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영화 데이터에 "태양은 알고 있다"로 검색해야 "수영장"이라고 나오는 검색 시스템, 디게 신기하다. 아무튼 오랫동안 <태양은 알고 있다>로 알려져있는 영화인가보다. 영화를 보기 전에 우리말 제목이 터무니없는 것으로 여겨졌는데 영화를 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영화 전반부는 알랭 들롱과 로미 슈나이더의 육체를 보여주는 장면이 많아 당혹스러웠다. 후반부로 가면서 전반부에서 보여준 두 사람의 육체적 친밀함이 사건의 작인으로 작용하니 전반부에 중년으로 넘어가려는 찰나의 알랭 들롱을 감상하면 된다.
전반부에서 정사영화인가 하다가 후반부로 가면 스릴러로 변하는데 60년대 정사 영화도 좋고 스릴러도 좋다. 시대상황도 있겠지만, 인물들이 주저주저 열매를 먹었는지, 자신의 감정을 말하거나 표현하는데 몹시 주저한다. 인물들이 주저하면서 눈빛을 교환하는데서 살짝 촌스러우면서도 묘하게 긴장감이 파생된다. 처음에는 좀 웃기네하다가도 극이 후반으로 갈수록 인물들이 지닌 모호한 태도에 매료된다고나 할까. 그러면서 시점의 문제로 넘어간다. 관객으로서 어떤 인물의 관점에서 볼 수 것인가. 이 영화는 인물들의 관점을, 마치 감독처럼 바라보게 한다.
생 트로페즈 낙원같은 별장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던 커플, 장폴과 마리안. 일상도 감정도 평화롭고 단조롭다. 어느날 갑자기옛친구 해리와 그의 딸이 찾아 온다. 고요한 수면에 미세한 바람이 불어 물결이 일렁인다. 장폴은 18살인 해리의 딸에게 끌리는 것 같다. 마리안과 해리는 한 때 연인이었다. 장폴과 해리의 딸, 마리안과 해리의 관계 설정으로 장폴은 마리안과 해리를 주시하고 마리안은 장폴과 해리의 딸을 주시한다. 스크린에서는 어떤 사건도 볼 수 없고 심증만을 가질 수 있게 대사도 적은 분량으로 처리된다. 장폴과 마리안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장폴이 해리를 수영장에서 우발적으로 익사시킨다.
관객이 범인과 범행과정을 다 보면 스릴러로서 가치는 하락하기 마련이지만 이 영화는 범죄영화가 아니라 멜로영화다. 스릴은 살인 사건 이후에 고조된다. 경찰이 찾아와 마리안한테 해리의 죽음이 타살일 가능성에 대해 말한다. 마리안은 장폴이 해리를 죽인 동기가 해리의 딸 때문이라고 믿었는데 경찰은 뜻밖에도 해리와 마리안의 관계를 질투해 살해했을 거라고 말한다. 사실 영화에서 장폴과 해리의 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 단 둘이 한 번 해변을 나갔다온 게 전부다. 마리안은 장폴이 해리의 딸을 사랑한다고 믿어버린다. 관객은 마리안의 관점으로 보게 된다. 게다가 장폴은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다. (쓰다보니 태양이 아니라 장폴이 알고 있을 듯.) 경찰의 말로 마리안은 뜻밖이지만 안도를 끼고 장폴을 경찰에 신고 안 한다. 두 사람은 헤어지고 영화는 끝이 나는데 과연 장폴의 진실은 무엇인지가 남아있다. 관객은 그가 해리를 죽였다는 걸 알지만 왜 죽였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마리안 때문인지 해리의 딸 때문인지, 태양이 알고 있다라는 이전의 제목이 수긍이 간다. 영화 장면 대부분이 뜨거운 여름 집 안 수영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덧.
1. 마리안이 해리한테 장폴은 휴가가 겨우 한 달이라고 말하니까 해리가 가엾는 장폴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많은 프랑스 영화들이 긴 휴가지의 권태로움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다. 이 영화도 네 명의 주인공이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배경은 단촐하게 집 안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우리 여름 휴가는 짧아서 그런지 여름 영화들이 대체로 극적이고 소란스럽다. 여름 영화도 우리가 여름 휴가를 즐기는 방식과 닮아있다.
2. 샬롯 갱스부르의 엄마 제인 버킨이 해리의 딸로 등장한다. 제인 버킨한테도 이토록 앳된 시절이 있었다니..새삼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