 것이나 키우다가 왜소해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지방 생활에 해독을 끼치는 인색과 험구가 생기는 것도 그 때문이다. 좁은 생각과 비속한 태도를 모방하다 보면 누구보다 뛰어난 사람도 곧 그렇게 되고 만다. (47)

1815년에서 1821년 사이에 간행되어 당시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던 유명 외국인의 작품들, 두 천재 사상가인 보날드와 메스트르의 위대한 논문들, 아직 그만큼 웅대하지는 않지만 첫 가지를 무척 활기차게 내뻗은 프랑스 문학 작품들, 이러한 것들은 그녀의 고독을 아름답게 장식하긴 했지만, 그녀의 정신이나 인격을 부드럽게 만들어주지는 않았다. (50)

외교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고 한없이 공허한 사람들의 기술이다. 게다가 외교란 높은 직무를 수행할 때 나타난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무식한 사람들이 신중한 인물이 되고 싶어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 있게 하고 신비스런 고갯짓을 방패로 삼을 수 있게 한다는 의미에서 매우 편리한 기술이다. (51)

이 모녀는 둘 다 남의 동정에 젖어온 사람에게서 보이는 새침하고 새콤달콤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에고이즘 때문에 이런 사람들에게 흥미를 갖고, 위안하는 말의 공허함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말로 불행한 사람들을 대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는 법이다.(95)

‘이것이 바로 사교계로구나!’ 뤼시앙은 보리외 가의 비탈길을 통해 루모로 내려가면서 생각했다. 걸으면서 마음속 생각의 움직임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그러한 생각에 잠겨 있기 위하여, 가장 먼 길을 택하고 싶은 순간들이 인생에는 있는 법이다. (113)

(...) 뤼시앙을 위한 일에 우선권이 있었기 때문이다. 뤼시앙을 아는 사람은 누구나 이러한 헌신에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토록 매력적이고, 태도도 무척이나 상냥하고, 초조와 욕망을 매우 우아하게 표현했으므로, 말하기도 전에 언제나 목적을 달성했던 것이다! 이러한 숙명적인 특권은 젊은이들을 구원하기보다는 오히려 파멸시킨다.아름다운 젊음이 불러일으키는 친절에 익숙하고, 사교계 사람들이 마치 어떤 감정을 일깨워 감동을 주는 거지에게 동냥하듯이, 그 마음에 드는 자에게 내리는 이기적인 보호에 흐뭇해진 그런 부류의 다 큰 아이들은 대개 그런 호의를 활용하는 대신 즐기고 만다. 그들은 사회적인 관계의 의미와 동기를 모르는 까닭에 그 기만적인 미소를 언제나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늙은 요부나 낡은 넝마처럼 사교계가 살롱의 문밖이나 어떤 가장자리 구석에 내팽개치는 날 그들은 알몸에 대머리의 헐벗은 상태가 되고, 가치도 재산도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141)

지방에서는 어느 정도 존경을 받고, 한 걸음 딛을 때마다 자기들이 중요한 인물이라는 사실의 증거를 만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가치가 빠르게 완전히 상실되는 것에 대해 전혀 익숙할 수가 없다. 고향에서는 그 무엇이지만 파리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이 두 상태에 어떤 과도기가 있었으면 싶다. 그래서 이쪽에서 저쪽으로 너무 갑작스레 넘어가게 되는 사람들은 일종의 자기상실에 빠진다. (182)

게다가 복장 문제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것처럼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나게 큰 문제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금 가지지 못한 것을 훗날 소유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188)

사소한 것들이 큰 것이 되는 사교계에서는 몸짓 하나, 말 한마디가 초보자를 파멸시킨다. (195)

쓸데없는 모든 단장을 무시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천재가 자기 노예뜰의 이마에 찍어주는 도장이 찍힌 이 신비스런 미지의 사람을 뤼시앙은 플리코토에서도 다시 만났는데, 그는 모든 단골들 중에서도 가장 규칙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이미 친숙해져 있는 듯한 음식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살기 위해서 먹고, 음료수로도 물을 마셨다. 도서관에서나 플리코토에서나 그는 모든 점에 있어서 일종의 위엄을 보였는데, 그것은 아마도 어떤 위대한 것에 전념하는 생활의 의식에서 나오는 것이었고, 그 점이 그를 접근 불가능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사색적이었다. 고귀한 윤곽의 이마에는 명상이 상주하고 있었다. 재빨리 잘 보는 검고 생기있는 눈은 사물의 근본을 파헤치는 습관을 예고하고 있었다. 동작은 단순하지만, 그 태도는 심각했다. 뤼시앙은 그에 대해 무의식적인 존경심을 느꼈다. (235, 다니엘 다르테즈에 대한 묘사)

"(...) 뷔퐁이 말한 것처럼 천재란 인내입니다. 인내랑 결국 인간에게 있어서 마치 자연이 창조하는 데 사용하는 방식과 가장 많이 닮은 것입니다. 예술이란 무엇이죠? 그건 집중된 자연입니다." (237)

"(...) 자네가 자네의 허영심에 요구하는 모든 것을 사상의 영역으로 운반하도록 해. 어차피 실없는 짓을 할 바에는, 자네의 행동에는 미덕을, 사상에는 악덕을 불어넣도록 해. 다르테즈가 자네에게 말한 것처럼, 잘 생각하고는 나쁘게 행동하지 말고 말이야." (255)

"(...) 그래서 사람은 초라하면 할수록 더 빨리 출세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몹시 굴욕적인 일을 참고 견딜 수 있고, 모든 것을 체념할 수도 있고, 문학의 폭군들의 용렬한 저질 열정에 아첨을 할 수도 있지요. (...)" (280)

모든 것을 그리려고 하는 사람은 모든 것들 알아야만 한다. (332, 뤼시앙이 타락과 쾌락으로의 입문을 정당화하는 독백 중에서)

뤼시앙은 한 달 동안을 밤찬이나 만찬, 점심, 야회에 시간을 빼앗겼고, 거역할 수 없는 흐름에 이끌려 쾌락과 안이한 일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그는 예측을 할 수가 없었다. 뒤얽힌 생활 속에서의 예측력이란, 시인이나 연약한 사람들, 혹은 순전히 재주에만 의존하는 사람들로서는 결코 통제할 수 없는 큰 의지의 표시인 법이다. (448)

미모이고, 재치가 있고, 자기들이 타락시킨 청년은 모든 것에 이를 수 있다고 모두들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뤼시앙을 쓰러뜨리기 위해 모든 방법을 다 사용했다. (500)

야심가들의 인생에서나, 여러 사람들이나 사정의 도움을 받으면서 잘 조합되고 일관성 있고 지속적인 행동방침에 의해서만 출세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의 인생에서는, 뭔지 모르지만 그들로 하여금 혹독한 시련을 겪게 하는 잔인한 순간이 있는 법이다. 모든 것이 동시에 어긋나고, 모든 쪽에서 실이 끊어지거나 얽히고, 모든 부분에서 불행이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이 이러한 정신적인 혼란 속에서 제정신을 잃으면 실패하고 만다. 이런 최초의 상황의 반전에 저항하고, 그 폭풍우에 완강하게 버티고, 엄청난 노력을 하여 더 높은 범주로 도피해 올라갈 줄 아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 강한 사람이다. 그래서 타고난 부자가 아닌 한 누구에게나 운명적인 일주일이라는 것이 있다. (506)

배우라는 비범한 기술에서는 이미 드물게 된 재주라는 것은 성공의 한 조건에 불과하고, 어떤 술수의 재능이 수반되지 않는 재주란 오랫동안 해롭기도 하다. 그런데 코랄리에게는 그런 술수의 재능이 절대적으로 결여되어 있었다. (508)

자기의 재능과 성격 사이에 균형을 잡으려면 위대한 사람이어야 해. 재주가 커지면 마음은 메말라가지. 거인이나 헤라클레스의 어깨라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용기가 없든지, 아니면 재주가 없는 상태로 있는 거라네. 자네는 말랐고 호리호리하니까 쓰러지게 될 것이네. (529)

훌륭한 영혼의 소유자들은 악덕이나 배은망덕을 쉽게 믿지 않는다. 그들은 혹독한 교훈을 받고 나서야 인간의 타락의 폭을 인정한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교육이 이루어지면 그런 영혼들은 경멸의 마지막 단계인 관대함까지 올라선다. (560)

그는 꿈을 꾸지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는 동요되기는 하지만 창조하지는 않습니다. 요컨대 그는, 죄송합니다만,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여자 같은 사람입니다. (...) 시적인 사람들이 모두 그렇듯 그는 게으른 사람이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대신 그것을 적당히 넘기면서 자기를 능숙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때는 용기가 있겠지만 어떤 때는 비겁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용기에 대하여 감사할 필요도 없고 비겁함을 비난할 필요도 없습니다. 뤼시앙은 하프와 같아서, 분위기의 변화에 따라 줄이 팽팽해지기도 하고 느슨해지기도 합니다. (...) 그는 너무도 가벼운 바탕에 아름다운 장점을 수놓은 화려한 결합체입니다. 세월이 가면 꽃은 사라지고 피륙밖에 남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쁜 것이면 누더기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570-572)

감탄은 너무 쉽게 표시되면 나약함의 징조가 됩니다. (571)

한 마디로 말해서 생각은 말보다는 훨씬 덜 도취시킨다.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사람은 자기가 말한 것을 믿게 된다. (581)

사람들은 자존심을 만족시키는 자비심 역시 좋아한다. (687)

"에이, 친구." 사제는 웃음 지으며 뤼시앙의 귀를 잡고, 위엄 있지만 친밀한 태도로 비틀면서 말했다. "당신이 내 은혜를 저버린다면 그때 당신은 매우 강한 사람이 되어 있을 거요. 그러면 나는 당신 앞에서 몸을 굽힐 거요. 그러나 당신은 아직 거기에까지 이르지는 못했소. 초등학생에 지나지 않은 당신이 선생님을 너무 빨리 넘어서고자 했으니까. 이것이 당신 시대의 프랑스인들의 결점이오. 프랑스인들은 모두 나폴레옹의 예로 인해 응석받이가 되었소. 당신네들이 원하는 견장을 얻을 수 없을 때는 사직서를 내던진단 말이오... 하지만 당신은 모든 의지와 행위를 한 가지 생각에 쏟아부은 적이 있소?..." (717)

오늘날 당신네 나라에서는 성공이라는 것이, 그것이 어떤 행위가 되었든, 모든 행위의 최고의 동기란 말이오. 그러므로 사실이란 것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품는 생각 속에 있는 모든 것이오. 이러한 사실로부터 젊은이, 두 번째 교훈이 생겨나는 것이오. 즉, 아름다운 외양을 갖추시오. 당신의 삶의 이면을 감추시오. 그리하여 매우 화려한 곳만을 보여주시오. 신중함은 야심가들의 금언으로서 우리 교과의 금언이기도 한데, 이것을 당신의 금언으로 삼으시오. 신분이 높은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만큼이나 비열한 행동을 범하는 것이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행동을 어둠 속에서 저지르고 미덕을 과시하는 것이오. 그래서 그들은 고상한 사람으로 남아 있는 것이오. 신분이 낮은 자들은 어두운 곳에서 미덕을 발휘하고, 비참함은 백주에 드러내보인다오. 그래서 그들은 경멸당하는 것이오. (719-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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