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친 민음사 모던 클래식 5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나는, 서사성 강한 소설을 좋아한다. 선이 굵고, 스토리 라인이 확실하고. 그래서 박완서를 좋아한다. 박완서의 그 튼튼한 서사성은 그야말로 소설의 본령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박경리역시 마찬가지. 튼튼한 서사성 위에 질박한(?) 묘사는 완벽한 소설의 첫 번째 조건 아닐까. 박완서의 묘사는 허공을 짚지 않는다. 플로베르가 누님~ 하고 울고 갈 판의 완벽한 일물일어다. 그래서 박완서는 대가다.(박경리조차도, 박완서의 그 일물일어에는 닿지 못했다, 싶다.)

『키친』에 실려있는 세 편의 단편은 서사성은 약하다. 그렇다고 묘사가 질박하게 땅에 붙은 일물일어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동화를 쓰듯 애매한 이미지들을 차용하여 꿈결의 이야기를 늘어놓듯 늘어놓을 뿐이다. 묘사가 아니라, 감각만이 남아있다. 모양이 어떠하다, 라는 시각은 사라지고 따뜻하다, 포근하다, 하는 촉감, 향긋하다 하는 후각, 등만이 생생하게 전해진다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이 소설에서 나에게 가장 강하게 전달된 것은 이러한 것들이 아니다.

소설 전체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이질감.

나는 이것이 일본적 정서라고 파악했고, 한국적 정서에서 자란 내가 당연히 느낄 수밖에 없는 이질감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든다면 그런 것이다. 남자 주인공 유이치의 집안에 대한 설명. 인간은 상상할 수 있는 만큼만 사고한다는 것에 나는 늘 동의하는데, 그런 면에서 이들의 관계는 나의 사고의 범주를 벗어나 있다. 상상치도 못한 이야기인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면 그것은 엽기다. 성전환 수술을 해서 엄마로 살아가는 아버지, 라니, 한국적 정서에 길들여진 "보수적인" 나로서는 상상 밖의 영역이다. 이해하지 못한다, 라는 것이 아니라 시초부터가 상상 이외의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이질감은 시작된다. "성전환"수술이 상상 밖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태도가 상상 밖이라는 이야기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유이치는 문제아가 되어 있어야 맞는 거 아닐까.

그 다음으로 말하자면, 사건 자체의 이질성이다. 살 곳이 없다는 이유로 그동안 한번도 보지 못한 사람의 집에 덥석 들어가 살 수 있다는 것, 이것 역시 한국에서 가능한 사고는 아닌 것이다. (물론 이런 이유로 해서 요시모토 바나나는 동화적이라는 평을 듣는다.)

또 있다. 사물을 묘사하는 방식. 그것이 요시모토 바나나의 개인적인 특성이라 하더라도, 한 인간을 형성하는 것은 그 사회와 문화인 법이니까, 그녀의 글 전체에 배어있는 일본적 사고랄까, 그런 것이 내게는 확실히 기묘한 이질감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기묘한 이질감이 오히려 『키친』의 매력을 배가시키고 말았다. 기묘하고 동화적인 이야기에 기묘한 이질감이 더해져 버림으로써, 매력이 가중된 결과라고 할까. 또, 그 기묘함의 덮개로 덮어놓은, 소설의 기저에 흐르는 등장인물들의 감정의 흐름(그 역시 내가 사고하기에는 벅찬 것이기는 하지만)이 묘하게 매력적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다름"에서 오는 호기심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런식으로 사고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놀라움이랄까.

여튼, 이런 저런 이유로, 나는 요시모토 바나나를 읽기 시작했다. 그녀의 다른 소설집 두권을 구입해 쌓아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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