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세계문학세트>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장맛비가 내리던 저녁 - 중국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스져춘 외 지음, 이욱연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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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둘째를 낳던 그해에 손윗동서가 몇달 먼저 아이를 낳고 이름을 짓기 위해 고심하던 중에 큰 아이의 이름이 유리(따로 한자를 쓰지 않고 그냥 한글로만 유리다.)이니 둘째 이름은 벼리가 어떨까 했다. 벼리를 별이로 잘못 알아들은 시어머니의 반대에 부딪쳐 (시어머니가 알던 별이는 잔병치레가 많았단다.) 다른 이름이 되고 말았지만. 그랬거나 말았거나 나는 벼리란 이름의 어감도 뜻도 너무 좋아서, 아직 성별도 모른채 뱃속에 있던 내 아이의 이름으론 어떨까 고민을 했을 정도였다. 이번엔 남편의 반대로 무산되었지만. 남편은 큰놈과 작은놈의 이름에 돌림자를 쓰고 싶어했다.  

한동안 잊고 있던 "벼리"라는 단어를 형님이 잠시 생각나게 했고, 그 뒤로 잊고 있던 그 단어를 이 책이 생각나게 했다.

벼리는 그물의 제일 윗코를 주욱 꿰어 그물을 폈다 오무렸다 조절하는 줄을 이르는 순우리말이다. 흔하게는 "벼릿줄" 이라고 많이 쓰인다.  

다독을 넘어 남독을 할 정도이면서도 나는 의외로 책이나 작가에 대한 낯가림이 좀 있다. 새로운 작가나 새로운 장르, 낯선 나라의 작가의 책에 도전할 때 많이 망설이는 편이다. 모르는 작가의 책과 기존에 즐겨 읽었던 작가의 신작이 두권 나란히 놓여 있으면 난 아무런 고민없이 후자를 집어든다. 이미 알고 있는 작가의, 나라의, 장르의 책만을 읽어도 읽을 책은 차고 넘치니까, 안면있는(?) 작가나 나라를 늘일 필요성도 크게는 못느끼고 산다. 그래서 남독을 하면서도 나의 독서는 폭이 좁은 편이다.   

그러다 어떤 계기가 되었건 새로운 작가의 작품들을 접하게 될 때, 나는 조심스럽게 에세이나 단편 소설쪽을 먼저 꺼내서 읽는다. 단편은 일단 분량이 짧고 여러편의 작품을 읽을 수 있으니까 작가의 성향이나 장르의 특성을 빨리 파악할 수 있어서 낯가림을 쉽게 지워준다. 김연수와 하루키가 그런 경우였다.

이런 나에게 중국 문학은 낯선 분야다. 물론 위화를 좋아하고, 쑤퉁의 한국 출간작은 모두 읽었으며 하진도 무척 좋아하는 작가중 하나로 꼽지만, 이건 내가 톨킨이나 로저 젤라즈니를 판타지라는 장르와는 상관없이 한 작가로서 좋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국 문학과는 관계 없는 개별 작가로서 좋아하는 것이지, 위화, 쑤퉁, 하진이 내 앞에 중국 문학의 문을 열어주지는 못했다.  

그러다 이 책 한권은 위화, 쑤퉁, 하진의 책 모두를 합해 스무권이 넘는 책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 냈다. 나에게 중국 문학으로 가는 문을 열어준 것이다. 거부감 없이, 중국 작가의 작품들을 읽어보고 싶어지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가 문득 벼리, 벼릿줄이 생각났다. 이 책을 벼리삼아 이 책에 연결되어 있는 다른 그물코들을 더듬어 가다보면 중국 문학이라는 거대한 물고기를 끌어올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참 고맙다.  

이 책의 작가는 루쉰 한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처음 들어보는 이름들이다. 루쉰의 <아Q정전>이야 한국의 문학 교과서에도 실릴만큼 유명하니 그렇다치더라도 나머지 이름들이 이렇게까지 낯설다는 점에서 새삼 놀랐다. 작품을 읽어보진 않았어도 한번쯤 이름이야 들어봤음직도 한데(중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이라면, 이웃 한국에서 이름쯤은 거명될 법도 하지 않은가. 일본의 작가 나쓰메 소세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다자이 오사무 등등등의 작품은 몰라도 이름이야 한두번은 들어봤듯.) 제목은 차치해두고라도 이름조차 낯설다. 우리 번역시장이 얼마나 일본과 서구(그것도 영미권)에 치우쳐있나를 다시한번 확인했다.  

그렇게 낯선 작가의 낯선 작품인데도 모두 술술 잘 읽힌다.  썩 재미있게.

수록된 작품이 모두 중국의 근대에 쓰여진 작품이라는 걸 감안한다면, 중국이나 한국이나 서구 열강과 일본의 침략에 시달리고 모던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서구 문명이 단시간내 한꺼번에 유입되는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다른 작가의 작품이면서도 비슷한 느낌이 오는 것인지 문화와 정서가 전혀 다른데도 별로 거부감이 없다. 일본 문학을 처음으로 접할 때의 그 생경하던 느낌과 토악질에 가까운 거부감을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의외라 할 정도.

위따푸의 <타락>을 읽으면서 뜬금없이 이상과 박태원이 떠올랐고, 천충원의 <샤오샤오>를 읽으면서 빙그레 웃다가는 이효석의 토속적인 작품들이, 빠진 <노예의 마음>에서는 최서해의 작품이, 라오셔의 <초승달>에서는 김동인이.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가장 재미있게 읽은 마오뚠의 <린 씨네 가게>는, 잘은 모르지만 쑤퉁이 마오뚠을 계승한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몇년 전 중국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온통 중국으로 가기만 하면 떼돈을 벌어올 것처럼 나라가 들썩이던 때(생각해보면 어언 10여년도 더 전인듯.) 출판계도 온통 중국 관련 서적으로 판을 쳤었다. 그 덕에 내 서가에도 중국에 관한 책이 몇권있다. 주로 비지니스에 관련된 책들이지만.(왜 있는 거지? -_-;;;) 다른 나라에서 비지니스를 하려면 그 나라를 알아야 하니, 그 나라에 관한 책들을 몇권 읽어보는 게 정석이겠지만, 그런식의 책이 아니라, 중국문학의 벼리가 되어줄 수 있는 이런 책들을 읽는 것이 훨씬 중국이라는 나라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책을 시작으로, 한국에 더 많은 중국 작가의 좋은 작품들이 알려지기를 바래본다.  

그야말로, 모두에게 중국 문학의 벼리가 되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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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세운닥나무 2010-02-23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쑤퉁을 마오뚠과 연결시키는 게 흥미롭네요.

마오뚠은 우리에겐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국현대문학사에선 루쉰과 비견되는 작가입니다. <한밤 중(子夜)>과 <봄 누에(春蠶)>를 비롯한 농촌 삼부작은 중국 사실주의 문학의 대표작으로 불립니다. 제 개인적으론 소설에 사회주의 문학 이론이 가득 담겨 갑갑하다는 생각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