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1 - 개정판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이 셋째 딸에 대해 만들어 놓은 통념조차 일종의 위안 장치거나 거짓이라는 것을 알 것 같았다. 셋째 딸은 인물 좋고, 재주 많고, 알뜰해서 선도 보지 않고 데려간다는 그 오래된 거짓말에 내포된 진실이 보였다. 부모들은 셋째 딸의 출생을 반기지 않았던 미안함을 씻기 위해 그런 거짓말을 하고, 셋째 딸은 가족 속에서 필요한 존재가 되어 사랑 받기 위해 피나게 재주를 연마하고 착하게 행동하고 부지런한 아이로 자라나는 그 오래된 거짓말의 고리 말이다.」

잘 모르겠다. 원래 말이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인 법, 나는 셋째 딸이지만 나의 마음 속에 '가족 속에서 필요한 존재가 되어 사랑 받기 위해 피나게 재주를 연마하고 착하게 행동하고 부지런한 아이로 자라나'려는 노력이 있었는지는, 진심으로, 잘 모르겠다.  나는 딸 넷 중, 성적이 가장 나았지만 그것이 노력의 결과였느냐고 묻는다면 아니, 라고 대답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구절이 참, 참…….

가끔. 그런 경험이 있었다.

한밤중에 벌떡 일어나 네 방구석을 맴돌며 울컥울컥 울던 때, 또 하나의 냉정한 나는 "너 왜 그러니."하고 나를 관찰하고 있는 듯한 기분. 도대체 외로울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외로워외로워 중얼대며 짐승처럼 울먹일 때, 또 하나의 말간 정신을 가진 내가 나를 보고있는 기분. 미친 거 아닐까, 이미 미쳐버린 건 아닐까. 싶던 순간순간들. 왜 그랬을까. 싶은.

그런 순간순간들을 조근조근 간지러운 손가락으로 위무하는 소설이었다. 위로를 받은 건지 상처를 헤집기만 한 것인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던. 어쩌면 없던 상처를 만든 소설인지도 모르고 잊고 지내면 편했을(또, 잊고 지내도 아무렇지도 않은 상처를) 상처를 일없이 헤집은 소설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읽은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책을 덮고 나서, 나는 이 책을 30대 중반의 결혼하지 않은 선배에게 보내주었고, 결혼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는 큰언니에게도 보내 주었다. 이 책이 필요해 보이는 사람들이었으니까.

누군가에게 '필요한' 책이 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교과서가 아닌 다음에야 필요하고 필수적인 소설이란, 얼마나 위대한 소설인가.

소설이란,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하나의 메타포가 되어준다. 타인으로 인해 내가 상처입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겠으나 최소한 내가 입는 상처와 동일한 상처를 타인에게 주지는 말아야지, 그러기 위해서는 타인의 삶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아니다. 인간이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결국,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인간을 이해하려는 노력, 나아가 나를 이해하려는 노력에 지나지 않는다.

이 소설로, 나는 나를 얼마나 들여다보았고, 얼마나 이해하였을까. 그것이, 이 지긋지긋하도록 통속적인 결말을 가진 소설의 최대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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