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현실은 더욱 악화되고 있고 여성노동자의 빈곤화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더욱 더 소외되고 있다. 이번 3. 8 세계여성의날 96주년을 기념하여, 홍대앞 ‘떼아뜨르 추’에서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담은 영화제가 개최된다.
한국여성노동자협의회와 전국여성노동조합이 기획한 이번 영화제는 “여성노동의 차별과 빈곤을 넘어”라는 주제로, 총 30여 편의 국내외 영화들이 상영된다. 대부분 영화가 평소 보기 어려운 영화들이다. 그 가운데 눈여겨볼 만한 영화들을 미리 살펴보자.
개막작으로는 철도여성노동자 이야기를 다룬 <소금>(박정숙 감독, 2003년 작)이 상영된다. 인력 부족과 야간 근무로 힘들게 일하고 있는 철도여성노동자들 가운데 50% 가량이 유산을 경험한 사실을 바탕으로 여성노동자의 건강과 모성보호 문제를 화두로 던진다.
‘세계화, 차별과 빈곤의 굴레’ 세션에선 세계화란 이름으로 제3세계를 겨냥한 초국적 자본이 여성노동을 어떻게 소외시키고 있는지 다룬 다큐멘터리들을 볼 수 있다. 인도의 슬럼가에 밀집된 작은 공장 노동자의 이야기 <자리마리>, 태국, 스리랑카, 한국의 여성노동자 현실을 다룬 <먼지덮인 인형>, 의류산업에서의 보이지 않는 착취에 관한 <티셔츠 속에 감춰진 착취>, <미키마우스 아이티에 가다>, <브랜드의 이면> 등은 차별과 빈곤의 악순환을 보여준다.
‘여성으로, 노동자로 살아가기’에선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 받는 고용현실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풀고 있다. 여성노동자의 하루를 그린 <월급날>, 결코 ‘뷰리풀’하지 않은 일상의 역설적 표현인 <오! 뷰리풀 라이프>, 직장 내 성희롱이 여성노동자들에게 어떤 고통을 주는지의 문제를 다룬 극영화 <재희 이야기>, 평등한 일과 출산, 양육에 대한 현실을 보여주고 대안을 제시하려는 <선택은 없다> 등은 중요한 여성노동 이슈들을 제기한다.
10명 중 7명 이상이 비정규직인 여성노동 현실에서 ‘비정규직, 70%의 이야기’는 이들의 힘겨운 투쟁 과정을 접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일본 국가기관의 시간제 노동자 이야기 <법과 법 사이에 있는 여성들-공무임시직>, 미국과 홍콩의 여성노동 현실을 볼 수 있는 <패스트푸드 우먼>, <쓰레기의 그늘>은 외국의 현실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또한 여성노동활동가를 통해 본 여성노동자의 문제라는 독특한 형식의 <동행>, 골프 경기보조원, 학원강사, 구성작가, 청소미화원, 식당조리사, 파견사무직 등 대다수가 비정규직이면서 여성인 이들의 현실을 생생하게 드러낸 <나는 날마다 내일을 꿈꾼다>, 한성 컨트리클럽 경기보조원들의 투쟁 일지 <겨울에서 겨울로>에서는 때론 절망하면서도 꿋꿋하게 맞서는 여성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일어서라’는 그 동안 온갖 차별과 불의에 맞서 싸운 드러나지 않은 기록을 통해 희망과 용기를 가질 것을 제안하는 장이다. 1980년대 외국자본에 맞선 여성노동자들의 귀한 투쟁의 결실에도 불구하고, 자본과 언론은 물론 운동을 하는 이들에게조차 소외 받은 마산자유무역지역의 숨은 이야기 <눈물꽃>, 여성노동자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려 하는 남성중심적 현실을 고발한 <평화란 없다>, 알리안츠 제일생명 사내부부 우선 해고에 관한 다큐멘터리 <83인의 인질>, 사측의 노조 탄압에도 불구하고 1년 여간 힘겨운 투쟁을 이끌었던 청구성심병원 노동자의 투쟁과 승리에 관한 기록 <꼭 한걸음씩>은 주목할 만하다.
이번 영화제의 ‘옛날 영화를 보다’에선 두 편의 오래된 영화가 상영된다. 하나는 1979년 작 <노마레이>로, 한 평범한 여성(셀리 필드 분)이 자신의 현실에 눈을 뜨고 노동운동가로 성장해가는 미국 노동운동사의 전설적인 인물에 관한 실화다. 다른 하나는 미국 영화계에서 블랙 리스트에 올랐던 유일한 영화로, 그만큼 화제를 불러일으킨 영화 <대지의 소금>(1954년 작)이다. 남편대신 파업을 주도해 나가는 광부의 아내들이 수동적 피해자가 아닌 사회 변혁가로 성장하는 용감하고 통쾌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밖에도 이번 영화제에서는 여성의 노동이 소외되듯 여성노동자들을 다룬 작품이 만들어지기 힘든 현실에서, 카메라를 들고 뛰어야 하는 여성현실에 대한 워크숍 <여성노동자,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어라>가 열린다.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이들이 카메라를 들 수 있도록 독려하기 위한 자리다.
여성노동영화제는 영화를 함께 본다는 의미를 넘어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 함께 토론하고 이야기하는 소통의 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자세한 내용과 시간표는 홈페이지(www.38women.or.kr)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