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나도 걱정과 필요에 쫓겨서 그곳의 문을 쾅쾅 두드리면서 들여보내달라고 청하곤 했다. 함께 저녁을 먹던 친구가 내게 아무도 사귀지 않는 것은 어떤 기분이냐고 물었을때, 나는 혼자라는 상태에 절망하고 혼자 있는 것은 무섭고 열등한 상태라고 생각했던 시절의 기분이 어땠는지가 생생하게 떠올랐다. 주말에 계획이 없다는 말에 친구 웬디가 불편해하는 것을 볼 때, 나는 한때 내가 아무 계획 없는 시간을 얼마나 겁냈는지, 그냥 가만히 앉아서 내 안의 감정이 밖으로 나오도록 여유를 주는 일을 얼마나 어려워했는지 새삼 떠올린다. 그리고 체육관에서 만난 여자처럼 사람들이 ‘우리‘라는 단어를 수시로 입에 올리는 걸 들을 때, 나는 마치 타인과 결부되지 않은 나는 존재 가치가 없다는 듯이 남들과의 관계로만 나 자신을 정의하려고 애썼던 고통스러운 시절을 떠올린다. 그날 밤 부엌에서 켈로그 만찬을 준비하며 내 집의 단정함과 조용함을 즐길 때, 그 시간이 고마운 선물이자 일종의 승리로 느껴졌다. 예전에 내가 애쓰며 괴로워했던 일들이 과거로 좀 더 멀리 물러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원래 숫기 없는 성격이다. 타인과의 소통을 늘 부담스럽게 느껴왔고, 앞으로도 아마 어느 정도는 계속 그럴 것이다. 따라서 나는 혼자 있는 걸 늘 대단히 편하게 여겼지만, 그러면서도 그 상태를 만끽할 줄은 잘 몰랐다. 혼자 방에 앉아 있으면서도 초조해지지 않는 것, 연애의 틀 밖에서도 안락과 위로와 인정을 얻을 수 있다고 느끼는 것, 내가 가진 자원만으로도-나라는 사람, 내가 하는 선택만으로도-고독의 어두운 복도를 끝까지 걸어서 밝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 것, 이런 것은 잘하지 못했다. (명랑한 은둔자, 49-50)
어머니가 즐겨 하신 말씀 중에 "인생은 드레스 리허설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었다. 술을 끊기 전 몇 달 동안 나는 저 말을 수시로 떠올렸다. 술을 지나치게 마시면, 인생의 힘든 순간들을 겪어내는 데 술에 지속적으로 의지하면, 삶의 모든 일이 현장이 아닌 연습인 양 느껴지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해 여름에 밤이면 밤마다 전화를 붙들고 애통해할 때, 나는 실제로 애도한 게 아니라 애도를 연습한 것이었다. 희석된 고통은 직면한 고통과 결코 같지 않다. 술과 자신감의 방정식, 술과 불안의 방정식도 마찬가지다. 칵테일 파티에서 마티니로 얻은 세련됨은 불안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힘겨운 작업을 거쳐서 내면으로부터 얻은 세련됨과 결코 같지 않다. (맑은 정신으로 애도하기,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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