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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폴리스 1 -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
마르잔 사트라피 지음, 김대중 옮김 / 새만화책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먼저 형식적 면에서 큰 감동이 있다. 글과 그림에 대한 고정관념을 무너뜨린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면 감동과 오락은 과잉이 필수라고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마르잔 사트라피는 미니멀한 묘사로 디즈니에 맞설 수 있다. 아이들용이어서 단어수가 작지만 화자 마르잔이 겪는 혼란과 갈등을 묘사하는데는 전혀 부족함이 없다. 하긴 시가 단어를 적게 사용해도 그 느낌은 소설보다 훨씬 강렬할 수 있으니까 적은 단어로 심리 묘사를 할 수 있다고 생각지 못한 건, 나만의 고정관념일 수 있겠다.
이라크, 이란, 쿠웨이트, 시리아...무식한 말이지만 모두 한 묶음처럼 보인다. 서양인들이 북한과 남한을 헛갈려하듯이=.=; 중동 지방 국가들이 가진 고유의 정체성을 헤아리기보다는 미디어가 알려 온 오일, 테러, 억압과 독재로 이들 나라를 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미디어가 이끄는대로 아주 모범적으로 세뇌를 당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보면 중동을 바라보는 관점의 각도가 이동을 한다. 망원 렌즈를 이용해 이들 나라 전체적 이미지에서 그곳에 일어나는 정치적 사건을 아웃 포커싱 시키고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초점을 맞추는 기분이다. 그런데도 정치적 사건이 중요하게 다가오게끔 묘사한다.
중동의 가부장적 체제하에서 여성들을 억압을 다룬 영화를 여러 편 본 적이 있다. 이전에 봤던 영화들은, 여성이면 이해할 수 있는 일반적 억압을, 표현했다. 중동 여성에 대한 정체성보다는 세계 여성과 제3세계를 지배하는 전근대적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세계 곳곳에 있고 너무 익숙해서 보고도 흘려 넘기게 되는 면이 있었다. 그러나 마르잔 사트라피의 글은 다르다. 한 소녀가 성인로 성장하면서 소녀를 둘러싼 가족과 관습을 소녀의 시각으로 봤다. 소녀의 시각은 보편성보다는 중동, 이란이란 특수한 정치적 상황이 두드러진다. 전쟁을 묘사하지 않았지만 전쟁을 겪는 사람들의 고통을 들여다보고 이란의 독재 속에서 종교를 내세워 억압당하는 평범한 시민들이 있다. 특히 여성에 대한 끔찍한 법적 규제는 바로 제 삼자들이 알고 있는 바인데 미디어는 규제를 받는 여성들의 고통을 단 한 번도 제대로 다룬 적이 없는 거 같다. 미디어는 대개 폭격의 규모와 사망자 수를 집계한다. 가족을 잃은 이들의 슬픔의 규모는 계량할 수 없기도 하지만 미디어 컨텐츠가 다루기에는 아주 추상적이다. 복장까지 심한 규제를 받는 사람들의 불편함을 헤아리는 건 불가능하다. 이 책은 이런 추상적인 걸 구체화한다.
길에서 여성을 쳐다보는 남자는 벌금형을 받거나 벌금을 내지 못하면 채찍으로 맞을 수 있는데 이런 웃지 못할 법을 강요하는 게 이슬람교라고,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독재자들이 공포를 조장하기 위해 종교를 이용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도 잘 알고 있듯이, 독재자는 사람들한테 공포를 조장해서 판단력과 이성을 마비시키고 무조건적 복종만을 강요한다. 마르잔은 십대 초반에 오스트리아에서 학교를 다니지만 다시 테헤란으로 돌아온다. 마르잔은 오스트리아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서구화된 것이 아니라 인권에 대한 정당한 요구를 하는 영혼의 소유자다. 여러 다른 그룹의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면서 소녀는 늘 자신이 원하는 걸 할 수 있는 자유를 추구하는 의식있는 여성으로 성장한다. 소녀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은 억압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근본주의자로 순응하게 된다. 그러나 억압에 저항하는 사람 역시 순응주의자만큼 많다. 그래서 세상은 시간이 흐르면 조금씩 조금씩 변한다. 이런 걸 우리는 희망이라고 부른다.
이 책은 아랍 문화권에 대한 새로운 생각거리를 던져준 책이다. 서구인 동양에 대해 맹목적 오리엔탈리즘을 동원하듯이, 아랍 문화권에 대해 지닌 내 유아기적 로망은 베일을 예쁘게 드리워 놓았다. 간결하게 서술된 한 소녀의 성장기는, 게슴츠레한 시선을 거두고 차도르와 히잡 속에 갇힌 여자들의 몸과 마음이 겪는 실체를 들여다보게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