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 넘기기 전에 올리려 했는데, 늦었습니다.
최근에 본 영화 <자전거 탄 소년>에 대한, 감상에세이입니다. 영화 보실 분에게는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스포일러 가득한 글이라서요.-ㅅ-; 하지만 이 글 보시고 영화를 보시더라도 재밌게(?) 보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럼 당근과 채찍을 부탁드립니다~! ^^
<자전거 탄 소년>은 아빠를 잃은 소년 시릴과 소년이 뻗은 손을 붙잡아 준 위탁모 사만다, 아들을 버리고 홀가분하게 새 생활을 하려는 아빠의 이야기다. 시릴은 ‘아빠를 만나고 싶어!’라는 바람을 이루기 위해 돌진한다. 하지만 아빠는 이미 시릴과 자신 사이에 선을 긋고 아들을 조용히 포기시키려고 할 뿐이다. 사만다는 시릴을 우연히 만나고, 위탁모라는 역할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세 사람이 각각 취하는 행동이 내게는 놀랍게 느껴졌다.
시릴은 영화의 첫 장면에서 ‘지금은 없는 국번입니다. 다시 한 번 확인하시고 걸어 주십시오.’라는 음성이 흘러나오는 수화기를 한없이 붙들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 옆에서 보육원 선생님은 시릴이 아빠가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을 빨리 인정하게 하고자 실랑이를 벌인다. 이 상황에서 얻은 정보만으로 난 시릴을 가엾게 여기게 됐다. 뒤이어 말리는 선생님과 형을 뿌리치고 아빠를 향해 달아나려는 시릴에게 가슴 아픈 사정이 있으리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니까. 아빠의 핸드폰 번호, ‘사정이 나아지면 데리러 갈게.’라는 막연한 약속 하나만 믿고 보육원에 온 시릴에게, 더 이상 연결되지 않는 전화번호, 빈 집은 믿을 수 없는 현실이다.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아빠의 말을 믿고 싶어 하는 아이의 마음이 느껴진다.
아빠는 실직과 빈곤한 경제 상황 때문에 애를 보육원에 데려다 놓았다. 그저 제 앞가림하기에 바쁜 듯하다. 말하기 곤란해서 내색은 안 했지만, 이참에 아이 양육을 포기할 셈도 있는 것 같다. 속 편하게 양육 책임을 떨쳐 낸 시릴의 아빠가 놀라웠다. 아이를 보육원에 맡기고, 집과 오토바이, 시릴의 자전거를 처분하고, 다른 도시로 이주해 새 보스 겸 애인의 집에 들어가고 일자리를 얻어 아무렇지 않게 새 생활을 시작해 버렸다. 오매불망 자신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을 아들은 마음에서 깨끗이 지워 버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영화에서 묘사가 안 되었기 때문에 시릴의 아빠를 더욱 나쁜 놈으로 해석했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양육을 포기하는 부모를 실제로 마주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빠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문제지만, 한편으로는 사회 안전망 덕분에 자신이 양육을 포기해도 시릴은 괜찮을 거라는 믿을 구석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조금 들었다. 이래서 유럽은 사회보장제도 때문에 놀고먹는 룸펜이 많다고 주장하는 의견이 힘을 얻는 건가 싶어 불만스러웠다. 아빠는 시릴이 지폐 뭉치를 가져와서 내밀었을 때, “걸리더라도 아빠한테 줬다는 말은 절대 안 할게!”라고 덧붙이자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누굴 감옥에 보내려고!”라며 내쫓았다. 아빠가 시릴을 냉대한 것도 불쾌했지만 그런 반응을 보이기까지 잠시 주저한 시간에서 더더욱 씁쓸함이 느껴졌다. 사실은 궁하니까 돈을 받고 싶었는데 돈을 받으면 다시 시릴과 새로운 관계가 쌓이기 때문에 완전히 연을 끊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만다. 사만다는 시릴 아빠가 살던 아파트 1층의 병원에서 시릴과 처음 만났다. 사만다는 시릴의 아빠가 팔아 버린 자전거를 되사서 시릴에게 선물했다. 시릴은 사만다의 호의를 놓치지 않고 주말에 자기를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는데, 사만다는 선뜻 위탁모 역할을 맡는다. 사만다가 처음에 시릴을 도왔을 때, 그다음 역할까지 예상했을지는 모르겠다. 호의를 표현하는 동안 마음이 점점 커지고 더 큰 품으로 시릴을 품을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이어 나가려면 처음에는 한쪽에서 넘치는 감정이 가 닿아야 시작된다. 그다음에 상대방이 그 감정에 답하면, 감정의 흐름이 생기면서 마음이 오고가는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만다가 내민 손을 시릴이 잡고, 다시 시릴이 내민 손을 사만다가 붙잡으면서 관계가 이어진 셈이다.
이 영화에는 인상적인 인물이 네 사람 더 있다. 보육원 선생님과 시릴을 꼬드긴 웨스, 시릴에게 맞았으나 복수하는 부자(父子)이다.
영화 전반에서 보육원 선생님은 시릴과 깊은 관계를 맺지 않는다. 보육원 선생님에게 소년은 맡아야 할 아이이고, 해야 할 일뿐이었다. 나름대로 끈기를 가지고 아이를 대하기는 해도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달래 줄 생각조차 없는 듯했다. 시릴이 보육원을 뛰쳐나가 아빠랑 살던 집에 가는 ‘외출’을 감행했을 때, 시릴을 발견한 선생님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이 사람도 어지간히 생활에 지친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했다.
웨스라고 머리를 기름지게 빗어 넘긴 껄렁한 남자애가 나오는데, 똘마니를 시켜서 시릴의 자전거를 훔쳐서 약을 올린다. 끈덕지게 따라붙어 자기 자전거를 지켜 낸 시릴이 마음에 들었는지 웨스는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가 계신 자기 집으로 시릴을 데려갔다. 전용 냉장고에서 환타를 꺼내 주었을 때, 집에 초대한 녀석은 네가 처음이라고 했을 때, 게임기 리모컨을 건네주었을 때, 알아봤어야 했다. 그놈이 특별한 목적이 있어 시릴을 끌어들인 것이란 것을. 너무 뻔한 상황이라는 생각에 아니길 바랐던 마음이 의심을 눌러버렸었다. 시릴의 깡다구가 마음에 들었던 웨스는 친절하게 굴어서 시릴의 마음을 산 다음, 자신의 전직 보스를 상대로 아리랑치기를 할 똘마니로 삼을 계획이었던 거다. 둘이서 숲에서 범행 현장 상황을 가정하고 연습하는 장면을 보는데, 이번에는 시릴에게 화가 났다. 사람을 해치고 재물을 빼앗는 일을 하자는데, 순순히 따라 준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 고작 웨스가 보여 준 얕은 신뢰를 기쁘게 받아들일 정도로 정에 굶주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서지 않았기 때문일까. 사만다가 그렇게 웨스랑 어울리지 말라고 경고했는데도 시릴은 무시했다. 일을 그르치자 자신을 버리는 웨스를 겪고 나서야 시릴은 웨스란 인물의 됨됨이를 깨닫는다. 불이 뜨거운 줄 알아야 피할 수 있다고, 꼬마들에게 불 가까이 손을 가져가서 뜨거운 열기를 느껴 보게 가르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시릴에게 공격받은 아저씨와 아들이 있다. 사만다가 치료비와 위자료를 내고 아저씨는 시릴을 용서하기로 합의했지만 아저씨의 아들은 시릴을 용서하지 않았다. 게다가 우연히 시릴을 만나게 되자 소년은 시릴을 폭행한다. 나무 위로 도망간 시릴에게 마구 돌을 던지기까지 했다. 이건 뭐 내가 당한 만큼 너도 당해 보라는 식이다. 그러더니 시릴이 나무에서 떨어져 정신을 잃자 그제야 불안해한다. 애가 깨어나면 구급차를 부르고, 일어나지 않으면 그냥 조용히 가겠다는 아저씨의 태도 또한 놀라웠다. 어이없는 기분이 가라앉자 이 사람들을 비난하는 마음이 일었으며, 동시에 비단 이 사람들만 이런 식의 태도를 취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불안이 솟았다.
살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는 없다. 처음엔 좋았는데 안 좋게 끝나는 사이도 있고, 내내 악연인 사이도 있다. 사만다가 아빠에게 솔직히 얘기해 주라고 했기 때문에 시릴은 더 이상 함께 살고 싶지 않은 아빠의 진심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 시릴이 사만다를 원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만다는 이미 시릴의 인생에 깊이 개입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다. 아마도 사만다는 시릴이 헛된 희망을 품고 살다가 훗날 진실을 알고 크게 실망할 것을 걱정했을 거다. 사만다는 시릴이 현실을 인정하고 다시 새로운 희망을 찾기까지 곁에서 돕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와 아무 상관없는 내가 사만다에게 시릴을 부탁하고 싶은 이유도 내가 이미 이들에게 마음을 주었기 때문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