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당의 순례자 - 부암동 푸른 마당에서 누리는 고혹한 자유
서화숙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읽은 날 : 2024. 9. 8
요즘 나는 종종 정원에 나간다. 내 집의 정원이었으면 참 좋겠지만, 일터의 정원이다. 일터라고 해도 벌써 20년 넘게 30년 가까이 드나들던 곳이라 이제는 내 정원 같은 생각도 든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 맘 내키면 나가서 잔디밭의 잡초를 눈에 띄는 대로 휙휙 뽑는다. 사무실에서 유리문 하나 열고 나가면 아주 근사한 잔디정원이 펼쳐지기에 누릴 수 있는 사치다. 잡초가 눈에 띄면 뽑고, 뽑다가 지겨워지면 말고. 사실 정원관리는 하는 분은 애초에 따로 있어서 맘 편히 내가 하고 싶은 만큼의 일만하고 손을 털 수 있으니 더 좋다. 정원일이 사람을 얼마나 즐겁게 하는지는 진짜로 그 일을 해 본 사람만이 안다. 그리고 거기에 취미가 있는 사람만이.
사무실에 나 말고도 직원이 둘 더 있는데 그들은 잠깐 몸을 움직이러 나가 한 10분 남짓 정원을 돌아다니며 아무데서나 내키는 대로 잡초를 한 움큼 뽑아 드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신기하단다. 종종 묻는다. 첨엔 풀을 왜 뽑니? 라고 물었다가 재미로 한다는 말에 정말 재미있니, 그게? 라고 질문이 바뀌었다.
나로서는 반문할 수밖에 없다. 그럼 이게 안 재밌니, 진짜?
내가 시골 살이를 꿈꾸는 이유는 정원을 가꾸고 싶어서가 가장 크다. 그러다 서화숙의 이 책을 봤을 때 내가 아는 동네 이야기가 나와서 반가웠다. 서울을 떠나지 않고도 정원을 가꾸는 삶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이 책을 열심히 탐독했다. 사실 딱히 서울에 천착하지도 않으면서 서울에서 정원을 가꾸는 삶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이유는 떠도는 삶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정착하고 싶은 어디도 없으면서(그렇다, 내 살던 고향동네도 이제 내가 정착하고 싶은 곳이 아니게 된지는 오래 되었다) 살고있는 이곳에서 떠나는 것만을 꿈꾸는 삶의 서글픔이란.
어쨌든, 마당에서 살구와 앵두를 따먹고 복분자와 딸기를 수확하는 삶이라니. 그럴 수 있는 곳 어디라도 나는 살 수 있다. 헌데 부암동, 나 알아. 친해 그 동네랑. 난 한때 평창동 주민이었거든. 내가 가꾸는 사무실 정원도 평창동이거든. 낯가림을 사람만이 아니라 지역에도 하는 나로서는 아는 곳에서 정원을 꾸밀 수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책에 나오는 클럽 에스프레소와 슈퍼와 그 빌라, 다 내가 아는 곳이라고. 그런데 그 부암동에서 정원을 가꾸며 사는 사람의 이야기라니. 세상 부러운지고. 이 책을 읽고 내가 뭘 했게? 맞다. 부암동 단독주택 가격을 찾아봤지, 네이버 부동산에서. 헛웃음이 났다. 하하하하하하.
서화숙 기자를 안다. 한국일보의 기자라는 사실도, 꽤 오래 기자 생활을 한 사람이라는 것도. 김어준 덕에 안다. <다스뵈이다>를 비롯한 김어준의 정치 문화 토크쇼(라고 하는 게 맞나?)의 단골 게스트였거든.
평창동 1호 주민에 가까운 우리 선생님은 나처럼 정원 가꾸는 취미가 있으셔서(실은 나의 정원 취미도 이분에게 물려받은 것이긴 하다) 정말 근사한 잔디정원을 평생 평창동에 가꾸셨다. 한번은 이분이 정원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젊은 남자애가 지나가며 삐딱한 말로 그러더란다. 돈을 얼마나 벌어야 이런 집에 살수 있을까. 하고. 우리 선생님은 그 젊은 남자애를 불러들여 말해주었단다. 맞벌이 부부가 몇 십년을 열심히 벌어서 장만한 집이라고. (강인숙, 『글로 지은 집』, 열림원, 2024 참고)
서화숙 기자도 마찬가지다. 남편도 기자생활을 했고. 서화숙 기자보다 좀 일찍 때려치웠다만, 부암동 집을 마련할 무렵에는 두 사람은 어쨌든 맞벌이 부부였다. 세 명의 아이를 낳고, 시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열심히 한 기자생활로 마련한 집. 맞벌이를 하지 않은 나로서는 그저 손가락 입에 물고 부러워하는 것 외엔 달리 할 말이 없는 노력의 대가와 소산. 서울 시내(정확히는 터 잡고 계속 살아오던 지역, 도시)에 아파트 생활을 하던 사람이 정원이 있는 집을 꾸민다는 건 역시 어려운 일이구나 하는 깨달음.
이 책 직전에 읽은 『엄마도 꿈 꿀 권리가 있다.』라는 책의 저자 임지수는 무려 2만평짜리 정원(농장)을 가꾸고 살지만, 이 사람은 서울을 떠난 장수에서 꿈을 이루었다. 그녀가 서울에서 멀어진 거리만큼 부러움도 희석되었다. 이건 맞벌이하지 않은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 야, 타샤 튜터의 집 같겠다,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중에 나도 시골살이를 하면 임지수처럼 살아야겠다. 습관처럼 중얼거린 말. 나중에.
나의 나중은 언제 올까. 나와 같은 고민을 했던 임지수는 답을 찾았다.
무언가를 더 이루고 더 많이 가져야 서울 생활을 완벽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고, 그 연후에야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정작 꿈꾸는 삶을 향해서는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있었다.
산속 오두막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나보다 무엇을 더 가진 것이 아니라, 소박한 삶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그날 기차 안에서 깨달았다. ‘그래,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행복해 질 수 있는데, 나는 그 행복을 나중으로 미루고만 있었구나.’
임지수, 『엄마도 꿈 꿀 권리가 있다』, 터치아트, 2018, p.21
출장길의 기차 안에서 이 깨달음을 얻었던 임지수는 더 이상 ‘나중’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여기’의 행복에 충실하기로 한 결과가 장수의 ‘farm 나무와 풀’이다.
뜬금없는 소리같지만, 삶의 많은 부분은 결국 상상력의 문제라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나는 욕실을 건식으로 쓰고 있는데, 그 말을 듣는 사람들 대부분은 놀라움으로 눈을 크게 뜨고 되묻는다. “그게 가능해?” 우리집을 방문한 사람 중엔 “얼마나 가나 보자.”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마도 새살림이라 야심차게 급조한 건식욕실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딱히 인테리어를 이유로 건식을 쓰는 건 아니고 욕실화 특유의 그 축축한 느낌을 싫어하는데 건조하게 유지할만큼 바지런한 성격이 못되니 아예 욕실화를 없애버린 거다. 이유는 이게 전부다.
매번 건식 욕실에 대해 놀라워하는 한편 부러워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이 건식욕실을 어찌 유지하며 사는지를 상세히 설명해주지만 나와 동일한 주거조건(2개의 욕실과 분리된 세탁실)을 가진 사람들도 손사래를 친다. 내가 건식욕실을 강요하는 것도 찬양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건식욕실이 부럽고 가지고 싶다면 그냥 해 보면 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거다. 막상 해 보면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로(이렇게 쉬운일이었단 말인가 싶어) 쉬운 일을 시도조차 해 보지 않고 지레 겁먹어 손을 드는 걸 보면 답답하다.
‘답답하다’라고 써 놓고 나라고해서 별 다를 게 있나 하는 생각을 한다. 시골살이를 하고 싶으면 그냥 하면 된다. 적당한 땅을 찾고, 매매하고, 거기 들어가서 살면 된다. 정원 있는 서울살이를 하고 싶으면 지금 사는 아파트를 팔고 정원이 있는 단독을 사면 된다. 나도 건식욕실에 손사래를 치는 사람들과 똑같다, 자신 없어. 자신이 없으면 어쩌겠어, 이대로 사는 거지 뭘. 그게 아니라면 그렇게 간절하지 않은 거든가. 내가 뭘 원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당신이 무언가 좋은 생각을 내야 한다면 산책이 좋다. 어슬렁어슬렁 걸으며 그 생각을 굴려보길 바란다. 당신이 잊어야할 것이 있다면 꽃을 돌보는 일이 좋다. 까다로운 식물을 돌봐야 하는 일에 신경을 집중하다 보면 잊을 것이 잊힐 것이다. 당신이 직면해야 하는 문제, 해법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가 있을 때는 잡초를 뽑으면 된다. 결국에는 당신의 두뇌를 속이는 것, 잠시 다른 길로 유도하는 것, 그리고 마침내 문제를 직면해도 될 만큼 마음이 여물었을 때 그걸 열어보는 것, 그렇게 마음을 여물게 하는 명상을 나는 마당을 순례하면서 했다.
(p.282-284)
서화숙은 이렇게 마당을 순례하면서 ‘혼자가 되더라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을 해야 할 만큼 정신이 강건’ 해 졌고,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시간을 가졌다.(p.286) 정원의 순기능이다. 내가 사무실에서 종종 뛰쳐나가 잡초를 뽑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일이 뭔가를 내가 나에게 물어보는 시간. 내가 왜 시골살이를 꿈꾸는지를 물어보는 시간. ‘나중에’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시간. 정말로 현재는 안되는 것인지 두려워서 미루는 것인지를 내가 나에게 진지하게 묻고 있는 중이다.
결국 모든 것은 상상력의 문제인 것을.
ps. 역시 딴소리 하나. 기자 출신 작가들의 글은 참 단정하다. 그래서 별 다섯개
2024. 9. 9 by ashi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