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 그날 그 자리에 있을 사람에게
심보선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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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번 말했던 바, 나는 시에 관해서는 영 맹문이다. 아름다운 것을 알아보는 것도 재능일진대, 나는 시의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재능은 영 없다. 학교 다닐 때 시험공부를 위해서, 학부때는 전공필수과목이라 읽었던 것을 제외한다면 시는 안(못) 읽는다. 나에게 시는 해석 못할 난수표와 같다. 


그 와중에 웃기게도 또 언어의 아름다움은 탐한다. 언어의 아름다움을 탐하는 인간이 시는 읽지 못한다고 한다면 이건 역설인가 반어인가. 언어의 아름다움의 끝판왕이 시일진대 이 어설픈 탐닉자는 시의 아름다움을 읽어내지 못한다. 


시가 아니어도 이미 시인의 언어는 특별하다. 미술에 재능있는자 화가가 되고, 춤에 재능있는자 무용가가 되듯, 언어에 재능있는자는 문학가가 될 터인데, 그 문학가들 중에서도 언어에 가장 빼어난 재능을 가진자가 시인이다. 그런데 나는 시의 아름다움을 읽어내지 못한다. 아. 나를 불쌍히 여기시라. 


시인의 언어가 가진 아름다움을 탐하나 시를 읽지는 못하는 내가 대충 타협점을 찾은 것이 시인의 산문집이다. 그 시인의 시집 한권은 커녕 작품하나 제대로 읽지 않았고 알지 못하면서 시인의 산문집만 읽은 게 한 둘이 아니다. 아마도 박남준 시인이 이걸 안다면 몽둥이 들고 달려올지도. 박남준 시인은 아주 빼어난 시를 써 낸다고 하는데-다들 그렇다고 하니까 무조건 인정, 나는 그 시를 평가할 능력은 제로니까.- 정말로 아름다운 산문을 쓴다. 그런데 시인은 산문으로 돈을 버는 것에 대해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산문집을 출간하는 것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고 한다. 시인다운 결벽성이라고 할 수 있지만, 위대한 시인님이시여, 저같이 범속한 인간을 위해서라도 산문집은 계속 내어주소서. 아. 또 한번, Kyrie Eleison.


말이 길었다. 이 책의 저자 심보선은 사회학자다. 그런데 시인이다. 평론가 신형철의 발문대로 사회학을 하는 좌뇌와 시를 쓰는 우뇌를 가진, 그리고 그 둘의 '절묘한 균형'을 이루어내는 시인이자 학자. 언어는 시인의 그것답게 아름답고 논리의 전개는 학자의 그것답게 명료하다. 이 아름답고 명료한 언어로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를 묻는다. 아. 사람이 어떻게 이런 언어를 쓰지. 


아마도, 내가 시를 읽지 못하는 것은 질투심조차 가지지 못하게 압도당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언어를 구사하여 산문을 쓰는 사람이 쓰는 시란, 대체 어느정도로 아름다울까. 시인의 시집을 찾아읽어보고 싶게 한다. 박남준, 허수경에 이어. 또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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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1-26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에 관해 맹문이면서 아름다운 문장은 탐한다니 저랑 똑같으신 분이군요. ㅎㅎ 오늘 아시마님 덕분에 관심가는 책이 자꾸 생깁니다. ^^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 그날 그 자리에 있을 사람에게
심보선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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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접한상태에서 닿을 듯 말 듯한 거리감", 즉 ‘나도 사실은 저렇게 할 수있는데, 딱 한 발짝만 내디디면 되는데 그게 잘 안 되네. 나원참.’
이런 기분이 질투심이라고. - P181

이 책의 모든 글들은 자문자답이다. -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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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의 문법 -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소준철 지음 / 푸른숲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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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사회학자 조은의 책 <사당동 더하기 25>를 기대하였는데. 음...... 그에 영영 못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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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은 기억이자 망각이야. 고통이든 즐거움이든 일단 한 번 몸에 배면 그 다음부터는 다시 되새길 필요가 사라지게 돼.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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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지 않은 날이 더 많을 거야 - 삶에 서툰 나를 일으켜준 한마디
김지수 지음 / 흐름출판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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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불공평하다면 그건 모든 인간이 다르기 때문이며, 인생이 공평하다면 그건 사람들이 ‘자선‘과 ‘친절‘ 혹은 ‘자부심‘과 ‘용기로 그 형평을 맞추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건 ‘인생은 불공평하다‘는 절대적인 사실이 아니라, ‘공평하다는느낌‘ 그 자체에 있다. 그리고 ‘공평하다‘는 느낌은 훈련과 노력으로 가능하다. -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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