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53년 작으로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첫번째 장편영화고 미국에서 개봉했을 때 포스터인데 재밌어서 올려본다. 이 포스터를 보면 60년대 한국영화 포스터 느낌도 난다. 개봉 당시에 여배우의 파격적 노출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한다. 직접 본 감상은, 여배우의 뒷모습 누드씬이 있는데 그게 막 강조되는 영화가 물론 아니다. 뜻밖인 건 베리만 감독도 초기에는 서사 중심의 극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이 때도 얼굴 클로즈업이 이따금씩 사용되긴 하지만 눈에 두드러지진 않는다. 베리만 감독 영화란 정보 없이 본다면 베리만 감독 영화인지 알아채기 힘들 수도 있겠다.

 

2.

"배드 걸 이야기"란 홍보문구에서 알 수 있듯이 착한 여자 이야기는 아니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17세 아가씨가 술주정하는 아버지의 구타로 집을 가출해서 여름동안 남자 친구랑 보트에서 지낸다. 그리고 임신을 해서 19살 남자 친구와 결혼을 한다. 아이가 태어나고 어린 남편은 사회가 원하는 가장이 되려고 노력하다보니 바쁘다. 집세를 내려고 일도 하고 더 번듯한 직장을 가지려고 학교도 마치려고 한다. 하지만 모니카한테는 다 부질없는 일처럼 보인다. 바쁜 남편, 엄마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딸은 자유로운 영혼을 구속한다. 직장에 나간다고 하고 남편의 고모한테 딸을 맡기고 놀러나가고 집세를 낼 돈으로 옷을 산다. 남편과 말다툼을 하면서 하는 말이, "입을 옷도 없는데 집세가 뭐가 중요해". 아, 모니카!! 그러니까 모니카는 17세다. 소비사회의 진정한 고수처럼 보이는 나이고 이성보다는 감정이 중요한 때이다.

 

3.

모니카의 남편 해리는 모니카를 사랑하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가정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모니카와의 유대는 오히려 흔들리고 깨진다. 조그만 배에서 매일 똑같은 버섯볶음과 수프를 먹는 일상을 묘사하는데, 감독은 많은 시간을 사용한다. 모니카의 기질은 자유를 사랑하면서도 물질적 욕구를 버릴 수 없는 것처럼 묘사된다. 정신적으로는 풍요롭지만 물리적으로 불평 하고 해리는 집으로 돌아가 직장을 갖겠다고 설득하지만 모니카는 거부한다. 출산 후 보트가 아닌 집에 사는 건 모니카한테는 물질적 안정을 줄 수는 있지만 정신적 고갈을 의미한다. 해리한테 모니카는 감당하기 힘든 상대다. 감정적인 여자와 이성적인 남자가 만나서 불같은 사랑을 잠시하고 그 다음은 현실로 돌아와 지지고볶는 단계로 이어진다.

 

4.

평화로운 복지국가 스웨덴의 사회 분위기도 영화를 보면 상당히 억압적이고 가부장적이다. 모니카의 행동을 말하는 마을 사람들의 태도, 가장에 대한 의무와 책임, 그리고 아내에 대한 의무 등을 모니카의 질풍노도를 통해 에둘러 말한다. 사실 겉으로 보면 평화로운데 안을 들여다보면 균열이 일어나고 있는 게 커플 관계고 또 사람의 관계다. 나쁘다, 좋다를 말하기 전에 각자의 입장이 있고 그 입장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는지가 관계의 질과 지속성을 결정한다. 모니카와 해리는 전혀 다른 기질의 사람이기도 하고 또 사회화 과정에서 사회화의 정도를 다르게 받아들이기도 했다. 모니카가 저항이란 태도를 택했다면 해리는 순응이란 관점을 택했다. 저항과 순응은 불협화음을 낼 수 밖에 없다. 평범하고 평화로운 가정 혹은 관계란 불협화음을 어느 정도 수용하는지에 달려있다. 모니카가 보기에 해리 역시 배드 가이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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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8-02 0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리만의 영화를 좋아합니다. 이 영화는 처음인데 어떤 경로로 볼 수 있나요?

넙치 2015-08-02 09:44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또 우시겠네요^^;; 어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상영했던 영화에요.

프레이야 2015-08-02 10:27   좋아요 0 | URL
아.진짜 서울 ㅠ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잉마르 베리만 특별전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골라서 제법 봤는데 이 영화는 없었던 것 같아요. ㅎㅎ

넙치 2015-08-05 10:35   좋아요 1 | URL
네, 이 영화는 베리만의 다른 영화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 알려진 영화에요. 첫장편영화라서 그런지 베리만 영화의 전형적(?) 특성들을 슬쩍슬쩍 엿보는 재미도 있어요.

그래도 부산은 다른 도시보다는 기회가 풍성하니 상영기회를 한 번 기다려보심이^^