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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의 허기 - B급 주방장 박찬일 에세이
박찬일 지음 / 경향신문사 / 2016년 12월
평점 :
품절
읽은 날 : 2024. 9. 7
입맛은 보수적이다. 나는 19살에 하숙을 시작했는데, 3년간 살았던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는 강원도 분이셨다. 강원도는 척박한 기후 탓에 식재료가 다양하지 못해 음식문화가 그다지 발달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그분의 손맛은 기가 막혔다. 특히 김치 종류를 정말 잘 담그셨다. 음식 솜씨가 그다지 좋지 못한 엄마 아래에서 자란 나는, 자연스럽게 그분의 음식에 길들여졌고 그분의 김치를 김치맛의 기준으로 받아들였다. 경상남도 쪽의 김치는 멸치 액젓을 많이 쓰고 간이 강하다. 날이 더우니 변질을 막기 위해 그렇게 된다. 김치는 위로 올라올수록 싱거워지고 물이 많이 생긴다. 경상도에서는 처음부터 ‘국물김치’를 담지 않고는 김치에 물기가 별로 없는데 서울식 김치는 아예 김치를 담고 국물을 만들어 붓기까지 한다. (김치명인 『이하연의 명품김치』, 웅진 리빙하우스, 2009, p.45 – 서울, 경기식 배추김치 레시피 중 거의 마지막 단계 ‘생수에 소금을 녹인 다음 김치소를 넣고 남은 그릇에 부어 남은 양념을 헹궈 김치통에 자작하게 붓는다’ 참조) 다만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는 그때 이미 서울 생활 30년이 다 되어가는 분이셨고 오랫동안 하숙으로 집안을 일으키신 분이라 그분의 음식이 강원도 음식이었을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평균적인 서울식 음식을 하지 않으셨을까.
하숙을 끝내고 자취의 생활이 이어졌다. 먹는 일에 그다지 살뜰하지 못했던 나와 집에서 이미 10명 가까운 대식구의 식생활을 책임지고 있던 엄마의 조합은 김치 공수를 아주 드문일로 만들었다. 그 즈음의 나는 김치를, 아니 집밥 자체를 거의 먹지 않았다. (나는 그때도 지금도 라면 먹을 때 김치를 먹지 않는다. 별 이유는 없고 딱히 김치를 먹어야 할 이유를 몰라서.) 어쩌다 김치를 먹고 싶을 땐 사다 먹었다. 종가집 김치 만세. 그러다 스물 여섯 살 무렵, 여섯달 정도 서울 가정식 요리를 배우러 다니면서 내 요리 인생이 시작되었다. 그 뒤 해외로 떠돌던 시절, 나는 온갖 김치를 다 내 손으로 담아 먹었는데 김치 명인 이하연 여사의 책이 내 김치 바이블이었다. 귀국해서는 다시 종가집 김치를 찬양하는 중이다.
친정과 시댁은 같은 지역에 있고, 남편과 나는 학번이 네 개 차이난다. 남편이 4년 먼저 서울에 온 거다. 남편도 나와 마찬가지로 고등학교 졸업으로 떠나온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디아스포라의 세월을 살고 있다. 불쌍한지고. 그의 대학시절 하숙집 아줌마의 출신지역은 어딘지 모르겠으나 그도 나와 비슷한 지경의(사실은 울 엄마보다 시어머니의 음식 솜씨는 더욱... 음. 평생 돈을 버는 일로 바쁘셨으니 음식 따위 하실 일이 없으셨을 거다.) 엄마를 둔지라 자연스럽게 서울 음식을 음식의 기준으로 잡았다.
나도 이렇고 남편도 이러니 평생 경상도 김치를 그리워할 일은 없을 줄 알았다.
한데 2-3년 전부터 나는 명절에 친정에서 늘 김치를 한 통씩, 그것도 아주아주 큰 통으로 받아오고 있다. 처음에는 묵은지를 먹고 싶어서 얻어온 거였는데, 얻어온 친정김치(때로는 큰언니의 산청 시댁김치일 때도 있다)로 끓인 김치찌개는 눈물이 날 정도로 맛있었다. 돼지 목살을 듬뿍 넣고 푹 지져낸 김치찜의 걸쭉한 국물을 흰 쌀밥에 얹어 비빈 걸 한입 가득 넣었을 때, 오래 끓여 물러진 김치의 긴 줄기를 밥 위에 척 걸쳐 입에 가져갈 때, 남편과 둘이 동시에 아 이 김치찌개 진짜 맛있다, 찬양을 하던 그 순간에. 생각했다. 아 당신과 내가 늙었나 보다, 고향 음식이 맛있다니.
입맛은 보수적이다. 변한줄 알았으나 결국은 그 자리로 돌아간다. 내가 처음 먹었던 그 맛을 기억하고 그 최초의 기억으로. 또한 음식은 과거 회귀 본능을 가지고 있다. 과거에 맛있게 먹었던 음식을 먹으면 사람을 그 음식을 맛있게 먹던 그 순간으로 돌려놓는 놀라운 마법을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악착같이 음식에세이를 쓰고 읽는다. 음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을 매개로 한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고 이야기하고 싶어서.
박찬일의 글이 ‘청승스럽다’라고 이야기 했다. 아마도 박찬일이 자꾸만,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과거의 이야기들을 끄집어 내기에 청승스럽다고 느꼈던 것 같다. 출간순서로야 이 책보다 한참 뒤의 책 이지만, 내가 읽은 순서로야 이 책보다 먼저인 그의 책 『밥 먹다가, 울컥』에서 박찬일은 말하고 있다. “나는 결국 평생을 살아도, 옛날만 사는 것 같다.”(p.8)고.
이 책에서 박찬일은 끊임없이 자신을 과거로 돌려놓는 ‘옛날을 살게 하는’ 음식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니 허기질밖에. 옛날에 먹었던 그 음식들을 지금 되살려 먹을 방법은 거의 없으니 말이다. 그가 여전히 덤덤해서 더 청승이 느껴지는 어조로 과거에 먹었던 음식에 대한 추억담과 과거에 자주 갔던 식당에 대한 이야기와 어린시절 부모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읽고 있다보면 때로는 마치 내가 그 자리에 가 앉은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나도, 초등학교 앞에 오던 해삼 멍게 리어카를 본 기억이 있고, 토마토를 썰어 넣은 냉면을 먹은 기억이 있거든. 토마토 냉면은 그렇다 쳐도 해삼 멍게 리어카라니, 이분과 나는 띠동갑쯤 되는데도 그 기억을 공유할 수 있는 건 아마 내가 바닷가 출신이어서 그럴 거다.
다시 한번, 입맛은 보수적이다. 음식에 대한 추억은 사람을 그 시절로 끌고 간다. 젊어질 수는 없어도 젊을 때 먹었던 음식을 다시 먹을 수는 있다. 비록 그 음식을 먹고 “도로 묵이라고 해라.” 했다던 선조와 같은 말을 하게 될지라도.
이 책에서 박찬일은 단순히 음식 이야기만을 하는 것을 넘어서서 요리사로서의 인생과 경험에 대한 이야기도 여기저기 자세하게 많이 풀어 놓는다. 다른 책에서는 별로 자신의 식당 경영 이야기나 음식 철학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편인데 이 책에서는 유독 현실비판적인 구석이 많다. 사라져가는 노포에 대한 아쉬움이라든가, 다량의 화석 에너지를 태워가며 해외에서 공수되는 식재료에 대한 비판. 거기에 이어 “저 잘생기고 착하며, 더구나 요리 솜씨도 좋고 말도 잘하는 한국인 셰프들을 좁은 스튜디오에 몰아넣고 농담이나 나누는 존재”(p.249)로 만드는 현 세태에 대한 비판까지. 이 글을 읽다보면, 이 사람은 세상 사는 게 참 답답하겠다, 그러니 청승스러워질밖에.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두려워할 줄 아는 건 지혜의 진면목’(p.189)이라는 그의 말처럼 현실을 직시하는 지혜가 있기에 두려워지고 두렵다보니 이 두려움을 모르던, 또는 이 두려운 상황이 벌어지기 이전의 ‘옛날’을 자꾸만 이야기하게 되는 건지도. 그리고 일갈하게 되는 것이다. ‘식탁에도 도덕이 필요하다’(p.211) 라고. 비건이 될 자신은 정말 없지만(우울할 땐 고기 앞으로 가야하니까) 내 식탁의 도덕에 관해서 생각해 볼 때다. 엄마의 식탁이 그 없는 음식 솜씨에도 얼마나 도덕적인 식탁이었던가를 생각해보면, 어쩌면 내 입맛의 보수성은 그 도덕성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말이다, 도덕은 가장 최고의 식도락을 즐길수 있게 하기도 한다. 비행기 타고 날아와 ‘농축된 석유를 먹는 것’과 다를 것이 없는 푸아그라니 세계 3대 진미 중의 하나라는 송로버섯을 먹는 것만이 식도락이 아니다. 진짜 식도락은 제철 음식을 딱 그 계절에만, 아니 심지어 겨우 며칠동안에만 먹을 수 있는 그 음식을 그 자리에서 먹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죽나무 순을 날로 먹어본 적이 있는데, 그 가죽나무 순을 따다 주신 분이 말씀하셨다. 이걸 따서 비닐에 넣어서 가져오는 동안 맛이 약간 변해버렸다고. 가죽나무 순이 열기에 데었다고 표현하셨다. 그렇다고 아이스박스에 넣어서 오면 맛이 더 변한단다. 그리고 심지어 가죽나무 순을 이렇게 날로 회처럼 초고추장에 찍어먹을 수 있는 건 한해 중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뭐 그 가죽나무 순 먹겠다고 또 화석연료 때어가며 그분이 사는 산골마을에 찾아가면 그 가죽나무 순도 농축된 석유를 먹는 것과 뭐가 다를까마는. 어쨌든 그런 진짜배기 미식에 대한 생각들을 했다.
다시한번, 박찬일의 에세이는 참 좋구나.
2024. 9. 8 by ashi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