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변풍경 - 박태원 장편소설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10
박태원 지음, 장수익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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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구보씨의 일일>로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다. 물론 난 소설가 구보씨를 읽지 않았다. 그러나 구보씨를 알고있고 천변풍경을 집어들었다. 해제에 실린 평론을 보니 모더니즘과 사실주의의의 중간 지점으로 평가를 받는 것 같다. 아무렴 어떤가. 모더니즘. 사실주의란 말은 이제 신물난다. (사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서구의 모더니즘 보다 약 1세기 가량 뒤늦은 게 아닌가, 혹은 한국 사회에서 진정 모더니즘이 존재하던가, 하는 회의주의적 관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18세기 서구에서 피어났던 계몽주의 관점과 더 닮아 있는 것도 같다. 모더니즘이 적어도 부루주아지에 대한 혐오를 비추었다면 천변풍경에서는 비판은 물론이고 혐오는 더더욱 읽을 수 없다. 현실을 묘사하는 것으로 사실주의와 맞닿아 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석연치 않다.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전지적 작가 시점은 사실주의에서는 낯선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모더니즘 내지는 근대는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근대, 그러니까 고종 이후의 한국 사회에 대해 난 서구에 대해 갖는 일종의 동경+호기심이 왕성하다. 모친의 말을 빌리면, 이 시대의 구질구질한 삶을 호기심으로, 다른 말로 바꾸면 타자의 시선으로 보는 데 익숙하다. 이 소설 역시 아주 재밌게 읽었다. 고어체가 어렵기도 했지만 행간에 배인 유머와 단편 같은 서사구조는 대단히 흥미롭다. 물론 장편이란 틀거리로 재단을 한다면 그닥 매력일 수 없지만 한편으로는 툭툭 끊기는 이야기 구조는 익히 보아온 서사 중심의 소설과는 거리가 멀다.

박태원이란 작가의 이력 역시 평범하지 않고(월북 작가다! 월북에 방점을 찍은 건 아니지만, 이데올로기를 읽는 건 불가능하다) 무엇보다도 이 시기의 미시사적 관점에서 이 소설을 연구하는 일은 아직 없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남녀의 위치가 어떠했는지, 또는 가정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운영되었는지, 참 적나라하게 말해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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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에 - 헤밍웨이 단편소설집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박경서 옮김 / 아테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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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한 책이 있어 점심시간 무렵에서점에 들러야했다. 좌회전 차량이 끝도 없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십 분 넘게 줄서서 유턴 신호등을 받고서도 주차장 입구로 달리려는 꿈은 사라졌다. 주차장 입구에도 차들은 시야를 가리고 서 있었다. 고개를 드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고 있는 시커먼 신축 아파트 단지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차창으로 들어오는 볕은 두툼한 후드 티와 가죽 잠바를 거추장스럽게 만들었다. 결국 이십 여분만에 주차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서점 공기는 묵직했고 북적거렸다. 필요한 책만 집어들고 얼른 계산하고 숨막히는 공간에서 나와서 맞은 편 백화점으로 갔다. 크르와상과 패스츄리 하나씩 사는데 역시 기다란 줄, 빵집 옆, 별다방에서 커피 한잔을 사고 다시 차를 타고 사무실까지 오는 길은 무지무지 길게 느껴졌다. 거의 두 시간만이었다. 서울에서의 삶은, 빵 하나를 사기위해서도 줄을 서야하는 삶이다.  복작거리는 실내공간은 오늘 같은 날엔 구토를 일으킨다. 고개를 들어도 조각난 하늘 밖에 볼 수 없어 울컥하지만 어디에 화풀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무실에 들어와 서가에서 헤밍웨이의 초기단편을 빼들었다. 책장을 넘기고 있노라니 서서히 숨통이 트인다. 그의 시대가 우리 시대보다 더 낭만적이거나 희망적이진 않더라도 적어도 자연이 있다. 비록 죽음의 이미지를 볼 수 있는 총이 종종 등장한다 할지라도, 헤밍웨이 시대에 고독은 강, 파리의 카페들, 산이 배경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온갖 기계문명의 잡음 때문에 모세혈관이 터져버릴 것 같은 혼란 속에서 느끼는 고독보다는, 인간적으로 보인다. 전적으로 터무니없는 타자의 관점이라할지라도 말이다. 오늘은, 오늘만은..

거대한 자연을 응시하는 헤밍웨이의 시선 속에는 커다란 구멍이 있다. 캄캄한 구멍 속으로 머리를 넣고 한발씩 걸어가면서 허무라는 바람을 맞고 있노라면, 이런 바람이면 괜찮아, 기꺼이 즐길테야하고 싶어진다. 그러면서 문득 서울이 아닌 다른 곳을 거닐었으면 하는 거센 충동을 꾹꾹 눌러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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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시나리오 쓰기 - 심산의 시나리오 워크숍
심산 지음 / 해냄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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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작법서를 멀리했다. 뭐 그렇다고 작법서를 많이 읽은 것도 아니지만. 중요한 건 내가 쓰지 않는 한 그 어떤 강의도 작법서도 변죽일 뿐이라는 진리를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자극이 필요해서 주문했다. 몇 년전 시나리오 작법 기초반을 듣고 야심차게 배울건 다 배웠다고 외쳤다. 하루에 한 신만 쓰면 1년이면 3백 신은 거뜬히 쓸 것이고 3백 신 정도면 시나리오 두 편정도다. 그렇다면 난 탈고한 시나리오를 적어도 다섯 편 정도는 갖고 있어야한다. 그러나 인생이 이론대로 풀린다면 리얼 라이프가 아니라 영화일 것이다. 기초반을 마치고 단 한 편도 쓰지 않았다. 그리고 시나리오는 서사에 약한 내가 쓰기에는 너무 벅찬 분량이라는 방어막을 치게 되었다. 심산 씨의 수다스러움 때문에 책이건 뭐건 간에 부담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트와 태양은 없다는 재밌게 봤다. 이 책도 재밌게 읽었다. 재미있는 독서로 끝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벌여 논 단편은 4편이지만 다음 날 읽으면 재미없고 그 얘기가 그 얘기다. 더불어 작업실 유지비를 위해 일하는 시간을 늘여서 정작 작업실에 들어앉아 있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작업실을 사용하기 위한 노동이 아니라 소유하기 위한 노동으로 전락하는 의지박약. 아주 절망적이지는 않지만 체력이 부족한데다 낭비하는 시간이 절반이라는 거, 이게 문제의 핵심이다. 책상에 앉아있을 때만이라도 집중하는 의지력과 현명함이 필요하지만 배짱이 근성이 호시탐탐 내 무의식을 지배한다. 쓰다보니 리뷰가 아니라 신세한탄을 쓰고 있군. 뻘쭘하다.

실용서를 읽었으니 적어도 지침정도는 적어봐야 책 값은 버는 법.

1. 헛짓 하는 시간을 줄일 것. 2. 주당 32 시간은 창작을 위한 작업에 할애할 것.

아주 원론적이지만 테크닉이나 기법보다 더 중요한 건 무조건 써보는 것이라는 것을 명심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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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오퓔스 감독 컬렉션 3부작 (3disc) [알라딘 특가] - 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 + 마담 드 + 쾌락
막스 오퓔스 감독 / 피터팬픽쳐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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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텔레비전 드라마 서사의 원형같다. 인간은 거기서 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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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존 버거 지음, 김우룡 옮김 / 열화당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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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주문한 책들은 리뷰를 쓰기 위해서 곰곰이 생각을 해야하는 책들이다. 박노자의 <만감일기>와 존 버거 책은 에세이로 특히 더 그렇다. 그래도 3월 첫 리뷰를 존 버거의 책으로 채워보면,

원제가 표지에 쓰여 있듯이 <Photocopies>이다. 글로 쓴 사진이란 우리말 제목 그대로다. A4 1장 남짓한 분량으로 존 버거의 기억 속 풍경을 선명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 인상적 꼭지는 세 부분이다. 여든 여섯의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과의 만남을 회상하는 글. 군복무를 하고서 처음 라이카를 사서 평생 그 카메라를 고집했던 그가 사진에 대해 한 말. "사진은 끝없는 응시로부터 나오는 무의식적 영감이다. 사진은 순간과 영원을 붙든다." 모든 예술의 기본적 자세는 끝없는 응시렸다.

다음은 전구를 그리는 무명 화가 나나 로스티아 이야기. 80년대 생 미셸 대로에서 크레프를 팔면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 그의 그림에 대한 분위기 묘사에서 고흐의 초반 스케치들이 떠오른다. 거칠고 뭉툭하지만 따뜻한 느낌.. 그의 그림이 액자에 담겨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충분히 있지만 평단에서 영향력이 있다는 세간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을 팔도록 도와줄 방법을 모른다. 그의 그림이 팔리는 걸 도와주지 못하는 무기력에 좌절하는 마음도 이쁘고 그런 것에 사심이 없는 로스티아도 이쁘다. 전구 그림을 보면 이제 존 버거의 이 글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은 식사 장면 묘사이다. 둘 다 호화로운 식사였는데 하나는 겉도는 식사. 이런 밥을 먹는 일이 자주 있는 건 아니지만 그 기분이 어떤지 알기에 그의 문장 하나씩 다시 읽었다. "겉으로는 살아서 맛보고 삼키며, 입을 닦고, 말짱한 정신으로 웃고 즐기며, 뭔가를 기억해내려하며 얘기하고 있었지만, 한편으로 우리는 또한 황폐해져 사공(웨이터)의 손에 맡겨져 있었다." 나머지 하나는 세상에 정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감동적인 식사였다.

존 버거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사진들이야 말로 끊임없는 응시가 무엇인지 모범을 제시한다. 오늘 사무실에 오는 길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사소한 일이지만 감정이 썩 좋지않았던 터라 불쾌하다고 직설적(내 주특기기는 하지만)으로 그리고 비교적 장황하게 말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갖기 위해 나는 인내심부터 길러야한다. 말해놓고 후회스럽다. 꼭 그렇게까지 깐깐하지 않아도 될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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