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요커 - 한 젊은 예술가의 뉴욕 이야기
박상미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얼마전, 줌파 라히리의 《이름 뒤에 숨은 사랑》을 읽었다. 줌파 라히리의 소설로는 《축복 받은 집》, 《그저 좋은 사람》에 이어 세번째 책이었다. 첫번째 소설집 <축복 받은 집>을 무척 괜찮게 읽어놓고도 알수 없는 이유로 사지 않고 미뤄두었다가 그보다 늦게 나온 <그저 좋은 사람>을 먼저 읽고서 읽은 책이었는데, 역시나, 참 좋았다.  

그 내용도 내용이었지만, 문체라고 할까 그 분위기가 좋았다. 줌파 라히리의 문장은 촘촘하게 직조된 실크의 느낌을 주었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빈 공간이 없이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랄까. 이건, 내가 좋아하는 김훈의 문장과는 또다른 대극점에 있는 문체인데, "문장과 문장 사이에 블랙홀이 있"고 (문장과 문장사이의)"전압이 높은"(따옴표 안은 김훈 본인의 표현 인용) 김훈의 문체를 좋아하던 나로서는 이렇게까지 촘촘한 문장을 좋다라고 느끼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호감이 갔다.  

 가끔, 번역 소설을 읽다보면 원문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이 문장의 원문은 무엇이었을까, 원문도 이런 뉘앙스를 풍기고 있을까, 이 번역자가 과연 바르게 옮긴 것이 맞는 것인가,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청바지 위로 가려운 곳을 긁고 있는 듯한 이런 느낌은 번역 소설을 좋아하면서도 좋아하지 않게 되는 이유가 되어주기도 하고, 영어에 관해 거의 공포심 수준의 울렁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영어 공부를 해보고 싶게 만드는 순간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리고, 사실은, 영어라는 언어에 대한 증오심도 생기고, 이런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어 번역까지 하게 되는 사람에 대한 열등감까지. 아. 나 정말 이러다 언젠가는 영어를 정복해버리고 말거야. 나의 불행한 잉글리쉬 포비아. 

이럴때 나는 번역자에 관심을 가진다. 김연수는 김연수 스럽게 번역을 하고 이윤기는 이윤기 스럽게 번역을 한다. 번역은 제 2의 창작이라는 관점에서 번역된 소설은 자연스럽게 번역자의 스타일이 반영되게 마련이라고 생각하니까. (적어도)내 머릿속에서 니코스 카잔차키스와 움베르토 에코는 닮은 꼴이다. 둘다 이윤기의 번역으로 읽었으니. 그때 내 눈에 띈 책이 이 책이었다. 

한때, 이곳이 아닌 저곳을 꿈꾼 적이 있었다.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 내가 모르는 곳에서의 새로운 삶은 말 그대로의 매혹이었다. 내가 선택하는 새로운 탄생이랄까. 그렇다고 어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저 떠난다는 상상만으로도 숨이 트인다는 기분이 들곤 했었다.  

그렇게 내가 선택한 곳은 뉴욕이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다. 미드는 <C.S.I> 시리즈와 결혼한 뒤 남편과 함께 본 <프리즌 브레이크>가 전부인 내가 뉴요커에 대한 어떤 환상을 가진 것도 아니고, 나는 아직도 뉴요커가 뭔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무엇에 대한 상징인지도 모르고 더 솔직히 말해서는 관심도 없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내가 굳이 뉴욕을 선택한 건 아주 단순한 우연이었고, 뉴욕은 뉴욕이 아니라 런던, 파리, 시카고, 헬싱키 어디여도 상관이 없었다. 물론 지금도 상관없고. 그곳이 어디든 나는 떠나지 않을테니까.  

 어쨌든, 떠난다는 상상만으로도 숨길을 틔울수 있을때, 난 뉴욕에 관한 책을 모으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산 책은 뉴욕 여행 안내서였고, 뉴욕에 사는 사람들이 쓴 책들이 그 뒤를 이었다. 그때 산 책이 이 책이다. 사 놓고 3-4년이 넘도록 펼쳐보지도 않았다.  

결과부터 이야기하자면, 줌파 라히리와 번역자 박상미는 전혀 달랐다. 문체도 느낌도 분위기도 모든 것이 다. 소설가와 미술가의 차이라고 말할 수도 없을만큼 달랐다. 이 책의 박상미는 그저 평범한, 압구정동에도 있을 법하고 인사동에도 있을 법한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 책은 그냥 뉴욕에 관한 책이었다. 뉴욕에 사는 한국 사람의 여행기가 아닌 생활기. 줌파 라히리에 대한 기대덕에 약간은 실망스럽기까지 한 책이었다.  

그렇지만, 이 책만을 놓고 보자면, 그럭저럭 괜찮다. 찬양에 치우치지 않고, 그렇다고 뉴욕에 억눌리지도 않고, 외국 문화에 대한 반감도 없이 말 그대로의 생활기로 잘 읽힌다. 한국 도산공원 앞의 이야기와 비슷하달까. 나고 자란 문화가 아닌 전혀 새로운 문화 속으로 뛰어들어 사는 사람의 이질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 뉴욕에 잘 동화되어 사는 사람이구나, 잘 살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마저 든다. 그리고 그 안도감은 "이곳이 아닌 저곳"을 꿈꾸던 나의 숨길을 좀더 크게 열어준다. 그래, 뉴욕가서도 잘 살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문득 무럭무럭 든달까. 

그런 의미에서 특별한 책이었다. 한국 사람이 외국에 살면서 그 나라의 문화에 관해 쓴 책인데도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신기했고 그래서 편안하게 읽힌다.  

밑줄 그은 구절 하나.  

"사람이 어딘가 쏟을 수 있는 열정이나 에너지에는 한계가 있거든. 한 곳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 버리면 다른 곳에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상대적으로 적어진다고 생각해."
(p.197)

 ps. 재미있게도, 이 책에도 김훈이 나온다.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김훈의 소설 <화장>에 대한 감상이. 이 사람도 김훈에 감탄하는 구나, 신기했다. 결국 이쪽 끝과 저쪽 끝은 서로 닿아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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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11-23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아시마님. 떠났다가 돌아오시는 건가요, 아니면 아주 떠나시는 건가요?

아시마 2009-11-23 12:17   좋아요 0 | URL
당근 돌아오죠. ㅎㅎㅎ 한 4년 있다가 와요. 아직 떠나는 것도 좀 남았구요.
아참, 뉴욕으로 가는 건 아녜요. 글 써놓은 게 꼭 나 뉴욕가, 라고 써놓은 것 같아서 사족 달아요. ^^

다락방 2009-11-23 12:41   좋아요 0 | URL
사족 땡큐에요. 뉴욕 가시는 줄로 알았거든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