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인이 되기 위한 즐거운 글쓰기
루츠 폰 베르더. 바바라 슐테-슈타이니케 지음, 김동희 옮김 / 들녘미디어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은 끌리지 않는 데 평이 좋아서 궁금했는데 이 정도면 훌륭한 메뉴얼이다. 이만교 씨가 <글쓰기 공작소>에서 '언치'라는 표현을 썼다. 언치라는 음치, 몸치가 말하듯이 글을 모르는 사람이란 뜻이다. 우리는 모두 늘 말을 사용하고 글을 읽고 쓸 줄 알아서 언치라고 하면, 무슨 해괴한 소리냐고 할테지만 이만교 씨의 주장은 설득력있다. 우리가 말하고 읽고 쓰는 글은 일상어고 일상어 속에 들어간 비문은 제쳐두고 말과 글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전달하는 일이다. 그런데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말하거나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한다.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정정확하고 제대로 전달하는 일이 노래나 춤을 추는 것 만큼 힘겹다는 말이다. 이만교 씨의 주장에 동의할 경우에 참고할만한 책이다.  

단순히 단어를 많이 알고 문장을 능숙하게 다룬다고 해서 잘 쓴 글이 아니다. 글쓴이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읽는 사람이 그대로 느낄 수 있어야 잘 쓴 글이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노래나 춤처럼 글쓰기도 연습이 필요하다. 그런데 어떻게 연습을 해야할 지 막막하거나 방법은 알아도 게으르거나 할 경우 메뉴얼대로 따라할 성실함만 있다면 상당한 경지에 오를 것 같다.  

1,2장이 주로 창조적 글쓰기 방법론인데 뇌세포를 창조적으로 거듭나게 하려면 큰 비밀이 있는 게 아니다. 일상을 오감으로 받아들이고 평소에 익숙해서 지나친 사소한 것들에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쉬워보이지만 일상을 탈피하려고 여러 가지 자극을 갖지 않나. 술을 마시기도 하고 가끔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가서 이방인의 시선으로 타지의 일상을 바라보고.. 

사실 무의식의 의식화를 일상에서 일궈내는 일이 글쓰기만큼 어렵다. 가령 어떤 색을 제일 좋아하는가, 그 색에 대해 써봐라, 또는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등등 아주 흔한 소재인데 막상 떠올리면 가장 좋거나 가장 기억에 남는, 가장 인생에서 영향을 끼친 인물 또는 소중한 인물을 끄집어내는 것조차도 쉽지 않다. 한 번도 의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밥벌이에 매진하다보니 잡다한 짓들은 많이 하는데도 정작 중요한 것들은 놓치고 있는 것도 같다. 내게 정말 중요한 게 뭔지 아직 알수없어서 혼동스럽지만 이런 생각의 물꼬를 터주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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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없는 산 - Treeless Mountai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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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엄마와 헤어진 두 자매의 필살기다. 만사 의욕없이 알코올 중독자 고모는, 잔소리쟁이에다 걸핏하면 밥도 안 챙겨준다. 자매는 커다란 돼지저금통이 다 차면 엄마가 온다는 말에 열심히 돼지저금통을 채우느라 고모의 무관심도 상관없다. 저금통이 다 차도 엄마는 소식이 없고 고모는 자매를 짐스러워해서 외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맡긴다. 지방도시에서 시골로 환경이 바뀌어도 자매는 놀라울 정도로 적응한다. 자매는 엄마의 부재를 어렴풋이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살아갈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감정에 기대어 눈물을 강요하는 방법 대신, 감독은 감정을 최소화해서 아이들의 하루하루를 가까이서 들여다본다. 아이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된 환경을 알아차리고 적응해간다. 오백원 짜리 동전과 십원 짜리 동전의 가치를 질이 아니라 양으로 판단하는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게 한다. 아이들은 불안과 걱정 속에서도 할머니의 구멍난 신발 값으로 선뜻 돼지저금통을 내놓을 정도로 의리있게 커 갈거라고 희망을 준다.

영화가 스크린 밖에서 더 힘을 발휘할 수 있을 때는 현실을 돌아보고 의문을 갖게 할 때다. 이 영화에서 자매 역할을 한 두 아이가 보건복지부에서 실행하는 아동자립프로젝트 기금 모금에 도움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희망적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분노가 일어난다. 저소득층 가정 어린이들을 위한 급식비 예산을 줄여 영어몰입 교육에 쓴다는 신문기사를 얼마 전에 읽었다. 영화 속 자매 같은 처지의 아이들은 점심을 굶게 하고 세금은 왜 쓸데 없는 데 쓰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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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과 무한의 과학 뉴턴 하이라이트 Newton Highlight 6
일본 뉴턴프레스 엮음 / 아이뉴턴(뉴턴코리아)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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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싫어하는 종류의 편집이다. 받아봤더니 잡지 글을 모아 정신사납게 엮어놨다. 기본적인 입문서로는 전혀 적절하지 않다. 중간과정 다 생략하고 요점만 정리해놔서 나처럼 수에 대한 개념을 모른 상태에서, 조악한 편집글을 읽는 게 쉽지 않다. 조악한데 가독성까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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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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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은 이곳저곳에서 들었지만 정작 손이 가진 않았다. 표지 때문일까? 표지가 소설처럼 음산하다. 붉은 색이 이렇게 음산할 수 있다니...회자된대로 흡입력이 엄청나다.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지 궁금해서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이 소설은 괴력을 지니고 있다. 뒤에 부록으로 실린 수상작가 인터뷰 중 완전 공감케하는 말이 있다.  

"이 낯설고 강렬한 <고래>에 한없이 매혹되면서도 이 소설의 기원을, 그리고 매혹의 근거를 읽어낼 수가 없었다. 우선 당황했다...그러나 이 소설은 달랐다. 도대체가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소설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소설의 밀도가 더해가면 갈수록 이 당혹감은 불안과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분명 매혹당하고 있는데, <고래>에는 내가 좋은 소설의 조건이라고 설정한 요소들이 거의 없었다. 해서, 나는 이 이야기에 빨려들어갈수록 당황했고, 당황하면 할수록 그 이야기 속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이런 이율배반의 감정은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극에 달했다. 감동으로 가슴이 먹먹하면서도 머릿속은 엉킨 실타래였다."  

대서사시며 희망을 주지 않는 염세적 세계관이다. 게다가 괴이하다. 그럼 이 소설은 마술적 리얼리즘이라 부를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마술적이란 말이 우의적 함의를 담고 있다면, 이 소설은 우의적 함의보다는 리얼리즘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인물과 인물의 유기적 관계는 개연성이 떨어지지만 각각의 인물의 인생사를 떼어 놓고 들여다보면 또 그게 마술적이진 않다. 게다가 중국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 박통시대를 관통하며 비정상적으로 초스피디하게 이루어진 근대화의 파편에 희생당한 개인사를 비추고 있는 게 꽤 의미심장하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이 소설은 매력은 불콰한 속도. 말도 안돼, 하고 중얼거리면서도 흥분이 돼서 책갈피를 서둘러 넘길 수 밖에 없다. 책 속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인데도 이렇게 끌어당길 수 있는 거대한 힘..그리고 이어지는 허망함..이 이 소설을 읽고 난 후 감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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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의 상실
톰 울프 지음, 박순철 옮김 / 아트북스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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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술에 대해서 아주 보수적이고 전근대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 미술은 시각 예술이고 과학이나 기술의 발전 과정 반영이 적은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드가가 물감이 아닌 파스텔이란 소재에 몰두하고 추상화에서 볼 수 있는 물감과 다른 소재의 결합을 가끔 보지만 아름답진 않다. 그들의 시도 속에 들어있는 의도를 읽을 수는 있어도 언어나 물감으로 이루어진 작품만큼 감동을 받기는 힘들다. 즉 현대미술은 미술이 마땅히 지녀야하는 시적 이미지에 미치치 못한다고, 여긴다. 무수한 '이즘ism'을 무시하는 바는 아니지만 미술에서 감상 전제조건으로 '이즘'이 선행돼야한다면 무시당해도 마땅하다..뭐 이론 논리다. 설치미술이나 개념미술 행위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감동을 느끼긴 힘들다. 이 책의 저자는 나 같은 관람자를 위해 비슷한 관점에서 현대미술사를 유머러스하게 정리한다. 

폴록이 뉴욕 미술계에서 우뚝 설 수 있었던 과정은 다소 과장된 면도 있다. 진실의 여부를 떠나 내가 의문을 갖게 된 부분은, 그럼 미술이라는 장르가 후원자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한가, 이다. 이 저자는 폴록에 대해 근본적 의문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페기 구겐하임이 없었다면 폴록의 그림들은 지금쯤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그러나 한편으로 작가가 죽은 후, 또는 작가의 재능을 대중화하는데 매개자는 꼭 필요하다. 그 매개자가 공교롭게도 그림을 소유할 수 있거나 또는 그림을 소유할 정도로 여유있는 사람들과 친한 사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까 한 작가의 재능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야 대중화를 이룰 수 있다. 그럼 한 작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취향이 같은 사람들의 집단이 아닌가?  

현대미술계에서 부상하는 작가들의 배경을 파헤치는 게 신랄한데 유화 작가들에 대한 배경에는 신랄하지 않은데 그 차이를 만드는 건 뭘까.  

이런 생각의 꼬리를 물게하는 책이다.  

덧. 번역도 재치있다. uptown을 윗동네로 번역하니까 참 묘하게 비웃는 거 같으면서도 내용과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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