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선생님의 토지 2부의 앞부분에 이런 말이 나온다.  

"종이 종을 부리면 식칼로 형문(刑問) 친대더라."
박경리, 『토지』2부 1권, 나남출판, 2002, p. 136 

비슷한 어감의 우리 속담(속설?)로 시집살이를 호되게 한 사람이 매운 시어머니가 된다는 말도 있고.  

내가 앞으로 몇년간 살아가야 할 이 나라는, 300여년을 네델란드의 속국으로 살아왔다. 2차 세계대전 말기에는 일본의 속국이 되었다가, 우리나라가 그랬듯 일본의 패망으로 45년 독립국가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독립기념일은 8월 15일, 이 나라의 독립기념일은 8월 17일이다.  

중국, 인도,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인구가 많은 인구 대국이고, 한 나라안에 세가지 시간이 있을 정도로 영토도 넓은 편이고 석유, 석탄을 비롯한 부존자원이 풍부하다 못해 엄청난, 아시아 최대의 도시를 수도로 가지고 있는 이 나라는. 

이제 겨우 한달하고 며칠. 이 나라는 참, 이상한 나라다. 나쁘다 좋다 이런 의미가 아니라, 그냥 몹시 이상하다.  

그 중에서도 인구의 15%정도가 된다는 식모(pembantu/kakak), 유모(suster) 계층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도무지. 그리고 그녀들의 태도 또한.  

23살의 우리집 식모 암바르 양은,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참 음전한 사람이다. 순하고 얌전하고 겸손하고 상냥하다. 물론 내가 말을 못하니까 당연한 거겠지만 말도 없고, 우리 아이들을 참 예뻐한다. 오래 이나라에 살았던 다른 분들이 그러더라. 이 나라 사람들이 워낙에 아이를 예뻐하는 천성을 가졌다고. 아이를 잘 본다고.  

그런 그녀, 설거지를 잘 못한다. 우리가 흔히 안남미(안락미, 통일벼)라고 알고 있는 길쭉하고 풀기 없는 쌀로 밥을 지어먹던 그녀, 윤기와 찰기가 넘쳐흐르는 이천쌀로 무려 압력밥솥에서 지은 밥이 가지고 있는 접착력과 응고력에 적응이 안되는 모양, 밥그릇에 늘 으깨진 밥풀이 남은채로 설거지를 마무리 했다. 그래서 어제, 두번째로 그 문제를 지적했다.  

설거지를 마치고 엎어놓은 밥그릇을 들어 보여주며, 이것 보라고. 

당황한 그녀, 내가 두번째 밥그릇까지 들어올리자, sorry와 maaf을 반복하며 두 손을 모아 비비는데 내가 더 놀랐다. 아니 내가 뭘 어쨌게, 소리를 지르기를 했니 화를 내기를 했니, 나는 그저, 너의 설거지하는 방식을 약간 교정해 줄 생각 뿐이었는데, 난 니가 이런 쌀에 적응을 못한다는 걸 이미 이해하고 있는데, 그저 물에 좀 불렸다 설거지를 하면 간단한 문제일 뿐이라고 말해줄 생각이었는데, 아니, 근데, 내가 뭘 어쨌다고 니가 파리로 돌변해서 손을 모아 비비대는 거냐고........ 밥그릇에 밥풀 좀 남기고 설거지 마친게 손을 모아 비빌만큼 큰 죄는 아니거든... 

그 씁쓸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기겁을 하고 그릇을 그냥 놔두고 나와버렸다. 미쳐. 그녀는 내가 화나서 부엌에서 뛰쳐나간 줄 알거다. 환장할 노릇.  

그리고 오늘, 큰 아이 유치원을 알아보느라 암바르 양을 데리고 근처의 영어 유치원으로 향했다. 그 현관앞에 자랑스레 영어와 현지어로 적혀있던 말. 유모는 현관 안으로 들어오지 마시오.  

이 더운 나라에서, 아이의 엄마는 에어컨 빵빵 나오는 로비에서 아이를 기다리는 동안, 유모는 땀을 뻘뻘 흘리며 현관 밖에 붙어서서 로비의 CCTV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자기가 맡은 아이가 들어간 수업이 언제쯤 끝나나를 기다리며. 도대체 왜? 유모나 식모는 왜 현관에 들어오면 안된다는 걸까? 영어 유치원이지만 그 유치원의 소유자는 분명 현지인이고, 대부분의 선생님이 다들 현지인들이건만. 

유치원 견학을 마치고 같이 간 아이 친구 엄마와 함께 유치원 근처 키즈까페로 갔다. 한국의 키즈 까페와 별반 달라보이지 않으면서 값까지 싸서 여기 좋다~ 이러며 감탄하며 놀다 화장실 가는 길에 발견한 장소. 화장실 문 앞에, 그 까페와는 어울리지 않는 싸구려 의자가 놓인 좁은 공간. 그 위에 달린 팻말엔 유모 라고 쓰여 있었다. 그러니까, 유모는 키즈 까페의 테이블에 앉지도 말고, 유모 전용 좌석 거기에 앉으라는 이야기.  

도대체가 이쯤되면, 이건 정말 미친거 아니냐고. 식모 유모가 무슨 불가촉천민 계급에서만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이 나라는 당연히 힌두교의 나라도 아니고, 전 세계에서 무슬림이 가장 많다는 나라고, 한 테이블에 앉지도 말아야 할 유모에게 아이를 맡기는 건 또 뭐냐구. 유모에게 아이를 맡기는 사람도 이 나라 사람이고(물론 나같은 외국인도 많고.) 그 키즈 까페의 주인도 현지인일텐데, 서빙하는 직원도 모두 현지인들인데.

이쯤되면 눈이 핑핑 돌아가는 거다. 이건 뭐랄까,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느끼는 회의감이랄까. 350여년의 식민기간에 인간이 인간에게 급을 매기고 천민과 귀족으로 나누는 일을 겪으면서 그들도 참 싫었을텐데, 이젠 타성에 젖어 아무렇지도 않은건지. 유모와 식모에 대한 박대(? 학대?)는 잔인할만큼 명료한데가 있다.  

그래서 그 구절이 생각났다.  

종이 종을 부리면 식칼로 형문을 친다더라, 라는 말이.  

형문(刑問)은 정강이 뼈를 막대로 내리치며 죄인을 취조하는 일을 말한다. 이게, 종이었던 사람이 종을 부리게 되면 막대가 아닌 식칼로 정강이뼈를 내리칠만큼 악독해진다는데, 

그게 사람의 본성인 걸까. 

아,  

여긴 참.  

이상한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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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절로 2010-06-25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깜깜하네요.
우리나라도 해방 못했음, 저러구 있지 않나 싶네요. 에공.
(잘해주세요.)

아시마 2010-06-28 11:05   좋아요 0 | URL
흠... 여기 3개월여 살면서 이 나라 사람들과 접하면서 생각하는 건요, 민족성이라는 게 정말 존재하는구나, 하는 거예요. 물론 300년이라는 길고 긴 식민통치가 민족성이라는 것 자체를 바꿔놓았을 수도... 라는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지만요. 그래도 민족성이라는 걸 생각하지 않을수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