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부엌의 마법사 - 어느 푸드 스토리텔러가 차리는 음식과 사람 이야기
김성환 지음 / 이매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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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날 : 2023.9.18.

 

글을 읽는 것을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나는 가리는 것 없이 폭식에 가까운 대식가에 속한다. 사실 글보다는 문자 중독자에 가깝다. 음식의 맛보다 배를 채운다는 사실 그 자체에 집착하게 되는 폭식증 환자처럼. 내가 해독할 수 있는 문자로 된 읽을 거리가 내 앞에 있지 않을 때, 나는 금단증상에 시달리는 중독자의 특성을 보인다. 안절부절은 기본이요, 내 스스로 읽을 거리를 자급자족 하기도 한다. 태평양의 어느 섬으로 갔던 신혼여행에서 한글로 된 읽을 거리를 찾지 못한 끝에 리조트의 메모지에 한글로 이런저런 문장을 끄적인 뒤 그것을 읽으며 나의 중독을 급히 해갈한 기억도 있으니.

 

이런 나도 나름의 뚜렷한 취향은 있는데 그 중 으뜸 또는 버금이 음식에 관한 글이다. 여러번 인용한 바 있는 앤 패디먼의 말 "나는 책에 대한 책은 안 사고는 못 배기는 성미다"(서재 결혼 시키기, 앤 패디먼, 지호, 2002, p.191)는 말을 약간 변형하자면, 나는 책에 대한 책은 물론 음식에 대한 책도 안 사고는 못 배기는 성미다. 개인적으로는 작가가 쓰는 책에 대한 책에 대한 선호도 만큼이나 작가가 쓰는 음식에 관한 책을 좋아한다. 그러니까 음식 전문 에세이스트나 요리사가 쓴 책이 아닌 소설가가 쓰는 음식에 관한 책. 이 분야 최고는 아무래도 성석제고. 한창훈의 책도 좋고, 소설가는 아니지만 에세이스트 김서령이 쓴 책도 좋다. . 언젠가 음식에 관해 작가가 쓴 책만 잔뜩 모아 리스트업을 해야지 생각만한지 벌써 10년도 넘었다. 이 고질적인 게으름병은 그렇다치더라도 사실 내가 탐닉하는 작가들 중 음식을 주제로 한 에세이 한 권을 펴 내지 않은 작가를 꼽는 것이 훨씬 빠르다. 대부분은 음식 이야기를 최소 한권씩은 쓰셨다. 감사하다.

 

어쨌든 이 책은 나의 그러한 취향에 걸려들어 내 서재로 들어왔다. 스스로를 푸드 스토리텔러라 말하고 CIA(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미국에 있는 요리 전문 학교)에 간 이유도 음식 이야기꾼food storyteller이 꿈이고 음식을 먹으며 느끼는 맛뿐 아니라 요리를 배우고 음식문화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서”(p.245) 였다는 작가 김성환은 요리가 아닌 문헌정보학을 전공하고 박사과정까지 마친 사람이다. 지금은 맛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고 스스로 말하지만. 그와 비슷한 과정을 거친 CIA 출신 작가가 또 있다. 사실 CIA에서의 생활을 더 흥미진진하게 그려낸 책은 마이클 룰먼의 셰프의 탄생-요리계의 하버드, CIA에서 보낸 2이다. 음식에 관한 책은 안 사고는 못 배기는 성미인 나는 이 책을 2017년에 읽었다. 김성환의 책 보다는 이쪽이 훨씬 재미있고 박진감 넘친다. (아니... 김성환의 책 리뷰에서 딴 책을 추천하다니. 뭐 어쩌라고. 그러나 이 마이클 룰먼의 책은 진짜 진짜 진짜다. 꼭 읽으시라.)

 

마이클 룰먼의 책에서는 요리사와 요리 작가가 명확하게 구분된다. 요리 작가로서 요리를 배우기 위해 1996CIA에 입교한 마이클 룰먼은 눈보라가 몰아치던 어느날 학교에 결석하겠다고 말을 한다. 눈보라가 치니까, 학교에 못가니까. 그를 가르치던 요리사 파두스 셰프는 그에게 말한다.

 

우리는 자네와 달라.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가거든. 그게 바로 셰프의 덕목 중 하나야. …… 우리는 학생들에게도 이런 방식을 가르치고 있어.”

……

중간은 없었다. 이유 같은 건 중요하지 않은 순간이 있는 것이다. 변명은 전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어떤 순간이든, 손에 잡히는 분명한 사실만이 의미가 있었다. 그뿐이었다.

셰프의 탄생-요리계의 하버드, CIA에서 보낸 2마이클 룰먼, 정현선 역, 푸른숲, 201, p.106-107

 

요즘은 그런 분위기가 많이 희석되었지만(수많은 남자스타 쉐프들이 배출된 덕에 말이다) 사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까지 부엌은 금남의 구역이었다. 이 책의 작가 김성환도 “‘남자가 소꿉장난하면 고추 떨어진다는 협박 아닌 협박을 받으며 자랐”(p. 5). 그가 1980년생임에도 말이다. 그보다 몇 년 일찍 태어난 나는 쉐프가 터프함과 섹시함의 표본같은 존재로 인식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뭐 여기서까지 남녀의 문제를 논할 생각은 없고, 그저 음식에 관한 글이 아니라 음식 그 자체가 탐닉의 대상이 되고(하긴 그건 당연한 것인지도) 그 탐닉을 글로 옮기는 일이 왜 이렇게 각광 받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는 중이다.

 

인간이 사는 3대 조건이 의식주라고 하지만 실제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많은 작가들이 음식에 관한 글을 쓰고, 음식에 관한 글만을 쓰는 작가가 등장을 하게 되는 것일테다. 음식에 관한 글은 읽는 것만으로도 그 음식을 먹은 것 같은, 그 장소에 있는 것 같은 쾌락을 제공한다. 동화 소공녀에서 가장 압권인 장면은 아무래도 다락방에 처음으로 따뜻한 음식이 차려졌던 그 순간인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의 작가 김성환은 하루 3, 80평생 87000번의 식사를 이야기 한다. 그 매번의 끼니가 모두 감동을 주는 식탁일 수는 없는 것처럼 모든 음식에 관한 책이 다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 책은 그 87,000번의 식사 중 별로 기억에 남지 않을 그저그런 음식처럼, 아주 좋지도 아주 나쁘지도 않은 그저 그런 음식에 관한 에세이다. 딱히 이 책은 꼭 읽으시라 권하고 싶지도 않다. 아니 그럼 리뷰는 왜 쓰니, 라고 묻는다면, 글쎄. 나 오늘 아침을 먹은 것처럼, 뭘 먹었는지는 별로 기억에 남지 않았으나 먹기는 먹었기에, 그리고 아침에 그 음식을 먹으면서 아 이런 저런 거 먹고 싶다, 라는 생각을 잠깐 했었던 것처럼. 그저 이 책을 읽으면서 아 음식에 관한 이 책 저 책 그 책이 떠 올라서 그냥 중언부언해 보는 중이다.

 

셰프의 탄생을 읽으시라.

 

2023.9.18. by. 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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