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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깊다 - 한 컬처홀릭의 파리 문화예술 발굴기 깊은 여행 시리즈 1
고형욱 지음 / 사월의책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진정한 여행은 휴식이다는 말에 공감한다. 여행을 통해 사람들은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운다. 하지만 무엇보다 여행은 바쁜 일상에 쫓기듯 살아온 자신에게 피로회복제가 되야 한다. 여행자의 시간은 귀하다는 말을 어느 분에게 들었는데 올여름 여행하는 내내 그 말이 따라다녔다. 시계를 보지 않고 자유로이, 그러나 자신 속으로 무한히 침잠해 들어갈 수 있는 사색의 시간은 여행의 진정한 묘미였다. 그러한 자신의 시간동안 그 곳의 풍경과 문화에 깊이 매료됨을 느꼈다. 여행자의 시선은 그만큼 자유로웠다. 나는 파리를 소개한 이 책을 통해 저자가 파리에서 품었던 태동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파리는 과거에 천착하고 있다는 말이 서늘하게 가슴을 훑었지만, 오랫동안 파리를 여행하며 애정을 가졌던 저자가 변화의 광풍에 서서히 옛광영의 자리를 내주고 파리를 안타까워함은 그 장소를 깊이 이해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관광지를 둘러보며 두 번이상 가고 싶다고 생각한 곳은 없었다. 그건 이 책을 읽으며 곱씹는 바인데 관광지에 대한 역사나 문화의식이 희박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애정이 결여된 관람이었기에 어느 곳에서나 일정 이상의 감흥을 느낄 수 없던 탓이었을 것이다. 루브르와 오르세, 오랑주리 박물관을 수시로 드나들며 오로지 그림 한 점을 만나기 위해 새벽길을 오르고 2,3시간 기다림을 주저하지 않는 저자의 여행자로서의 마음가짐에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더 많은 것을 보기 위해 촉박한 일정을 쪼개고 시간에 쫓겨 허둥대며, 사진찍을 생각에 정작 중요한 피사체는 놓친 적이 많았던 그동안의 여행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이었나 반성하게 된다. 그리고 관광객의 일상을 잊은 느린 여행자가 되자는 저자에 생각은 여행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다. 
 

하루 정도 무위도식한다는 게 관광객들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조금은 느린 여행자가, 산책자가 되자. 정해진 시간과 예산 속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기념촬영을 하는 관광객의 일상을 잠시 잊자. 잠깐 동안 여유로운 여행자로 변하자. 하루가 힘들다면 반나절도 괜찮다. 가벼운 책 한 권 들고 나가서 황금빛 햇살이 초록 잔디를 향해 떨어지는 공원에 털썩 주저앉자. 주저앉는 게 포기하는 게 아니라 진정한 휴식임을 느낄 수 있다.   -p.255

 

2부로 구성된 책의 목차를 따라가니 파리하면 떠오르는 상징적인 것들이 전부 나열되어 있다. 특히 1부의 파리 예술 산책은 그동안 어떤 형태의 그림으로도 쉽게 만날 수 있었던 유명한 그림을 실제로 볼 수 있었던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대한 애정과, 당시 예술가들의 에피소드를 통해 쉽게 재미있게 그려진다. 많은 예술가들의 장소인 전설적인 몽마르트르 언덕이나 <물랭루주>의 툴르즈-로트렉 이야기는 마치 그들의 일상이 손에 잡힐 듯 깊이 빠지며 읽게 된다. 그리고 오로지 모네의 <수련>을 보기 위해 오랑주리 미술관을 찾고, 넓은 전시관 삼면을 가득 채운 <수련의 방>에서 마음을 가득 채운 사념을 몰아내고 온전히 그림의 심연에 빠질 날만을 손꼽으며 일부러 꿈을 미루고 있다는 저자의 마음에서 진심으로 그 장소와 그림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마음이 읽혀졌다. 요즘 따라 19세기 인상파화가들이 자주 회자되고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데 파리는 인상파의 도시라고 한다. 오르세는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미술관인데 작품 규모의 방대함에 놀라 제대로 즐기지 못할 수도 있으니 느긋한 마음으로 감상하라는 충고는 그 곳에 대한 지적호기심을 더욱 부풀린다. 
 

그림은 때로 물질적인 영역을 넘어선다. 꽃이 주는 단순한 아름다움만 포착하는 게 아니다. 시각젹 역역에만 제한되는 것도 아니다. 프루스트는 모네의 그림이 꽃과 시각적 영역을 넘어서서 또 다른 아름다움의 세계로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p.119


2부에서 만나는 파리 도시 산책코너의 이야기도 매우 흥미롭다. 유명한 파리의 고서점을 비롯해 관광객들은 잘 오지 않는 파리의 골목 구석 구석, 저자가 애정을 가진 곳에 뻗친 손길은 다정다감하다. 그리고 세부적으로 소개되는 파리의 아름다운 정원과 '미슐랭 스리 스타'에 빛나는 전통적인 레스토랑과 까페문화를 선도하며 파리의 낭만에 정점을 찍은 파리의 역사적인 까페들은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잊지 못할 추억에 물드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파리의 죽음이라는 에필로그인데 도시 가운데서 발견하는 공동묘지는 많은 예술가들의 혼이 잠들고 있기 때문인지 저자의 생각대로 죽음의 기운보다는 그들의 식지 않은 열정이 후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진원지같은 곳처럼 느껴졌다. 

 
묘지 안에 있으니 사념이 많아진다. 파리에서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옛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파리를 파리답게 만든 예술가들은 이미 유명을 달리했다. 과거의 영광스러운 세대는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파리는 여전히 '예술의 도시'라는 허장성세 속에 서 있다. 파리는 과거에 천착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은 뉴욕으로, 패션과 미식은 런던으로 그 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어쩌면 지금 파리가 팔고 있는 것은 과거의 꿈과 지나간 역사인지도 모른다. 아니, 혹은 그 모든 것들을 잃어버리고 낭만이라는 껍데기만 남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예술과 함께 탄생했으나 문화가 쇠잔하면서 퇴락해가고 있는 것이다.  -p.347


문화, 예술, 미식의 유행을 선도하고 세계의 내노라하는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이나 박물관, 다양한 기획전시로 관광객뿐만 아니라 높아진 내국인의 눈높이에 따라 점점 수준높은 전시와 볼거리를 제공하는 파리의 전시회는 파리의 대한 관심과 기대를 높인다. 인상파의 숲이라 일컫는 오르세 미술관이나 모네의 많은 작품을 소유하고있는 오랑주리 미술관은 파리에 들러 꼭 가고 싶은 곳이 되었다. 그림과 사진, 예술과 문화를 바라보는 눈은 한결같지 않다.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보는 이에 따라 전혀 다른 혜안을 가지게도 한다. 파리도 변화한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늘 예술가들이 자리잡아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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