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칭이란 인생이 항상 그렇게 심각하고, 형식적이고, 복잡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하는 유물, 어린 시절이 남겨준 유물인 것이다. 애칭은 또한사람이란 함께있는 사람,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지는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게 해 준다.' 

줌파 라히리, <이름 뒤에 숨은 사랑>, 2004, p.41 

다인이 어렸을 때 엄마 아빠 맘마 등의 일상적인 단어를 제외하고는 제일 먼저 한 말은 "야옹"이었다. 

남편은 나를 "야옹이" 라 부른다.  

뭐, 내가 생각할때 나는 전반적으로 고양이과의 인물이지만, 가까운 사람에게는 전형적인 강아지과의 인물이 되는데(특히 남편에게) 남편이 나를 야옹이라 부르는 건 좀 아이러닉한 일이 아닐수 없지만 어쨌든 남편은 나를 야옹이라 부른다. 

그건, 결혼하기 전부터였다. 나와 마찬가지로 나의 이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남편은(사실 나의 본명은 별로 "이름 뒤에 숨은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 이름이다. 아무런 고민 없이 생각나는 대로 지었음이 너무나 역력하고, 장차 이 이름을 쓸 아이가 자신의 이름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에 대한 배려가 전무한 이름.)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나를 야옹이라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 즈음의 나는 남편에게도 고양이처럼 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솔직히 서른살 여자에게 야옹이라는 애칭은 좀. 

결혼 직후 남편은, 시댁이나 친정 식구들 앞에서는 야옹이라는 호칭을 좀 자제하는 것 같더니,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시댁에서도 친정에서도 당당히 외쳐대기 시작했다. "야옹아!" 라고.  

남편의 나에 대한 호칭은 나름 다양하게 변주된다.  

야옹아, 옹아, 옹아야 등등등. 그리고 기분이 좋거나 심심하거나 괜히 한번 이름을 불러볼땐 나름 가락을 붙여서 불렀다. "야옹 야옹아~" 라고. 솔직히 40이 멀잖은 남자가 마누라를 부르는 이름으로는 좀.  

하여간. 남편이 그렇게 가락을 붙여 "야옹 야옹아~" 라고 불러주면 나는 냉큼 "야옹!" 이라고 대꾸해 주곤 했다. 아주 부부가 죽이 잘 맞지. 전화를 받을때도 "여보세요"라는 말대신 "야옹" 이라고 받기도 한다. 뭐, 천생 연분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날도 심심했던 남편이 별로 할 말도 없으면서 "야옹 야옹아~" 라고 부르자 내가 대꾸를 하기도 전에 다인이 냉큼 대꾸했다. "야옹." 이라고. 아이들의 학습력은 놀랍다. 그때가 아마 돌무렵이었을걸. 그 뒤, 아이에게 엄마 아빠의 이름과 주소들을 외게 할때 다인이 말했다. 

 "아빠 이름 뭐야?" 
"서**"
"엄마 이름은?"
"야옹이." 

이 문답으로 여럿 포복절도 했다. 37개월인 지금도 다인은 엄마 이름 뭐야를 물으면 야옹이를 외친다. ㅎㅎㅎ 웃긴다. 

한편. 다인의 애칭은 '찹쌀떡'이다.  사람들이 종종 묻더라 애를 왜 찹쌀떡이라고 부르느냐고. 뭐 별건 아니고, 아기의 말랑말랑한 엉덩이가 꼭 찹쌀떡 같아서, 어느날인가부터 다인을 찹쌀떡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 애칭도 다양한 변주형태가 있는데, 

찹쌀, 찰떡, 떡이, 챱샤리, 살떡이, 똑이 등등등. 

어느해의 명절엔가 사촌 언니 부부와 함께 가진 술자리에서 사촌 언니 부부가 논쟁을 하고 있더라. 다인의 별명이 찹쌀인지 찰떡인지를 두고. 나는 주로 찹쌀이라 부르고 남편은 주로 찰떡이라 부른다. 이랬건 저랬건 그걸 왜 둘이 싸우냐고. 멀쩡하게 옆에 앉아있는 날 두고. 착한 나는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찹쌀떡과 찹쌀과 찰떡의 변주에 대해서. 아직까지는 다인이 만큼 특이한 애칭을 가진 애를 본 적이 없다. 참고로, 그 사촌 언니 부부의 두 딸은 똘이와 짱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다.  

둘째의 애칭은 다인이 지어준 셈이다.  

태어나긴 둘다 비슷하게 3kg 언저리에서 나왔는데(다인이 2.94 / 해인이 3.07) 다인은 작고 야윈 아이로 자란 반면(돌때 체중이 8.4였다. 애고고.) 해인은 백일까지 무섭게 체중이 늘었다. 태어난지 한달만에 5kg를 돌파했고, 언니의 돌때 몸무게인 8kg는 백일 언저리에 돌파했다. 어익후. 비만 아기가 될까 얼마나 걱정했게. 

다행히 5개월무렵부터는 그렇게 무섭게 체중이 불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평균체중을 윗도는 통통한 아기로 자랐다. 똑같이 젖먹이고 똑같이 이유식 먹이는데 왜그렇게 다른지 원.  

하여간 어느날 해인의 기저귀를 갈고 있는데 다인이 옆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토실 토실 엉덩이, 올록 볼록 예쁜배~"로 시작하는 동요를 아시는지? 다인은 그 노래의 가락에 맞추어 이렇게 불렀다. 물론 첫 소절 무한반복이다. 

"토실 토실 밤토실
해인이는 밤토실
토실 토실 밤토실." 

그래서 자연스레 해인의 애칭은 "밤토실"이다. 도대체 토실 앞에 "밤"이 왜 붙었는가는 나도 알수없는 다인만의 사고 매커니즘이고, 아직까지는 설명할 능력이 안되는 것 같으니 알수없고, 나중에 설명할 능력이 될만큼 언어 능력이 자라면 자신이 동생에게 "밤토실"이라는 애칭을 붙여준 걸 잊을테니 영영 알수가 없겠지만 어쨌든 해인은 "밤토실"이 되었다. 

이름의 변주에 특별한 능력(?)이 있는 남편은 밤토실을 주로 걍 토실이라 부르고, 나는 종종 기저귀를 갈거나 아이와 놀아줄때 챈트 비슷한 저 구절을 중얼중얼 부른다. 아, 그러고보니 다인의 별명과 관련된 챈트도 있다.  

"찹쌀떡 찹쌀떡 다인이 찹쌀떡 엄마 찹쌀떡 다인이 찹쌀떡~"  

이 가락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건지 나도모르는, 걍 어쩌다보니 입에 붙어버린 가락이다.  

이래서, 다인에게 가족의 이름을 물으면 이렇게 나온다. 

"아빠 이름 뭐야?" 
"서**" 
"엄마 이름은?"
"야옹이"
"네 이름은 뭐야?"
"다인 찹쌀떡"
"동생이름은 뭐야?"
"해인 밤토실." 

이 무슨 동방신기식 작명법이람. 

뭐. 그건 그렇고. 이제 대망의 남편.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는 이름 뒤에 "씨"를 붙여 꼬박꼬박 "**씨"라고 불렀다.  

보통은 다들 "오빠"라고 하는 모양인데, 난 당시 모시고 있던 선생님이 연인간의 "오빠"라는 호칭에 혐오에 가까운 반감을 가진 분이셨던데다(근친상간이라는 단어까지 들먹이시며) 우리 부부의 나이 차와 같은 나이차인 언니네 부부가 "##씨"라 부르고 있던 상황이라 아무 고민 없이 "**씨"라 불렀다. 그랬더니 세번째 만났을 때인가, 남편이 자긴 "**씨"라 불리는 걸 너무 싫어한다나. 

그래서 그럼 뭐라 불러주랴? 물었더니 수줍게 "오빠"라 불러달란다. 어익후. 단칼에 자르며 말했다.  

"울 엄마가 널 낳았니?" 라고. 

그리고 "**씨"와 "아저씨"라는 호칭중에 선택하랬더니 눈물을 머금고 "아저씨"를 택하더라. 그래서 한동안 "아저씨"라고 부르다가 결혼 준비 과정에서 웨딩 컨설턴트가 나를 "신부님", 그리고 남편을 "신랑님"이라고 부른 것을 계기로 "신랑님"이라고 호칭을 바꿔줬다.  

그리고 한동안이 지난 뒤, 남편 친구 부부(여긴 동갑)가 "여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걸 보고 자연스레 "여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저씨"도 "신랑님"도 "여보"도 딱히 애칭으로 보긴 힘들고.   

얼마전부터 남편은 나에게 "충무공"이라고 불리고 있다. 무려 충무공. 애칭 치곤 좀 대단하시다.  

남편은 장가를 잘 들었는데(믿어라!) 난 늘 남편을 세뇌시키고 있다. 나만한 마누라가 어디있니. 전생에 나라를 구해도 세번은 구했지. 그랬으니 이생에 나같은 마누라를 만났지. 당신이 잘되는 건 다아아아아아아 내 덕인줄 알라고.  

처음엔 비웃던 남편, 내가 하도 집요하고 줄기차게 주장하니 이젠 뭐, 걍 인정한다.  

그러다가 얼마전, 집을 사고 팔고하는 과정에서 말했다. 

당신은 전생에 나라를 구해도 세번은 구했나보다. 도대체 전생에 뭔 공을 그렇게 쌓았길래 나같은 마누라를 다 얻었니? 당신은 아마 전생에 이순신이었을 거야. 앞으로 당신을 충무공이라고 부르겠어. 서 충무공. 

 해서 남편의 애칭아닌 애칭(? 이 경우엔 호칭 또는 별칭에 가깝겠다.)은 충무공이 되었다. 

결국은 다, 내가 잘났단 말이다. ㅎㅎㅎ  

이 책, 이름 뒤에 숨은 사랑을 읽다보니, 문득 생각이 나서 주저리 주저리 길게도 써봤다. 

뭐, 따지고 보면 우리 가족의 애칭은 이 책에 나오는 분류대로 하자면 "벵골식 애칭"에 가깝다. 

"친구와 가족처럼 친한 사람들이 집에서 또는 그 밖의 사적이고 편안한 순간에 부르는 이름"
p.41 

이니까. 

이 애칭 외에 나의 또 하나의 이름은 아시마다.  

인터넷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써온 이름.  

난 이 아시마라는 이름을 중국 고산부족의 설화 <아시마>에서 따왔는데, 이 책의 설명에 따르자면 벵골이름 아시마의 뜻은 '경계를 모르는, 가능성이 무한한 여자' 라는 뜻이란다. 중국 고산 부족의 설화에서 아시마 라는 이름은 향기로운 이름이었는데.  

사람이 이름을 규정하기도 하고, (언제 였는지 확실히 기억은 안나는데 김영삼 정권때 호적 일제 정정 기간이 있어서 이 시기에 이름을 바꾸는 게 쉬웠다고, 그때 가장 많이 바꾼 이름이 전두환 노태우 라던가.) 이름이 사람을 만들기도 하는데(이게 바로 동양 고전 작명의 원리겠지.) 후자쪽을 따르자면. 나는 경계를 모르는 가능성이 무한한 여자가 되어야 할텐데. 

뭐, 호기심의 경계는 모르겠고(여러가지로 관심이 많다.) 가능성이 무한한지는 모르겠지만, 책에 대한 욕심은 무한하다. 결국 내가 이렇게 된 건 아시마라는 내가 택한 나의 이름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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