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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숭배와 광기 - 개정판
발트라우트 포슈 지음, 조원규 옮김 / 여성신문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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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텔레비전을 보면 잘난 사람들이 넘쳐난다.꽃미녀와 꽃돌이에 이어 예쁜 남자 신드롬에 이르기까지 웬만한 얼굴은 이제 얼굴축에도 못끼는 분위기처럼 보인다.단지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타인의 외모를 평가하고 점수를 메겨야 직성이 풀린다.소위 견적까지 줄줄이 꿰는 예비 성형외과 의사들도 항시 대기중이시다.또 입방정은 얼마나 떨어대는가.아예 몸이 뚱뚱하다고 공개적으로 면전에다 대놓고 "돼지새끼"라고 면박을 주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코미디와 버라이어티 쇼 프로그램을 자세히 뜯어다보면 이것은 '애교' 수준이다.
이처럼 방송에서 혹은 여러잡지의 매체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외모의 특정 부위를 유머의 소재로 삼아 히히덕거리고 즐기는 풍경은 우리에게 그다지 낯설지 않다."타인의 외모를 놓고서 좋다 혹은 나쁘다 하고 평가를 내리는 것.그건 일종의 인종차별이나 다를 바가 없다"이러한 현상은 얼굴 잡티의 세세한 부분까지 잡아내는 미디어가 출현하면서 현대인들의 미에 대한 지각 자체를 완전히 바꿔놓았기 벌어진 현상이기도 하다.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미디어가 없었다면 우리는 자신의 외모에 대해 적어도 지금보다는 만족해하며 행복했을 것이다.그리고 지방 노폐물이나 임신선,또는 어두운 색깔의 머리카락을 혐오스러운 것으로 여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두꺼운 허벅지,느슨하게 처진 가슴,그리고 가는 머리카락은 사소한 문제에 불과했을 것이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는 미디어의 등장으로 자연이라는 자신의 몸을 혐오하고 끊임없이 교정해야 하는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미디어에 나오는 이미지들은 완벽한 색보정과 여러가지 교정의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우리와 만나게 된다.광고에 나오는 잘빠진 몸과 얼굴을 한 모델들은 일상에 흔하지도 않고 그렇게 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인데도 미디어는 마치 그것을 가능케하는 환상을 심어준다.이로써 당신도 노력만 한다면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신화'가 탄생하게 된다!
여기에는 '자기 혐오하기' 전략에서 파생된 미용산업과 화장품,성형산업의 모종의 공모관계가 성립하면서 자본이라는 교집합에 모여 집단 방출한다.물론 미디어는 이러한 메세지를 반복적이면서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담당한다.그렇다.광고속의 모델들은 항상 물건을 들고 나와 유혹하는 모습이였다.상품을 팔기 위해 소비자들의 미적 욕망을 한 껏 부풀려 돈을 빼내는 역할이 그들이 맡은 임무이다.
아름다움을 파는 그 이면에는 이러한 추악한 계산이 숨어있는 것이다.철저하게 치밀한 전략에 의해 짜여진 아름다움에 관한 미적 욕망의 대상들은 끊임없이 재생산되어진다.물론 자신의 외모를 꾸미고 가꾸는 것을 탓하는 게 아니다.오히려 그러한 현상은 자연스러운 것이다.지은이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바로 "아름다움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시스템이다."라고 말한 바 "외모를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것에 대해선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그런 노력이 즐거움을 주며 개성을 확장시켜 주는 한에서는 말이다.하지만 그것이 개성을 억압하고 제한한다면 분명 문제가 있다."
"나이 서른이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말이 있다.우선 이 논리는 우리의 몸과 얼굴은 언제든지 노력만하면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게 바탕에 깔려있다."어떻게 저 지경이 될 때까지 방치했을까" 따위의 말들이 힘을 얻는 이러한 상황에서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은 일종의 방종이며 게으른 것이며 자신의 무책임과 무능력을 상징하게 된다."아름답지 않은 것은 개인의 심리적 결함 때문인 것처럼 인식하게 된다." 이는 자기 혐오상으로 뚜렷하게 내면화되어 완성되어진다.
이렇게 되면 아름다움은 일종의 '관리'대상으로 인식된다.끊임없이 자본을 투여해야 하고 매일매일 거울을 들여다보며 온갖 신경을 써야한다.왜냐하면 아름다움은 조금만 관리가 소홀하면 금세 파괴되니까.게다가 아름다움은 '시간' '체력' '돈'까지 삼박자가 척척 맞아 떨어져야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다.이게 바로 자본의 얼굴이다.타고난 얼굴과 개성을 적극적으로 살리기보다 교정된 시선으로 바라 본 미적 기준으로 얼마나 노력하고 투자하는지의 여부에 따라 얼굴이 결판난다.여기서 결정적인 것은 다들 알듯이 경제적인 물질인 것이다.
한마디로 경제적 능력이 없는 가난한 너희들은 아름다워지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부유한 계층에서 날씬한 이들이 많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가난한 이들은 당장의 먹고사는 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그때그때 처한 상황에 따라 살아갈 수 밖에 없다."수많은 분석들이 입증하듯이 산업국가들의 경우,최하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상류계층의 사람들보다 확실히 더 뚱뚱하다."
자본주의의 생산양식이 프롤레타리아의 노동력을 빨아들임으로써 유지되어지는 것처럼 아름다운 몸과 얼굴을 지니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본이라는 기름을 발라야 한다.현대의 미의 얼굴은 모든 차이를 지워버리는 동일성의 폭력을 저지르는 자본의 얼굴과 닮아있다.군사독재의 군사 파시즘은 타자를 억압함으로써 자신들의 정당성을 찾았다면 현대사회의 미의 파시즘 시대는 다른 미를 억압하고 배제함으로써 정당성을 찾는다.
아름다움에 대한 미적 판단은 상대적인 것이다.인간의 몸에 새로운 미의 관점을 입혀주는 상상력이 미적 파시즘의 시대를 살아가는 데 유일한 위안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이미지-영상 시대에는 그런 것만 가지고는 안된다.다만 미에 대한 다양한 스펙트럼의 담론을 넓혀가는 것.미용산업이 퍼뜨리는 허황된 이데올로기에 맞서 고유한 개성을 지키고 자신만의 미를 창조하여 저항하는 것.그럴 때에 비로서 미는 새로운 주체성을 가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