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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가꾸고 있습니다 - 동물들이 찾아오고 이야기가 샘솟는 생태다양성 가득한 정원 탄생기
시몽 위로 지음, 한지우 옮김 / 김영사 / 2022년 4월
평점 :
『정원을 가꾸고 있습니다』by 시몽 위로
읽은 날 : 2024.12.8.
2024년의 첫눈은 첫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과하게 내렸다. 그 첫눈이 내리던 시기에 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 的인 동네에 출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유숙자 옮김, 설국, 민음사, 2003, p.7
라고 절로 중얼거리게 되는. 북악터널을 경계로 그곳은 그야말로 설국이었다. 자랑이랄 것도 없지만(내 정원이 아니니까) 운이 좋게도 나는 사무실 문을 열면 아주 넓지는 않은, 그래도 그다지 좁다고도 말할 수 없는 잔디 정원이 있는 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 30년 가까운 세월동안(그렇다고 내가 30년간 일을 해왔다는 오해는 금물이다.) 내가 발을 디딘 정원은 각각 달라졌지만 그곳에서의 내 모습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 사무실 컴퓨터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을 열심히 놀리는 것에 질리면 유리문을 열고 나가 정원의 잔디 위에서 손가락을 열심히 놀린다. 그리고 그렇게 잡초를 뽑을 때마다 박완서 선생의 에세이 한구절을 떠올린다.
처음엔 재미삼아 하던 게 일단 잔디와 클로버로 편을 갈라 잔디 편을 들기로 작정을 하자 점점 클로버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증오가 끓어올랐다. 어디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보자 하는 식이었다. 여북해야 그짓에 들려 헤어나지 못하면서 문득 인간의 광기 중 가장 무서운 인종청소에 들린 독재자의 심정을 다 이해한 것처럼 느꼈을까.
박완서, 『두부』, <봄의 환(幻)>, 창작과비평사, 2002, p.107
같은 사무실을 쓰는 다른 직원들은 나의 광기 어린 풀뽑기를 이해하지 못했다. (당연하다, 잔디를 관리하는 분은 따로 있어왔다, 항상.) 그냥 재미삼아 하는 거예요, 라는 어쭙잖은 변명으로 나는 나의 적개심과 증오를 숨기지만, 내가 잔디정원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곳에 ‘내가 뽑아 제거할’ 잡초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선생님(그러니까 정원의 진짜 주인)과 나는 쿵짝이 잘 맞는 짝패여서 우리 둘은 곧잘 신나게 정원의 잡초 제거에 열을 올린다.(그래봐야 최장 10분이다. 그 이상은 허리 아파 안 한다.) 정해진 시기에 맞추어 정원사를 불러 나무의 전지를 하고, 시든 화초를 죄다 뽑아버리고 새로운 화초를 심지만 제초제를 뿌리지는 않는다. 정원사는 매번 권하지만 그때마다 선생님과 나는 어물거리며 다음엔 뿌리지요, 라는 말로 말꼬리를 흐린다.(잔디 관리의 책임을 맡은 분은 이번엔 꼭 제초제를 뿌리라 강권하지만.) 제초제의 독성을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잡초 뽑기 놀잇감이 사라질까 두려워하는 거다. 물론 잔디 정원의 잡초는 놀이삼아 뽑는 걸로는 절대 끝이 안 나기에 잔디 관리하는 분은 우리 둘의 고집에 치를 떤다. 음음, 죄송합니다.
제초제는 절대 사절이지만 수목 소독을 위한 약(살충제)을 치는 일을 게을리하지는 않는다. 잡초는 (뽑는 재미를 위해) 환영하지만 벌레만은 절대 사양이라는 이 이율배반적 모순이라니. 결국 내가 좋아하는 정원은 레이첼 카슨이 말한 ‘침묵의 봄’ 이다. 벌레가 없고, 새 소리가 들리지 않는 기형의 정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와바타 야스나리 적인 고장은 서울시내에서 가장 자연 친화적인 동네임에 분명하다.
그러다 이 책을 봤다. 내가 좋아하는 정원에 관한 책이다. 심지어 아주 잘 만들어진 만화책이다. “동물들이 찾아오고 이야기가 샘솟는 생태다양성 가득한 정원 탄생기” 라는. 동물들이 찾아온다는 건 글로 봤을 때까지만 낭만적이다. 우리 정원엔 분기별로 한번씩 솔거의 까치가 영면을 하고(솔거의 까치는 그림 소나무에 앉으려다 그리되고 우리 정원 까치는 유리창에 비친 소나무에 앉으려다 그리된다.) 때론 작은 호랑이(호랑이는 식육목 고양이과 동물이다)에게 사냥을 당해 정원 가득 깃털을 흩뿌리고 사라진다. 그 사체를 치워야하는 입장에서 생태다양성이란 재앙이다. 물론 까치에게도 재앙은 재앙일터. 이 재앙을 재앙으로 보지 않고 긍정할 수 있을 때 생태다양성은 가능해진다.
이 소박하고 멋진 만화책을 그린 이는 도심의 한가운데에서 이 생태다양성 가득한 정원을 탄생시켰다. 그는 거미의 외모도 찬양할 줄 알고(맙소사!) 도마뱀이 살기 위한 공간을 따로 마련해주며, 뱀의 편을 들어 고양이와 싸우고(세상에!), 지렁이가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일반적이 삽이 아닌 갈퀴삽으로 땅을 일군다. 그가 가꾼 정원에는 나비가 찾아오고 나방이 찾아오고, 모기 살충제를 쓰는 대신 모기를 잡아먹는 박쥐와의 공존을 선택한다. 나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저 책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훗날 언젠가 내가 나의 정원과 농장을 가꾸는 날이 오더라도 나는 아마, 생태다양성을 추구하지는 못하리라. 내가 시골 살이를 접고 도시로 돌아오는 이유에는 아마도 지네를 포함한 벌레와 뱀을 비롯한 파충류가 큰 지분을 차지하게 될테니.
실천하지는 못할지라도 존재만으로도 아름다운 책이었다.
2024.12.8. by ashi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