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행 - 하얀 어둠 속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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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견인지 모르겠지만 서사가 일본스럽다. 시간을 재구성했지만 줄거리를 요약하고 범인을 알아보는데 얼마 걸리지 않는다. 영화 초반부에 대체로 심증이 간다.ㅋ 줄거리야 그렇지만 촬영기법도 대체로 관습적이다. 눈에 띄는 거는 인물들 얼굴 클로즈업이다. 너무 잦아서 문득문득 놀랄정도다. 긴장감을 주지 않는 장면에서도 인물들은 얼굴을 스크린에 들이댄다. 아마도 감독과 촬영감독의 취향인듯. 이 영화를 보고 끄적거리고 싶은 부분은 인물, 정확히는 배우들이다.  

1. 한석규-나의 옴므파탈이신데 세월에는 장사없다고, 세월의 무게가 흠뻑.ㅠㅠ 극중 캐릭터가 한물간 형사로 등장하지만 실제처럼 여겨져 가슴아프다. 어째 마른 것 같기도 하고. 형사 역이 이 아닌 <8월의 크리스마스>같은 역할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2. 고수-고수 좋다는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목구비는 또렷하지만 표정이 없고 음침한 기운이 감도는 눈을 가졌다. 이 영화에서는 완전 재탄생. 손예진보다 더 결이 좋은 피부를 자랑한다. 또렷한 이목구비 소유자답게 옆모습이 정면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라스트 씬에서 위쪽에서 비스듬히 잡은 고수의 얼굴샷은, 크레딧이 올라가도 안 잊혀진다. ㅋ 

3. 손예진-참 연기 안 느는 배우다. <외출>,<무방비 도시>, <아내가 결혼했다>에서와 똑같은 대사톤이다. 예쁘장한 얼굴만 있는 배우다. <무방비 도시>에서처럼 이 영화에서도 카리스마를 지닌 역할인데 카리스마는 커녕 예쁜 인형이 생긋 웃는다. 그럼에도 손예진이 출연한 영화는 <클래식>부터 시작해서 거의 다 본 거 같다.-_-

4. 이민정-요즘 내가 예뻐라 하는 배우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가끔 보는데 볼수록 예쁘다. 살짝 비음이 들어간 카랑카랑한 목소리도 사랑스럽다. 다음에 손예진을 제치고 손예진 역할을 하기를, 내가 꼭 볼게요.ㅎ 

5. 차화연-드라마 <씨티 홀>에서도 나왔는 데 차화연인지 크래딧보고 알았다. 느닷없이 튀어나온 중년여인줄 알았는데 암튼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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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잘해요 죄 3부작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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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서 연재한다는 소식을 알았지만 꾹 참고 기다렸다. 사실은 매일 무언가를 챙겨보는 게 귀찮고-.-; 무엇보다도 감질나니까 책이 나오면 봐야지 했다. 작가 후기를 읽으니 골격만 두고 다시 썼다고 하니 연재했던 한 편을 놓친거다.  

그의 소설을 기다리는 이유는, 첫째 재밌다. 둘째, 슬프다. 셋째, 현실을 우의적으로 반영해서 무겁다. 고발프로그램에나 나오는 묵직하고 절망적 이야기를 탁구공같은 무게로 통통 튀겨낸다. 나와 시봉(익숙한 이름이다!ㅋ)은 시설에 수용되어 학대를 받지만 학대 속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뭐든 죄를 짓고 사과를 해야 덜 맞았던 시설에서 나와서도  나와 시봉은 시설에서처럼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나'는 아버지한테 버려져 집도 없고 시봉은 시연이란 여동생이 있지만 여동생은 힘들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게 시봉이나 나랑 별로 달라보이지 않는다.  

더 이상을 약을 먹으면 안 된다는 것도, 사과를 할 필요도 없다는 것도,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나와 시봉은 철저한 사회적 소수자다. 이렇게 캐릭터만 나열해도 한숨이 푹푹 나오는 데 이기호 작가는 다르다. 한숨은 우리의 몫이고 작가는 탁구공같은 경쾌한 문장들을 톡톡 두드려놓는다.  

아이를 기다리는 김밥집 여자의 심정을 표현할 때도 단무지를 빗댄다. 썰어놓은 단무지가 일정하고 표정도 단무지처럼 일정하고. 단무지와 여자의 표정변화 없음에서 독자는 단호함을 들여다보고 울컥한다. 시봉이나 나는, 자신들이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조차 않는다. 푸코 식대로 말하면,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거 자체가 그들을 비정상 취급하는 거다. 그러니 그들에게 값싼 동정이나 말 따위는 필요없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위태로워서 가슴을 졸이게 된다.  

시봉과 나, 그리고 시봉의 동생이고 내가 연정을 품은 시연의 삶은 소설이 끝나도 여전히 위태로울 것같다. 세 사람이 긴 터널로 터벅터벅 들어가고 있는 뒷모습을 연상시키면서 마지막 문장이 끝난다.  

"아직도 병원의 십자가는 높은 곳에서, 가까운 곳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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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 - Truck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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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OCN에서 봤다. 앞부분 좀 놓쳤지만 극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 아무 지장없고 마지막을 놓쳤다. 밤에 혼자보다 상황종료된 시점에서 무언가 다시 일어날 거 같아 무서워서 전원을 꺼버렸다.-_-; 한 편의 영화를 온전히 다 보지 않고 무언가를 끄적이는 태도, 별로 좋지않지만 꽤 괜찮라 몇 마디 끄적이고 싶다. 한국영화는 이제는 일정한 궤도에 확실히 올라있는 거 같다.

이 영화는 미덕이 많은 영화다. 스릴러란 장르적 특성과 트럭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만들어내는 긴장감과 로드무비의 예측 불가능한 특징을 잘 활용하고 있다.

헐리우드가 범인을 나중에 밝히는 수법을 써서 관객이 함께 추론해가게 유도한다. 할리우드식 스릴러를 즐기는 이들은, 그래서 자신들의 논리적 추론 능력이 좋아서 두뇌게임을 할 정도로 머리가 좋다는 착각을 한다. 할리우드의 서사를 깎아내리는 게 아니라 단순한 사실도 디테일로 승부를 걸어 여러 가지 반전 장치를 숨겨놓는 계산이 필요한데 이 계산을 잘 하는 게 할리우드 스릴러다. 할리우드 시스템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반면에 한국 스릴러는 범인을 초반에 알려주고 출발한다. 관객은 이미 범인을 알고 있고 극중 인물만 모를 때 빚어지는 감정이입을 초반부에서 사용한다. 범인이 밝혀진 후에는 범인의 행동반경이 만들어내는 공포에 방점을 둔다. 이런 도식은 자칫하면 김빠지기 쉬운데 이 영화는 끝까지 극적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 운전석과 조수석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유해진의 불안한 표정과 진구의 능청스런 연기는 백미다. 진구는 주는 것 없이 정이 안 가는 비호감이었는데 이 영화에서 비호감 지수가 좀 내려갔다.ㅋ  

달리는 트럭이니 배경이 당연히 도로다. 여기에 비가 오는 밤거리는 으슥하고 트럭 옆에서 바퀴와 같은 위치에서 카메라는 움직인다. 그러니까 현실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장면을 본다. 카메라의 눈을 통해 우리는 바퀴가 돼서 도로를 응시한다. 코너를 돌 때 비스듬한 속도감은 지루할 수 있는 대화씬을 도와주는 훌륭한 미장센이다.   

이런 오락 영화를 보고 철학 운운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오락 영화가 어떤 오락거리를 제공하는 지가 오락 영화의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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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 알랭 드 보통의 유쾌한 철학 에세이
알랭 드 보통 지음, 정명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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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참 후지다. 원제대로 철학의 위안, 혹은 철학자가 주는 위안,이라고 했으면 더 잘 팔렸을 거다. 철학자들의 철학을 보통 식대로 풀어가는 책이다.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고 저작이 많을 수록 내용이 반복되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더구나 에세이니 한 사람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생각이란 책 제목이 달라도 한 점으로 모인다. 천하의 보통도 예외가 아니다. 

보통의 관심은 '행복', '위안', '불안'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다. 심리적 불안에 사로잡혀 있는 개인한테 너 혼자가 아니라고 속삭이는 법에 몰두한다. 이번에는 철학자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다독여준다.  

"몽테뉴는 개인적 고독감을 덜기 위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책은 우리 자신의 외로움도 약간은 경감시켜줄 것이다."  

보통이 글을 쓰는 대의명분이고 내가 보통의 글을 읽는 대의명분이다.  

그런데 보통의 책을 꽤 읽다보니(총6권) 배짱없는 샌님이 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서재에 앉아 책에 둘러싸여 사람들한테 해 줄말을 옮겨 적는 작가님이 그려진다. 땀 냄새가 제거되고 책 냄새가 배인 손으로 하얗게 탈색된 그의 얼굴을 한 채 자판을 두드린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위안이 사라지고 배신감이 고개를 든다. 난 왜 이리 변덕스러울까도 의아하지만 변덕도 위안이 될 수 있나니 보통의 집필의도는 이번에도 얼마간은 성공한 것이리라.  

덧. 내용도 사실 좀 조잡하다. 즉흥 메모를 이어붙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메모의 주인이 보통이라는 게 별 세 개에 대한 이유다. 만약 이 책으로 처음 보통을 만났더라면 보통의 책을 지금처럼 좋아라하며 꾸준히 읽지 않았을 거다. 이제서야 읽은 게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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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파티 피플 - 24 Hour Party Peopl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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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톤 코르빈이 감독한 <컨트롤>은 조이 디비전의 리드 싱어 이안 커티스의 삶을 다루고 있다. 낮에는 직업 상담소 직원으로 전화를 받고 서류를 접수하고 주말이면 무대에서 노래를 하다가 음반 계약을 하고 미국공연을 시작할 즈음 목을 매고 자살을 하기까지 시간을 음악과 함께 다루었다. 이안 커티스가 목숨을 버린 이유는 이안 커티스만 안다. 영화는 그가 그런 행동을 하기 직전까지의 궤적만을 담을 수 있을 뿐이다.  

마이클 윈터바텀은 <컨트롤>-2007년작-보다 먼저 만든 <24시간 파티 피플>(2002년작), 조이 디비전을 데뷔시킨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TV쇼 진행자인 토니 윌슨이 이끈 팩토리 레코드사를 중심으로 70, 80년대의 대중음악, 나아가 대중문화를 바라본다. 극을 이끌어가는 토니 윌슨이 종종 카메라를 대고 관객에게 말한다. 마치 그것이 알고싶다, 같은 프로그램과 같은 진행방식으로 내레이션이 삽입된다. 팩토리 레코드를 거쳐간 그룹들이 공연하는 장면들이 마치 다큐장면처럼 배경으로 삽입되지만 실제 필름이 아니라 배우들의 연기장면을 다큐처럼 찍고 편집했다. 락의 정신처럼, 약간은 흥분되고 무질서한 이미지들이 각기 흩어져 있는 것 같으면서도 모두 하나의 이야기를 위해 모였다. 윈터바텀의 유려한 기술-흔들리는 카메라, 불안정한 컷, 무수한 교차 편집술-은 눈으로 즐기는 락큰롤 같다.

이안 커티스가 죽은 후 70년대가 마감하고 80년대 나이트클디제이의 시대가 오는 중심에 있었던 사람의 이야기를 주변과 함께 엮어내는 관점을 택한다. "변화는 절망인 동시에 희망이다. 행복한 시절은 곧 지나가고 불운한 시절이 온다. 불운도 마찬가지다. 곧 사라지고 좋은 시절이 온다.."고 토니 윌슨의 나이트클럽이 불황(?)일 때 한 거지가 그의 뒤통수에 대고 하는 말이다.   

한국영화 <고고70> 소재인 데블스와 고고장의 이야기가 이 영화에서 모티브를 빌려온 것 같다. (감독이 아니라고 말하면 할 말 없지만 영화를 보면 저절로 그런 생각이 들거다) 독창성이나 참신함 따위는 없어도 적어도 70년대를 살았지만 꼬맹이라 직접 체험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70년대의 분위기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어서 재밌게 본 영화다. 80년대, 90년대 그리고 그 후를, 우리는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맨체스터와 음악에 대한 애정이 묻어있는 <24시간 파티 피플> 같은 영화가 진짜 부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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