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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에 - 헤밍웨이 단편소설집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박경서 옮김 / 아테네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급한 책이 있어 점심시간 무렵에서점에 들러야했다. 좌회전 차량이 끝도 없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십 분 넘게 줄서서 유턴 신호등을 받고서도 주차장 입구로 달리려는 꿈은 사라졌다. 주차장 입구에도 차들은 시야를 가리고 서 있었다. 고개를 드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고 있는 시커먼 신축 아파트 단지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차창으로 들어오는 볕은 두툼한 후드 티와 가죽 잠바를 거추장스럽게 만들었다. 결국 이십 여분만에 주차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서점 공기는 묵직했고 북적거렸다. 필요한 책만 집어들고 얼른 계산하고 숨막히는 공간에서 나와서 맞은 편 백화점으로 갔다. 크르와상과 패스츄리 하나씩 사는데 역시 기다란 줄, 빵집 옆, 별다방에서 커피 한잔을 사고 다시 차를 타고 사무실까지 오는 길은 무지무지 길게 느껴졌다. 거의 두 시간만이었다. 서울에서의 삶은, 빵 하나를 사기위해서도 줄을 서야하는 삶이다. 복작거리는 실내공간은 오늘 같은 날엔 구토를 일으킨다. 고개를 들어도 조각난 하늘 밖에 볼 수 없어 울컥하지만 어디에 화풀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무실에 들어와 서가에서 헤밍웨이의 초기단편을 빼들었다. 책장을 넘기고 있노라니 서서히 숨통이 트인다. 그의 시대가 우리 시대보다 더 낭만적이거나 희망적이진 않더라도 적어도 자연이 있다. 비록 죽음의 이미지를 볼 수 있는 총이 종종 등장한다 할지라도, 헤밍웨이 시대에 고독은 강, 파리의 카페들, 산이 배경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온갖 기계문명의 잡음 때문에 모세혈관이 터져버릴 것 같은 혼란 속에서 느끼는 고독보다는, 인간적으로 보인다. 전적으로 터무니없는 타자의 관점이라할지라도 말이다. 오늘은, 오늘만은..
거대한 자연을 응시하는 헤밍웨이의 시선 속에는 커다란 구멍이 있다. 캄캄한 구멍 속으로 머리를 넣고 한발씩 걸어가면서 허무라는 바람을 맞고 있노라면, 이런 바람이면 괜찮아, 기꺼이 즐길테야하고 싶어진다. 그러면서 문득 서울이 아닌 다른 곳을 거닐었으면 하는 거센 충동을 꾹꾹 눌러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