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수에서도 1번에 뽑히면 다들 난색을 표하던데...
다음 주 첫 번째로 '아작날' 글 올립니다.
제가 처음 제비를 뽑았는데 제가 제 이름을 뽑았답니다. 오 맛쏘사!(맙소사, 미소지나 버전으로 ^^)
수업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리라는 생각을 못한 터라 적잖이 당황했는데 1번이 되다니 거의 실신 지경...
변명을 보태자면 '일용직'인 저는 일이 두서없이 들어오는데 지금 한창 바쁠 때라 원고를 고칠 여력이 없네요.
아,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니...그래서 그냥 올립니다.
아무 생각없이 쓴 글인데 쓰고 나서 다시 읽어보니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정확히 표현하는 것이 그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어렵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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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특강_과제1_영화감상문
<마이웨이>와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영화를 대하는 감독의 시선
영화의 주인은 감독일까, 주인공일까 혹은 시나리오일까? 삼박자가 잘 맞아야 좋은 영화가 만들어지겠지만, <마이웨이>와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이하 기적)은 단연 강제규와 고레에다 히로카즈 것이다. <마이웨이>는 엄청난 스케일의 전쟁 씬 속에서 감독이 시키는 대로 분주히 움직이는 장동건과 오다기리 조가 보였고 <기적>은 물끄러미 아이들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을 상영 시간 내내 느꼈다. 공교롭게도 오다기리 조는 <기적>에서도 주인공 형제의 아빠다. 내가 유일하게 ‘팬덤’하는 배우이기도 하고.
나는 영화 볼 때 예습하지 않는다. 일부러 눈과 귀를 막고 본 다음, 나중에 관련 자료를 찾는다. 물론 개봉 몇 달 전부터 무차별적으로 홍보하는 영화의 경우 이런저런 정보를 들을 수밖에 없지만 가급적이면 깨끗한 백지상태로 보는 것을 선호한다. 다른 사람의 평도 믿지 않고, 안 보는 것보다는 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재미없다’라는 평에도 불구하고 보게 된 <마이웨이>는 영화 보는 첫 장면부터 빤한 클리셰에서 시작하더니 시간이 갈수록 화를 돋웠고 급기야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내가 이 영화를 왜 보고 있냐하는 허망함에 무척 당황스러웠다. 왜 이렇게 영화를 만들었을까?
한 장의 사진과 몇 줄의 소략한 기록을 토대로 제작된 <노르망디의 조선인>(2005)이라는 SBS 다큐멘터리에서 힌트를 얻은 <마이웨이>는 모든 제작자와 감독이 탐 낼 만큼 ‘짜릿한’ 소재다. 그런데 그 ‘짜릿함’을 감독은 “만들면 돈 되겠다”라는 것으로만 받아들인 모양이다. 하지만 흥행을 위해서라도 이런 접근 방식은 너무 안일하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먼 이국땅까지 흘러들어간 식민지 치하의 청년이 겪어야만 했던 기구한 운명이 내 일인 양 안타까웠던 사람들의 마음을 몰랐던 걸까? 영화는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내면의 흐름을 따라 갈 때 설득력을 얻는다. 두 청년의 험난한 여정이 끊임없이 펼쳐지지만 인물들이 겪는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시종일관 전쟁과 스포츠에 난데없는 우정까지 범벅이 된 국적불명의 휴머니티를 보여준다. 쉽게 타츠오를 용서하는 준식은 공감을 얻지 못하는 허구의 캐릭터다. 어려운 얘기를 쉽게 하는 것은 미덕이다. 하지만 불편하지만 할 말은 해야 이야기가 된다. 식민지 시대의 한국과 일본을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허구의 적들을 설정하고 이를 물리치는 히어로를 통해 쾌감을 느끼는 미션 임파서블식의 접근은 위험하다. 할 말은 뒤로 미룬 채 좋은 게 좋다, 식으로 끝나는 이 영화가 글쎄, 아시아블록버스터가 될 수 있을까. 아이템이나 멋진 장면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감독은 생각한 것일까. 이 영화의 유일한 미덕은 난데없이 “왜 영화를 만드는가?”와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는 어떤 것일까?”에 대한 생각을 하게 했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시선으로 본 차가운 현실
<기적>은 <마이웨이>와 대각선에 있는 영화다. 이혼한 부모 때문에 각각 떨어져 사는 형제와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다. 놀랍게도 이 영화는 신간센 홍보용 영화로 기획된 것이라고 한다. 홍보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작품을 의뢰한 측에서 감독의 의견을 100% 받아들였다는 것이 그야말로 ‘기적’이다. 왜냐면 이 영화의 속내에는 차가운 슬픔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스토리의 근간은 각자의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기차의 교차점을 향해 가출하는 아이들의 1박2일이다. 아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목적지에 도착하고 저마다 소원을 크게 외친다. 아이들은 이곳에 오기 전에 이미 자신들의 소원을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정작 기차가 교차할 때 외친 소원은 좀 달랐다. 철없어 보이던 동생 류노스케가 정작 외친 것은 “아빠 일이 잘 되게 해주세요”였다 (사실 나는 이 대목에서 많이 울었다). 기적은 정말 일어났을까? 죽은 개가 다시 살아나지 않고 부모가 재결합해도 전과 같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아이들은 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된다. 그래도 기적을 믿고 싶은 게 아이들이다. 어른도 다르지 않다. 감독의 전작 <아무도 모른다>처럼 현실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아이들(정말 끔찍하다)의 모습이 슬프다. 조부모와 함께 사는 형 코이치는 어쩐지 할아버지와 가장 닮았다.
전쟁과 광기, 생에 대한 지독한 욕망, 우정과 배신 등의 이슈를 앞세운 채 엄청난 물량을 쏟아부어 완성한 <마이웨이>를 보는 동안 내게는 한 줌의 감정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감독의 지시에 따라 자기가 무엇을 하는 지도 모르는 아시아 최고의 미남 둘만 보였다. 심지어 주인공들의 사형 직전 장면에서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나는 사이코인가?). 서로 마주보면서 “우리 정말 너무 잘생기지 않았니?”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반면 <기적>의 첫 장면부터 나는 오금이 저렸다. 작은 마을에 사는 평범한 소년의 아침 풍경. 잠자리에 일어나서 이불을 개키고 밖으로 나가 건너편 산을 본 다음, 오늘은 얼마나 재가 날렸는지 쓱 한번 손으로 훑는다. 그리고 방에 들어와 엎드려 걸레질을 한다. 감독이 아이들을 보는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 시선의 균형감이 너무 좋다. 아프지만.
영화에서 코이치가 수업시간에 읽는 다니카와 슌타로의 <산다>라는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산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목이 마르다는 것/ 나뭇잎새의 햇살이 눈부시다는 것/ 문득 어떤 멜로디를 떠올려보는 것/ 재채기하는 것/ 당신의 손을 잡아보는 것.”
참고로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Miracle>이 아니라 <I wish>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