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 리포트 필립 K. 딕의 SF걸작선 1
필립 K. 딕 외 지음, 이지선 옮김 / 집사재 / 2002년 4월
평점 :
품절


언젠가 밝힌 사항이지만, 나는 SF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흠. 장르 소설 자체를 별로 즐기지 않는다고 해야 맞다. 홈즈를 좋아하지만 그것은 추리물을 좋아하는 곳으로 발전하지 못했고, 톨킨과 젤라즈니에 열광하지만 그것은 개인에 대한 열광일 뿐 장르에 대한 열광으로 발전하지 못하였다. 내가 열광하는 장르소설이 유일하게 있다면 그것은 역사 소설 정도가 아닐까 싶다.(역사 소설은 정통 문학으로 그다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필립 K. 딕의 이 소설은 그러한 나의 취향에 비추어 볼 때 전에 언급한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나 내가 사놓고도 샀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는(그래서 당연히 아직 읽지도 않은) 듀나의 『태평양 횡단특급』, 코니 아줌마의 『개는 말할 것도 없고』류에 속한 다고 볼 수 있다. 전혀 취향이 아니지만 읽다보면 오호~ 하게 될 확률이 높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르 소설로 길잡이를 해 주는 소설은 아닐. (뭔가 복잡하다.)

하지만 이 소설은 앞에 언급한 그 소설과는 분명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앞에 언급한 그 소설들은 아마도, 알라딘의 리스트의 달인 프로그램 덕에 얼떨결에 주문하였을 것이 분명한 책들이지만 이 책은 내 스스로 사기 위해 검색까지 했던 책이다. 왜냐구? 스티븐 스필버그, 라는 이름이 붙었거든.

그렇다. 난 아직 스필버그나 탐 크루즈의 영화 치고 재미없었던 영화는 한편도 없었다. 게다가, 스필버그가 각색해서 찍은 영화의 원작 소설치고 재미없어 실패했던 적도 단 한번도 없었다. (마이클 크라이튼을 보라- 난 한때 그의 광팬이었다. 존 그리샴도.) 그래서 샀던 책이다.

이 책은 모두 8편의 짤막짤막한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의 두 편(<스위블>, <물거미>)은 타임 트래블에 관련된 이야기이고, 두 편(<고소공포증에 시달리는 사나이>, <마이너리티 리포트>)은 예지능력에 관련된 이야기, 그리고 두 편(<우리라구요!> <그래, 블로벨이 되는 거야!>)은 인간과는 다른 외계 생물체에 관련된 이야기이고 나머지 두 편(<퍼키 팻의 전성시대><완벽한 대통령>)은 대폭발, 또는 대 전쟁 이후의 암울한 인간세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필립 K 딕의 미래 인식은 그의 소설 제목 그대로, 그야말로 마이너 하다. 그의 이러한 암울한 미래 인식에 의한 소설들은 의미는 약간 다르지만 “마이너리티 리포트”라고 이름 붙여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 암울한 보고서. 그의 이러한 암울한 보고서를 유쾌하게 바꾸어 놓는 것은 그의 소설 곳곳에서 보이는 유머 덕분이다. 특히 <물거미>의 유머는 압권이다. 18세기 프랑스의 랭보가 말했던 것-시인은 예언자다-과는 조금 다른 의미이겠지만, 어쨌든 현대의 SF 작가들을 미래의 예지자로 설정하고, SF 잡지를 예언서로 해석하는 장면의 유머는 놀랍지는 않아도 몹시 유쾌했다.

사실 사놓고도 오랫동안 읽지 않고 있던 이 책을 꺼내 읽은 것은 최근 노통의 탄핵정국 덕이었다. 노통의 탄핵 사유로 거론 된 몇몇가지가 그야말로 마이너리티 리포트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그런데 어떤 만평가가 이미 그것으로 만평을 그렸더라. 사람들의 상상력이란 비슷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란 “소수의 예언서” 또는 “틀린 예언서”라는 의미를 가진다. 세명의 예언자 중 두 명의 예언이 일치하고 한명의 예언이 다를 때 그 소수자의 예언은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되어 폐기된다. 이 소설은 거기에 관해 꼬집고 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란 반드시 틀린 것인가. 2:1이란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한 단계 더 나아가,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안다는 것의 의미와 자유의지에 관한 것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보게 한다. 선과 악의 대립은 반드시 명확하지 않고, 인간은 자신의 미래를 알게 되는 순간 그 ‘안다’는 것이 이미 예언된 미래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란, 자신의 미래를 피해갈 수 있는 것인가, 예언된 미래를. 운명을 안다면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하는 생각 역시 하게 만든다.

취향과 다른 소설을 간간히 읽는 다는 것은, 딱히 나쁘지는 않은 일 같다. 꽤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SF는 취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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