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시꼬랭이 동네 시리즈 15권 + DVD 세트 국시꼬랭이 동네
강동훈 외 그림, 이춘희 글, 임재해 감수 / 사파리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대학 진학을 하느라 서울로 오기 전까지 살았던 고향집은 작은 정원이 딸린 주택이었다. 물론 부모님은 아직도 거기 살고 계신다. 하숙집을 거쳐, 직장생활을 하던 몇년간의 원룸생활이 이어졌고, 결혼과 동시에 나는 아파트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러니까, 주부로서, 어떤 집의 관리자로서 내가 주택에 살아본 적은 없으니 아파트가 주택보다 얼마나 편한지는 알수없으나 생활의 편의라는 면을 제외하고라면 아파트는 참... 자연이라는 측면에서는 삭막한 공간이다. 자연에서 소외된 삶은 삭막해진다.  

꽃잎 뜯고 솔잎 뜯고 흙 퍼담아 하던 소꿉장난에 대한 기억은, 아파트에 사는 내 딸들에게는 딴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이건 어떻게 설명을 할수가 없다. 내 딸이 아파트 내부 공간에서 보는 꽃이란 고작 양란이나 분재, 그도 아니면 꽃다발 정도니까. 호박꽃의 수꽃과 암꽃이 어떻게 다른지(어릴때 소꿉장난을 할때 열살 미만의 나이에도 암꽃은 따면 안된다고 알고 있었던 나였다.) 풀의 이름이 뭐가 있는지. 풀꽃 도감과 야생화 도감을 사 주어도 아이에게 그건 지식의 차원이지 놀이의 차원이 아니었다. 그러니 점점, 자연과 더불어 사는 법은 잊어가고, 내 아이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과일 모형과 역시 플라스틱으로 근사하게 엄마의 부엌을 본떠 만든 부엌에서 깨끗하게(?) 소꿉장난을 한다. 이건 뭔가... 아니다 싶다. 

아파트에서 태어나 자라 아파트에서 살아갈 내 아이를 보면, 이 아이가 상실한게 무엇인지, 이 아이 스스로는 알기나 할까, 하는 한숨이 난다. 하긴, 가져본 적이 없는 것에 대한 상실감은 생기지도 않겠지. 

그러다 발견한 책이 이 책이었다. 이 책은 "잃어버린 자투리 문화"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도대체 잃어버린 자투리 문화가 뭔가하고 봤더니, 내가 열살 미만에 하고 놀았던 놀이들이다.(하긴 나도 이 책에 나오는 풀각시 만들기나 풀싸움을 해 본일은 없지만.) 외국에서 만들어 낸 창작 그림책을 보듯 이 책을 본다, 내 아이는. 읽히다 보면 마음이 아프다가도, 그래도 이게 한국의 놀이문화라고, 니가 잃어버린 문화라고 알려주고 싶어 책장의 다른 책들보다 자주 꺼내 읽힌다.  

그리고. 책의 소명에 관해 생각한다. 이제는, 아주 시골에 사는 아이들을 제외한다면 이 놀이를 하며 자라는 아이도 없겠지. 그러면 역사책에 기록될 가치가 없는 이런 소소한 놀이문화들은 잊혀지겠지. 그러나 이 책이 존재함으로 해서 그 놀이들은 힘을 얻는다. 지금까지 천년을 유지해왔던 그 문화가 앞으로의 천년을 버티어나갈 힘을. 

이 열다섯권의 책은 글쓴이는 이춘희 한 사람이지만 그림을 그린 이는 다양하다. 그래서 지루하지 않게 한권한권 읽어나갈 수 있다. 난 전집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책은 그나마 전집의 냄새가 좀 덜난다. 

이 책을 사고 얼마되지 않아 아이의 소꿉을 챙겨들고 벚꽃지는 공원으로 나가 꽃밥으로 소꿉놀이를 해 보았다. 벚꽃지는 계절이 지나 이제 아이와 함께 갔던 공원의 잔디는 모두 누래졌는데도 아이는 공원을 지날때 그 꽃밥을 지어 소꿉놀이를 했던 이야기를 한다.  

언젠가는 이 책에 나오는 모든 놀이를 다 해보는게 나의 소박한 소망이다. 그러려면 시골로 이사를 가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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