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가 돌아왔다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이우일 그림 / 창비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덮으며 처음으로 중얼거린 말은 ‘어른이 되어서 돌아 왔구나’ 였다. 표제작에서 열 여섯에 아버지를 줄넘기 줄로 꽁꽁 묶어놓고 집을 나간 ‘오빠’가 여자를 데리고 들어와 한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하듯. 바람 잡아 멕시코로 떠났던(『검은 꽃』,2003) 치기와 냉소로 가득했던 청년 하나가 세월만큼 나이를 먹고, 세상의 흐름에 순응하는 어른이 되어 돌아왔다. 오빠가 돌아오듯.

이제 그는 자살을 돕는 일 따위는 하지 않고(『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1996), 미용실 스텝 아가씨와 섹스를 하는 대신(『아랑은 왜』, 2001) 아내와 결혼한 지 5년 만에 아파트를 늘려 이사를 하고(〈이사〉), 애널리스트가 되어 아내와 하와이로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보물선〉), 학창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 둘과 공유했던 여자를 만나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크리스마스 캐럴〉).

냉소적인 시선으로 한걸음 떨어져 관망하듯, 영화를 보듯, 전혀 딴나라의 이야기를 서술하듯 가볍고 쉽게 이야기 하던 바로 그 위치에서 이젠 현실로 들어와 그 차가운 냉소를 열정으로 데워가며 복닥복닥 부대끼며 살아간다. 싫은 것은 안 보면 그만이고, 세상일은 나는 모르겠고, 고통 받는 내면보다 외적인 이미지에 집중하던 그가 이제 어른이 되어 싫지만 해야 하는 일도 하고, 세상일에 끼어들기도 하고, 냉소적인 시선으로 외면해 오던 타인의 속을 가만가만 짚어줄 줄도 안다. 뭐, 본래의 성품이야 어디로 가겠느냐만.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그의 산문집 『포스트 잇』의 리뷰를 쓰면서 썼던 그 “똘똘한 아이” 김영하가 이제는 어른이 되었다. 유들유들하고, 조금쯤 때도 묻고, 그때처럼 반짝이지는 않아도 그때보다는 훨씬 풍성해진 어른. 기특해서 엉덩이라도 툭툭 두들겨 주고 싶다. (아아, 그는 나보다 열 살 위다. ㅡㅡ;;;)

68년생인 김영하는 아직도 아내와 고양이를 키우며 산단다. 경의선 철로변에서. 아이를 하나 낳고 그야말로 빼도 박도 못하는 이 땅의 소시민적 아버지가 되면, 그의 글은 또 어떻게 변할까.

아아,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은 눈부신 소설적 재능.
신은 불공평하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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