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 자크 드레이
1.
틸다 스윈튼이 나오고 <아이 엠 러브>의 감독 루카 구아다니노 작품이니까 무조건 봐야하는 영화. 틸다 스윈튼은 근사하다, 멋지다, 이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아우라가 있는 배우다. 세상에 신은 어떻게 이렇게 비현실적인 사람을 땅 위에 내려주셨는지.
왕년 락스타가 성대 수술을 하고 이탈리아 작은 섬에 휴양하러 왔다. 휴양지 패션이 영화 속에 계속 등장한다. 등이 깊게 파인 검은 블라우스와 주름잡힌 아이보리 치마를 입고 사막에서 부는 모래바람을 맞는데, 정말 황홀하게 아름답다. 늘 느끼지만 틸다 스윈튼은 짙은 메이크업을 하지 않아도 화려하고 우아하다. 틸다 스윈튼을 보는 것만으로도 끊임없는 감탄이 나온다.
그리고 폴 역할을 하는 마티에스 쇼에나에츠. <러스트 앤 본>에서 우직하고 성실한 웃음기 하나없지만 삶을 진지하게 대하는 캐릭터였는데 이 영화에서도 비슷한 느낌이다. 얼굴 표정이 풍부하진 않은데 뭐랄까, 진지 열매를 먹었는지 영화배우보다는 성실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준다. 연기를 잘 해서겠지만. 더불어 내가 성실하고 책임감있는 캐릭터를 몹시 애정하는구나, 하는 깨달음.
2.
자크 드레이의 <수영장>을 리메이크한 영화다. 리메이크 영화는 전작과 비교당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다. 자크 드레이의 <수영장>과 몹시 비슷하지만 루카 구아다니노는 다른데 방점을 찍고 있다. 마리안과 그녀의 남자 친구 폴이 휴가를 보내고 있는 섬에 마리안의 옛 연인 해리와 그의 딸이 불쑥 찾아온다. 알랭 들롱이 폴인 <수영장>에서는 폴과 해리의 딸(제인 버킨)과의 관계가 미묘하게 시선을 교차하면서 무슨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 하는 추측을 마구 하게한다면 <비거 스플래쉬>는 마리안과 과거의 연인 해리의 관계를 깊게 들여다본다.
록 가수인 마리안과 제작자 해리가 연인이었던 과거 시절이 회상 장면으로 종종 등장하는데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케미는 쾌락이다. 마약, 춤, 무대와 분장실로 짐작할 수 있는 화려하고 시끄러운 분위기로 표현된다. 반면에 폴과 마리안의 관계는 서로의 상처를 쓰다듬어주는 안정된 관계로 묘사된다. 가수가 목소리를 잃어버리고 다큐멘터리 감독인 폴은, 영화 속에서 이유는 불명확하지만 자살을 시도했던 경력이 있다. 폴의 과거는 알 수 없지만 영화가 진행되는 시점에서 마리안과 폴은 소울 메이트다.
영화는 마리안의 관점에서 진행되는 편이다. 마리안은 쾌락 메이트 해리도 사랑하고,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폴도 사랑한다. 즉 이 말은 한 사람이 둘 다를 가질 수 없다는 말이 되겠다. 쾌락과 책임감은 양립할 수 없는 특징이기도 하다. 마리안은 둘 다를 소유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지만 현실은 한 가지를 택해야 한다. 마리안은 쾌락은 과거 속으로 묻고 책임감과 안정을 택한다. 해리의 유혹을 받으면서도 육체적으로는 거부를 하지만 심정적으로는 해리한테 영원히 사랑한다고 말한다. 해리의 죽음 앞에서도 몸에 상처가 날 정도로 오열한다. 하지만 인간은 어떤 면에서는 영악하다. 떠나간 사랑 혹은 죽은 이는 돌아올 수 없다. 남겨진 건 성실하고 책임감있는 폴. 마리안은 폴을 힘껏 사랑하기로 한다. 폴의 범죄까지도 눈 감아줄 정도로. 감독은 지독한 사랑의 이면을 다룬다. 타인에 대한 중독적 사랑은 지독한 자기애일 수 있지 않을까. 마리안이 그런 것처럼.
4.
인물들 말고도 화려한 볼거리가 있다. 바로 카메라의 움직임. 어찌나 화려한지. 인물을 담을 때 왼쪽 아래쪽에서 시작해서 서서히 중앙으로 이동해서 갑자기 위로 올라간다. 또는 서서히 시작해서 휘익하고 회전을 해서 위로 올라간다. 그래서 대사가 많지 않은 영화인데 몹시 분주하게 화면을 응시하게 된다. 풍경을 담을 때도 마찬가지다. 멀리서 바라보기 시작해서 조금씩 속도를 내면서 깊게 들어간다. 섬의 전경을 보여주다가 갑자기 인물들이 속한 세부적 풍경을 인식하게 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그래서인지 원작보다는 심리묘사는 조금 산만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