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땟깔 나는 비쥬얼을 보시라.
봉준호 감독이 물이 올랐다.감독이 관객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서 능수능란하게 영화를 조물락 조물락거린다.관객의 머리싸움에서 절대 지지 않고 예측 할 수 없을 정도로 관객을 처음부터 쪼인트로 한대 치고 코너로 팍 몰아넣는다.영화의 괴물은 베일에 쌓여있지 않고 영화 시작 15분도 안돼서 홀연히 한강 교각에 나타나 관객의 혼을 빼놓는다.<플란다스의 개>,<살인의 추억>이후 봉준호는 엄청 성장했고 계속 발전할 것이다.봉준호는 현재 진행형이다.
봉준호 사단이라는 송강호,배두나,박해일,변희봉의 현악 4중주가 스크린을 빠방하게 때린다.실제 괴물을 보지 못한 채 순수히 배우들만의 상상력이 빚은 연기는 발군이다.감독에 의하면 괴물 CG없이 오로지 배우들만의 연기만 따로 모아 DVD서플먼트에 실을 계획이란다.사실 이런 작업은 굉장히 힘든 과제다.감독의 주문과 싸인이 배우에게 녹아들어가고 배우와 감독의 손발이 척척맞아 들어맞기 위해서는 탄탄한 시나리오가 아니였으면 불가능한 영화였다.그래서 봉준호는 인터뷰에서 내가 '아' 하면 저기서 '어'하게 바로바로 튀어나올 수 있는 배우들을 쓴 것이다.
영화에서 괴물은 포르말린이라는 독극물의 먹고자라난 돌연변이체다.한가로운 한강 고수부지의 일상에 사람을 무자비로 공격하고 찬물을 확 끼얹는다.괴물은 매점 주인 강두의 딸 현서를 원효대교 북단으로 잡아가고 한강은 오염지역으로 선포돼 폴리스 라인으로 접근이 불가다.딸을 잃은 아버지의 슬픈 냄새가 진동해 강두를 성장시킨다.강두의 머릿속에는 딸을 구해내겠다는 일념 그거 하나로 괴물을 추적한다.<플란다스의 개>에서 강아지를 쫒고 <살인의 추억>에서는 미궁에 쌓인 연쇄살인자을 쫒고 <괴물>에서도 여전히 딸을 납치해간 괴물의 뒤를 쫒고 있다.
봉준호는 사회학과 출신답게 사회현상과 현실에 대해 관심이 많다.게다가 TV도 열심히 본다.포르말린이라는 독극물은 한때 <피디수첩>에서도 다뤄져 인근 주변 지역 주민들이 피해 사례가 보도된 적이 있었다.내 기억이 맞다면 포르말린을 무단으로 폐기시킨 곳은 통조림을 상업적으로 운영하는 회사였지 미군은 아니였던 걸로 기억한다.강두가 골뱅이 통조림을 까먹은 것도 우연의 일치가 아닌 것이다.하지만 미군들이 토해놓은 오염원들이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고 한국 땅을 업었다 뒤집었다 손바닥 뒤집듯 주무르고 있고 한국인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로서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괴물>을 반미로 보는 시선은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반미와 친미의 이분법을 넘어서 지금 한강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어처구니 없는 사태에 대해서 딸을 잃은 강두의 가족들은 어디에도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현실적으로 국가적 재난 상태에서 가족들은 영정이 길게 늘러뜨리고 카메라 플래쉬가 쉴 새 없이 주제 넘게 터뜨리는 곳에서 목 놓아 하염없이 우는 것 밖에는 달리 할 도리가 없다.KAL기 참사사고가 나고,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성수대교가 끊어지고,대구 지하철이 날라가고,태풍이 강타해서 집이 박살나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텅 빈 교실이나 마을회관에 임시로 모여 잠자리를 해야 할 사나운 팔자다.
국가에서 사회적 재난과 재앙 혹은 예기치 못했거나 미리 충분히 예측했던 사태가 벌어지면 대한민국의 윗대가리들이 하는 일이라곤 사태를 객관적이고 냉정하고 합리적으로 분석해 일처리를 하기보다는 서로가 꽁무니 빼기 바쁘지 않은가?언론에서도 며칠 정도 집단적으로 확 끊어올랐다가 다른 사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 관심밖으로 밀려나는 순환 패턴이지 않은가?솔직히 말해 지금 황우석이란 사기꾼은 어디서 뭐하고 있는지 궁금하지도 관심도 없지 않은가?
결국엔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는 없었고 그가 사이언스에 게재한 논문도 조작으로 밝혀졌다.영화 <괴물>에서도 송강호가 위트있게 던지는 대사처럼 '노바이러스'다.괴물의 존재는 한국 사회가 부지불식간에 만들어 낸 괴물이었던 것이다.칸느에서 기립박수를 받고 봉준호가 내뱉은 말은 <괴물>은 한국 사람들이 더 잘 이해하는 영화라는 것이였다.그래서 <괴물>은 하수구에서 부패되서 썩은 내가 지독하게 풍기는 한국 사회에 대한 애증이 교묘하게 결합된 영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는 다리위에서 자살하려는 중년이 마지막에 따라지들에게 뱉은 말 "끝까지 둔한 새끼들"그렇다.괴물의 움직임과 동태가 눈에 빤히 보이는 사람이 있듯이 끝까지 미련하고 둔하게 괴물을 키워 온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보는 것 같다.명장면은 거의 끝날 무렵 강두가 쇠파이프를 가지고 괴물과 1:1로 필사적으로 사투하는 장면이다.마치 <살인의 추억> 마지막에 박두만이 관객을 향해 시선을 쏘아부치듯이 쇠파이르를 괴물의 아가리에 집어쳐넣는 장면에서 괴물을 처참히 밟아 뭉갠 건 아버지 희봉도 4년제 대학을 나온 남일도 양궁선수 남주도 아니였다.우리가 보기에 그렇게 미련하고 둔하고 어리숙하게만 보이고 어리버리하고 덜 떨어진 듯 보였던 철부지 강두가 어느 새 괴물의 존재에 대해서 가장 많이 알고 있으며 진정으로 사태에 대해 가장 가까이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따라서 강두의 모습은 현재의 우리의 모습이자 괴물을 눈 부릅뜨고 마주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해가는 미래의 모습이다.이런 점에서 <살인의 추억>의 서태윤이 서양의 합리성을 한국에 이식했던 모델이라면 <괴물>의 강두는 괴물이란 존재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키어 온 둔한 아버지가 국가 권력으로부터 저항하는 모델로 진화한다.여기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가 굉장히 중요하다.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딸은 이미 괴물에 의해 납치됐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손은 다른 딸아이의 손을 잡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이처럼 영화 <괴물>은 대사 하나하나와 배우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다.감독은 괴생물체의 움직임도 생생하게 잘 포착했고 한강이라는 공간에 새로운 시각을 부여했다.영화를 보는 내내 손에 땀에 쥐도록 긴장감있게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배우들의 혼신의 힘을 다한 연기와 감독의 역량이 돋보이는 역작으로 한국 영화에 남을 것이다.단순한 괴수영화를 뛰어넘는 <괴물>의 봉준호는 시간이 켜켜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궁금해지고 기대가 되는 감독이다.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한국 영화의 미래는 그리 어둡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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