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도 일종의 방사선이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 주위에는 이를테면 그 사람에서 연원하는 의미의 크고 작은 영역이 있어서 그 사람과 관계를 맺는 사람은 누구든 그 안으로 뚫고 들어가야 한다. 이러한 영역에는 신체적 요소들과 정신적 요소들이 풀 수 없을 정도로 촘촘하게 얽혀 있다. 한 사람에게서 나와 그 주변 환경으로 퍼져나가는 영향력들은 감각적으로 지각 가능하면서도 어떤 식으로든 정신적 섬광을 담지하고 있다. 그러한 영향력들은 실제로 단지 외적인 경우에도, 즉 그 사람의 인격을 느끼게 하는 어떠한 암시력이나 의미도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그러한 정신적 섬광의 상징으로 작용한다. (69, 1-4 장신구의 심리학)

어떤 행위나 그 산물이 우연을 넘어선 필연적 형식과 보편적 감정에 기초를 두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고립된 순간적인 자극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일 때, 우리는 이런 행위와 그 산물을 아무런 양식이 없다고 평가한다. 내가 전적으로 개인 법칙이라고 명명한 것이 필연적이고 근본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위대한 창조적 개인에게 개별적 업적은 그의 고유한 존재에 내재한 광범위한 깊이로부터 흘러나오기 때문에 바로 거기에서 확고한 기초를 발견하게 되며, 또한 능력이 뒤떨어진 사람의 경우처럼 외부에서 수용된 양식에 의한 업적과 달리 ‘지금 여기‘를 넘어서는 무엇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서 개인적인 것은 개인 법칙을 나타내는 예가 된다. 개인 법칙을 만들 만큼 충분히 강하지 못한 사람은 보편 법칙을 따라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의 업적은 양식이 없는 것이 된다. (129, 2-4 양식의 문제)

아주 위대한 개인들의 개인적 양식은 그들보다 뒤떨어진 사람듯이 추구하는 보편적 양식과 구분되는데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는 다음과 같은 광범위한 실천적 규범을 입증한다. "네 스스로 전체가 될 수 없다면, 너 자신을 거기에 봉사하는부분으로서 전체 속에 편입시키도록 하라." (130, 2-4 양식의 문제)

높이 치솟아 있는 산과는 달리 바다는 물거품이 빠져나갔다가 밀려오기를 반복한다. 아무런 목표도 없이 원인과 결과의 순환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이다. 이러한 바다는 우리 자신의 내면적인 삶의 형상을 고통스러울 정도로 꼭 닮았다. (136, 2-5 알프스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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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멜]은 죽기 얼마 전 일기에 짤막하게 평소 때의 명료함과 자의식적인 문체로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내가 지적 상속자없이 죽을 것이라는 점, 그리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안다. 말하자면 나의 유산은 많은 상속자들에게 현금으로 배분될 것이며 그들은 각각 그 몫을 <그 자신>의 성격에 맞도록 바꾸어 더 이상 유산에 의존하지 않는 형태로 사용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그의 말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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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마침내 행복했던가? 아주 그렇지는 않았다. 그녀는 의심과 자신감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거울 앞에서 옷을 벗을 때면 그녀는 그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어떨 때는 자기 몸이 자극적이라고 느끼고 어떨 때는 무미건조하다고 느끼곤 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타인의 시선에 내맡기고 있었으며 거기에는 커다란 불확실성이 있었다. / 하지만 희망과 의심 사이에서 망설이긴 했어도 그녀는 이전의 너무 조숙했던 체념에서는 확실히 벗어났다. 언니의 테니스 라켓이 이제는 그녀를 풀 죽게 하지도 않았다. 그녀의 몸은 마침내 몸으로 살았고 그녀는 그렇게 사는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이 새로운 삶이 속임수 약속이 아닌 다른 것이길, 오래 지속되는 진실이길 소망했다. 그녀는 엔지니어가 그녀를 대학의 긴 의자와 태어난 집에서 빼내 주길, 그리고 이 사랑의 모험을 인생의 모험으로 만들어 주길 소망했다. 그녀가 임신을 그렇게 열광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녀는 자기 자신과 엔지니어 그리고 아이를 그려 보고 있었고, 그녀에게는 이 삼인조가 하늘의 별들에게까지 올라가 우주를 가득 채우는 것만 같았다. / 앞 장에서 이미 설명했거니와 엄마는 곧 깨달았다. 사랑의 모험을 추구하던 남자는 인생의 모험을 두려워하고 그녀와 더불어 하늘의 별까지 올라가는 이인조 조각상으로 변하기를 조금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그러나 우리는 또한 안다. 이번에는 애인의 냉담함이 내리눌러도 그녀의 자신감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매우 중요한 무언가가 확실히 변했다. 얼마 전까지도 연인의 눈이 마음대로 내려다보던 어머니의 몸은 이제 자기 역사의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선 참이었다. 그 몸은 타인의 눈에 대한 몸이기를 그쳤고, 아직 눈을 가지지 않은 누군가를 위한 몸이었다. 외부의 표면은 이제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몸은 내부 장기로, 아직 아무의 눈에도 보인 적 없는 다른 몸에 가닿고 있었다. 외부 세계의 눈들은 그러니까 비본질적인 모양만을 포착할 수 있을 뿐이었고 엔지니어의 견해조차 몸의 그 위대한 운명에 전혀 영향을 미칠 수 없으므로 이제 아무 상관이 없었다. 몸은 마침내 독립성에, 그리고 완전한 자율성에 도달하게 되었다. 점점 불러 오고 보기 흉해져 가는 배는 이 몸에게는 끊임없이 커져 가는 자부심의 저장고였다. (18-19)

연인이 그녀의 가슴에 입 맞출 때 그것은 나중에 여러 시간의 의심과 불신으로 대가를 치러야 하는 한순간이었다. (19)

아, 전혀 아니었다! 사랑의 행복이라 일컬은 것이 자기에겐 단지 고통스러운 노역일 뿐이었다는 걸 그녀는 그에게 말하지 않았고, 망가진 자기 배가 얼마나 수치스러웠는지도 말하지 않았으며, 또한 신경발작이 있었다는 것도, 무릎을 다쳤다는 것도, 일주일 내내 잠을 자야 했다는 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런 솔직함은 그녀 본성에 맞지 않았으므로, 그리고 그녀는 이제 마침내 다시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고자 했으므로, 그런데 솔직하지 않아야만 자기 자신일 수 있었으므로, 그래서 그녀는 그런 말들을 하지 않았다. 그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는다는 것, 그것은 터서 갈라진 자국 투성이 배를 다시 다드러낸 채 벌거벗고 누워 있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84)

그는 이제 더 이상 방금 겪은 것에 종속되지 않았고, 그가 방금 겪은 것이 그가 쓴 것에 종속되어 있었다. (91)

보통 돌이킬 수 없는 무언가가 막 일어나려는 찰나가 되면 사람들은 사건의 진행을 (이에 대해 자신이 하여간 최소한의 힘이라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더 가속시키는 법이다. (192)

이제 그는 모든 것을 이해했다. 자신의 삶 전체가, 버려진 공중전화 부스 안에서 아무 데도 전화 걸 수 없는 수화기를 마주하고 그저 하염없이 서 있는 기나긴 기다림일 뿐이었다는 것을, 이제 그의 앞에는 하나의 출구밖에 없었다. 버려진 전화 부스에서 나오는 것, 빨리 거기에서 나오는 것. (249)

당신은 한 아이에 대한 이르지 오르텐의 아름다운 시를 아마 알 것이다. 그 아이는 어머니의 몸속에서는 행복했으나 세상에 태어나는 것을 가혹한 죽음, 빛과 무서운 얼굴들로 가득한 죽음으로 느끼며, 그래서 뒤로, 어머니 안으로, 매우 감미로운 그 향기 속으로 되돌아가고 싶어 한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젊은이는 어머니 몸 안에서 자기 혼자 가득 채우고 있던 이 우주의 안전함과 단일성에 대한 향수를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으며, 또한 이타성의 망망대해 속 한 방울 물처럼 흔적도 없이 자신을 집어삼키는 어른들의 상대성의 세상 앞에서 불안을 (또는 분노를)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열렬한 일원론자이며 절대성의 메신저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자신의 시로 자신만의 우주를 엮어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혁명가는 단 하나의 사상으로 주조된 근본적으로 새로운 세상을 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사랑에서도 정치에서도 타협을 인정하지 않는다. 반항하는 학생은 역사를 통틀어 전부가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부르짖으며, 스무 살 빅토르 위고는 진창길에서 약혼녀 아델 푸셰가 발목이 드러나게 치마를 들어 올리는 것을 보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펄펄 뛰다. 난 옷보다는 정숙한 게 훨씬 중요한 것 같아. 나중에 그는 엄격한 편지에서 그녀를 이렇게 비난하고는 또 위협한다. 어떤 건방진 녀석이 감히 당신을 쳐다봐서 내가 그 친구 따귀를 때리는는 일이 벌어지게 하고 싶지 않으면 내가 지금 하는 말 명심해야 해!
이렇게 비장한 위협 소리를 들으면 어른들의 세상은 웃음을 터뜨린다. 시인은 연인의 발목이 저지른 배신에, 그리고 군중의 웃음소리에 상처를 받고, 그리하여 시와 세상의 갈등의 드라마가 시작된다.
어른들의 세상은 절대성이란 환상에 지나지 않음을, 인간의 그 무엇도 위대하거나 영원하지 않음을, 남매가 한 방에서 자는 것이 지극히 정상임을 잘 안다. (361-362)

노하자는 시끌벅적한 젊은이들을 지켜보다가 문득, 이 강당에서 자유의 특권을 지닌 이는 자신뿐이며 그것은 자신이 나이가 들었기 때문임을 깨닫는다. 사람이 자기 무리의 의견을, 대중과 미래의 의견을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이 들었을 때뿐이다. 나이 든 사람은 이제 가까이 다가온 죽음과 더불어 혼자이며, 죽음에는 눈도 귀도 없으며, 그러니 죽음한테 잘 보일 필요가 없다. 이제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 있고 말할 수 있다. (285)

그녀는 거짓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있는 그대로와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것을 구분하지 않는, 그리고 자기 마음의 욕망과 진실을 같은 것이라 여기는 그런 예외적 영혼에 속했다. 그녀는 분명 사십 대 남자에게 했던 말을 기억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또한 자기가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지금 기억의 실제 존재 권리를 거부하는 것이었다. (449)

사랑했던 아내가 죽은 후로 그는 여자의 눈물을 아주 싫어했다. 여자들이 자기네 삶의 드라마에 그를 배우로 집어넣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그를 두렵게 하는 것처럼, 여자의 눈물은 그를 두렵게 했다. 그런 눈물에서 그는, 운명이 없는 자신의 평화로운 삶에서 자기를 끌어내려고 온몸을 조이는 촉수를 보았다. 그는 눈물이 혐오스러웠다.
그래서 그는 좋아하지 않는 물기가 손에 느껴지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어서 이 눈물의 힘에 이번에는 저항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며 훨씬 더 심하게 깜짝 놀랐다. 사실 이것은 사랑의 눈물이 아니며,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고, 책략도, 무슨 협박 수단도, 소동을 부리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는 알았다. 그 눈물은 그냥 다만 그렇게 눈물로 흘러내리는 데 족할 뿐이며, 사람에게서 보이지 않게 슬픔이나 기쁨이 새어나오듯 아가씨의 눈에서 흐르는 것임을 그는 알았다. (458-459)

오로지 진정한 시인만이 시라는 거울의 집이 얼마나 서글픈지를 안다. 유리창 너머에는 멀리서 울리는 총격 소리, 떠나고 싶어 불타는 마음이 있다. 레르몬토프는 군복 단추를 여민다. 바이런은 침대 머리맡 탁자 서랍에 권총을 넣어 둔다. 볼케르는 자신의 시구절 속에서 군중과 더불어 행진한다. 할라스는 저주를 시로 쓴다. 마야코프스키는 자기 노래의 목을 짓밟는다. 찬란한 전투가 거울 속에서 맹위를 떨친다. / 하지만 조심하라! 시인들이 실수로 거울 집의 한계를 넘어서면 죽음을 맞이하게 되느니, 그들은 총을 쏠 줄도 모르고, 또 쏜다 해도 자기 머리나 맞히기 때문이다. (473)

명예는 네 허영심의 허기일 뿐이다. 레르몬토프. 명예는 거울의 환상이며, 명예는 내일이면 여기 존재하지 않을 이 무의미한 관객을 위한 공연일 뿐! / 그러나 레르몬토프는 젊고, 그가 살고 있는 순간순간들은 영원과 같으며, 그를 쳐다보고 있는 이 몇 신사 숙녀들은 세상이라는 대강당이다! 그가 이 세상을 사나이답고 굳센 걸음으로 걸어 나가느냐, 아니면 살아갈 자격도 없게 되느냐, 둘 중 하나인 것! (491)

권총 한 발이 발사되고 레르몬토프는 가슴에 손을 가져갔고,
야로밀은 발코니의 얼음장 같은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졌다. / 오, 나의 보헤미아여, 그대는 그렇게나 쉽게 총성의 영광을엉덩이를 걷어차는 익살로 바꿔 버리는구나! / 그렇지만 야로밀이 레르몬토프의 패러디일 뿐이라고 해서 우리가 그를 비웃어야 할까? 화가가 가죽 코트를 입은 앙드레 브르통을 모방했다고 해서 우리가 화가를 비웃어야 할까? 앙드레 브르통 역시 자기가 닮고 싶어 했던 어떤 고귀한 것의 모방이 아니었는가? 패러디란 인간의 영원한 운명이 아닌가? / 게다가 이 상황을 뒤집어 보는 것보다 더 쉬운 일도 없다. // 권총 한 발이 발사되고 야로밀은 가슴에 손을 가져갔고, 레르몬토프는 발코니의 얼음장 같은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졌다. (494-495)

엄마는 행복의 커다란 눈물방울을 통해 세상을 본다. 그녀 주변 모든 것이 물기 속에 흐려진다. 형태의 속박에서 풀려난 사물들은 기뻐하고 춤춘다. (511)

야로밀은 자기에게 말하고 있는 이 여인(엄마)이 늘 한결같이 자신을 사랑했음을, 한 번도 자기를 떠난 적이 없음을, 자신이 한 버도 그녀를 잃을까 두려워한 적이 없음을, 그녀가 자신을 한 번도 질투하게 만든 적이 없음을 깨닫는다. (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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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종 밤에 나를 사로잡곤 하는, 공포보다도 훨씬 강한 불안감을 느꼈다. 이젠 그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고 나 자신을 책임져야 한다는 느낌. 엄마도 아무도 없이. 그가 밤새도록 아파트 앞에서 지켜봐줬으면, 밤새도록 그리고 그 이후로도 밤마다 보초처럼, 아니, 나를 지키는 수호천사처럼 지켜봐줬으면 싶었다. (83)

오직 도망치는 순간에만 온전히 나 자신이었다. 나에게 유일한 좋은 추억은 도피 혹은 가출의 추억뿐이다. 하지만 삶이라는 것이 언제나 다시 우위를 점하곤 했다. (103)

더이상 잃을 것이 없는 지금에야 나는 이 말을 할 수 있다. 거기서 나는 내 인생에 단 한 번 영원한 회귀‘가 무엇인지 느꼈다고. 그때까지 나는 독학자의 선의를 가지고 그 주제에 관한 작품들을 읽어보려고 노력했었다. 에글리즈 도퇴유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가기 바로 직전이었다. 왜 이 장소란 말인가? 나는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건 하등 중요하지도 않다. 나는 잠시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우리는 영원히, 그곳, 같은 장소에, 함께 있었고, 오퇴유를 가로지른 산책을 수천 번의 또다른 삶 동안 이미 했었다. 시계를 볼 필요도 없었다. 나는 정오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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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감정과 감성이 물질적인 성질을 띤다는 것을 처음으로 분명히 알게 되었고, 온몸으로 그것들의 밀도와 형태뿐만 아니라, 내 의식의 제재를 받지 않는 그들의 독립성과 완벽한 행동의 자유를 느꼈다. 이러한 내면 상태에 견줄 만한 것들을 자연에서 찾을 수 있었다. 날뛰는 바다, 깎아지른 절벽의 붕괴, 심연, 해조류의 증식. 난 물과 불에 빗댄 비유와 은유의 필연성을 이해하게 되었다. 심지어 가장 닳고닳은 표현조차도, 어느 날 그 누군가가 실제 겪었던 것이다. (21)

사실, 열정의 폐해를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만이 카타르시스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24)

그 당시에 나는 내 행동이, 그리고 내 욕망이 품위 있는 것인가 아닌가를 문제삼지 않았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확실하게 진실에 도달하기 위하여 치러야 할 대가가 바로 그런 질문을 제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믿게 된 것이다. (36-37)

글쓰기를 통해 나의 강박증과 고통을 여기에 노출하고 있는 행위와, 랍 대로에 가면 그들 눈에 띌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노출을 두려워하던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글쓰기, 그것은 무엇보다도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서 행하는 것이다. (...) 지금은 내 강박증을 드러내고 헤집어보는 일이 전혀 거북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반항심도 전혀 없다. 진실을 말하자면, 난 정말이지 아무 느낌도 없다. 나는 나를 본거지로 삼았던 그 질투가 꾸며내는 온갖 상상과 행동들을 묘사하려고만 애쓰며, 개인적이며 내밀한 것을 느낄 수 있고 알 수 있는 실체로 변모시키려고만 애쓰고 있다.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 형체 없는 익명의 사람들이 아마도 그것들을 제 것으로 삼을 것이다.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더이상 나의 욕망, 나의 질투가 아니라 그저 욕망, 질투에 속하는 것이고, 나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 곳에서 작업하고 있는 것이다. (43-44)

상대방과 다른 점은 모두 열등한 것으로 바꾸어놓으며 자아를 지워버리는 질투라는 감정을 겪으면서, 나의 육체, 나의 얼굴뿐만 아니라 나의 활동, 내 존재 전체가 평가 절하되고 있었다. 심지어 그가 그 여자의 집에서 내 집에는 나오지 않는 파리 프르미에르 채널을 시청할 수 있단는 사실이 죽도록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그 여자가 운전할 줄 모르고 면허시험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은 지적 탁월함의 징표로, 실제적인 것들에 대한 무관심이 보여주는 우월성의 표지로 느껴졌다. (48-49)

가장 커다란 행복처럼 가장 커다란 고통도 타자로부터 오는 것 같다. 나는 두려움 때문에 그 고통을 피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이해한다. 그들은 그 고통을 두려워하여 적당히 사랑하거나, 음악이나 정치참여, 정원이 있는 집과 같은 관심사의 일치를 더 중시하거나, 혹은 삶과 유리된 쾌락의 대상으로 여러 명의 섹스 파트너를 둠으로써 그것으로부터 도망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고통이 육체적 사회적 고통에 비하면 비이성적이며 심지어 물의를 일으킬 만한 것일지라도, 하나의 사치일지라도, 나는 생의 평온하고 유익했던 몇몇 순간보다도 그 고통을 더 사랑할 것이다. / 심지어 나는 학업과 악착스런 노동, 결혼, 출산의 시기를 거치면서 사회에 갚아야 할 몫을 다 지불하고 난 뒤, 청소년기 이래 시야에서 놓쳐버린 본질적인 것에 드디어 몰두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50)

어느 일요일 P의 텅 빈 중심가를 걷고 있었다. 카르멜 수도원의 문이 열려 있었다. 난생 처음으로 그곳에 들어가보았다. 한 남자가 얼굴을 성상 앞 바닥에 대고 양팔을 십자가 모양으로 벌린 채 길게 엎드려 큰 소리로 시편을 읊고 있었다. 못박힌 듯 엎드린 남자의 고통을 지켜보고 있자니, 나의 고통은 진짜가 아닌 것 같았다. (60)

(학교에서 문학 텍스트의 구절들에 제목을 붙이듯이, 자기 삶의 순간들에 제목을 붙이는 것은 아마도 삶을 통제하는 수단이 아닐까?)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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