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때 친구네 집에 갔다가 퇴근해서 돌아온 친구의 아버지가 친구를 번쩍 안아 올리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놀랍고 부럽고 약간은 어처구니없기도 했다. 내게는 너무도 낯선 광경이었다. 우리 가족 사이에는 포옹이란 게 없었다. 4학년인가 5학년 때는 친구네 엄마의 욕실에 들어갔다가 거기 널린 물건들을 보고 기겁을 했다. 로션과 파우더와 각종 튜브, ‘딸각‘ 소리를 내며 열리고 닫히는 콤팩트, 우리 어머니는 잡다하게 물건을 사 모으는 취미가 없었다. 화장품도 립스틱과 파우더만 약간씩 쓸 뿐이었다. 그리고 카탈로그에서 특별 주문하는 피어스 글리세린 비누를 빼고는 값비싼 미용 제품 같은 것에 욕심을 내지도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은 좀 이상하게 사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을 통해서 활력이 부족하고, 감각적인 것을 회피하고, 즐거움을 만끽하지 못하는 우리 집의 분위기가 일반적인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61-62)

내면의 공허를 술로 채우고, 끝까지 술을 추격하고, 그런 과정에서 때로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는 술은 끊을 수 있지만, 실제로 더욱 끊기 어려운 것은 바로 그러한 추격이다. 그래서 AA 모임에 가면 술과 결별하고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알코올 중독자 같은 사고와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넘쳐난다. 외부의 해결책을 찾는 탐색은 계속된다. 우리는 뭔가를 원하고 뭔가가 있어야 한다. (80-81)

어떻게 보면 술의 행로는 매우 단순하다. 어느 순간까지 알코올은 모든 것을 개선한다. 하지만 그 순간을 넘어서면 모든 것을 망쳐버린다. 그리고 아직 개선 도정에 있는 동안 술이 우리를 다른 자아로 고양하는 능력은 그야말로 놀랍다. (87)

그러나 이런 방식의 자기 변모는 어떤 버전의 자신이 믿을 만한 것인지, 어떤 것이 진실인지 알 수 없게 된다는 데 문제가 있다. 나는 제임스나 일레인과 함께 있을 때는 뻔뻔하고 냉소적인 사람이 되었고, 샘과 함께 있을 때는 친밀한 버전이었으며, 친척들과 함께 있을 때는 얌전하고 세련된 버전이 되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뭐가 뭔지,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어떤 버전의 내가 본래 내 속에 있던 것이고 어떤 버전의 내가 외부의 상황에 따라 만들어진 것인지 도저히 파악할 수가 없었다. (97)

AA 모임에 나가면 가장 먼저 듣는, 그리고 가장 먼저 우리 가슴에 사무치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알코올 중독의 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우리의 인격이 성장을 중지한다는 이야기다. 술은 우리가 성숙한 방식으로 A 지점에서 B 지점으로 이동하려면 겪어야 하는 힘겨운 인생 경험을 박탈한다. 간편한 변신을 위해 술을 마신다면, 술을 마시고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이 된다면, 그리고 이런 일을 날마다 반복한다면 우리가 세상과 맺는 관계는 진흙탕처럼 혼탁해지고 만다. 우리는 방향 감각도 잃고 발딛고 선 땅에 대한 안정감도 잃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자기 자신에 대한 가장 기본적 사항들(두려워하는 것, 좋아하는 느낌과 싫어하는 느낌, 마음의 평안을 얻는 데 필요한 것)도 알 수 없게 된다. 술에 젖지 않은 맑은 정신으로 그것을 찾아 나선 적이 없기 때문이다. (97-98)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 그러니까 술이라는 정신의 마취제 없이도 하루하루를 밀고 나가는 사람들은 외부의 힘에 막연한 기대를 하지 않으며, 개인의 진정한 힘과 희망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경험의 축적을 통해서, 즉 자기 앞에 닥친 과제들을(아무리 고통스럽고 두려운 일이라 해도) 하나하나 해내는 과정을 통해서 얻어진다는 사실을 터득하고 있다.
하지만 술을 마시는 사람은 그러지 못한다. 고통스러운 감정을 뚫고 지나가는 것과 그것을 외면하는 것의 다른 점을 알지 못한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멍청히 앉아 술을 들이켜다가 취하는 것뿐이다. (134)

혼자 술 마시는 일이 역설적인 것은(그러면서 정말로 위험한 것은) 우리가 정서적으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만난다고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혼자 술 마시던 시절, 술이야말로 내 진정한 감정의 문을 열어주는 유일한 도구라고 느꼈다. 술을 마시고 녹아내린다, 술을 마시고 흐느낀다. 술을 마시고 다른 사람에게 전화 걸어 고통을 호소한다. ‘우울해. 외로워. 나를 좀 도와줘.‘ 하지만 술은 기만의 도구다. 술이 빚어내는 감정은 환각이다. 다음날이 되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전화를 걸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아침에 깨어나면 분명한 사실 하나는 머리가 아프다는 것뿐이다. (143)

음주 행위는 두뇌의 보상 체계를 인위적으로 ‘활성화하는‘ 것이다. 마티니를 한두 잔 마시면, 알코올이 행복감을 전해주는 두뇌 회로 구조에 영향을 미쳐서 도파민이라는 신경 전달 물질의 분비를 촉진한다. 도파민은 바로 쾌락과 보상 감각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세월이 흐르면(그리고 그동안 알코올이 일정 수준 이상 남용되면) 우리 두뇌는 그런 인위적인 활력 증가에 ‘대상성 적응compensatory adaptation‘이라는 것으로 대응한다. 내적 물질 균형을 본래의 상태로 되돌리려고, 도파민의 분비를 감소시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본래의 쾌락과 보상 회로는 고갈된다.
그리고 악순환이 이어진다. 계속해서 술을 마시면 우리 두뇌는 행복감과 안정감을 제공하는 능력이 감퇴하고, 그러다 보면 그런 느낌을 만들려고 점점 더 인위적인 자극(알코올)에 의존하게 된다. (152-153)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워 내 소심함을 떠올리고는, 술이란 인격의 덫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자신의 소심함을 그토록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오랫동안 끈질기게 간직한 것은 내가 진정한 자아를 술로 가렸기 때문이 아닌가, 술로 내 내부체계를 마비시키기 전에는 사람들에게 나를 알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194)

많은 알코올 중독자가 평범한 과음 수준을 벗어나 고삐 풀린 폭음의 단계로 넘어갔을 때 자신이 무슨 일을 할지 예측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런 일은 외부의 사건처럼 우리에게 그냥 닥쳐온다. AA 모임에 가면 흔히 듣는 말, "내가 술을 마실 때마다 나쁜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는 언제나 술이 관련되어 있었어요". 진성 알코올 중독자들은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은 때를 더 열심히 기억한다. 친구들과 즐겁게 술 마신 때를, 집에 안전하게 돌아온 때를, 자기 침대에서 깔끔하게 깨어난 때를………. 그리고 불미스럽고 수치스러운 일이 일어났거나 지난밤의 일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뭔가 변명을 둘러댄다. 비난의 화살을 돌릴 대상을 찾는다. 스트레스, 힘든 인생, 호르몬. (197)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은 매일같이 하는 선택이다. 어떤 날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 선택을 해야 한다. 선택은 매우 간단하다. 술잔을 들거나 들지 않거나. 하지만 그 추수감사절 모임 같은 경우는 좀더 복잡하다. 그런 날 술을 안 마신다는 것은 몇 가지 진실을 인정하는 일이다. 자기파괴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적어도 나에게는), 그런 감정을 술로 다스리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지도 변화시키지도 못한다는 것, 술이 제공하는 해법은 결국 무용지물이고 패배적인 방편이라는 것을. 알코올 덕분에 나는 오랜 세월 동안 여러 가지 번잡한 노역을 피할 수 있었다. 감정을 다스리는 일이라든가, 내가 물려받은 조용하고 억제되고 예민한 성격을 인정하는 일, 또 남이 와서 내 욕구를 해결해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해결 방법을 찾는 그런 많은 일을. 그러니까 한마디로 알코올은 내 성장을 가로막은 것이다.
이런 말은 너무도 당연해서 말하자마자 그냥 상투적인 표현으로 여겨지지만, 그 순간까지도 나는 성장이란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며, 어른이란 생물학적인 나이가 아니라 정서적인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정서적 수준이란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스스로 선택하는 것임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내가 아는 많은 사람(알코올 중독자든 아니든 간에)이 그렇듯이, 나 또한 내 인생의 많은 시간을 성숙이 외부에서 불쑥 찾아오기를 기대하며 지냈다. 마치 성숙이라는 것이 하룻밤 사이에 일어날 수도 있는 사건인 것처럼. 아버지나 줄리안 같은 남자들이 소량의 세련미와 자신감을 줄 수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성장이란 우리에게 닥치는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중독을 벗어나는 일은 이런 오해를 뒤집어서 성장은 안에서 뻗어나오는 것이며, 시도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을 통해 얻는 것임을 이해하는 것이다. 술을 끊으면 우리는 이제 기다리지 않게 된다. 어느 날 누군가 찾아와서 내가 해야 할 성장의 노역을 대신 해줄 거라는 끈질기고도 인간적인 소망을 버리게 된다. 비로소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주변 상황들, 특히 부모님의 죽음은 한동안 내 어린 시절의 껍질을 부식시켰지만, 그 대부분은 내 의지로 한 일이 아니었다. 술을 끊은 건 아마도 내가 그때까지 내린 결정 가운데 진실로 어른스럽다고 할 수 있는 최초의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나 자신을 위한 성장의 발걸음이었다. (306-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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