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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승자 - 김대중, 빛바랜 사진으로 묻는 오래된 약속
오동명 지음 / 생각비행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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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실 김대중 전대통령, 그 분의 정치적 배경에 대해선 잘 모른다. 네 번의 낙선 이후 늦은 나이에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그 후 한국인으로서는 첫 노벨평화상을 받았다는 정도밖에는. 그러나 그러한 사실만으로도 그 분의 인생이 끝없는 시련과 굴곡으로 평탄하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집권기간에는 남북통일을 위한 햇볕정책으로 야당의원과 국민들에게 비난받아왔다는 것도, 시간을 거슬러보니 그 분의 정치적 행보도 하나씩 떠오른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 이후 민주주의와 진보, 그리고 정치에 대한 관심으로 김대중 전대통령이 자주 거론되면서 그 분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하지만 작년 8월 18일 서거하셨다는 소식에 망연자실 하늘을 바라봤던 기억이 났다.  
 

그 분을 처음 뵜던 건 초등학교 가는 길목, 어느 담장아래 있는 대통령 후보자들의 포스터에서였다. 그 후 성인이 되어서도 그 분은 여전히 포스터속의 인물이었다.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이나 무관심을 떠나 재선, 삼선, 사선까지 도전하는 그 분의 정치적 야망과 명예욕에 그저 혀를 내두르며 포스트를 질리는 표정으로 흘려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뒤늦게서야 그런 나의 생각이 어리석음과 무지에서 비롯되었음에 진심으로 부끄러워했다. 도대체 나는 그 분에 대해선 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일부를 전체인 양 비난하고 매도하면서 낮게 평가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에선 그런 정치인으로서의 김대중 전대통령을 재해석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부 신문기자였던 저자의 신분에서 당시 시대에 감히 보여줄 수 없었던 한 사람으로서의 김대중의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신문의 정치면에서 비춰지는 정치인의 모습은 어색하고 경직되어 있으며 근엄하다. 혹은 가식적인 웃음과 음험한 표정으로 상대편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욕하는 그들의 사진이라도 보게 되는 날이면, 한참어린 나조차도 그들이 자기밥그릇싸움하는 아이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하지만 책 속에서 만난 김대중 전대통령의 모습에 무척이나 놀랐다. 정치인에게도 저런 인간적인 면모가 있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웃는 얼굴, 하품을 참는 모습, 책을 읽는 모습, 정원에 물을 주는 모습은 신문이나 티비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분의 얼굴이었다. 웃는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니 전혀 다른 사람같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굳은 의지를 믿고 당당하게 평생을 살아온 그 분의 얼굴에서는 강한 자신감이라는 아우라가 뿜어나오는 듯 했다. 그리고 그런 당당한 아우라에도 친근하고 탈권위적인 인상은 왜 국민이 결국 그 분을 선택했는지 짐작케했다.
 

"늦더라도 국민은 결국 올바른 선택을 한다고 믿습니다"
"국민이 제게 준 선물은 끈기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내가 사진을 통해 느낀 인상대로 저자는 그 분에게 끝까지 친서민적인 모습을 기대했던 모양이다. 저자는 끝내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는 부분에 대해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국민들 틈으로 다시 돌아와 국민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민중사이에 뿌리내리길 바라는 마음이 어디 저자 한 사람의 마음일까. 1998년 2월 취임식이 있던 날, 일산에서 살던 집을 떠나던 그 분을 보내는 동네 주민들 틈에서 아슬하게 잡힐 듯 말듯 손을 내밀던 꼬마의 뒷모습이 찍힌 사진은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대통령과 손을 잡겠다는 꼬마의 소원은 결국 이뤄지지 않았고, 5년 뒤에 다시 돌아오실 것이라는 주민들의 기대도 어긋났다. 그렇게 김대중 전대통령은 아쉬움을 남겨 놓은 채 멀어졌다. 
 

"사랑하는 데 있어서 어려운 것은 자기가 원치 않는 사람,
심지어 증오한 자를 용서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 분은 자신과의 약속은 지킬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승자라는 타이틀이 잘 어울리는 분이다. 또한 아내의 남편이면서 한 가족의 가장이었다. 옥중일기와 가족과의 편지교환은 어느 것하나 소홀히하지 않았다는 인상을 받기에 충분하다. 저자는 과거의 정치인으로 남기에 아까운 한 사람을 누구보다 친근한 이웃의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그 분은 그만큼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언론기자였지만 차별없이 대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저자는 그런 그분의 진심을 담은 사진들이 사장되는 것이 안타까웠을 것이고, 제대로 실어주지 못해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미지 출처 : 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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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사냥꾼>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과일 사냥꾼 - 유쾌한 과일주의자의 달콤한 지식여행
아담 리스 골너 지음, 김선영 옮김 / 살림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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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 자리에 그대로 존재하길 바라지만, 오래전 사라져버린 땅에 한여름 햇살을 품은 복숭아가 탐스럽게 열려있었다. 지금에와서 당시를 떠올리자 마치 나는 금단의 열매를 맛본 게 아니었을까하는 의구심까지 생긴다. 전무후무하게 그 때의 복숭아를 나는 아직까지 단 한번도 맛 본 적이 없었다. 생생하게 떠오르는 과거의 그 복숭아는 한 손으로 잡기에 부담스러울만큼 크고 묵직했다. 그리고 맛은 다시 재연하기 힘들만큼 달고 맛있었으며 황홀했다. 아마 짧은 경험으로 미루어 그 때 큰아버지의 과수원에서 갓 따먹은 복숭아가 내게는 최고의 과일이 되었던 것 같다. 
 

최고의 과일은 돈을 주고 맛볼 수 없다. 과일을 정성껏 수확한 자만이 누리는 즐거움도 돈으로는 살 수 없다.    -p.317
 

저자는 이렇게 나처럼 단 한순간의 과일의 황홀경을 체험함으로써, 모든 열정과 호기심을 과일에 쏟아부은 과일중독자이며 애호가다. 새로운 과일에 대한 왕성한 탐욕과 지칠줄 모르는 열정을 가진 그는 전 세계에 내노라하는 과일을 맛보고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난 괴짜같은 과일중독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을 보며 우리가 먹는 과일이 얼마나 제한적인가 알게 되었다. 하루에 하나씩은 꼭 챙겨먹는 사과의 경우도 나의 지식으로는 새빨간 홍옥이나 여름에 즐겨 먹는 아오리사과나 가을에 먹는 부사정도가 고작인데 개발된 품종만 하더라도 700여가지가 넘는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데 그런 것도 모종의 상업적인 손길이 뻗친거라는 사실이 더 흥미롭다. 소비자들이 품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일년 내내 품질낮은 과일을 파는데 지장이 생기기 때문에, 평균 이하의 단순한 과일만을 들여놓아 소비자의 관심자체가 제한될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제철에도 슈퍼마켓들은 평균 이하의 똑같은 사과와 오렌지, 딸기만 들여놓는다. 식품업체들은 이렇게 계절성이 모호해진 상황을 일컬어 "전 세계가 사시사철 여름"이라고 부른다. 즉, 언제나 모든 것을 접할 수 있으니 평범하기 그지없다는 뜻이다.   -p.315


이 책에는 그런 수동적인 소비의 주체에서 반기를 든 사람들이 신선한 과일과 새로운 품종, 전 세계의 다양한 과일을 찾아 모험을 감행하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저자가 만난 과일사냥꾼들들은 상상이상의 호기심과 과일에 대한 애착을 드러내며 인간 삶의 전반에 정신적, 육체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과일의 영역을 단순한 미감에서 벗어나 오감을 자극하는 주체적 대상으로 보여준다. 많은 예술가와 작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놓고 종교적 의미까지 부여해 신성한 존재로 비춰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과일에 집착하는 과일사냥꾼이나 탐미주의자들은 과일의 자극적인 맛에 욕망과 쾌락, 지적호기심만을 담보로하지 않는다. 제한된 소비에 관심밖으로 밀려나거나 사라지고 멸종될 위기에 처한 과일을 알리고 지키기 위해서도 노력한다. 


신성한 의식상태나 신과 교감하는 몰입상태의 상징물로 과일을 활용하는 종교가 많이 있다. 그 원리는 분명치 않아도 과일은 상징적 의미를 넘어 실제 우리의 분자구조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p.374

우리는 과일때문에 죽기도 하고, 과일과 사랑을 나누기도 하며, 과일을 통해 신과 만나기도 한다. 과일로 황홀한 상태에 빠진 이들은 자멸할 때까지 이를 갈구하기도 한다.   -p.378

과일에 대한 이러한 집착은 어떻게 해서든 과일에 대해 모조리 알고 싶고 박식해지길 원하는 욕망이다. 선악과 열매를 맛본 이후, 우리는 다른 나무의 열매에 눈을 돌려 영생을 찾으려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p.383



사실 저자가 앞서 책의 초반에서도 말했지만 과일섭취량은 최저생계수준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사치나 다름없다. 나 역시 아침마다 꾸준히 제철과일을 먹으면서 얼마 안되는 생활비의 1/3 이상을 오로지 과일사는데만 쓰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몸은 꾸준히 비타민 섭취를 원하고 신선한 과일의 식감, 미각을 자극하는 향과 달콤함에 길들여질수록 헤어나오기 힘든 것이 과일중독이다. 비록 저자처럼 새로운 과일에 탐닉하는 것은 힘들지만, 전 세계에 이토록 많은 과일이나 열매의 다양성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머지 않아 지구 반대편의 처음 들어본 과일들 역시 산지에 직접 찾아가지 않아도 맛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손꼽아본다. 그리고 비록 식용으로 개량되어 품종을 지켜온 많은 과일들이 유전자 조작과 농약에 노출되고, 장기간 냉장보관을 위해 온갖 억제제로 범벅이 되어 있더라도 그 과일을 향한 끊임없는 애정과 순수성을 지키려는 농부들과 개발자들이 있으니 미래의 과일은 좀 더 원초적 본능을 드러내줄 것이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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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의미 있는 사물들>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내 인생의 의미 있는 사물들
셰리 터클 엮음, 정나리아.이은경 옮김 / 예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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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 세계에 있는 모든 구체적이며 개별적인 존재를 통틀어 이르는 말.
사물의 구체적인 의미를 찾아보았다. 여러 의미 가운데 이 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구체적이며 개별적인 존재지만 우리가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기 전까지 개인에게 사물이란 그저 물질세계의 구성요소일 뿐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에 의미있는 사물을 회고했다. 책제목을 들었을 때 나 역시 인생에 의미있는 사물은 어떤 것이 있었던가 생각해보게 됐다. 책의 각 파트에서 설명하고 있듯 추억이 깃든 물건부터 한 사람의 인생을 대입해볼 수 있는 사물까지 다양한 것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내게는 수십년 전에 버려진 채 추억속에서 기억으로만 남겨진 사물들이 희미하게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런 나의 소홀함과 달리 책에 등장하는 여러가지 사물들은 마치 생명이 있는 것처럼 살아숨쉬고 있는 듯 했다. 아직도 화자의 마음 한구석, 실제 그 사람의 인생에 확실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유형의 사물들은 더이상 기계나 물질이 아니었다. 사물을 통해 한 사람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을 들여다보며 특별한 사물이 갖는 보통 이상의 특별함은 깊은 회상과 인생의 유한함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심장이 뛰는 따뜻한 가슴과 이성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도 우리는 사물에 깊은 애정과 신뢰를 보내고 시간이 흐릴수록 의미를 더해가는 수많은 물질과 마주하게 된다. 물질만능주의와 그 세태를 비판하는 현대의 우리는 새로운 것을 쫓고 낡은 것을 버림으로서 욕망의 그늘진 면모만을 보아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 이 책에는 사물이 한 사람의 인생에 갖는 매우 사소한 개인의 경험이나 추억을 통찰력있는 시선으로 꿰뚫고 있다. 
 

의미 있는 사물이 지닌 놀라운 힘을 절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과자를 통해 잊었던 맛을 찾아 아이들과 함께 나누는 경험을 통해 그는 '추억이라는 거대한 구조물'을 경험할 수 있었다. 잊고 있었던 맛과 향의 세계로 돌아갔고, 동시에 새로운 추억까지 얻었으며 어린 시절의 상징적 정수를 되찾았다.    -p. 117


6개의 구성 중에 가장 마음에 들고 공감했던 부분은 역시 애도와 추억의 사물들이다. 폴로라이드 SX-70, 다락방의 그림, 여행가방들은 사물에 관해 추억하는 따스함과 절대적 지지, 호의가 유감없이 드러난다. 개인의 경험과 추억을 통해 당시를 회상하며 당시 자신이 가졌던 생각이나 감정의 흐름을 읽으며 향수에 잠긴다. 특히 다락방의 그림을 통해 17세 소녀가 바라본 비현실적인 가족의 모습, 발달장애인 여동생과 부모님의 부재는 그림을 그릴 당시, 불안정한 사춘기소녀의 심리를 내밀하게 따라가며 객관적으로 상황을 분석한다. 할머니의 밀대에 나오는 아버지와의 에피소드는 사물로 인해 연상되는 추억과 사람과 사람을 잇게 하는 사물의 긍정적인 영향에 대한 부분에서는 마음이 훈훈해졌다.


그러나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사물들이 갖는 의미는 무엇보다 화자만이 가장 자세히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화자가 말하는 의미있는 사물과 읽는 나의 관점에서 바라본 사물들과의 간극은 아무래도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사물에 얽힌 재미난 일화는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었지만, 분석적으로 뎜벼들어 파고들 때는 좀 질린다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물의 객관적 사실과 증명을 떠나 좀 더 포용력있고 공감할 수 있는 에피소드와 쉬운 해석을 곁들였다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든다. 사물을 통해 본 인생철학이라는 거창한 책의 설명대로 이런 쉽고 가벼운 소재조차 난해하게 만드는 이야기구조때문에 뒤로 갈수록 지루하게 책장을 넘길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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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하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10권의 책으로 노무현을 말하다
김병준 외 지음 / 오마이북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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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초 생애 첫 투표권을 행사했던 대통령선거일, 개표방송을 지켜보며 아빠와 난 평소 대화없던 부녀사이라 믿기 어려울만큼 격한 논쟁을 할 뻔 했다. 서로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인이 달랐고 전형적인 보수와 진보사이의 갈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의 기쁨은 정말 잠깐이었고 노대통령의 집권기간 내내 주변의 보수주의자들에게 많은 비난의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한 때 보수적인 언론과 방송사때문에 당신의 의중을 의심한 적이 있었다고 이제와 고백하지만, 마음 속에선 언제나 그 분이 꿈꾸는 한국의 미래에 대한 희망과 신념을 믿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분의 마지막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내게도 그 분만큼이나 희망적이던 진보의 미래가 휘청이던 순간이었다.
 

노대통령의 서거 1주기가 지난 시점에서 격정적인 분노를 잠시 접어두고 이제야 진지하게 그 분을 되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이 책이 내게 왔다. 참여정부에서 노대통령과 함께 일했던 분들이 당신이 몇 번을 읽고 되짚으셨다는 책 10권을 추렴해 집권기간에 미처 보여주지 못했던 정책이나 정치적 견해를 책의 내용에 대입해 자세하게 들려준다. 그리고 10권의 책에 대해 함께 토론하고 고민하는 100여명의 청중이 11주동안 함께한 강독회의 뜨거운 열기는 노대통령이 그토록 원하던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화된 열정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권력과 자본에 잠식당한 언론에 회의를 느껴 신문이나 방송을 보지 않은지 꽤 오래 되었는데 나의 지나친 무관심이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이야기하셨던 것이 깨어 있는 시민, 그것도 뿔뿔이 흩어져 있는 시민이 아닌 조직화된 힘입니다. 시민들이 조직화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중략) 조직하지 않은 깨어 있는 시민은 허구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말을 빌리자면, 조직하지 않은 시민은 자칫 잘못하면 악의 편이 될 수 있습니다.    -p.98



10권의 책 중 사실 한 권도 읽어본 적이 없는 책이었다. 하지만 대부분 외국작가가 쓴 책임에도 우리 사회의 현상과 비교해 설명해주는 참여정부 인사들의 해설은 참 쉽게 귀에 들어왔다. 그리고 공부하는 대통령이라는 호칭대로 그 분이 책을 통해 배우고 실천으로 국민들에게 몸소 보여주려 했다는 교수와 전문가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끝내 그 분의 진심을 제대로 봐주지 못한 채 떠나보냈구나하는 아쉬움이 들게 했다. 


특히 10권의 책 중 인상깊게 다가왔던 책은 국가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지킬 수 있게 해주는 존재, 산업정책보다 사회정책에 힘을 실어야 하는 어머니의 역할을 하는 국가가 되야한다는 것을 역설하는 장하준의 [국가의 역할]과 깨어있는 시민의 힘을 보여줘야 진보가 제대로 방향을 잡을 것이라 말하는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세계인구의 1/6에 해당하는 절대빈곤층을 위해 원조해줌으로서 2025년 세계에서 절대빈곤을 몰아내야한다는 평화주의적 접근과 양극화로 나타난 한국의 상대빈곤 문제를 함께 고민하게 하는 제프리 삭스의 [빈곤의 종말], 진정한 리더는 얼마만큼의 공적인 가치를 추구했느냐로 역사가 평가하게 된다는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 회의적 사고로 모든 현상을 의심함으로서 언론의 왜곡을 바로 볼 수 있는 눈을 키워야한다는 토머스 키다의 [생각의 오류]는 깊은 생각의 여지를 남겼다.


노대통령도 당신 책을 쓰면서 이 책을 무척 중요하게 보셨고,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바로 국가의 문제라고 보셨습니다. 노 대통령이 생각하는 국가란 바로 증세를 해서라도 국민들을 먹고 살게 해주고 최소한의 품위를 지킬 수 있도록 해주며 어디 가서 비겁하게 살지 않도록 하는 존재입니다.   -p.87


그리고 한국 사회의 뿌리깊은 문제로 자리잡은 양극화 현상이나 지역주의, 오랫동안 천착하셨던 국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복지문제, 무엇보다 진보와 보수의 갈등에 대한 고뇌는 언론에서 비꼬고 왜곡했던 것과 달리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해결하려 노력하셨다는 참여정부 인사들의 고백은 그 분에게 가졌던 그동안의 불신을 허물어버렸다. 국민들의 빈곤과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민생행보보다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며 쇼를 통해 국민을 속이지 않겠다는 철학을 가진 그 분의 생각을 몰라주었던 것이다. 토론에 참여한 많은 깨어있는 시민들이 강의자에게 반론을 제기했고, 노대통령이 무리하게 추진한 정책들에 의심을 품었다. 그렇기에 이 책이 노대통령을 위시한 편향된 판단과 설득만 존재할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잘못한 부분은 인정하고 잘한 부분은 칭찬하며 한국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과 비전을 제시함으로서, 진보와 민주주의의 올바른 가치, 그리고 진보의 미래를 이야기있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진보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안전한 사회, 상식이 통하는 사회, 품격이 있는 사회가 바로 진보가 추구하는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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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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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정말이지 해도 해도 너무할 정도의 콩가루 집안이었다. 그런데 책의 중반을 넘어 후반부로 갈수록 도대체 콩가루란 어떤 의미를 뜻하는가 싶은 의문이 생겼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막장드라마라 일컫는 스토리에는 출생의 비밀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다. 이 집안에도 예상치 못한 출생의 비밀이 연이어 드러나고, 조카의 이름도 모르는 삼촌과 피자 한조각조차 삼촌들에게 나눠주지 않는 조카, 두 번의 이혼경력을 가진 주인공의 여동생과 평생 주먹을 쓰며 감옥을 수시로 드나드는 쉰 두살의 형이 등장한다. 무엇보다 마흔여덟에 영화 한 편 말아먹고 이혼에 빈털터리가 된 작중 화자인 내가 있다. 단지 평범하게 살아가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막돼먹었다 평할 수 없다. 그들에게도 어머니가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파도에 떠밀려 마지못해 해안가로 쓰레기처럼 떠밀려온 삼남매가 칠순을 넘긴 엄마의 집에 엊혀살게 되며 이야기는 매우 재미있게 흘러간다. 천명관은 이 책에서도 특유의 입심으로 욕망에 솔직하고 천진한 사람들의 모습, 그것도 가족이란 울타리아래 모인 남매와 어머니를 통해 우리가 진정 행복한 가족이라 일컫는 전형을 비웃으며, 평범함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이 행하는 것들이 위선이라 꼬집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은 어머니란 이름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엄마의 진정한 의미를 되짚는다. 희생을 미덕으로 살아온 엄마가 아닌, 과거 한 여자로서의 욕망을 간직했던 엄마와 평범한 인생살이에 실패한 자식들을 아무말없이 품으며 강한 모성애를 드러내는엄마가 등장한다.   


자식들이 장성해 머리가 희끗해져가는 중년이 되었어도 엄마눈엔 그저 노란 주둥이를 내밀고 먹을 것을 더 달라고 짖어대는 제비새끼들처럼 안쓰러워 보였을까? 그래서 비록 자식들이 모두 세상에 나가 무참히 깨지고 돌아왔어도 그저 품을 떠났던 자식들이 다시 돌아온 게 기쁘기만 한 걸까?   -p.58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는 말처럼 책 속 주인공의 어머니는 실패한 자식들의 인생에 그저 묵묵한 버팀목이 되어 누구보다 강한 엄마의 내면을 보여준다. 주인공 나는 영화의 실패로 인생마저 패배자로 전락해버린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지만, 엄마의 집에 들어와 살고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으며 조금씩 인간성을 회복해간다. 그리고 한 때 자신밖에 모르던 이기적인 나는 뒤늦게서야 형제들과의 과거를 떠올리고 자신에게 새겨진 가족의 그림자에 애정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누구보다 어머니의 존재감이 크게 다가오는 소설이었다. 남매가 모두 모였을 때 질리도록 고기를 굽고 고기반찬으로 삼일밤낮을 배불리 먹이며 흐뭇해하는 그녀를 보며 세상 모든 엄마들의 모습이 살짝 엿보였다. 나 역시 객지생활때문에 전화통화 끝에는 항상 밥 잘 챙겨먹으라는 엄마의 말을 흘려들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엄마가 우리에게 고기를 해먹인 것은 우리를 무참히 패배시킨 바로 그 세상과 맞서 싸우려는 것에 다름아니었을 것이다. 또한 엄마가 해준 밥을 먹고 몸을 추슬러 다시 세상에 나가 싸우라는 뜻이기도 했을 것이다.    -p.198


결국 가족이란 그릇에 엄마를 담기 위해 소설은 실패한 자식들을 앞세웠지만, 엄마의 역활은 어느 가족에서나 똑같다. 단지 이 책에서는 생선머리만 좋다며 몸통은 전부 자식들에게 양보하는 무조건적인 희생대신, 자식들이 어떤 방향을 향해가든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게 해주는 마지막 보루의 엄마가 있다. 물론 주인공의 엄마 역시 여자로서의 희생을 감내한 부분도 있다. 그러나 엄마의 존재감은 거기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것이다. 엄마는 자식들에게 집이고 밥같은 존재가 되야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지인은 한 인간을 길러봐야 비로소 사람이 된다는 얘기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희노애락을 겪으며 성인이 된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 역시 이타적인 행동속에서만 인간의 삶이 완성된다고 했던 부분은 엄마의 인생을 한마디로 압축한 표현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고보면 나는 평생 보살핌만 받았을 뿐 누군가를 돌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헌신적으로 나를 보살피는 캐서린을 지켜보며 나는 한 인간의 삶은 오로지 이타적인 행동속에서만 완성되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돌보고 자신을 희생하며 상대를 위해 무언가를 내어주는 삶...... 거기에 비추어보면 나의 삶은 얼마나 이기적이고 불완전한 삶이었던지.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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