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즉시공'을 외치기에는 이번 수업 만으로는, 불교에 대한 개념이 턱없이 모자른 듯 하네요..^^   

저번 '주체란 무엇인가' 에 대해서 전혀 글을 올리지 않았던 바 반성하며, 써 놓은 글을 올리긴하는데.. 

지금도.. 잘하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독화살의 비유'에서 느꼈던 점을 집중적으로 쓴 것이니  아무리 편협하게 느껴지시더라도 이해해 주시길..  

써 놓은 글을 올리는 것이라.. 경어체 쓰지 못한점 죄송합니다. 

 

[공이란 무엇인가] 후기

  매우 기대하던 수업이었는데, 안타깝게도 40분이나 늦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그럼에도 꽉 막힌 버스 안에서 내내 마음 편히 평안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김영진 선생님의 <공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기대했던 것을 뛰어넘는 텍스트였다. 

  불교 집안에서 태어나 절에 몇 번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불교에 대해서는 일자무식이다. 그래도 도덕책에서 언뜻 보이는 ‘공’사상이나 만화에서 접한 ‘공자를 만나면 공자를 죽이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와 같은 글귀에 홀려 불교에 대한 아련한 매력만을 가지고 있었다. 배울 시간이 없다 미루고 미루던 중, 드디어 김영진 선생님의 수업으로 불교에 첫 걸음을 내딛게 된 것이다. 

  앞의 수업을 못 듣고 바로 ‘독화살의 비유’를 설명하시는 부분부터 들었는데, 이해가 되면서도 안 되는 이상한 기분이었다. 게다가 몇몇 부분은 나를 회의주의로 몰아가기까지 했다. 더 깊은 이해도 없이 감정만이 앞선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지만, 이를 짚고 넘어감 없이는 피안의 세계로 갈 수 없을 것 같으니. 우문(愚問)을 시작해보려 한다.

*형이상학의 질문에 無記로 답함.

  독화살의 비유에서 등장하는 만동자의 질문은 분명 실존에 대한 형이상학적 질문이었다. 이에 무기(無記)로 답한 부처님. 부처님의 설법 자리에 데카르트를 비롯한 서양 철학자들이 있었다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궁금해지는 대목이었다. 그렇게 과격한 은유가 아니었을 텐데, 내가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인가? 혹은 과도한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인가? 독화살의 비유를 듣고 나니, 형이상학의 질문을 이어받아 자신들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만들어 온 철학자들이 모두 ‘독화살에 맞은 채로 독화살에 대해 논하고 있는 사람’으로 느껴진 것이다.  

  ‘나는 존재하는가? 내 삶에 의미가 있는가? 영혼은 있는가?’ 이런 고민을 매일 일삼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지만,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이런 고민들을 한다. 고민이 곧 고통임을 불교에서 말하는 어리석음임을 인정하지만, 고민은 삶을 꾸려나가는 원동력이 된다. 불교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바로 고통 극복을 위한 것이었다.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공함’을 알게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만동자의 고민이 깨달음을 얻기 전 고타마 싯다르타가 가지고 있었던 고통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의문스럽다. 내가 볼 때, 고민을 하는 만동자는 분명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싯다르타처럼 깨달음을 얻게 될 것 같기 때문이다.  

   결국 난 ‘형이상학의 질문들이 왜 필요가 없는가?’라고 부처님께 따지고 싶은 것이다. 형이상학의 질문에 매몰되는 것은 경계해야겠지만, 형이상학은 개인에게는 자신을 알게 하고 사회에는 올바른 윤리관을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의 행동을 유발하는 기제는 인간의 -의식이든 무의식이든-‘사고’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사고’에 대해 성찰하는 것이 형이상학이라고 나는 이해하고 있다. 드러내어 논의 해야지만, 즉 따져 묻고 잘못된 점은 없는지 성토해 봐야지만 어리석은 인간으로서 그나마 올바르게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독화살에 대한 주객전도 된’ 논의라니. 

  만동자의 에피소드 후에 반야경과 금강경의 내용을 듣고 있으려니, 역설적이게도 만동자가 한 형이상학적 질문의 답을 열심히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존재의 본질에 대한 고찰, 실체의 부정. 앞의 1)재현이란 무엇인가 2)주체란 무엇인가의 교훈도 고스란히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닌가. 부단한 차이화만이 존재의 방식이라는 점에서 ‘나 없음’을 주장하는 사르트르의 실존철학과도 매우 흡사해 보였다. 인간을 결국에 자유롭게 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올바른 지(知)라고 결정론이 결론을 맺는 것처럼, 불교도 ‘반야’를 통해 ‘바라밀다’한다고 말한다. 사법인과 연기법에 이은 ‘공’사상. 이렇게 깨달음으로 가는 설법을 할 것이었으면서, 왜 형이상학의 ‘물음’은 원천봉쇄 해버렸단 말인가. 깨달음이 있기 전에 물음이 먼저 있는 것이 이치인데 말이다.  

  사실.. 깨달음의 기쁨을 누리며 공부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그를 부정당하는 것 같아 매우 거부감이 들었었다. 그러나 글을 쓰고 난 뒤인 지금, 결국 불교 자체도 내가 필요 하다면 삶에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상일 뿐이고, 앎에 이르게 한다는 점에서 다른 철학 이론들과 크게 배치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독화살의 비유'는 수행은 안하고 고민만 하는 만동자를 깨우치게 하기 위해 부처님이 생각하신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의 번민을 넘어오니 그나마 불교의 사상에 한결 가깝게 다가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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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다 2010-02-22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왜 형이상학 질문에 독화살 비유를 드셨을까 생각하다가.. 그것조차 집착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 질문들 또한 나를 공하지 못하게 하는 또다른 집착의 형태..라는 깨달음??? 이랄까요?
맞는지 모르겠어요 ^^

blue0729 2010-02-24 22:11   좋아요 0 | URL
맞아요 ㅠㅠ 저도 그런 생각 이었어요.. 글에 잘 표현은 안되었지만 ㅎㅎ

비로그인 2010-02-22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그랬군요....늦게 오셨군요...나는 왜 아는 체 하는 사람이 없을까 했어요...와~~중간 부터 들으셨는데도 이정도 수준으로 이해를 하시다니.....이거이거 스승으로 모시고 한수 배워야겠습니다. ㅎㅎ 저는 앞의 개념어(들)에서 헤어나지를 못해서(잘 이해를 못했기떄문에) 뒷 강의가 무척 어려웠답니다. 하기사 생각해보면 이번 인문학강좌가 한번도 쉬웠던 적은 없었네요...에고~~스스로 햄내보자고 다짐 하고 있답니다. ㅋ

blue0729 2010-02-24 22:13   좋아요 0 | URL
정말.. 인문학 공부는 명쾌한 것이 아니라 '물음'이 남는 공부인것 같아요ㅠ 주체에 대한 개념에서 저도 허우적허우적 거리고 있답니다ㅎㅎㅎ 우리 같이 힘내보아요!>.< 그리고..수트입으신 모습 멋있으세요!
 

날씨가 여전히 쌀쌀했습니다. 어여 빨리 3월이 되었으면 절로 바라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금요일이라 그런지 정말 복잡 복잡 하더군요. ^^ 

이번 강의는 개인적으로 무척 기대하고 있던 것이라 기대를 많이 했습니다. 제 1 주제는 정말 예기치 않은 새로운 무언갈 발견한 기분이었고, 2 주제 때는 열심히 듣는 학생이 된 기분이었는데, 이번 강의는, 처음엔 너무 재미있었어요. (웬만해선 잘 안 웃는데, 웃음이 잘 잘 터지더라고요 ㅎㅎ)하다가 끝으로 가다가 어려워지기 시작하더군요. 듣는 계속 고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잊고 있었지만, 불교는 결국 '포기'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포기하는 삶이라고 해도 좋고요.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기분이었고, 이번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불교의 공이라는 게 참 좋습니다. 마음이 편해지고 유해지는 기분이 듭니다. 자기 성찰이라는 게 마음에 들고요.   

또 하나는, 긍정적인 의미로 말장난이랄까, 불교는 그런 면에서 유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중론은, 이중 부정이라고 했지만, 저에겐 그 말이 긍정적인 것(밝은 것)과 부정적인 것(어두운 것) 양쪽 모두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포용하고 한 공간에 공존시키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 궁금한 건, 문제를 인식하고 그 문제를 해결해야 되는데, 문제를 인식하지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 쉬이 넘기라 하지만 그게 만약 살아가는 것과 생명과 뗄 수 없는 밀접한 것이라 반드시 해결할 수밖에 없는데, 할 수 없다면, 그래서 마음을 비웠다면 그 삶은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강의는 빈 자리가 많아서 의외였어요. 설 연휴 다음이라서 그런지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여유있어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참, 저도 불교의 역사에 대해 알고 싶어졌습니다. 대승 불교에 그리 재미있게 얽힌 이야기가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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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 2010-02-21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생각할 때 불교는 '포기'보다 '깨달음' 혹은 '꿰뚫어 봄'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내 자신을 깨닫거나 꿰뚫어 보면 결국 모든 욕심과 집착을 버릴 수도 있으니, 그걸 포기라면 포기라 할 수도 있겠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空' 자체보다는 空性을 깨닫는 수행론에 관심이 많습니다. 다음 시간에 기회되면 돈오돈수와 돈오점수의 문제에 관해 질문하고 싶지만 이번 강의처럼 시간이 길어지면 마음 접어야지요.

blue0729 2010-02-22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론'을 공존으로 보시는 시각, 참신하네요.^^ 불교를 잘 모르는지라 어찌 이해해야 하는지 갈피를 못잡겠지만, 저는 '과정에 있는 것'을 '중'이라고만 이해했거든요. 더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ㅠ 저도 궁금하네요. 마음을 비웠다면 삶은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요..ㅎㅎ 다음시간에는 꽉꽉찬 강의실 기대해보아요^^

비로그인 2010-02-22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마지막에 나온 질문이 불교의 사회적인 참여(조금 다른 개념일수도 있지만요) 에 대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의 내가 속한 곳에서 나에게 주어진 여러 현실들이 있는데 그것을 단순히(? 다른 표현을 못찾겠습니다) 비운다면 또 비울 수있다면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할까?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뭐..그런 고민을 담은 질문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건 글쎼요.....뭐..살아가면서 계속 화두로 담고 고민해 봐야 할 질문이 아닐까요???....모든 강의를 마치고 ...아마 통합적으로 개념을 (재현, 주체, 공...) 한번쯤 정립해 볼 필요가 있을듯 해요..특히 재현과 공은 그 이면에 불교적인 사상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우리 열심히 고민해 보자구요
 

  공부한 내용을 저의 상황에 대입하는 작업입니다. 단순한 것임에도 쉽지 않았습니다.  

       ----------- 

 어렸을 때부터 이상한 습관이 몸에 베었다. 구경하기 보다는 해보기가 더 좋은 것. 

 무언가 매력적인 게 눈에 보이면 직접 내가 해보고 싶어하는 욕망을 갖는 것이다. 가수들, 연주자들, 그들이 연주하는 악기들, 탄성이 절로 나오는 기막힌 터치, 그 손가락의 예술들.  그리곤 꼭 나도 저처럼 할 수 있을 거란 느낌을 거의 자신감처럼 가지게 된다. 물론 단 한번도 나를 매혹했던 노래나 연주에 도달해 보지 못한 건 당연하다.  

 정리해 보자, 배운데로. 

 1. 난 늘 무언가를 꿈꾸었다. 구체적으로. 그리고 꿈은 아직 이루어 지지 않고 있다. 충분히 재현적이다. 나는 나의 자리-이름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래서 늘 갈등을 겪는다(나의 주체와 술어는 늘 갈등한다). 연주를 보면서 갈등을 느끼지 않는 방법은 연주를 그냥 하나의 '사건'으로 객체화 하는 거다(주체화의 조건은 객체화, 이 때 연주는 오히려 풍요가 된다). 설악산처럼 완벽한 경치를 감상하면서 '나도 저렇게 만들 수 있어' 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공연을, 작품을 볼 수 있으면. 

   그런데, 정말 악기가 내 손끝을 타고 있다는 착각과 함께, 때론 아쉬워 하고 순간 감탄하면서(조금있으면 나도 곧 해 볼 것이기 때문에) 공연을 보는 내게 남는 쾌락은 무엇인가.  단지 상상으로 혹은 정말 막되먹은 실력으로 그를 모방해 갈 때의 즐거움이- 완벽한 재현(re-play)에 아득히 미치지 못함에도- 월등한 이유는 무엇인가. 농구를 보면서 나도 마치 허재처럼 날아다닐 거란 착각에 빠지고 그래서 두 시간 중계를 보는 것보단 아들과 농구공을 들고 학교 운동장으로 달려나가는 게 더 즐거운 것, 허영석의 산행을 보면서 나도 오천미터급 정도는 쉽게 오르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오백고지를 즐겨 걷는 것.  

  이루지 못한 꿈을 습관처럼 꾸고, 단지 바라만 보는 것( 완벽한 타자 ) 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며, 그렇다고 무엇 하나 감탄스럽게 잘 해내지도 못하는 나는 재현적 방식에 갖힌 술어적 존재일까? 

 2. 감동을 주는 것이 공연이던 스포츠던 그림이던 그 처럼 되어보려고 나를 움직이는 일이 재현일 이유는 없다. 더구나 그 과정이 즐거운데야.. 게다가 그도 몇 개월 아니면 몇년, 그도 그야말로 취미 수준의 투자시간(노동)으로 같은 감동을 가질 수 있다면 그야말로 예술가 혹은 장인에 대한 모욕이 될터이다. 생명을 건 열정(매우 헌신적인 노동)이 지닌 가치는 그 역작을 통해 내가 느끼는 감동, 그리고 그에게 가지게 되는 겸허한 존중이 된다.  

   문제는 자신감이다(이 자신감은 긍정적 피드백을 통해 얻어진 것이 아니므로 허구적 자신감이다).  이 근거 없는 심리는 마치 무의식처럼 나를 지배하며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결국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찔끔대는 서당 개가 될 수 밖에.   과잉된 자신감이 보이는 양태는 일반적인 중독과 크게 다르지 않다 - 알콜, 카페인, 도박, 마약같은 것.  오늘은 스포츠에서 내일은 소설로, 다시 악기에서 미술로, 만들기로, 농사로, 독서로.. 끝도 없고 만족도 없고 늘 시작만 가득한 것. 

   허구적 자신감은 또 다른 측면에서 위협적이다. 예술가나 장인이 아닌 일반인들과의 예술적(기술적) 조우에서 하나의 균열이 형성된다. 전문가를 지향하는 자에게 일반인들의 행위는 낯설고 한없이 서툰 것이다(자신의 서툼과는 하등 상관 없이). 서툰 시도를 곱게 안아줄 여유가 그에겐 없다.  

  이 병적인 시도들은 그러나 지금 껏 나의 삶을 지탱해 왔다. 다양한 시도를 통해 즐거운 일들이 많았고 또 조금씩이나마 많은 장르의 작업에 눈뜨게 되었다. 조금 더 알게 될수록 감상의 폭이 넓어지는 것도 결실이다. 무엇보다 시도한다는 건 늘 즐거운 것이다.  

  재현 또는 비재현으로 구분할 수 있는가? 자리-이름, 술어에 매인 주체라 단정할 수 있는가? 아직 공부가 너무 얕아 간단한 내 일상 하나를 정의해 낼 수 없었다. 더우기 지난 시간에 배운 지젝, 들뢰즈의 언어들은 사용학엔 너무 생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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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2-08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인문학 용어들이 너무 생소하죠...빨리 익숙해져야 할텐데..말이죠...음....아무래도...철학에 대해서...차근차근 공부하는 것도 필요할 것 같고...고민중입니다..ㅋ

분다 2010-02-08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저도 맨날 허무맹랑한 자신감만... 완벽하게 재현하고 싶다는 욕구..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욕구... 그렇지만 항상 기웃거리기만 하네요.. 철학 공부도... 기웃거리는 게 아니라... 잘 하고 싶어요~

blue0729 2010-02-08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요.. 저도 이것저것 기웃거리는게 한두가지가 아니네요^^// 그런데 오디님이 쓰신 것처럼 시도는 그자체로 값진 것 같아요. 두려움에 얽매여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는 오류를 범하는게 아니니! 또 분명 장인의 경지까지는 아니어도 다른이들을 감동시킬 만한 정도의 경지를 보였던 것들이 있었을 거에요! 오디님이 스스로 하시면서 느꼈던거는 진심이 아니던가요.. 진심은 통한다고 믿어요^^
 

 

주체란 무엇인가 _이정우
100205. 상상마당

1. 상징계: 이데올로기/ 대타자(어떤체계)/ The Other   //    실재계: 숭고한 대상/ 소타자(대상-원인) / objet a 


2. 기본 구도
  지젝: 상징계의 이름-자리에 대한 욕망 (real)  → 실재계와의 조우 (Jouissance)  → 다시 상징계로 돌아가 변화시킴
  들뢰즈: 과학을 통한 현실 인식  → 잠재성의 세계에서의 형이상학적 인식 → 다시 현실을 바꿈 (윤리학)

* Jouissance(주이상스): joyment+sexual meaning / 상징계를 넘어서는 즐거움 / 가령 연쇄살인마의 행동에 매력을 느끼는 일 / 라캉이 말한, 인간을 살아가게 하는 동력 (프로이트의 리비도에 대응) 


3. 상징계에서 실재계로 내려오며 발견하는 기본 원리
죽음 욕동 (라캉. 지젝)
마주하기 힘든 공포를 덮기 위해 문화 발생
인간이 가진 체계는 자의적 : 물병을 컵이라고 불러도 그 체계를 유지한다면 문제가 없다
Jouissance : 인간은 실재계에 대한 두려움과 매력을 함께 느낌 (공포영화 매니아, 힘든 상처를 곱씹는 모습)
죽음┌ 상징적 죽음 : 이름-자리의 소멸 / 국적없는 사람, 고아, 낙오자
      └ 실재적 죽음 : (상징적 죽음이 오지 않은 상태) 유령, 귀신

삶 약동 (들뢰즈. 베르그송)
생명의 끊없는 약동을 석화시킨 것이 문화 (생명: 흐름, 잉여, 생성 / 석화: 고정, 분절, 이름짓기, 체계화)
      실재         ┘ └   상징
 

4. 역사
고전적 역사를 바라보는 세 분류:
타락(플라톤의 유토피아, 기독교의 에덴) / 진보(근대 계몽사상) / 순환(동양적 사고)
자의적으로 재구성한, 일종의 시나리오
현대역사철학: 시나리오적 역사관 비판 → 역사는 우연의 산물 

* 발터벤야민
역사는 moment들의 이어짐이다 (moment; 시간을 자르고 응축시킨 것, 일종의 사진 / 순간의 변증법)
각 사건에 의미부여를 위해 이러한 사건들이 계열화되어야 함: 별자리
벤야민의 역사(시간) 개념은 프로이트의 그것과 유사 (비연속적, jump)
역사란 반복을 통해 과거를 구제한다 (즉, 지금 현재의 관점에서 의미부여하는 데에 따라 과거가 달라질 수 있음 / 이때의 변화는 실재적 변화가 아닌 상징적 변화를 의미 / 실재와 상징의 구분이 필요)
우리는 (과거의 사람들에 의해) 기다려졌던 사람들이다
☞ 역사를 기억하고 해석하는 일이 곧 고유명사를 되착는 일.

* 프로이트의 deferred action (사후작용: 하나의 사건이 뒤의 사건에 의해 의미가 부여됨)
불연속적인 시간 개념 / 현재의 사건이 과거 특정 사건을 의미부여함
(일반적 시간 개념: 과거가 연속적인 시간에 의해 현재와 미래를 규정하는 인과 구조 가짐)
 

** 왜 주체성을 가지는 데 역사가 필요한가?
주체상을 가진다는 것은 곧 관계 속에서 출/처(나가고 들어옴)의 문제다. 차생과 동일성의 리듬을 갖고 자신의 정체성을 갖는 게 필요하다. 또한 이러한 정체성은 시대에 따른 문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주체성을 갖는 데 역사가 필요하지 않을까?

 

TIP] 철학, 사상은 약이자 독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열린 자세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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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열 2010-02-07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내 브로그 http://blog.naver.com/013yun/90079978153 에 주체에 관한 일본생활 속에서 체험된 글을 올려는데, 님의 평을 기대해 볼까 합니다. 부탁합니다. 자칭 소외자 올림.

굼실이 2010-02-08 23:56   좋아요 0 | URL
아~ 많이 고민해봐야 답이 나올것 같아요^^ 또 다른 숙제를 받은 기분이네요~ 읽어볼게요

비로그인 2010-02-08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정리....박수~~~ㅎㅎ 감사요...사실 전 조금 멍한 상태에서 강의를 들어서 놓친부분들이 많았거든요..또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를(다른 분야의 아이디어...) 강의록에 적느라고 잠시 딴 세상에도 다녀왔답니다...ㅋㅋ....지속적인 강의 정리..부탁요...

굼실이 2010-02-08 23:57   좋아요 0 | URL
저도 이날 내용이 어려워서 헤매면서ㅎㅎ 나름 정리한거라 이 내용이 맞다, 라고 하긴 힘들것 같아요. 그런 부분들을 고쳐나가고 다시 생각하면서 배우는거겠지만요^^

분다 2010-02-08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강의 못 들었는데.. 넘 아쉽네요.. 철학이 약이자 독이 된다는 것.. 어쩐지 공감이 됩니다... 체계적 정리 감사드령ㅅ~

굼실이 2010-02-08 23:58   좋아요 0 | URL
정말 약이자 독이란 말이 맞는것 같아요. 알수록 더 공부하고, 다방면으로 생각하는 게 필요하단 생각을 많이합니다^^

blue0729 2010-02-08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음에의 충동과 생명에의 약동을 대비시켜서 말씀해주신게 참 인상깊었어요. 과연 우리는 둘 중 어느것이 더 올바르다 말할 수 있을까요ㅎㅎ 제 자신만 대입시켜보면 생명에의 약동 같네요!

굼실이 2010-02-08 23:59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 공감이 가기는 죽음에의 충동에 대한 내용이 더 와닿았어요. 하지만 어떤 하나가 맞다라고 하기엔 상황에 따라 해석되는 경우가 다 다르단 생각이 들어요. 생소한 철학가와 사상이 많이 나와서, 공부가 많이 필요함을 느꼈답니다-_ㅠ

siroyuki 2010-02-09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날 미래에 어느 곳에 도달했을 때 과거에 의미가 생긴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과거에서 미래의 인과적 방법도 있으면서. 왠지 강의하시는 분들이 공통적으로 열광하는 인물이 있다는 느낌이 들어 흥미로웠어요. ^^ 그런데 저번 주에 강의를 못 들어서 그런지, 확실히 잘 못 따라가겠더라구요. 빠지지 말아야겠다는 걸 느꼈습니다. 정리 쉽지 않았을 텐데 감사합니다. ^-^
저도 죽음에 대한 충동이 더 끌렸어요. 우리네의 문화가 죽음을 덮기 위한 것이라니...사람은 왠지 희극보다는 비극에 더 끌리는 것 같기도 해요.ㅎㅎ
 

어쩌면, 인문학 공부를 하는 핵심이 바로 '주체'에 대한 고민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라는 주체는 항상 실제의 내 자신과 일치하지 못해서 힘들었던 것 같아요. 어쩌면 내게도 권력욕이 숨어있었겠지요. 그저 단순히 한 객체이기보다는 주체로서 거듭나고 싶었다고 해야하나... 

그렇게 기대했던 '주체'의 첫강의 날, 미리 확인도 하지않고 당연히 책의 순서상 '권력' 강의라고 생각을 한 것이죠. 전철타는 시간만 무려 1시간 30분이나 되는 거리를 달려가는지라 충분히 전철안에서 책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답니다. 두둥~  

이정우 선생님의 첫강의는, 채운 선생님 시간처럼 활발한 느낌은 없었지만 저는 나름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답니다. 의외로 이정우 선생님께서 쉽게 설명을 해주셨기 때문이겠죠. 차분하고 가라앉은 분위기 였지만 오히려 골똘히 생각할 수 있는 여유는 더 있었다고 할까요... 실제의 나와 보여지는 내가 일치하지 않아서 했던 고민들의 무게가 조금은 빠지는 느낌이였으니까요. 두시간을 걸려 집에 돌아와 '주체란 무엇인가'를 펼쳤습니다. 늦은 시간이기도 했지만, 책은 의외로 어렵더군요. 아마도 강의를 먼저 듣지 못했다면 한페이지 넘기기가 수월치 않았을거예요. 

그리고, 주체에 대한 두번째 시간... 허둥지둥 달려간 탓도 있지만, 요즘 몸이 조금 안좋아서 컨디션이 영 말이 아니거든요. 강의 시작하고 얼마간 집중이 안되더라구요. 첫시간보다 강의도 어려웠고 머릿속이 마구 꼬이는 느낌도 들고... 급기야 도망가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지 뭡니까. ㅡ.ㅡ;  대충 뭉개며 시간을 보낼것이냐 도망할 것이냐의 기로에서 결정적으로 혼미한 나의 정신을 깨워 준 것은 헤겔의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였습니다. 하! 하! 하!  나는 나이고 싶기에 여기 앉아 있다는 걸 급 깨닫은거죠. 역시 공부는 시킨다고 하는것이 아니죠. ㅋㅋㅋ  

베야민의 역사관이 가장 크게 다가왔습니다. 역사가 그랬기 때문에 지금 이러한 것이 아니라 지금 돌아보니 역사가 그랬더라는 미묘한 차이. 그것은 채운 선생님의 2강때 프로이트 이야기와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해요. 어린시절의 어떠한 일이 지금의 나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러한 때 돌아보니 어린날 그런일이 있어더라는.... '지금 어떻게 하느냐'가 역사의 의미를 다르게 할 것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제게는 가장 크게 남았어요. 

제게도 지난 2009는 엄청 큰 의미가 있는 해였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땅, 내 아이가 살아갈 이 땅에 대한 두려움, 서글픔... 문득 어느때는 그냥 떠나버릴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죠. 이런 이야기를 하면 친구들이 말합니다. 왜 대학때 고민을 지금하느냐고.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그건 그저 이상일뿐 현실은 이러한거라고...  이정우 선생님 1강때 하신말씀이 떠오르네요. 사람이 변해도 큰 줄거리는 있어야 한다고 하셨죠. 그것이 바로 주체 아닐까 합니다. 휩쓸리고 흔들려도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것요.  

집이 멀어 질문 시간에 먼저 자리를 떠 이정우 선생님께 감사의 박수 쳐드리지 못한게 못내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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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2-06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젠 저도 그랬는데...새벽 한시에 깨서 계속 잠을 못 자고 있었거든요..(나이탓인가...그러고 있답니다..ㅋㅋ) 덕분에 첫강의 끝날무렵(쉬는시간전)에 너무 너무 피곤하고 졸려서...아~~시계만 들여다 보느라 정말 민망했습니다. 그렇다고 강의중에 조는건 학교다닐때도 안해본 거라....(아~정말 모범생 신드럼이다..ㅎㅎ) 어찌어지해서 무사히 들은 강의....하여간..이정우교수님의 차분한 강의가 돋보인 날이었습니다...마지막 질문인...우주,우주인..등등.....음~~나름 재미난 질문이었습니다..저도 평소에 많이 생각해보고 있는 거거든요..시간이 너무 촉박해서..(이미 시간은 10시가까이 되고있었고....해서요)아쉽게 마친 강의였답니다...멀리서 오시는 군요...힘내십시오..그리고 나중에 2009년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군요..그게 혹시 작년에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촛불,용산,노대통령서거 등등) 때문에 그런건가요??? .........얼마전에 씨랜드사태로 우리나라를 떠났던 몇분이 귀국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전 씨랜드 사건이후에 우리 아이들은 절대로 캠프를 보내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가는것도 교회에서 가는것도....다요..(유별나다는 이야기 많이 듣습니다..아이들도 불만이 많구요) 제가 너무 사회에 대한, 사람에 대한 믿음이 없는건지 모르겠지만...제가 같이 가는 캠프만 참석을 시킵니다..그런데 아이들이 커가니까..그것도 마음대로 못하겠더군요...하여간 어렵답니다.....힘내시라는(정확한 상황을 몰라서 뭐라 말씀은 못 드리겠습니다) 말밖에 이야기를 못하겠네요...

blue0729 2010-02-06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정우 선생님이 요즘 인문학 공부의 장이 많이 생긴거 같은데.. 매우 바람직한 현상인 것 같아요- 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며 참 뿌듯했었는데. 이렇게 자기 자신으로부터 깨어나는 대한민국 국민이 점차점차 많아지면 조만간 살기좋은 나라가 되지 않을까요?^^ 저도 이번 수업은 어려워서 많이 힘들어했답니다ㅎㅎ 정말 수고하셨어요!!

윤재홍 2010-02-14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이야기를 하면 친구들이 말합니다. 왜 대학때 고민을 지금하느냐고.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그건 그저 이상일뿐 현실은 이러한거라고... 이정우 선생님 1강때 하신말씀이 떠오르네요. 사람이 변해도 큰 줄거리는 있어야 한다고 하셨죠. 그것이 바로 주체 아닐까 합니다. 휩쓸리고 흔들려도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것요.

이 말씀에 공감합니다.

흘러가는 인생이 될 수도 해쳐나가는 인생이 될 수도 .. 그것은 우리의 몫일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