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 나는 무엇이고 왜 존재하며 어디로 가는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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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날 : 2023. 8. 23

 

요즘은 각종 지식을 전달하는 유투버들을 지식소매상이라고 설명하는가 보다. 내가 아는 한 지식소매상이라는 희한한 명칭을 처음 쓴 사람은 유시민 작가다. 한때 정치인과 방송인이었다가 노무현(여전히 아픈 이름)의 그림자이자 호위기사로 꼽혔던, 문재인 정부 어용지식인을 자처하며 정치 외곽에서 문재인을 지켜주는 역할을 했다. 그랬던 그가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모습으로 2008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하고 명함에 새겼던 직함 지식소매상이 되었다.

 

나는 물론 순혈의 노무현 빠순이라는 사실을 당당하게 외치는 바 당연히 문재인 조국도 유시민과 함께 내 유구한 빠질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이유가 좀 다르다. 노무현을 기본에 깔고서 문재인과 조국을 추종하는 농반 진반의 제 1 이유는 잘;;; 생겨서 라면, 유시민을 추종하는 제1이유는 글을 잘 쓰기 때문이다. 이건 진담 100%

 

유시민이 지식소매상이라는 말을 처음 들고 나왔을 때, 사람들이 다들 대체 지식소매상이 뭔가요, 라는 질문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 단어 자체가 당시 꽤 오랜 화두였다. 지식을 만드는 사람(제조자, 창조자)이 있고, 그 지식의 도매상은 전공자들에게 그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라면 소매상은 일반인들이 그 지식을 어떻게든 알아먹고 소화시킬 수 있도록 전달해 주는 사람이라고 그 옛날 유시민의 말을 주워들은 기억으로 대충 재구성해 본다.(전적으로 내 기억에 의한 재구성이므로 실제와 다를 수 있음 주의)

 

날카로운 논설, 단단한 논리 구조로 유명한 유시민이지만 뜻밖에도(뜻밖이 아닐 수도) 유시민은 비유와 유추에 매우 능하다. 비유 중에서도 대유법(제유법+환유법)을 기가 막히게 사용한다. 유추법 사용은 식상한 표현이지만,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할 만큼 탁월하다. 유시민의 이러한 능력이 원조 지식소매상이 될 수 있게하는 원동력이었다.

 

본래 비유는 표현하려는 사물을 다른 대상에 빗대어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국문학자 구인환 선생이 말하고 있다. 유추법은 같은 종류의 것 또는 비슷한 것에 기초하여 다른 사물을 미루어 추측하는 것이다. 새로운 지식이란 알지 못하는 어떤 것이다. 그것을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사물이나 현상, 지식에 빗대어 최소한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으로 쪼개어 설명해 주는 것. 우리가 글쓰기에서 비유나 유추를 사용하는 이유다. 여기에 덧붙여 유시민의 가장 탁월한 능력 중 하나는 요약 정리다. 전체를 아울러 가장 중요한 포인트를 짚어낼 수 있어야 요약을 잘 할 수 있다. 유시민은 이걸 잘한다.

 

글 쓰는 문과 남자유시민은 인문학만 공부해서는 온전한 교양인이 될 수 없다는 생각”(p.8)에 과학책을 읽기 시작했고, 이 책은 그 결과물의 모음집이다. 그는 이 책을 과학을 소재로 한 인문학 잡담’(p.9) 이라고 말하며 책의 서문을 연다.

 

나는 누구인가?’ 이것은 인문학의 표준 질문이다. 그러나 인문학 지식만으로 대답하기는 어렵다. 먼저 살펴야 할 다른 질문이 있다. ‘나는 무엇인가?’ 이것은 과학의 질문이다. 묻고 대답하는 사유의 주체를 철학적 자아라고 하자. 철학적 자아는 물질이 아니다. 그러나 물질인 몸에 깃들어 있다. 나를 알려면 몸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일반 명제로 확장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과학의 질문은 인문학의 질문에 선행한다. 인문학은 과학의 토대를 갖추어야 온전해진다.’

p. 47

 

이 부분에서 유시민 찬양에 온몸을 바쳤다. 과학과 인문학의 관계를 이렇게나 명료하게 정리해내다니. 문과가 과학을 알아야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해 낼 줄 아는 아, 이 똘똘이 스머프.

 

이후 유시민은 뇌과학을 거쳐 생물학 화학 물리학을 지나 뿌리로 회귀하듯 수학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그가 서문에서 말했듯 중요한 과학의 사실과 이론을 쉽고 정확하게 설명할 능력이 없으니 흥미롭게 본 사실, 내게 지적 자극과 정서적 감동을 준 이론, 인간과 사회와 역사에 대한 내 생각을 교정해 준 정보를 골라 나름의 해석을 얹었을 뿐’(p.9)인 글인데(, 이 너무 명확한 자기 인식이라 과공비례라는 말조차 못하게 되는, 또 한번, 이 똘똘이 스머프야.) 무지하게 재미있다. 유시민의 사유는 과학을 시작으로 역사와 종교와 인문학과 언어학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복잡한 이론을 딱 일반인의 수준으로 쉽게 풀어낸다. 어떻게 이런 글을 써 내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여전히 나에게 유시민은 단순한 작가가 아니다. 단순한 개인으로 인지되지 않는다. 나에게 유시민은 언제나 노무현과 연관되는 이름이며 그래서 늘, 아프다. 그가 해맑게 웃고 있어도 그저 아프다. 2009년의 523일에 멈춰있는 이름이기도 하다. 애틋하고 아픈 손가락이라 어떤 글이든 가산점을 얹어주리 맘먹고 보게 되는 이름이기도 한데, 실제론 가산점을 얹을 수가 없다. 이미 그 글 자체로 만점이라.

 

유시민이 지식소매상으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다시 한 번 세상에 크게 외친 책.


2023.9.21 by 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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