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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결혼생활
임경선 지음 / 토스트 / 2021년 3월
평점 :
『평범한 결혼생활』by 임경선
읽은 날 : 2024.12.7.
며칠 전 결혼 19주년을 지났다. 그러면서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할 일이 생길 땐 결혼 20년 쯤 됐다는 말을 한 2-3년 전부터 하고 있다. 이 결혼 20년 됐단 이야기는 앞으로도 2-3년 더 써 먹을 생각이니까, 시간의 마디에 관한 인간의 인식이란 이렇게 강박적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나 느슨하고 대충대충 이다. 10주년, 20주년이라는 말의 무게나 힘이 너무 커서 앞 뒤의 2-3년씩을 지배하는 경향도 있고.
임경선 작가의 책 『어느날 그녀들이』를 읽고 경악했던 기억이 있다. 어떤 의미의 경악이었는지는 말하지 않겠고, 그저 그 뒤로 이 작가의 책은 기를 쓰고 피했다.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그 책이. 그런데 이 책을 굳이굳이 사서 읽은 건, 음. 그 20주년이라는 시간의 ‘마디’가 주는 파워 때문이다. 아이도 20년이 지나면 부모와 떨어진 독립개체가 된다고 법적인 인정을 하는데, 서로서로 별개의 인간 둘이 합체를 해 20년이 지나면 이제는 그 자체로 개별적인 무언가라고 인정을 해 줘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문득 하던 중에 이 책을 발견했기에.
우리 부부는 대체로 무난무난하게 살아온 셈인데 이 무난의 기저에는 남편의 너그러움과 나의 무심함, 그리고 둘 다 가지고 있는 결벽성향이 있다. 남편은 그 너그러운 성품으로는 상상이 안 되게 예민한 면이 있고(그래서 이 남자는 불면증이 있다) 나는 무심한 것만큼이나 까칠하고 까다로운 인간인지라(그래서 나는 불안증이 있다) 우리는 서로의 결벽성향에 감사한다. 이게 맞지 않았다면 이혼까지는 몰라도 불행은 확실 했을테니.
나는 세상의 기준이 나라고 생각할만큼 오만하거나 자기중심적이지는 않다. 아니, 뒤집어 말하겠다, 나는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인간이지만 세상의 기준이 나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어순을 바꾼 두 개의 문장이 주는 어감의 차이 때문에 피식 웃는다.) 다만 그 기준이 남편과 내가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그러니까, 정신적 결벽의 기준이 같아서.
글이라는 건 작가의 사상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그건 소설이든 시든 에세이든 상관이 없다. 에세이가 소설에 비한다면 한 겹의 가림막(허구성)을 벗어던졌을 뿐 결국 모든 글은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의 반영이다. 『어떤날 그녀들이』의 경악은 거기서 왔다.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깔끔하지 못한 유무형의 관계를 혐오한다. 그건 그냥 추하다고 생각한다. 추한 것을 추한 것이 아니라고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엄청난 내공이 필요하다. 임경선은 톨스토이가 아니다. (뭐 당연한 건가.)
이 글을 읽는 내내 그래서 불편했다. 허구성이라는 한 겹의 가림막도 치워진 뒤라 조금 더 많이 불편했다. “나는 가끔 다른 남자들에게 호감을 품은 적이 있다.”(p.84)는 유부녀의 고백을 솔직하고 쿨하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나는 앞뒤로 꽉 막힌 고지식한 사람이라는 욕을 먹을지라도 어쩔 수가 없다. 그냥 불편한 건 불편한 거다. 다행한 건 이걸 같이 불편해하는 남자와 20년을 살았고 앞으로도 20년을 더 살 거라는 사실 정도. 이런 문장이 쿨하게 읽히려면 톨스토이 정도는 와야 한다. 뭐 그렇단 이야기다.
앞으로 임경선의 글을 더는 읽지 않을 것 같다. (이 한마디는 참 많은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다.)
2024.12.08. by ashi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